슈퍼맨 슈퍼맨 홀로 둥지를 지키고 있는 수놈 금화조에게 물 주고 모이 주고 사람 나이 칠 십 넘은 그러나 나에게는 영원히 강아지인 번개 밥 주고 물 주고 몇 년 째 꽃 피우지 않는 난 몇 촉 눈길 한 번 주고 8시 반 가까운 듯 먼 노모에게 일어나시라 전화 드리고 아침 공양이 끝나야 나는 그를 .. 눈물이 시킨 일 2011 2013.07.18
폭죽 폭죽 물 같은 사람과 불 같은 사람이 만나서 물 같은 사람은 자신이 불이라 여기고 불 같은 사람은 자신이 물이라 생각하면서 결국은 물과 불이 한 몸이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 어느 평생이 필요할까 물이 불이 되려면 흐름을 멈추어야 하고 불이 물이 되려면 눈물을 배워야 할까 육신을 .. 눈물이 시킨 일 2011 2013.07.12
꽃들은 달린다 꽃들은 달린다 사람의 몸으로 천사가 될 수는 없겠지만 하루의 몇 시간쯤 천사가 될 수는 있는 일 꿈이 깨지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아예 꿈을 꾸지 않는 일 두 평이 되지 않는 일터에서 꽃들은 달린다 운전석 옆 유리창 앞에 손톱 만한 장미꽃이 뒷 좌석 담벼락 틈새 같은 사이에는 백.. 눈물이 시킨 일 2011 2013.07.09
세상의 중심 세상의 중심 가까운 듯 멀고 먼 듯 가까운 이승과 저승의 어디쯤에 나는 서 있는 것이다 소요 逍遙의 산 어디쯤에 뉘엿뉘엿 자리잡은 비탈진 나무들 햇살이 꽂히는 곳이면 어디든 세상의 중심인 것을 나는 성급히 직선을 꿈꾸었다 아니면 너무 멀리 에둘러 돌아 왔다 이빨 빠진 늙은 꽃들.. 눈물이 시킨 일 2011 2013.07.04
폐사지에서 폐사지에서 이제는 고사리 밭이 되어버린 곳 두렁을 지나 곧 무너져 버릴 것 같은 삼층 석탑 서 있다 머리에는 화관도 쓰고 가슴께에는 풍경도 멋지게 달았던 어디서나 빛나고 경배하며 주위를 맴돌았던 마음 한 채 지는 해를 바라보며 서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난보다 넓지 않은 몇 평.. 눈물이 시킨 일 2011 2013.05.18
참, 멀다 참, 멀다 한 그루 나무의 일생을 읽기에 나는 성급하다 저격수의 가늠쇠처럼 은밀한 나무의 눈을 찾으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창을 열어보인 적 없는 나무 무엇을 품고 있기에 저렇게 둥근 몸을 가지고 있을까 한 때 바람을 가득 품어 풍선처럼 날아가려고 했을까 외로움에 지쳐 누군가.. 눈물이 시킨 일 2011 2013.04.30
징검다리 징검다리 짧은 생, 이 작은 개울을 훌쩍 날아갈 수 없다 까짓것 빠지면 바짓가랑이나 젖고 말 일인데 물살 바라보면 어지럼증이 난다 다리 가랑이 찢어지지 않을 정도만 어른도 아이들도 폴짝거리며 건너서 간다 얼마나 우스운 모습인가 징검다리 돌은 하나씩만 디딜 수 있는 법 미끄러.. 눈물이 시킨 일 2011 2013.04.21
울퉁불퉁 氏 울퉁불퉁 氏 쌀 한 가마를 두 손으로 번쩍 드는 울퉁불퉁씨가 운동을 하는 시간에는 모두가 움츠린 초식동물이 된다 씩씩거리는 숨소리가 용암이 솟구쳐 오르듯 움직일 때마다 근육이 터질 듯 하다 울퉁불퉁씨 운동을 하다 말고 화장실로 뛰어간다 쏴아쏴아 수돗물 소리가 왠지 울먹거.. 눈물이 시킨 일 2011 2013.04.13
종점의 추억 종점의 추억 가끔은 종점을 막장으로 읽기도 하지만 나에게 종점은 밖으로 미는 문이었다. 자정 가까이 쿨럭거리며 기침 토하듯 취객을 내려 놓을 때 끝내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귀잠 들지 못하고 움츠려 서서 질긴 어둠을 씹으며 새벽을 기다리는 버스는 늘 즐거운 꿈을 선사해 .. 눈물이 시킨 일 2011 2013.04.08
가운데 토막 가운데 토막 걸어서 하늘까지 간 사람들이 있다. 시간의 화구火口를 지나기 위해서 신발을 벗고 더 이상 험로는 없다고 안경을 집어 던졌다. 생명을 축약한 푸른 연기 때문에 하늘이 더욱 깊어진다는 것이 그들의 거두절미 때문은 아니리라 오늘도 아우슈비츠를 지난다 머리를 잘리고 지.. 눈물이 시킨 일 2011 2013.04.07
오름, 그 여자 오름, 그 여자 - 제주도 기행. 9 달빛, 별빛, 햇빛 빛이란 빛은 모두 빨아들여 팽팽해진 하늘을 겨눈 활시위처럼 단단하게 여문 눈물을 제 발 밑에 던져 놓는 소나무처럼 단걸음에 내쳐 올라오라고 알몸으로 누운 여자 가볍게 보지 마라 투명한 거미줄이 우주 하나를 옭아매듯이 바람의 길 .. 눈물이 시킨 일 2011 2013.04.02
저 소나무 저 소나무 - 제주도 기행. 7 말하자면 무턱대고 우리가 세상에 내린 것처럼 정류장에서 한참을 걷다보니 입산을 결심했던 것 길에는 바름과 그름이 없으므로 산길이 시작되는 곳까지 따라온 공동묘지는 덧없는 시간의 비석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그 산에는 절이 없었다 바다가 한 눈에 보.. 눈물이 시킨 일 2011 2013.04.01
고사리 꺾기 고사리 꺾기 - 제주도 기행. 5 맛은 없지만 밥상에 오르지 않으면 왠지 서운한 고사리 꺾으러 간다 새벽 해 뜨기 전 이라야 찔레 덩굴 속이나 풀 섶에 숨어 있는 고 놈이 보인다는데 내 눈엔 그 풀이 그 풀 같다 대궁을 잘라도 여덟 번 아홉 번 순을 올린다는 오기가 나에게는 없다 뽑히기를.. 눈물이 시킨 일 2011 2013.03.31
세렝게티의 추억 세렝게티의 추억 무엇으로 나를 부르던 상관이 없다 스스로 사냥을 하지 못하여 이글거리는 하늘을 배회하는 대머리 독수리 무방비로 강을 건너는 누우 떼의 발목을 잡는 흉측한 악어 게으르게 게으르게 암놈이 차려놓은 성찬에 윗자리를 차지하는 수사자 제 자식이 잡혀 먹어도 눈만 .. 눈물이 시킨 일 2011 2013.03.30
낭만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낭만이라는 찻집은 바닷가에 있다 방파제 끝까지 가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문은 항상 열려 있다 대부분 서서 있게 마련이지만 음악은 늘 신선하다 적당한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처럼 테이프는 조금 늘어져 있다 며칠씩 묵고 가는 사람은 없다 밀물이 오면 지워지는 발자국 .. 눈물이 시킨 일 2011 2013.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