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630

신기루를 향하여

신기루를 향하여눈을 감아도 보이는 얼굴이 있어귀를 막아도 들리는 목소리가 있어터벅터벅 걷는다아무리 걸어도 제자리 걸음인 줄알면서도즐거운 목마름으로신기루를 향해 간다내일이라는 신기루를 향해오늘이라는 사막을 건너간다길 없는 길이기에눈을 감아도 보이고귀를 닫아도 들리는바람의 고향그곳에내 마음의 그림자를솟대로 높이 세우기 위해터벅터벅 걷는다웃으며 걷는다

우설

우설 제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길고 두꺼운 혀로풀이나 뜯어먹고 살았는데우리끼리만 하는 말은심장을 두드려야 나오는 외마디 소리곡해도 오해도 없습니다칼집을 내서 드시는군요얇게 슬라이스를 해서 숯불로 구우시는군요맛있다는 그 말씀은거짓말을 휘두르지 않은 제 혀가착하단 말씀이지요?어리석은 말비와 눈그저 소의 헛소리또 무엇으로 애매해지실런지요 *불교문예 2025년 여름호

유적지

유적지꾹꾹 눌러써도 흐려진 연필 글씨처럼쌓으려해도 스스로 몸을 허물고 간 바람이남긴 공터를 읽는다햇살이 무심히 부리로 쪼아대는 적막의 깊이 속에다시 푸르게 돋아오를 것 같은 발자국들길이 없어도 눈이 환해지는 문장의 씨앗들기다리지 않아도 자락자락 어둠이 내리고그 어둠을 들여 더 큰 폐허를 일으켜 세우는순한 짐승에게 기도를 바친다모든 어머니!문학리더스 2025 여름호

누가 내 이름을 불러줄까

누가 내 이름을 불러줄까날이 어두워진 줄 알았더니 내 눈이 어두워진 것이었다먼 길을 갈 수 있는 힘은 누가 호명해줄까 기다리는 것눈물이 앞 서 간 자리를 발자국이 덮어주는 것그러니 나는 사라져 가는 것이다간을 빼 놓고 화로 같은 심장을 꺼내놓고나도 모르는 사이에 커다란 입만 허공에 벌린빈 자루가 되었던 모양이다.누가 내 이름을 부르나돌아보면 헛헛한 웃음 지으며 사라지는 바람더러운 곳을 향해 내려가는 시냇물 소리어디엔가 모질게 걸려 헛바퀴 돌듯뒷걸음질치며 나는 앞으로 나아간다누가 내 이름을 불러줄까   ⊙ 발표문예지 :문학의 즐거움  ⊙ 수록시집명 :  ⊙ 수록산문집 :  ⊙ 수록동인집 :  ⊙ 수상문학상 :  ⊙ 발표일자 : 2005년05월   ⊙ 작품장르 : 현대시  ⊙ 글 번 호 : 195220   ..

박서

박서 나는 망치다한번 내리치면 뼛속까지 못이 박힌다고 다들 한 주먹에 나가떨어졌다 그렇게 어두운 밤 골목을 바람으로 떠돌 때 조금 유식한 주먹 형님이 내게 말했다 주먹도 고상하게 쓰면 스포츠가 되는거야 비행기도 타고 돈도 벌어 학벌도 필요 없는 박서가 되는거야 아니 박사 말고 영어로 바악서 그래서 나는 바악서가 되었다한 발짝 등 뒤에는 낭떠러지 임전무퇴 몸으로 탱크가 덮쳐와도 눈을 감으면 안되지 성난 황소가 되어 앞으로 앞으로 가벼운 풋 워크로 주먹을 날리면 내 눈에는 낙엽처럼 쓰러지는 그림자만 보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바람을 피하는 재주는 없어 한 방에 보내려다 맷집이 없는 나는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정년도 명퇴도 없이 나는 자루가 없는 망치가 되어버린거야 그래도 가끔은 가위에 눌려 허공과 섀도복싱을 해..

질주

질주 나는 말이다심장에 광활한 초원을 품고 태어났다그러나 나는 감옥이나 다름없는 막사와트랙을 오가는 경주마가 되었다신호가 울리면 눈을 가린 채로 초원을 달리는 환상을 꿈꾸며 트랙을 달렸다나의 주인은 상금을 타서 좋아하고나는 미친 듯이 달릴 수 있어서 좋았다그러나 기계가 아닌 나는뼈가 닳고 근육이 해져서 달리기를 그만두었다승마 초보자들을 태우고 터벅터벅 조심조심걷는 일을 했다관광 마차를 끄는 친구들도 있었는데결국은 안락사를 당하거나도축되어 고기로 팔려나갔다나도 폐차장과 다름없는 곳으로 끌려가굶어 죽었다오래전 내 주인이 지어준 이름나는 질주였다 계간 『시와 시간들』2025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