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619

축시 (혼인) 같이 걸어갑니다

같이 걸어갑니다    - 김태민· 엄한솔님의 화혼에 부쳐    나호열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끝이 보이지 않는 먼 길을 함께 걸어가는 일입니다 그 먼 길은한 사람이 또 한 사람에게로 가는 길이며함께 지나가야 할 운명이기도 합니다 사막을 만나고높은 산을 넘어가며늪과 안개로 가득한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힘은사랑입니다아무리 나눠주어도 모자라지 않는 사랑은믿음입니다 기꺼이 내어주고 채워주며 기뻐하는 마음이사랑이며 믿음입니다 사랑과 믿음이 사는 집은 서로가 등대가 되고 나침판이 되는 곳당신들의 꿈속에 있습니다 한 해의 시작과 함께 두 사람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 곧 혼례를 앞둔 신랑 신부에게 무슨 말을 해야할까 고민이 된다.

가만히 다가오는 것들

가만히 다가오는 것들 꽃 피는 순간을 보려다 설핏 잠들었을 때 기척도 없이 내 몸을 감싸는 어둠처럼얼굴에 내려앉는 시간의 발자국처럼가만히 다가오는 것들이 있다어느날 예고도 없이 떨어져나간 문고리처럼그렇게 슬픔으로가만히 다가오는 것들이 있다 그렇게내게 남은 꿈은 꿈꾸지 않는 일이다한 번도 만나지 못한 당신과 이별하듯가만히 다가오는 것들은 나의 어리석음을 알려주는 자명종이다 * 시와 사람 2024 겨울호

내구연한 5

내구연한 5 눈 깜짝할 사이여행을 다녀왔다 삼 박 하고 나흘 동안수만 리 만행을 떠난 승려가 된 듯고요히 적막에 면벽한 피정인 듯감금과 해방 사이를 들락거렸다 수인이 되어염려를 가장한 감시와안녕을 빙자한 검사 속에서언제인가 한번을 마주쳐야 할죽음과 만났다 일 년의 내구연한을 선고받은 사람과내일도 모르면서천년을 살듯이 이스트처럼 부푼헛꿈을 꾸는 동안와르르 벚꽃이 지고구름은 한바탕 눈물을 쏟고산을 넘어갔다 분명히 집을 떠나왔는데여전히 나는 아집 속에 떠돌고 있는 것이다 생명과 문학 2024 겨울호

서포에서

경남 사천시  서포에서 바다 앞에 서면 우리 모두는 공손해진다.어떤 거만함도, 위세의 발자국도멀리서 달려와 발밑에 부서지는 포말에 눈이 먼 기도문이 된다. 바다의 푸른 팔뚝에 문신처럼 박힌 거룩한 포용을 가슴에 담을 뿐. 바다 앞에 서면 우리 모두는 서로의 섬이 된다.보지 않으려 해도 볼 수밖에 없는 수평선으로 달려가위태로운 줄타기의 광대가 되는 자신을 떠올리거나수평선의 끝을 잡고 줄넘기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거나무의식적으로 손을 길게 내밀어 고무줄처럼 수평선을 끌어당기고 싶다면아직 우리는 살아 있는 것이다.좀 더 살아야 하는 것이다. 시작 메모>오랜만에 바닷가에 닿았다. 짙은 어둠 속을 더듬거리다 보니 문득 섬에 닿았다. 바다의 낭만 속에 숨은 온갖 생명들의 숨소리와 힘겨운 노동의 거룩함이 밤새 마음..

사랑법 1

사랑법 1 매미가 노래한다라고 썼다가 지운다매미가 운다라고 황급히 썼다가 지운다장마가 지나간 뒤무섭게 돋아오르는 풀들 위로뒤늦제 도착한 바람이머리를 풀어헤치고매미는 잠깐 잠깐 그 사이에소리를 얹는다 나는 당신의 빈 방을 떠올린다흰 건반에 얹히는 손늪의 바닥에 닿으려가시연꽃의 뿌리그 때울음도 아니고 노래도 아닌광시곡이 저 혼자 태어나는 것이다

이별의 시간

이별의 시간이제 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해야하는데끝내 하지 못했다마지막이라는 말 그러면 영영 너를 잊어버리고다시는 찾을 수 없을 것 같아서안녕 그 말은 가슴속에 넣었다우리는 서로의 주인이었다우리는 서로를 보듬고 체온을 나누었다그러나 우리는 말을 나누지는 못했다서로의 언어가 달랐으므로오로지 눈빛으로오로지 몸짓으로 나이테를 새겼다기억은 내 옷자락에 묻어있다무심코 신발에 달라붙는 흙처럼옷깃에 떼어내지지 않는 낙엽처럼문득 너는 살아있다마지막 인사는 하지 않겠다너는 언제나 내게 살아 있으니까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