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603

장항역

장항역무궁화호 막차를 타고 장항에 갔네자정이 가깝고 선산은 멀어몇 걸음 앞에 다가온 강물에 눈을 씻었네삐걱거리는 여인숙 문풍지 바람소리밤새도록 나를 울렸네끝내  아버지 고향에 가지 못하고타고 온 기차에 도망치듯 몸을 숨겼네장항역에 내렸네 신성여인숙도 안 보이고 강물도 안보이네장항역은 장항에 없다네그렇지 오십년이 흘렀지# 서천신문 게제 예정

생물을 소재로 한 시 모음

생물을 소재로 한 시 모음젖소  젖소는 일하지 않는다하루 종일 풀과 사료를 먹으면서아무 생각없이젖을 만든다새벽이면 어김없이고무장갑의 큰 손이우유를 가져가기 위해방문한다아무 것도 주지 않는 그들에게젖소는 반항하지 않고화내지도 않는다젖소는제가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모른다결코 젖소는제가 젖소인지 모른다대를 물려가는 혈통은검은 얼룩을 지우지도 못하면서서정적인 목장 풍경 속에우리의 뒷골 속에되새김 되는초식동물우리의 뒷모습을 오늘도 보지 못한다 누에 누에는 뽕잎을 먹고 산다수천 년 동안누에는 그의 속성을바꾸어 본 적이 없다뽕나무는 뽕나무대로누에밥이 되는즐거움의 생활방식을바꾸어 본 적이 없다 한 마리 나방이 되기 위하여수고스럽게 고치를 지어야 하는 노동을생략하지 않는다한숨인 양 뿜어올리는 실오라기를한 줄씩 잡아당겨 ..

내구연한 4

내구연한 4눈깜짝 할 사이여행을다녀왔다삼박하고 나흘동안수 만리 만행을 떠난 승려가 된듯고요히 적막에 면벽한 피정인듯감금과 해방 사이를 들락거렸다수인이 되어염려를 가장한 감시와안녕을 빙자한 검사속에서언제인가 한번을 마주쳐야할죽음과 만났다일년의 내구연한을 선고받은 사람과내일도 모르면서천년을 살듯이 이스트처람 부푼헛꿈을 꾸는 동안와르르 벚꽃이 지고구름은 한바탕 눈물을 쏟고산을 넘어갔다분명히 집을 떠나왔는데여전히 나는 아집 속에 떠돌고 있는 것이다

내구연한 1

내구연한 1 시계가 힘을 쓰지 못하고 멈춰 섰다 어제도 아니고 오늘도 아닌 고개마루턱에 엉거주춤 제 자리를 맴돌다 밥만 축낸 한 생의 내구연한을 알 수가 없어 궁금증을, 머리 속에 가득한 빈 밥그릇같은 폐건전지를 버릴 수가 없다 다른 말로 하면 가위눌린 잠일 뿐인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발걸음이 노여워도 또각또각 심장의 박동을 어떻게 잊을까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는 내구연한 서로를 흘깃 쳐다보며 사라진다 시와 사상 2024 여름호

나는 거기있다

나는 거기있다* 기차길이 지워지고 역사만 남았다 소실점으로부터 서서히 다가오는 그대를 기다리는 봄꽂 터지는 심장의 박동 우두커니 머물지 않고 지나치는 바람을 잡으려다 거두어들이는 머쓱한 손 그래도 기다릴테다 기다림이 무너져 그리움이 되고 그리움이 눈 멀어 흩날리는 진눈깨비가 되어 이름을 지워버린다해도 눈 감지 않는 등대가 되어 그대를 꽃피우리라 * 는 곽성숙 시인의 시 제목이다. 시인은 세상을 떠난 친 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시로 담았다. 이 시는 그런 애틋한 마음을 되새기며 연시풍으로 쓴 것이다.

내력

내력 ​뻐꾸기가 봄을 산에 옮겨놓았다 팔이 긴 울음소리가 멀리 퍼져 나가는 밤 산은 연두소리로 차곡차곡 채워지고 붉은머리오목눈이가 탁란하는 동안 뻐꾸기는 제 목소리를 제 알에 숨겨놓는다 새끼를 품을 수 없어 슬픈 그저 엄마 여기 있어 엄마 여기 있어 온 산에 가득차면 푸드득 초록 날개가 뻗쳐오른다 북이 된 산은 뻐꾸기의 목소리로 가득 차고 이윽고 여름이 온다 문학과 사람 2024 봄호 대표시

망우 지나 망상

망우 지나 망상 아주 먼 나라, 나하고는 일면식도 없는 이곳저곳에서 벌어지는 잔치에 늦가을의 나그네처럼 흘깃 지나고 있어요 왼발 아래는 늪이 오른발 밑에는 절벽이 꿈속에서 러시안룰렛의 총구처럼 돌고 있어요 마치 당신은 내 마음속 오리무중에 있는데 나는 사슬에 묶여 이리저리 흔들리는 형국이지요 갈대들은 한 문장으로 나부끼는 깃발 당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나는 아직도 먼 나라에 살면서 이곳으로 정든 편지를 써요 망우(忘憂) 다음 역은 망상 입니다 * 문학과 사람 2024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