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심의 시 「농담」에 대하여 조영심의 시 「농담」에 대하여 농담 서서히 그리고 둥근 동심원으로 환한 사향의 향기를 눌러 송연먹을 간다 거친 그을음의 입자를 절반의 밝음과 절반의 어둠으로 감각의 아홉 문을 죄다 걸어 잠그고 정수리에 숨을 모아 내 깊은 고갱이를 자꾸만 빛과 어둠으로 괴어 아득하게 바림으..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2020.03.24
바람의 언덕/ 조영심 바람의 언덕 조영심 내게도 바람이 닦아놓은 언덕이 있어 넘너리(里) 부는 바람을 안고 당신 속을 돌고 돌아 먼 바람길 오른다 오래된 그 언덕엔 해가 일었다가 지도록 달이 차오르다 기울도록 차마 등질 수 없는 세상의 바람들 오롯이 하늘에 닿도록 한 바람이 다른 바람을 다치지 않게 ..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2017.10.05
복길 선창 /손수진 복길 선창 손수진 선창가 횟집 창가에 앉아 지는 노을을 바라보고 있으면 까닭 없이 눈물이 난다 울며 나는 바닷새 울음에 아릿한 슬픔 같은 것이 배어 있고 함께 온 사람들은 창밖으로 지는 해를 보며 탄성을 지르는데 목울대를 타고 올라오는 덩어리 같은 것이 있어 자꾸 쓴 소주를 목..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2017.09.01
쌍계/ 조영심 의미가 담겨지지 않은 풍경은 없다 쌍계 雙磎 조영심 쌍계사 종소리 우네 덩, 덩 한 소리 밀어낼 때마다 당신에게 보낼 우표 같은 벚꽃 한 잎씩 떨어지는데 선창도 없고 매김소리도 없어 소리길 따라가며 디딜 울음마저 없는데 목쉰 새처럼 우네 나무는 곁을 떠나보내고 나서야 그 빈 자리..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2016.01.19
빙어 / 김명림 빙어 / 김명림 우아한 모습으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저 연꽃 좀 보아 시궁창 판잣집에 사는지 누가 알았겠어? 창자 쓸개 다 보여주고 후회하는 꼬락서니라니! 연꽃은 불교에서는 물론이고 유교에서도 화중군자 花中君子라 하여 높이 받들어지는 꽃이다. 진흙 속에 몸을 묻고도 꽃도 향기..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2015.12.29
눈 [가슴으로 읽는 한시] 눈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입력 : 2015.12.05 03:00 눈 밤도 아닌데 봉우리마다 달이 떴고 봄도 아닌데 나무마다 꽃이 피었네. 천지 사이에는 오로지 검은 점 하나 날 저물어 돌아가는 성 위의 까마귀 한 마리! 雪 不夜千峰月 (불야천봉월) 非春萬樹花 (비춘만수화)..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2015.12.05
내 가방 /정은희 내 가방 정은희 무거운 것이 싫어서 힘들어서 가방을 바꿔본다 들었다 놨다 내용물을 바꿔본다 어제 무거웠던 가방은 오늘은 매지 않았다 오늘 무거웠던 가방은 내일은 매지 않을 것이다 연일 궁리하며 가벼움을 바라나 늘 가방은 무거웠다 지나고 보면 쓸데없는 참으로 쓸데없는 근심걱..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2015.12.01
제목을 잃어버린 시 제목을 잃어버린 시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입력 : 2015.09.05 03:00 제목을 잃어버린 시 서울에서 술을 마시고 크게 취해서 해질 무렵 미친 듯이 노래 부르며 돌아왔네. 봉래산에는 속물이 너무 많기에 유희하며 인간 세상에 머물고 있지. 失題 大醉長安酒(대취장안주) 狂歌日暮還(광..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2015.09.05
관찰의 힘 복도/ 김현희 그는 천성이 과묵하다 주인보다 먼저 입주한 그는 쿵쿵 뛰어오는 발소리를 귀에 저장하고 입을 다문다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오는 사람을 가장 먼저 반기는 것 또한 그의 몫 들고나는 이삿짐의 행로도 추적하지 않고 겹겹이 쌓이는 묵은 임대의 기록도 결코 내색하지 않는다 ..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2014.07.17
시는 배를 채우지는 못하지만 정신의 거름이다. 시는 배를 채우지는 못하지만 정신의 거름이다 시 尹錫山 나이 일흔을 바라보며 가끔은 일어나는 욕망마냥 시란 놈, 가끔은 불뚝거린다 이제 시란 나에게 이렇듯 주책없는 것인가 젊은 사람들이 모여 떠드는 자리 슬그머니 피해 혼자 소주나 따르는 그러나 가끔은 일어나는 나의 쓸쓸한 ..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2014.06.08
영하의 날들/ 권상진 영하의 날들 권 상 진 이 골목은 열대의 모세혈관 쪽문 깊숙한 곳까지 폭염을 나르던 적도의 시간들이 출구를 헤매는 골방에서 노인은 지팡이와 함께 싸늘하게 발견 되었다 직립의 시간은 끝난 지 이미 오래인 듯 폭염을 등에 진 채 골방에 ㄱ 자로 누운, 저 경건한 자세가 되기까지 열대..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2014.04.20
첫사랑을 기억하는가 소름 / 정은희 그냥 비어 있는 집이었습니다 가구 하나 없이 텅 빈 ...... 그러자 기다림이 왔습니다 방안 가득 매미 소리가 들어왔습니다. 물결처럼 파도처럼 출렁이다가 잠시 고요해지면 창 밖의 흔들리는 나뭇잎들이 집 안 가득 쏟아져 들어옵니다. 아하, 어쩌면 좋아요. 바람이 집안을 ..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2013.12.23
자연의 응시와 작은 깨달음 물의 나이 황경순( 1960 ~ ) 나이테는 나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산모롱이 웅크린 저수지에도 새겨진다 그러나 누구도 그의 나이를 알 수는 없었다 이따금 누군가 그의 가슴팍을 퐁당,하고 건드리면 그제야 살아온 날들을 풀어놓고 징처럼 울었다 모난 돌멩이를 던졌다고 거친 파문으로 ..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2013.07.29
이발소에 갔다 이발소에 갔다 -아무도 말이 없다. 1 김항배 장맛비는 계속 내리고 이발소에 갔다 징징쟁쟁재깍재깍징징 전기카터기 소리는 항상 힘이 있고 벽속에 붙은 TV가 혼자 시끄럽다 선풍기는 기둥처럼 서서 열심히 바람을 만들었다 아무도 말이 없다 벽 속에 또 벽이 있다 잘못된 관계를 입에 물..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2013.07.02
수로부인에게 보내는 연가 수로부인에게 보내는 연가 오창제 거친 땅바닥을 순결의 지뢰밭으로 여기고 헛바퀴 도는 자건거 페달을 뒤뚱거리면서 밟는다 작은 글씨들이 밤비에 불어서 등을 억누르는 좁은 길 헉헉거리며 휘어진 언덕길을 오를 때 가로등 불빛에 숨어있던 여인의 얼굴이 내 얼굴 위로 스쳐 지나간다..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2013.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