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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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가 남긴 교훈

조광조가 남긴 교훈중앙일보입력 2026.09.03 00:04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1482~1519·사진)의 행적을 거론하기에는 조심스럽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를 따라 평안도 희천에서 성장했는데 이때 큰 선비인 김굉필(金宏弼)을 만나 학문을 깨우쳤다. 자질이 명민했던 그는 33세에 장원급제하여 홍문관 정언을 거쳐 대사헌에 이르렀는데, 이것이 남자의 3대 액운인 소년등과(少年登科)일 수도 있다.조광조는 공자와 주자의 가르침에 고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보기에 대궐 안에서 도교의 의식을 치르는 소격서(昭格署)를 헐어야 한다고 왕(중종)을 설득했다. 왕은 버텼고, 조광조는 집요하게 왕을 설득했다. 심할 때는 새벽닭이 울도록 어전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세종도..

인문학에 묻다 2026.09.03

장미산성에 쌓인 백제인의 삶

우엉 씨앗·어린 소 위한 코뚜레…장미산성에 쌓인 백제인의 삶(종합)김예나2026. 9. 1. 15:03 최근 발굴 조사서 '가장 이른 시기' 삼태기·식물 50여 종 등 확인"소 이용해 물자 운반 가능성"…"1천600년 전 생활 간직한 '타임캡슐'"볍씨에서 도정한 흔적도…집수지 내부 조사 계속·보존 방안 '미정'1600년 전 백제인이 쓴 생활유물 (충주=연합뉴스) 천경환 기자 = 1일 충북 충주시 장미산성에서 출토된 백제 시대 유물들이 전시된 충주 국립중원문화유산연구소 전시관 모습. 2026.9.1 kw@yna.co.kr(충주=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힘이 세고 몸집이 큰 소를 다루기 위해 옛사람들은 어린 소의 코를 뚫어 둥근 나무 테를 끼웠다. 지역에 따라 '코꾼지', '코빼이', '군들레' 등으로 불..

유물과의 대화 2026.09.03

경북 칠곡 … 전쟁 지난 곳에 들어선 ‘경계 위의 공간’

활처럼 휜 갤러리·빛 깃드는 수도원…상처의 땅에 꽃핀 ‘안식의 건축’[박경일기자의 여행]박경일 전임기자+ 구독입력 2026-08-27 09:50수정 2026-08-27 10:24 ■ 박경일기자의 여행경북 칠곡 … 전쟁 지난 곳에 들어선 ‘경계 위의 공간’ 마을과 논 사이 ‘시호재·시차’건축가 ‘이타미 준’ 딸이 지어타원형 곡선에 예측불가 경관 사제-신자사이 좁힌 왜관성당고국서 추방당한 獨신부 작품신도들 바라보면서 미사 설계 왜관수도원 새로운 피정의 집앞·뒤 외관 달라 절제·파격 美성체 모신 감실선 천장서 햇빛 회의실 벽 수백자루 망치 전시기도하는 이의 노동 가치 상징4층 하늘성당 ‘베네딕도의 별’일본에서 활동한 세계적인 건축가 유동룡(일본명 이타미 준)의 딸, 유이화가 설계한 칠곡의 카페 ‘시호재(時弧齋..

내가 왜 너희들 때리면서 스트레스까지 받아야 하냐?

[이기호의 유머란 무엇인가] 내가 왜 너희들 때리면서 스트레스까지 받아야 하냐?[1] 유머와 죽음재생이기호 소설가·2018 동인문학상 수상자입력 2026.01.05. 23:45업데이트 2026.01.06. 11:1 일러스트=이철원중학교 때 나를 가르쳤던(3년 내내 담임을 맡았던) J 선생님은 알루미늄 카본 재질의 선수용 양궁 화살로 학생들 종아리를 ‘즐겨’ 때리던 분이셨다(내가 다녔던 중학교에 유명한 양궁부가 있었다). J 선생님의 담당 과목은 수학. ‘수포자’라는 단어가 아예 없던 시절부터 선제적으로 그 길을 걸어갔던 나와 내 친구들은 수학 시간마다 칠판 앞으로 불려 나가 종아리를 맞곤 했는데, 그때마다 붕붕 말벌 날아오르는 소리가 났다(양궁 화살이 공기를 가를 때 그런 소리가 났다. 양궁 화살..

부산 밀면 원조’ 107년 비화

부산 밀면 원조’ 107년 비화카드 발행 일시2026.09.01에디터 손민호맛 잇는 식당, 맛있는 현대사🍚 ‘맛 잇는 식당, 맛있는 현대사’를 시작합니다먹는 일을 ‘끼니’라고 합니다. 슬픈 말이죠. 끼니는 때우거나 잇는 일입니다. 즐기거나 누리는 일이 못 됩니다. 우리에게 먹는 일은 이렇게 그늘진 것이었습니다.‘먹는 장사’도 딱한 단어입니다. 먹는 장사라는 낱말에는 끝없는 노동과 옷에 전 냄새 같은 고달픈 일상이 묻어 있습니다. 남을 먹이는 일처럼 고귀한 것도 없을진대, 밥을 파는 건 오랜 세월 제 밥을 위해 남의 허기를 채워주는 벌이였습니다.먹고 먹이는 일의 태반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지 못한 건 우리네 살아온 모양이 순탄치 못해서일 터입니다. 식민지 시대를 넘어왔고 전쟁에서 살아남았습니다. 한두 세대..

문화평론 2026.09.01

나이애가라 폭포

AI가 골라준 나이애가라 Horse Shoe나이애가라 폭포는 세번 간 것 같다.주로 캐나다 쪽에서 Horse Shoe 폭포를 바라보고 배를 타고 가까이 갈 때 자연의 위대한 힘에 전율을 느끼고는 했다,아래 시는 여러 편의 시 중에서 한 편이다수만 마리의 푸른 말들이 가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 떨어질 때 그때 그 말들은 천마가 된다 / 천마가 되면서 순간, 산화하는 꽃잎들을 / 젊은 날 우리들은 얼마나 눈부시게 바라보았던가 / 아무에게도 배운 적 없는 사랑의 꿈틀거림이 / 천 길 아래로 우리를 떠밀어내었던가 / 그 푸른 말들이 하염없이 흘러서 / 한가슴을 적시기라도 했단 말인가 // 추락이 두려워서 아니 이미 밑바닥까지 추락해버린 / 한 사내가 폭포를 더듬어 올라가고 있다 / 물방울들이 수만 마리의 연어들..

[297] 서소묵장(書巢墨莊)

[정민의 世說新語] [297] 서소묵장(書巢墨莊)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5.01.14. 03:06 송나라 때 육유(陸游)가 자기 서재를 서소(書巢), 즉 책둥지로 불렀다. 어떤 손님이 와서 물었다. "아니 멀쩡한 집에 살면서 둥지라니 웬 말입니까?" 육유가 대답했다. "당신이 내 방에 들어와 보지 못해서 그럴게요. 내 방에는 책이 책궤에 담겼거나 눈앞에 쌓였고 또 책상 위에 가득 얹혀 있어 온통 책뿐이라오. 내가 일상의 기거는 물론 아파 신음하거나 근심·한탄하는 속에서도 책과는 떨어져 본 적이 없소. 손님도 안 오고 처자는 아예 얼씬도 않지. 바깥에서 천둥 번개가 쳐도 모른다네. 간혹 일어나려면 어지러이 쌓인 책이 에워싸고 있어서 움직일 수가 없소. 그러니 서소라 할밖에. 내 직접 보여드리..

[나무편지] 《고규홍의 나무》가 뜻깊은 학술상을 받았습니다

[나무편지] 《고규홍의 나무》가 뜻깊은 학술상을 받았습니다★ 1,356번째 《나무편지》 ★ 학술상을 받았습니다. 한림대에서 운영하는 ‘도헌학술상’입니다. 《나무편지》에서 여러 차례 소개한 지난 3월의 책 《고규홍의 나무》가 그 대상입니다. 수상이 결정됐다는 소식은 얼마 전에 받았고, 지난 목요일에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나이 들어 받은 상이 몇 개 있었지만 별다를 게 없을 뿐 아니라 좀 겸연쩍기만 하다고 여겼는데, 이번 학술상 수상만큼은 적지 않은 느낌을 갖게 됩니다. ‘식물학’을 전공하지 않은 제가 쓴 식물 관련 서적에 대한 ‘학술상’이라는 과분한 평가를 받은 셈이니까요. 쑥스럽습니다만 최종 심사평을 아래에 그대로 옮겨놓겠습니다. 심사평 1: 이 저술은 평자가 근자에 읽은 책 가운데 가장 흥미..

“창밖 풍경도 작품” 감탄 쏟아졌다…단색화 거장들의 ‘비밀 공간’

“창밖 풍경도 작품” 감탄 쏟아졌다…단색화 거장들의 ‘비밀 공간’ [비크닉]중앙일보입력 2026.08.28 06:00이소진 기자 구독물감 묻은 붓과 캔버스가 그대로 놓인 작업실. 누군가 잠시 자리를 비운 듯한 이곳은 시대의 한 획을 그은 예술가가 생전 사용하던 공간이다. 올해 잇달아 단색화 거장, 김창열·박서보·윤형근 화백이 머물고 작업했던 공간들이 미술관으로 문을 열어 화제다. 세계적인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이들의 작품을 만나는 일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지금, 예술가의 가장 사적인 공간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이유는 무엇일까.김창열 화백이 30년 넘게 작업하고 생활한 집을 개조한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김창열 화가의 집'. 사방이 막힌 가운데 천창과 측장에서 은은하게 빛이 스며드는 구조를 그대로 재현했다..

카테고리 없음 2026.08.28

두 번 죽어 시대의 스승 된 김종직과 그의 가족

‘파묘’도 지울 수 없었던 절의, 사림파 집권 길 터중앙일보입력 2026.08.28 00:10두 번 죽어 시대의 스승 된 김종직과 그의 가족이숙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항우(項羽)가 의제(義帝)를 시해한 일에 가탁하여 선왕(先王)을 헐뜯은 김종직을 부관참시하라. 그 자가 저술한 『점필재집(佔畢齋集)』은 모두 거두어 불사르고, 그 도당들을 일망타진하라.”(연산군 4년 7월)1498년에 발발한 무오사화(戊午史禍)로 6년 전에 죽은 김종직(金宗直·1431~1492)은 무덤에서 나와 또 한 번의 죽음을 맞이한다. 유생 시절에 쓴 조의제문(弔義帝文·의제를 위한 제문)이 제자 김일손의 사초(史草)로 인해 되살아난 것이다. 실록은 객관적인 사실을 기록하는 것 외에 전해 들은 이야기나 사관(史官) 개인의 논평을 싣..

인문학에 묻다 2026.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