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이호준의 나를 치유하는 여행 24

괴산 산막이길

호수·숲 사이 꽃 품은 길… 상처입은 ‘나’를 껴안다 문화일보 입력 2015-04-22 15:20 충북 괴산 산막이옛길의 등잔봉 능선에 오르면 만개한 진달래와 함께 한반도를 닮은 지형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가뭄 때문에 물이 줄어들어 온전한 한반도 모양을 갖추지는 못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충북 괴산 산막이옛길 길은 풍경을 완성한다. 아무리 삭막한 풍경이라도 길 하나가 들어서는 순간 온기가 깃들기 마련이다. 길은 그리움의 뿌리다. 꼬리를 물며 나지막한 산을 넘어가는 오솔길은, 머릿속에 그리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아련한지. 길은 사람과 대지가 만나서 나누는 교감의 흔적이다. 길은 또 스스로 망각하는 존재다.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는 순간, 빠르게 흔적을 지워 다시 산이 되고 들이 되고 풀과 꽃..

강원 영월 청령포 & 장릉

‘端宗 마지막 길’ 함께한 소나무 절망하는 後世에 희망 속삭이다 문화일보 입력 2015-05-06 15:50 강원 영월읍 방절리 청령포를 찾은 관광객들이 단종의 유배생활 당시 설화를 간직하고 있는 관음송을 둘러보고 있다. 단종이 두 갈래로 갈라진 이 소나무에 앉아 쉬었다고 한다.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높이 30m, 둘레 약 5m에 이르며 수령은 600년으로 추정된다. 김동훈 기자 dhk@munhwa.com 강원 영월 청령포 & 장릉 바람 탓이다. 슬쩍 스치고 간 것 같은데 흐려지던 산벚꽃이 남은 자취를 지운다. 꽃잎이 뿔뿔이 흩어지고 나무들이 어깨를 들먹인다. 청령포로 가는 길은 슬픔과 동행하는 길이다. 계절은 쉴 새 없이 오가고 시간은 앞으로 줄달음치지만 소년 왕의 눈물은 바위마다 새겨져 지워지지 않..

전북 완주

삼례문화예술촌에 가면… 활판인쇄기·압착기 등 책 제작 도구 전시 문화일보 입력 2015-05-13 15:18 익산에서 출발해 여수까지 운행하던 전라선이 복선화되면서 폐선이 된 만경철교의 침목 위로 담쟁이넝쿨이 뻗어나가고 있다. 삼례문화예술촌을 이루는 창고 건물들은 일본인 대지주였던 시라세(白勢)라는 사람이 1926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시라세는 삼례역을 통해 군산으로, 만조 때는 바다를 통해 양곡을 실어 나른 장본인이었다. 건축물 대장에도 일제강점기 세운 건물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 창고 건물들이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것은 2013년 6월 5일이었다. 농협에서 비료와 쌀 창고로 쓰던 것을 완주군이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매입해서 개조작업에 들어갔다. 나날이 쇠퇴해가는 삼례지역을 다시 살린다는..

충남 외연도

바다위에 띄워진 ‘海霧(해무)의 섬’ 품고있던 10가지 보물을 쫙~ 문화일보 입력 2015-05-20 15:14 충남 보령 앞바다의 외딴 섬 ‘외연도’. 섬을 일주하는 탐방로 코스 중에서 특히 돌삭금과 작은명금, 큰명금으로 이어지는 북쪽 해안선 풍광이 아름답다. 김낙중 기자 sanjoong@munhwa.com 충남 보령 외연도 트레킹 이번 바닷길에는 비가 내려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구름은 저만치 물러나 멀고 하늘은 비질이라도 한 듯 말끔했다. 배가 외해로 나갈수록 물은 짙푸르게 깊어갔다. 하늘과 바다는 서로를 비춰 보며 닮아가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외연도로 가는 뱃길은 멀고도 멀었다. 내내 따라오던 섬들도 모두 돌아가고 망망대해에서 시선의 방향을 잃을 무렵 섬 하나가 나타났다. 바닷속에 ..

진천 농다리

자연 품은 돌다리 사람들의 흔적들 1000년을 이었네 문화일보 입력 2015-06-24 16:03 충북 진천군 세금천 위에 놓인 농다리를 탐방객들이 지나고 있다. 농다리는 많은 비가 오면 물이 넘쳐 흐르도록 만들어져 오랜 세월을 무너지지 않고 버텨 왔다. 신창섭 기자 bluesky@munhwa.com 충북 진천 농다리~초평호 땅 위에 물이 생기고 생명이 태어났다. 물은 흘러 내려와 강을 이뤘고 주변에 사람이 모여 살기 시작했다. 왕래와 소통이 필요했던 사람들은 이쪽과 저쪽을 잇는 다리를 놓았다. 통나무를 갈라 가로지르거나 큰 돌을 놓기도 했다. 어느 다리는 자주 큰물이 쓸어갔지만 어느 다리는 긴 세월을 견디며 발자국을 몸에 새겼다. 이 땅에는 1000년을 견뎌 온 다리도 있다. 진천 세금천(洗錦川)의 농..

해운대 미포~청사포 폐선철길

꿈 찾아 추억 찾아 하염없이 걷고싶은 4.8㎞ ‘행복 기찻길’ 문화일보 입력 2015-07-01 16:25 부산 해운대의 미포에서 옛 송정역까지 4.8㎞ 동해남부선 폐선 구간을 찾은 관광객들이 철길을 따라 걷고 있다. 뒤편으로 해운대해수욕장과 신시가지의 빌딩숲이 보인다. 김동훈 기자 dhk@munhwa.com 해운대 미포~청사포 폐선철길 기찻길은 과거로 가는 통로다. 미처 발아하지 못한 꿈이 묻혀 있는 곳이다. 까마득히 멀어져가다 끝내 스스로를 지우는 철길에 서면, 꿈을 꾸던 아이 하나를 만날 수 있다. 아이는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소실점을 지나면 무지개가 태어나는 마을이 있을 것 같았다. 언젠가 끝까지 가보리라 결심하고는 했다. 세월은 무심하게 흐르고 꿈은 꿈으로 끝났지만 철길에 서면 여전히 가..

충남 예산 추사고택·수덕사

묵묵히 딛는 1080 계단… 사나운 마음 잠잠해진다 문화일보 입력 2015-07-08 16:14 충남 예산 추사고택·수덕사 충남 예산군 덕숭산 자락에 자리한 수덕사 본당 뒤편에서 정혜사까지 이어지는 벽초 스님의 1080 돌계단을 따라 등산객들이 수행을 하듯 한 계단 한 계단 번뇌를 털어가며 오르고 있다. 곽성호 기자 tray92@ 이 계절에는 세상의 모든 길이 암청(暗淸)의 터널을 통과한다. 가로수들은 땅속 깊이 뿌리를 내려 생명수를 길어 올린다. 소나기조차 인색한 하늘에 무릎 꿇지 않으려는 의지가 꿋꿋하다. 복주머니 수술처럼 생긴 자귀나무 꽃이 바람에 흔들린다. 과수원의 사과들은 벌써 아기 주먹만 하게 자랐다. 사과나무들은 어떻게 형상을 기억했다가 작년과 꼭 닮은 열매를 키우는 것일까. 약동하는 생명에..

충남 아산 외암민속마을 · 봉곡사 소나무숲길

풋과일 물고 송사리 쫓던 어릴 적 나를 보다 문화일보 입력 2015-06-17 15:57 충남 아산 외암민속마을 · 봉곡사 소나무숲길 충남 아산시 외암민속마을 입구의 개천에서 동네 아이들이 어설프게 만든 족대로 물고기를 잡으며 즐거워하고 있다. 외암민속마을은 중요민속문화재 제236호로 지정돼 있다. 김동훈 기자 dhk@munhwa.com 구불구불 앞장서 가는 돌담이 걸음을 이끈다. 솟을대문이 우뚝한 기와집과 조개껍데기처럼 낮게 엎드린 초가집이 번갈아 객을 반긴다. 이곳에서는 그 무엇도 서로를 밀어내지 않는다. 껴안고 보듬어 절묘한 조화를 직조한다.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누구도 이방인이 아니다. 이 마을에서 오래 살아온 듯, 익숙한 걸음으로 이 집 저 집 들르기 마련이다. 충남 아산시 외암민속마을을 찾아..

전남 담양 정자와 정원

세파에 지친 선비들 넉넉하게 품어 준 天上의 ‘작은 쉼터’ 문화일보 입력 2015-06-10 14:34 전남 담양 정자와 정원 해묵은 배롱나무가 빼곡한 전남 담양군의 명옥헌 원림 정자마루에서 탐방객들이 초여름 더위를 식히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식영정 옆 부용정의 연못에 어리연꽃이 동그란 잎을 띄워놓고 있는 모습. 신창섭 기자 bluesky@munhwa.com 6월의 산과 들은 풍요롭다. 아니, 풍만하다. 효모를 넣고 밤을 지낸 밀가루 반죽처럼 잔뜩 부풀어 있다. 풍만은 농염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한고비 넘어 세상을 좀 알 것 같다는 여인의 표정을 닮았다. 그 풍경 속을 달린다. 전라남도 담양으로 가는 길이다. 담양하면 정자와 정원이 먼저 떠오른다. 면앙정·송강정·식영정·소쇄원·명옥헌원림…. 유독 담양에..

강원 정선 만항재 - 정암사

석탑 층층마다 밴 고단했던 광부들 ‘빛을 향한 염원’ 문화일보 입력 2015-06-03 15:45 강원 정선 만항재 - 정암사 대한민국 석탄산업의 과거와 현재를 보존하고 있는 태백시 철암동 철암탄광역사촌. 예전 광부들이 살던 집을 그대로 보존해 놓았다. 김동훈 기자 dhk@munhwa.com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고 싶었다. 펄럭거리는 마음 자락 맑은 바람에 걸어놓고, 축축하게 젖은 날들을 말리고 싶었다. 널어놓은 마음이 햇볕에 바랜 옥양목처럼 빛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지도를 펴들고 고른 곳이 만항재였다. 해발 1330m. 자동차가 갈 수 있는 포장도로 중 가장 높다는 곳. 높다고 알려진 지리산 정령치(1172m)나 강원도 평창-홍천의 경계선인 운두령(1089m)도 한 수 접고..

경북 영주

‘단종 복위’ 실패로 참화당한 넋들 밤마다 통곡 문화일보입력 2015-05-27 15:30 금성대군신단. 단종복위운동을 하다 처형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단이다. 경북 영주시 풍기읍과 충북 단양군 대강면의 경계에 있는 죽령옛길은 영남과 호서를 연결하는 고갯길 중 가장 동쪽에 있다. 고갯마루의 높이는 해발 698m. 이 길이 처음 열린 것은 1800여 년 전이었다. 삼국사기에 ‘신라 아달라왕 5년(158년) 3월에 비로소 죽령길이 열리다’라고 기록돼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아달라왕 5년에 죽죽이 죽령길을 개척하다 지쳐서 순사했고 고갯마루에는 죽죽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길을 연 죽죽을 기리기 위해서 죽령이라고 불렀다는 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죽령 일대는 고구려와 ..

경기도 여주

神力으로 용마 다스렸다는 신륵사… 나옹선사의 도술·출생담 등 전설도 문화일보입력 2015-04-15 15:41 신륵사 전경. 극락보전(가운데)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1800년에 중창한 것이다. 파사성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한강 상류와 하류를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파사성을 축성한 시기의 왕으로 전해지는 파사왕(婆娑尼師今·재위 80∼112년)은 신라 제5대 국왕이다. 하지만 이 시기에 성을 쌓았다는 문헌적 근거는 없다. 이후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류성룡의 발의에 따라 승군 총섭 의엄(義嚴)이 승군을 동원하여 둘레 1100보의 산성을 수축했다는 내용이 전해진다. ‘대동여지도’에도 파사성이라는 기록이 있다. 발굴 조사에서 삼국시대의 유구(遺構·옛날 건축의 구조와 양식..

경기도 양평

천년 품은 기상 앞에 佛心이 절로… 어지러운 세상, ‘평온’ 빌어보네 문화일보입력 2015-03-18 15:57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들어가다 심었다는 용문사 은행나무에 부드러운 저녁 빛이 스며든다. 용문사의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한 여성이 천년 넘게 이어온 생명 앞에 두 손 모아 경의를 표하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경기 양평 사나사·용문사 양평을 흔히 ‘물의 고장’이라고 부른다. 들판을 적시며 흐른 남한강이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만나는, 말 그대로 물이 풍성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물뿐 아니다. 한가운데에는 1157m의 명산 용문산이 자리잡고 있다. 조선 초기의 문인 이적(李迹)은 양평을 일러 “왼쪽으로는 용문산에 의지하고 오른쪽으론 호수를 베개 베었다”고 읊었다. 양평은 가..

충남 서산

“환하게 웃는 산신령 새겨져 있는디유…” 나무꾼 덕에 세상에 나온 ‘백제의 미소’ 문화일보입력 2015-03-11 15:31 국보 제84호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사진)은 지금까지 발견된 마애불 중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서산 마애삼존불로 불러왔는데 2010년 문화재청의 ‘국보지정 명칭 통일방안’에 의해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으로 이름을 바꿨다. ‘백제의 미소’로 잘 알려진 삼존상은 암벽을 약간 파고 들어가 불상을 조각했다. 가운데 연꽃 대좌(臺座) 위에 서 있는 여래입상은 통통한 얼굴에 큰 눈과 두툼한 입술을 하고 있다. 얼굴의 전체 윤곽이 둥글고 풍만하여 백제 특유의 자비로운 상을 보여준다. 몸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으며, 앞면에 U..

강진

‘天地 의미’ 가르침 준 酒母… 다산도 그 당당함에 ‘깜짝’ 문화일보입력 2015-03-04 15:53 다산이 유배 초기 머물렀던 주막의 바깥채 ‘사의재’. 동백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는 백련사. 김낙중 기자 다산이 강진에서 만난 이들 중 가장 관심을 끄는 사람은 주막 ‘동문매반가(東門賣飯家)’의 주모였다. 모두가 외면할 때 방을 내주고 밥을 끓여낸 그녀는 다산이 심신을 추스르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다산은 유배 초기 정신적 충격으로 석 달이나 두문불출했다고 한다. 날마다 우두커니 앉아 있는 그에게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쳐 보라고 권한 사람도 주모였다. 그녀는 보통 여인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다산이 형 약전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어느 날 저녁 주인 노파가 제 곁에서 한담(閑談)을 나누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