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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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당선시 23

202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가담 / 박연

202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가담 / 박연가담  박 연  우, 너는 언젠가 영가들은 창문으로 다닌다는 말을 했지. 그 뒤로 밤이 되면 커튼을 쳐두었다. 낯선 영가가 갑자기 어깨를 두드릴까 봐. 두려운 일은 왜 매일 새롭게 생겨날까. 가자지구에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 소년들은 처음 보는 사람을 쏘았겠지. 총알이 통과한 어린 이마와 심장. 고구마 줄기 무침 먹으면서 봤다. 전쟁을 멈추지 않는 나이 든 얼굴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빌미로 이익을 얻으려 한다는 말을 들었어. 맨발로 거리를 걷고 싶다. 너는 내가 추워할 때 입김을 불어줄 테지. 거리에서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입혀 둔 스웨터를 보자. 보라색 바탕에 웃는 얼굴이 수놓아져 있던 스웨터를 기억해?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음흉해서, 음흉이..

2025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신춘문예 시2025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heystar 2025. 1. 2. 13:592025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디스토피아 백아온  플라스틱 인간을 사랑했다. 손등을 두드리면 가벼운 소리가 나는. 그는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말할 수 없었다. 그 대신 자기가 피우는 카멜 담배의 낙타가 원래는 이런 모양이 아니었다거나 레몬청을 시지 않게 만드는 법 같은 것들을 말해줬다. 나는 그의 말들을 호리병에 넣어두었다. 언젠가 그것들로 유리 공예를 하고 싶었다. ​매일매일 그를 만나 그의 이야기들 들었다. 그는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의 이야기가 끝나 갈 무렵에는 항상 쇼 원도 불이 꺼지고, 조명 상가들도 문을 닫았다. 집에 돌아가면 투명한 호리병을 한잠 바라보다 잠이 들곤 했다...

202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당선작

202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당선작 - 토마토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 안수현박숙인 2025. 1. 4. 17:16 토마토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   안수현 ​윗집은 오늘도 많이 더운가 보다아무렇게나 잘라두어 우리 집 창문에 아른거리는에어컨 실외기 호스에서물이 뚝뚝 떨어진다 엄마는 시끄럽다면서도마른 토마토 화분을 물자리에 밀어둔다​ 새순 발끝을 받치고 있는 큰 줄기손끝이 새파랗다너를 이렇게밖에 밀어올리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는누군가와 닮았다​ 왜 자꾸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 걸까,그냥 그렇게 된 건데 우린순진한 토마토일 뿐인데 어차피 충분히 어른이 되면고개를 깊이 숙이고자신을 떨어뜨려야 할 텐데 ​땅에서 났으면서도먼 하늘만 보고 자라땅에 묻히기를 두려워하는엄마 없는 엄마와 엄마밖에 없는 딸..

동아일보 2025 신춘문예 당선시

[신춘문예 100주년]시가 되는것들은 기쁨과 멀어, 그런데도 시를 쓰는건 ‘기쁨’동아일보업데이트 2025-01-01 02:222025년 1월 1일 02시 22분 시● 당선소감크게보기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장희수 씨기쁘지만 겁도 난다면 배부른 소릴까요. 그래도 배고픈 것보단 나은 거겠죠? 당선 소식에 광막해지는 기분입니다. 이제부턴 네 글을 읽는 게 누군지 모를 수도 있어, 말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 이제가 지금이고요. 99.99%의 확률로 나는 당신이 누군지 모릅니다. 그래서 아무나 붙잡고 말해볼 겁니다. 읽어줘서 고마워요. 나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한때는 천재로 불리는 사람들을 부러워했어요. 일필휘지, 촌철살인, 영감과 미문. 근데 따라 해 봐도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202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구인〉 광명기업 / 김용희

202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구인〉 광명기업 / 김용희박숙인 2025. 1. 4. 17:35     〈구인〉 광명기업                김용희  외국인 친구를 사귀려면 여기로 와요 압둘, 쿤, 표씨투 친해지면 각자의 신에게 기도해줄 거예요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은 글로벌 회사랍니다 요즘은 각자도생이라지만 도는 멀고 생은 가까운 이곳에서 점심 식사를 함께해요 매운맛 짠맛 단맛 모두 준비되어 있어요 성실한 태양 아래 정직한 땀을 흘려봐요 투자에 실패해 실성한 사람 하나쯤 알고 있지 않나요? 압둘, 땀 흘리고 먹는 점심은 맛있지? 압둘이 얘기합니다 땀을 많이 흘리면 입맛이 없어요 농담도 잘하는 외국인 친구를 사귀어봐요 쿤과 표씨투가 싱긋 웃습니다    서서히   표정을 잃게 되어도..

조선일보 [2025 신춘문예] 시 : 아름다운 눈사람

[2025 신춘문예] 아름다운 눈사람시 당선작이수빈입력 2025.01.01. 00:30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선생님이 급하게 교무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신다 나는 두 손을 내민다 선생님이 장갑을 끼워주신다 목장갑 위에 비닐장갑을 끼우고 실핀으로 단단히 고정해주신다 나는 손을 쥐었다 편다 부스럭 소리가 난다 마음 편히 놀아 선생님이 말씀하신다운동장 위로 얕게 쌓인 눈 새하얗고 둥글어야 해 아이들이 말한다 눈을 아무리 세게 쥐어도 뭉쳐지지 않고 흩어진다 작은 바람에 쉽게 날아간다 흙덩이 같은 눈덩이를 안고 있는 아이들 드러누워 눈을 감고 입을 벌리는 아이들 나는 조심스럽게 눈을 다룬다 개를 쓰다듬듯 품에 안은 채 몇 번이고 어루만진다 눈덩이가 매끈하고 단단해진다 아주 새하얗고 둥근 모양의 완벽한 눈..

[2025 신춘문예]문화일보 시

광명기업 - 김용희[2025 신춘문예] 문화일보입력 2025-01-02 09:26일러스트 = 송재우 기자■ 2025 신춘문예 - 시외국인 친구를 사귀려면 여기로 와요 압둘, 쿤, 표씨투 친해지면 각자의 신에게 기도해줄 거예요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은 글로벌 회사랍니다 요즘은 각자도생이라지만 도는 멀고 생은 가까운 이곳에서 점심 식사를 함께해요 매운맛 짠맛 단맛 모두 준비되어 있어요 성실한 태양 아래 정직한 땀을 흘려봐요 투자에 실패해 실성한 사람 하나쯤 알고 있지 않나요? 압둘, 땀 흘리고 먹는 점심은 맛있지? 압둘이 얘기합니다 땀을 많이 흘리면 입맛이 없어요 농담도 잘하는 외국인 친구를 사귀어봐요 쿤과 표씨투가 싱긋 웃습니다서서히표정을 잃게 되어도 주머니가빵 빵 해질 거예요 배부를 거예요소속이란 등..

2024 중부광역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2024 중부광역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자물쇠 / 박찬희​​​안거가 일이라고 단단히 가부좌를 틀어오가는 바람도 굳어 서 있다​하필이면 벼랑 끝에 걸어놓은 맹약효험이 낭설이기 십상이기도 하고굳이 풀어 들여다볼 상당한 이유가 없어도그저 보는 것만으로는 잡다한 호기심만 늘어없는 설명서를 찾아 읽는다​맹약의 해피엔딩은 녹슬고 녹아 서로에게 귀속되는 것​애지중지 닫아걸 별 이유는 없어도그냥 습관인 까닭에벽을 치고 들어앉아 음과 양을 저 혼자 맺고 풀면서맞지도 않은 열쇠를 깎는 일어쨌든 그것도 수고라면 수고지​결속과 해지는 엎어 치나 매치나 한가지여서틀림없는 쌍방의 일자물쇠든 열쇠든 서로에게 맞출 수밖에옳으니 그르니 해도 꼭 들어맞는 짝은 있게 마련인데내가 너를 열 수 있을까​시도 때도 없는 옥쇄 앞에서밤낮 우물쭈물,..

농민신문 2024 시 당선작

상현달을 정독해주세요​                             박동주​​햅쌀을 대야에 가득 담아요차고 푸른 물을 넘치도록 부으면햅쌀은 물에서 부족한 잠을 채워요쌀눈까지 하얗게 불었을 때당신을 향한 마음이 몸을 풀어요​상현달처럼 차오르는마음을 알아차렸다면 속삭여 주세요​도톰한 떡살에 소를 넣어요당신을 향한 비문은 골라내고꽃물결 이는 구절만 버무려 소를 만들어요당신 생각으로 먹먹해지는 마음이색색의 반달로 차오르도록한밤중이 되었을 때서쪽 하늘을 골똘히 보아 주세요​반죽을 작게 떼어 양 손바닥 사이에 넣고가을볕이 등을 쓰다듬듯 잔잔히 궁글려요이야기를 담은 소를 가운데 넣어가을 한나절을 빚은 색색의 상현달들떡살에 별자리가 뜨기도 해요비껴간 당신을 향해밤하늘 높이 상현달을 띄워요​이야기가 스며든 여러 빛..

2024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2024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2024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머그잔- 박태인물이 되려는 순간이 있어요 얼굴을 뭉개고입술 꾹 다물고자꾸 그러면 안 돼차를 마시기 위해 물을 끓여요 나는물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가 떨어지고 싶어요창틀에 놓여있던 모과의 쪼그라든 목소리가 살금살금 걷는 듯한 아침어김없이 당신의 그림자는 식탁에 앉아 있어요뜨거운 것으로 입을 불리면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될 것 같은 생각을 해요, 조금 더 따뜻한우리는 언제쯤 깨질 것 같나요? 이런 말은 슬프니까숨을 멈추고 속을 들여다보면 싱크홀 같거나 시계의 입구 같거나 울고 있는 이모티콘 같아요 두 손에 매달려 쓸데없이 계속 자라는 손톱처럼 똑똑 자르면 될 것 같은 시간을 말아 쥐고 있는 기분나는 내 손을 스스로 잘라 버..

2024 경인일보신춘문예 시 당선작

2024 경인일보신춘문예 시 당선작달로 가는 나무김문자​달의 범람으로 하늘의 문이 열리면서 땅은다섯 개의 줄기로 자라는 은행나무의 품이 되었다보름달 상현달 하현달 초승달 그믐달을 키우는인천 장수동 사적 562*번 800년 된 은행나무처음부터 약성이 쓴 뿌리에서 시작되었다오래된 나무는 달에서 왔다달이 몸을 바꿀 때마다 은행나무의 수화는 빠르다전하지 못한 말들은 툭 떨어지거나 노랗게 익어갔다은행나무는 자라면서 달의 말을 하고은행나무 이야기를 듣고 자란 아이들은바닷물이 해안까지 차오르는 슈퍼 문일 때남자는 눈을 감고 여자는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고 한다오래된 나무의 우듬지는 800년 동안 달로 가고 있다소래산 성주산 관모산 거마산을 거느린 장수동 은행나무달빛이 은행나무 꼭짓점을 더듬는 농도 짙은 포즈은행나무는 ..

[2024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시]

[2024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시]​시운전​      강지수​날 때부터 앞니를 두 개 달고 태어난 아이치고 천성이 소심하다 했습니다가장 부끄러운 기억이 뭐예요?종합병원 의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발가벗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았을 때요그게 기억나요?최초의 관심과 수치의 흔적이 앞니에 누렇게 기록되었지요 나와 함께 태어난 앞니들은 백일을 버티지 못하고 삭은 바람에 뽑혀야 했지만, 어쩐지 그놈들의 신경은 잇몸 아래에 잠재해 있다가 언제고 튀어 올라 너 나를 뽑았지, 우리 때문에 너는 신문에도 났는데, 하고 윽박을 지를 것 같더란 말입니다횡단보도를 건너다 대大자로 뻗었을 때 혹은 동명의 시체를 발견했을 때그럴 때에는 앞니를 떠올려보곤 하는 겁니다 천성이란 무엇인지, 왜 어떤 흔적은 흉터로서 역할하지 못하고 삭아져버..

2024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2024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웰빙 / 한백양 힘들다는 걸 들켰을 때 고추를 찧는 방망이처럼 눈가의 벌건 자국을 휘두르는 편이다 너무 좋은 옷은 사지 말 것 부모의 당부가 이해될 무렵임에도 나는 부모가 되질 못하고 점집이 된 동네 카페에선 어깨를 굽히고 다니란 말을 듣는다 네 어깨에 누가 앉게 하지 말고 그러나 이미 앉은 사람을 박대할 수 없으니까 한동안 복숭아는 포기할 것 원래 복숭아를 좋아하지 않는다 원래 누구에게 잘하진 못한다 나는 요즘 희망을 앓는다 내일은 국물 요리를 먹을 거고 배가 출렁일 때마다 생각해야 한다는 걸 잊을 거고 옷을 사러 갔다가 옷도 나도 서로에게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 잔뜩 칭찬을 듣는 것 가끔은 진짜로 진짜 칭찬을 듣고 싶다 횡단보도 앞 노인의 짐을 들어주고 쉴 새 없이 말..

2024 광주일보신춘문예 시 당선작

파랑 ​ 엄지인 ​ ​ 잔디를 깎습니다 마당은 풀 냄새로 비릿합니다 잔디가 흘린 피와 눈물이라는 생각 우린 서로 피의 색깔이 달라 참 다행이지 혈통이 아주 먼 사이라서 머리카락을 자르고 잘린 끝을 만져보는데 아프지 않습니다 심장과는 아주 먼 거리일까요 손 뼘으로 잴 수 있지만 누군가는 머리에서 심장까지 전력을 다해 뜁니다 머리카락 입장에선 불행일지 모른다는 생각 골목 밖에선 길냥이의 울음소리가 날카롭습니다 고양이는 사람에게만 소리 내 운다고 하는데 축축한 여기 그냥 좀 내버려두라고 배가 헐렁한 동물에게 보내는 우호적인 경고라는 생각 다치지 않게 손톱 칼로 조심히 군살을 깎지만 소스라칩니다 가장자리에서 바깥으로 밀리지 않으려는 비명 TV에서는 기상 캐스터의 주의보가 쾌속으로 지나갑니다 암거북들이 짝을 잃고..

[2024 경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시]​

[2024 경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시] ​ 솟아오른 지하 ​ 황주현 ​ ​몇 겹 속에 갇히면 /그곳이 지하가 된다 ​4시 25분의 지상이 감쪽같이 4시 26분의 지하에 세상의 빛을 넘겨주는 일, 언제부터 서서히 시작되었을까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아주 천천히 지상의 지하화가 도모되었을까 땅을 판 적도 없는데 다급한 말소리들은 지표면 위쪽에들 있다 조금 전의 당신의 양손과 두 볼이, 주름의 표정과 웃음이, 켜켜이 쌓인 말들이 들춰지고 있다 기억과 어둠이 뒤섞인 지상은 점점 잠의 늪으로 빠져드는데 누구도 이 어둠의 깊이를 짐작할 수 없다 ​몸이 몸을 옥죄고 있다 칠 층이 무너지고 십오 층이 무너졌다 그 사이 부서진 시멘트는 더 단단해지고 켜켜이 쌓인 흙은 견고하게 다져졌다 빠져나가지 못한 시간이 꽁꽁 얼어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