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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생물학자의 시 읽기

어느 생물학자의 시 읽기김응빈 연세대 시스템생물학과 교수·유튜브 '김응빈의 응생물학' 운영입력 2023.11.10 10:01사진=클립아트코리아시를 읽고 느끼는 감성과 해석의 폭과 깊이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내 경험을 하나 소개하자면, “숲길 짙어 이끼 푸르고”로 시작하는 신석정(1907-1974) 시인의 를 읽으면 음지식물이 떠오른다. 쉽게 말해서 음지식물은 햇빛이 덜 드는 그늘에서 잘 자라는 식물이다. 식물은 빛을 받아야만 살 수 있다. 광합성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식물들은 그늘에서 벗어나려 한다. 예컨대 다른 식물이 빛을 가리면 그 식물보다 위로 가려고 길이 성장을 열심히 한다.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식물들은 햇빛을 놓고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를 음지회피라고 한다...

고향 北에 남았다 비극 맞은 ‘모던보이’ 백석과 고당 조만식

당대의 미남 시인을 불귀의 땅으로 내친 ‘붉은 편지’[아무튼, 주말][전봉관의 해방 거리를 걷다]고향 北에 남았다 비극 맞은 ‘모던보이’ 백석과 고당 조만식전봉관 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교수입력 2024.05.11. 03:00업데이트 2024.05.11. 18:39   일러스트=한상엽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히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1938)백석은 조선일보 기자로 임용된 1934년 이후 토속적 세계와 도회적 정서가 어우..

‘어둠’의 ‘사막’에 음각된 ‘나팔꽃 문신’

‘어둠’의 ‘사막’에 음각된 ‘나팔꽃 문신’ 고인환 1. 서정의 ‘맨 얼굴’ 지난 계절 문예지에 마련된 시의 자리는 풍성했다. 원로, 중진, 신진 등이 고르게 작품을 발표했으며, 다양한 소재와 주제의식은 시 읽는 재미를 쏠쏠하게 했다. 봄을 맞이한 시들이 꿈틀거리며 기지개를 켜는 듯했다. 시는 우리 사회의 ‘맨 얼굴’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이다. 일상적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새로운 시적 공간을 타진하고 있는 시에서부터, 소비사회의 황량함을 재기발랄한 상상력을 통해 주조(鑄造)하고 있는 작품 그리고 자연으로부터 소외된 현실을 독특한 방식으로 포착하는 서정에 이르기까지 그 변주의 스펙트럼은 다양했다. 문제는 행복한 삶을 위협하는 은폐된 요소들을 탐색하고, 고통스럽지만 그 조건들을 끊임없이 환기하는 시적 ..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의 중요성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의 중요성 - 시창작강의 『푸르른 정원』 中 이경교(시인) 예로부터 위대한 학문이나 예술의 배후엔 반드시 그만한 인격과 정신이 요구되었으니,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의 중요성이 유독 강조되었던 것도 그 본보기에 해당한다. 위대한 학문이나 예술은 완성된 인격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므로, 기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세계관의 확립과 인간성의 완성을 우선했던 것이다. (p. 33) 보들레르(Baudelaire)가 우리의 가장 고귀하고 철학적인 능력은 상상력이라고 말할 때, 그 고귀함의 본질은 현실을 제어하고 초월하여, 새로운 현실을 창조할 수 있는 힘을 일컫는다. 상상력은 일상의 굴레에 갇히지도 않거니와 현실의 법칙에 예속되지도 않는다. 그런 점에서 상상력이야말로 새로운 감각을 향해 열린 ..

시와 소통

시와 소통 박찬일(시인) 1. 시를 상대적 이미지 시, 절대적 이미지 시, 무의미시로 나눌 수 있다. 앞의 두 개는 수용미학상 소통에 문제가 없다. 그러나 무의미시의 창작미학에는 수용미학상 소통을 불가능하게 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상대적 이미지 시는 문덕수의 말을 빌면 수퍼비니언스 원리의 시이다. “시에서 모든 관념은 어떤 형태든 물리적 존재에 실려 운반되어야 한다.”1) ‘물리적 존재’는 토머스 S. 엘리엇이 1919년 「햄릿과 그의 문제들」(1919)이라는 에세이에서 처음으로 언명한 ‘객관적 상관물’과 같다.김춘수는 상대적 이미지 시와 관념시를 구분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미묘한 차이는 있다. 파울 첼란의 두 편의 시를 예로 들어보자. 첼란의 유명한 「죽음의 푸가Todesfuge」는 다음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1]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문태준 시인 입력 2024.01.01. 03:00업데이트 2024.01.02. 14:18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 되므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김종삼(1921-1984) 일러스트=박상훈 김종삼 시인이 이 시를 발표한 때는 등단한 지 서른 해 가까이 되었을 때였다. 거의 서른 해 동안 시를 썼..

[제42회 중앙시조대상]

[제42회 중앙시조대상] 학대 피해 아이들 위로…어른으로서 속죄하는 마음 담아 중앙일보 입력 2023.12.07 00:01 홍지유 기자 김서원 기자 구독 중앙시조대상 고래 이태순 비 내리는 기차역 물이 출렁거리고 눈이 슬픈 아이가 꿈속에서 보았다는 커다란 푸른 고래가 기차역에 들어왔다 칸칸마다 불빛을 따스하게 매달고 아이를 부르는 고래의 비린 노래 바닷가 역으로 떠날 고래가 멈추었다 가냘픈 영혼 되어 어둔 방을 벗어난 아이야 고래 타고 바닷가 역에 가자 피멍이 얼룩진 아이 야윈 손이 차갑다 ◆이태순 이태순 시인은 “시조란 삶의 군더더기를 없애고 성찰하는 일”이라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경북 문경 출생. 2005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부문 당선. 오늘의시조 시인상(2007), 중앙시조신인상(201..

우리 살던 옛집 지붕

[시(詩)와 사색] 우리 살던 옛집 지붕 중앙선데이 입력 2023.11.11 00:01 업데이트 2023.11.11 06:08 우리 살던 옛집 지붕 이문재 마지막으로 내가 떠나오면서부터 그 집은 빈집이 되었지만 강이 그리울 때 바다가 보고 싶을 때마다 강이나 바다의 높이로 그 옛집 푸른 지붕은 역시 반짝여주곤 했다 가령 내가 어떤 힘으로 버림받고 버림받음으로 해서 아니다 아니다 이러는 게 아니었다 울고 있을 때 나는 빈집을 흘러나오는 음악 같은 기억을 기억하고 있다 우리 살던 옛집 지붕에는 우리가 울면서 이름 붙여 준 울음 우는 별로 가득하고 땅에 묻어주고 싶었던 하늘 우리 살던 옛집 지붕 근처까지 올라온 나무들은 바람이 불면 무거워진 나뭇잎을 흔들며 기뻐하고 우리들이 보는 앞에서 그해의 나이테를 아주 ..

김수영…무의식의 힘을 믿은 그는, 온몸으로 시를 썼다

김수영…무의식의 힘을 믿은 그는, 온몸으로 시를 썼다 등록 2021-10-31 19:03수정 2021-11-01 12:26 [거대한 100년, 김수영] (23) 온몸 김수영에게 온몸은 ‘혼신’과 같은 뜻 아닌 의식·의지·염두에 두는 것이 없는 것 금기 모르는 전위 예술의 근원적 반체제성 허용돼야 진정한 참여시 가능해 ‘능금꽃’이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는 김수영 시 ‘먼 곳에서부터’ 육필 초고. 우편 봉투의 뒷면에 적혀 있는 것으로,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김현경 제공 김수영이 몸에 대해 쓴 시들 중에서 가장 먼 곳까지 간 것은 ‘먼 곳에서부터’(1961)일 것이다. 김수영을 대상으로 한 최상급 연구서의 저자들도 이 작품에 주목했다. 이 시에서 ‘조용한 봄’, ‘여자’, ‘능금꽃’의 공통점을 간파한 저자는 ..

그대에게

[시(詩)와 사색] 그대에게 중앙선데이 입력 2023.09.09 00:01 그대에게 박두규 강가를 걸으며 산마루에 떠오르는 초저녁달을 봅니다. 이 어두워진 저녁 산모롱이 어디쯤에 아직도 빛을 다 여의지 못한 동자꽃이나 물봉선 같은 꽃들이 남아 있겠지요. 나는 아직 한 번도 빛에 이르지 못한 내 안의 깊은 어둠 속 꽃 한 송이를 떠올려 봅니다. 세상의 꿈이란 꿈 다 꾸어도 그 꽃 한 송이 이 강가에 살지 못하고, 오늘도 내 안의 어둠을 서성일 뿐입니다. 달빛 젖은 하늘에 별들이 촘촘해지면서 나는 아직도 이 어둠을 떠도는 다하지 못한 빛들의 쓸쓸함을 봅니다. 이제야 그게 사랑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숲에 들다』 (애지 2008) 시간이 쌓여도 다함과 변함이 없는 말들이 있습니다. 사랑이나 슬픔이나 ..

유일한 계획

[시(詩)와 사색] 유일한 계획 중앙선데이 입력 2023.05.20 00:20 업데이트 2023.05.20 01:31 유일한 계획 김용택 이사를 가면 개를 키우겠다. 큰물이 나가면 물가에 나란히 앉아 물구경하다가 아내가 마당에 서서 밥 먹자고 부르면 귀를 쫑긋 세우고 나보다 먼저 일어서는 개를 한마리 키우겠다. 『울고 들어온 너에게』 (창비 2016) 시(詩)와 사색 다른 기사 이전 [시(詩)와 사색] 늙어가는 아내에게 시(詩)와 사색 숨가쁜 일상이 잠시 느려지는 주말, 박준 시인이 추천하는 시 한편과 사색 가이드 www.joongang.co.kr 시(詩)와 사색 숨가쁜 일상이 잠시 느려지는 주말, 박준 시인이 추천하는 시 한편과 사색 가이드 www.joongang.co.kr 시(詩)와 사색 숨가쁜 일상..

[시(詩)와 사색] / 강

[시(詩)와 사색] 강 중앙선데이 입력 2023.04.29 00:20 업데이트 2023.04.29 05:16 강 황인숙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비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눈도 마주치지 말자. *이인성의 소설 제목 ‘미처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에서 차용. 『자명한 산책』 (문학과지성사 2003) 마음은 자주 말에게 집니다. 날 선 말에 찔리기도 하고..

국내 첫 에드워드 호퍼 개인전

오바마도 히치콕도 사랑한… 영화 같은 호퍼의 작품들 왔다 국내 첫 에드워드 호퍼 개인전 허윤희 기자 입력 2023.04.20. 03:00 에드워드 호퍼, '이층에 내리는 햇빛'(1960).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은 그림이다. /서울시립미술관 여름날 해안가의 집, 흰색 외벽 위로 오전의 햇살이 떨어진다. 뾰족한 두 지붕, 새하얀 건물과 푸른 자연이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이 그림은 어딘가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풍긴다. 백발의 중년 여성과 난간에 걸터 앉은 젊은 금발 여인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둘은 무슨 관계일까. 에드워드 호퍼(Hopper·1882~1967)가 1960년 9월 완성한 후,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밝힌 ‘이층에 내리는 햇빛’이다. 호퍼는 “노란색을 거의 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햇..

저녁 식사

[최영미의 어떤 시] [116] 저녁 식사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입력 2023.04.17. 03:00 저녁식사 교도소로 가야 합니다 남자에게 통역하고 법원에서 집으로 가는 길 백화점에 들려 가다랑어 다타키를 사서 전철에 뛰어올라 좁은 자리에 엉덩이를 밀어 넣었다 오늘 맡은 사람은 생각보다 담담했나 (…)집에 들어와 바로 쌀을 씻는다 반성하고 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남자의 말들이 질끔질끔 쌀뜨물을 타고 흘러 내려간다(…) 갓 지은 흰쌀밥의 고소한 김을 맡고(…) 교도소로 가야 합니다 남자에게 통역한 말 따위는 차가운 맥주를 목 뒤로 넘기면서 완벽하게 잊은 것처럼 들이켰다 -정해옥(丁海玉 1960~) (손유리 옮김) /일러스트=김성규 정해옥은 일본의 가나가와 현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 시인이다. ..

기술로 쓰는 소설

[일사일언] 기술로 쓰는 소설 전지영 2023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자 입력 2023.04.13. 03:00 일러스트=한상엽 나는 습작 기간이 짧지 않은 편에 속한다. 마침표를 찍은 글 중 네 번째 글의 17번째 수정본으로 등단했다. 초고를 쓴 건 6년 전이지만, 매해 한두 번씩 이 글의 파일을 열었다. 그리고 문장만 손보는 수준을 넘어, 아예 첫 장부터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최종 발표된 원고에서는 초고와 비슷한 구석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6년의 세월 동안 글을 보는 시야가 조금 넓어졌고, 그 시야가 글에 반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초고 합평을 받을 당시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조언이 대부분이었다. 받아들일 수 없는 조언도 있었다. 그럴 때는 일단 최선을 다해 고쳐본 뒤, 납득되지 않거나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