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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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山을 생각하며 58

오늘에 생각해 보는 맹자의 ‘방벌’과 다산의 ‘탕론’

오늘에 생각해 보는 맹자의 ‘방벌’과 다산의 ‘탕론’중앙일보입력 2024.12.12 00:20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우석대 석좌교수동양사회는 고대부터 인의(人義)를 숭상하던 세상이었다. 그래서 지도자는 인의의 정치를 해야만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라의 주인인 백성들이 일어나 지도자를 쫓아내거나 쳐부수는 수밖에 없었다. 맹자의 방벌론(放伐論)은 그런 정치철학에 근본을 둔 민본사상이었다. 그래서 탕왕(湯王, 은나라 초대왕)과 무왕(武王, 주나라 초대왕)이 걸(桀, 하나라 폭군)과 주(紂, 은나라 폭군)를 방벌(폭군을 쫓아냄)했던 것을 정당한 주권(主權)의 행사로 여겼던 맹자를 공자에 버금가는 아성(亞聖)으로 여기는 이유였다.지도자는 인의의 정치를 해야맹자의 철학 더 발전시킨 다산천자도 민중 협의로 교..

‘다산의 일기장’(김영사)

팩트만 나열한 '청년 다산'의 일기… 훗날 사용할 알리바이 증명이었다정민 한양대 교수 '다산의 일기장' 출간김광진 기자입력 2024.12.04. 00:38                                            3일 간담회에서 저서 ‘다산의 일기장’을 설명하는 정민 한양대 교수. /뉴스1 ‘지엄한 교지를 받고 금정찰방에 제수되었다. 오후 3시쯤 출발해서, 가는 길에 우상 채제공에게 들러 절을 올렸다. 청파에 이르러 이 판서(이가환)와 만나 작별하였다. 20리를 가서 승방점에서 묵었다.’ 다산 정약용이 기록한 ‘금정일록’의 1795년 7월 26일 내용이다.고전학자 정민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주석을 붙여 완역한 ‘다산의 일기장’(김영사)을 출간했다. 1795년(정조 19년) 천주교..

밤이 낮 같은 세상

밤이 낮 같은 세상중앙일보입력 2024.07.25 00:24업데이트 2024.07.25 01:32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일생동안 조선이라는 나라를 요순시대의 세상이 되도록 국가를 개혁하고 변화시키려는 꿈을 안고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17세 때 아버지의 임소였던 전라도 화순에 가서 살았다. 중형 정약전과 함께 화순 인근의 동림사에서 공부할 때부터 두 형제가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요순시대를 만들자는 토론을 했노라고 기록을 남겼다. 소년 시절부터 둘은 나라를 만드는 꿈을 안고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주례’를 모범으로 한 ‘경세유표’다산의 저서 500여 권은 따지고 보면 모두 좋은 나라 만들기를 위한 그의 정책을 논한 책이지만, 그중에서도 집중적으로 법과 제도를 개혁하여 요순시대를 구현하자는 책은 바로 ..

큰일 났다! 책을 안 읽는 세상

큰일 났다! 책을 안 읽는 세상중앙일보입력 2024.05.16 00:32업데이트 2024.05.16 01:00     박석무 다산학자, 우석대 석좌교수18년의 귀양살이, 전라도의 땅끝 강진이라는 바닷가 고을에서 모진 고통을 겪으며 세월을 보낸 다산 정약용. 고향에 두고 온 두 아들에게 수많은 편지를 통해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었다. 역적죄인으로 유배 사는 아버지 때문에 집안은 폐족이 되어 출셋길이 막힌 불행한 가족이었다. 희망을 잃고 절망에 빠져 하마터면 좌절할 수도 있는 아들들, 그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용기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온 정성을 다해 편지를 통한 가르침을 계속하였다.“짐승이 안 되려면 책 읽어야”유배지 다산이 아들에게 당부출판사·문인들 어려움 걱정돼독서인이 없으면 미래도 없어나는 오래전에 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우주의 주인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우주의 주인이다 중앙일보 입력 2024.04.11 02:18 지구 위에는 수십억 명의 인구가 지역별로 국가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수십억 인구 중에서 단 한 사람쯤이야 백사장의 모래알 하나처럼 무가치 무의미하게 여겨버릴 수 있으나, 따지고 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우주의 주인공이자 우주 전체일 수도 있다. 그렇게 인간 한 사람이 우주의 존재 이유고 우주 자체라는 것이다. 옛날의 책을 읽어 보면 인간 한 사람의 높은 가치를 이야기한 내용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고경(古經)에도 거론돼 있지만, 어진 이들인 율곡 이이나 다산 정약용도 사람의 가치를 거론했다. 다산, 목민심서 48권 저술한 뒤 “백성 하나에라도 도움 됐으면” 비록 천하를 얻을 수 있다 해도 단 한 명의 목숨 해쳐서는..

“오늘 너를 무죄로 석방한다”

“오늘 너를 무죄로 석방한다” 중앙일보 입력 2024.03.07 00:32 업데이트 2024.03.07 01:55 업데이트 정보 더보기 지면보기 박석무 다산학자, 우석대 석좌교수 1797년 음력 윤 6월 2일 다산 정약용은 황해도 곡산(谷山) 도호부사로 임명되었다. 생애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목민관 생활, 조선이라는 나라로서는 참으로 역사적인 날이자 『목민심서』라는 위대한 고전이 탄생하게 되는 계기이기도 했다. 1799년 음 4월 24일 부사직을 마치고 내직으로 들어오기까지의 1년 11여개월 간의 목민관 생활은 다산에게 『목민심서』를 저술할 경험과 지혜를 제공하는 결정적인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곡산 목민관으로 부임한 다산 맨 먼저 억울한 백성 석방부터 관 횡포 항의 주동자 무죄 판결 “형벌 두려워 ..

지금 불행한가? 그러면 책을 들어라

지금 불행한가? 그러면 책을 들어라 중앙일보 입력 2023.12.28 00:39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 오늘 또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었다. 전라도 강진에서 18년 동안 귀양살던 다산 정약용이 고향에 두고 온 두 아들과 형(정약전), 제자들에게 보낸 한문으로 된 편지를 한글로 번역하여 편찬한 책이다. 1979년 겨울에 초판이 나왔으니 무려 44년 전에 출간했지만, 중간에 글을 손보고 또 새로운 편지를 추가해서 다섯 번째로 간행되었으니 꽤 공력이 들어간 책임에 분명하다. 또 독자들의 호평까지 높아 이제는 스테디셀러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책의 하나이다. 조선 최고의 학자, 사상가, 실학자, 대시인이라는 평가에 걸맞게 아들에게 전해주는 삶의 지혜, 형님과 학술 토론하던 깊고 넓은 학문, 제자들..

다산 정약용은 기술을 사랑한 융합의 대가

다산 정약용은 기술을 사랑한 융합의 대가 중앙일보 입력 2023.10.30 00:46 송성수 부산대 교양교육원 교수 지난 10월 14일과 15일에는 제37회 정약용문화제가 개최되었다.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의 생가와 묘소가 소재한 경기도 남양주시가 주최하는 행사다. 다산이란 호는 정약용의 유배지인 전라도 강진이 차(茶) 재배지로 유명해서 지어졌다고 한다. 그의 당호(堂號)인 ‘여유’(與猶)는 ‘조심하고 두려워하라’는 노자의 구절에서 따왔다. 2012년에 정약용은 탄생 250주년을 맞아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수원 화성신도시 건설 지휘 정약용은 기본적으로 문신이자 유학자였지만, 기술에도 상당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관료생활을 시작한 1789년에 주교(舟橋, 배다리)를 ..

‘목민심도’ 걸으며 백성 생각, ‘여유당’ 돌아보며 다산 생각

‘목민심도’ 걸으며 백성 생각, ‘여유당’ 돌아보며 다산 생각 [아무튼, 주말] 남양주시와 함께하는 ‘다산 발자취 기행’④목민심도 박근희 기자 입력 2023.10.14. 03:00업데이트 2023.10.15. 00:14 남양주 '예빈산'은 다산 정약용의 마재마을(능내리) 고향집 뒷산과 이어져 그가 마재마을과 덕소를 오갈 때 애용하던 육로였다. 후대에 다산 정신을 되새기며 이름 붙인 '다산 능선' '목민심도'를 따라 예빈산 견우봉 부근에 오르니 마재마을인 능내리와 두물머리, 팔당호 일대가 마치 다도해를 품은 만(灣)처럼 보인다. 다산이 "나의 산"이라고 했던 '남자주(족자섬·10시 방향)도 눈에 들어온다. / 주민욱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경기도 남양주에 ‘목민심도(牧民心道)’가 있다는 걸 아시는지. 다산 정..

다산 실어 나른 남한강에 눈물로 쓴 선비의 詩 윤슬되어 빛나네

다산 실어 나른 남한강에 눈물로 쓴 선비의 詩 윤슬되어 빛나네 [아무튼, 주말] 남양주시와 함께하는 ‘다산 발자취 기행’③ 습수 박근희 기자 입력 2023.08.26. 03:00업데이트 2023.08.27. 13:11 충주 하담의 '모현정' 아래로 흐르는 남한강 물길. 다산은 유배형을 받고 장기(포항)로 가는 길에 지금의 모현정 부근에 있던 부모 묘소에 참배하고 하직 인사를 시 '하담별'로 대신했다. / 조혜원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1801년(순조 1년)은 다산에게 혹독한 해였다. 정조 승하 후 고향집 마현(마재마을, 남양주시 능내리)으로 돌아온 다산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노론의 모함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1월 28일 한양으로 가 머문다. 예상대로 2월 7일 조정에서 탄핵 논의가 일어나고, 이튿날 새벽..

다산 실학사상, 현대사회에 접목한다

다산 실학사상, 현대사회에 접목한다 남양주·구리 시민들의 다산연구모임 '여유당' 김정란 리포터 입력 2012.07.09. 03:33 올해는 한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일컫는 다산 정약용 탄생 2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서울 예술의전당, 전국의 다산유적지 등에서 다채로운 국제학술대회와 문화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몇 년 전부터 남양주·구리 시민들을 중심으로 다산의 삶과 학문을 연구하고 행동으로 실천하기 위한 모임 '여유당'이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주목을 끌고 있다. 지난 6월 28일 남양주시 진접읍 사능로에 위치한 농업기술센터 2층 강의실은 200여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듯 열띤 분위기이다. "다산은 제자들에게 평상시의 가장 중요한 공부로 자기 마음을 평정하게 유지..

‘곡운구곡’ 아홉 굽이, 청평사 폭포마다 다산의 이야기 흘러넘치네

‘곡운구곡’ 아홉 굽이, 청평사 폭포마다 다산의 이야기 흘러넘치네 [아무튼, 주말] 남양주시와 함께 하는 ‘다산 발자취 기행’ ②산수 박근희 기자 입력 2023.07.15. 03:00업데이트 2023.07.16. 02:21 곡운 김수증이 '곡운구곡' 중 '정녀협' '신녀협'이라 이름 붙인 계곡을 다산은 '신녀회'로 새롭게 명명하며 구곡을 재해석했다. 물결치는 듯한 신녀협의 너럭바위 형상에서 시간의 신비가 느껴진다. /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인 1823년 4월 15일에 다산은 오랫동안 꿈꿔왔던 ‘버킷리스트’를 실행에 옮긴다. ‘물 위를 떠다니며 살림하는 배’란 뜻의 ‘부가범택(浮家汎宅)’을 타고 당시 ‘산수(汕水)’라 부르던 북한강을 거슬러 강원도 춘천 여행길에 나선 것. 계기..

아버지 그리울 때 보던 형님

아버지 그리울 때 보던 형님 중앙일보 입력 2023.07.06 00:54 박석무 다산학자, 우석대 석좌교수 유학(儒學)은 공자가 창시한 학문이다. 때문에 ‘공자지도(孔子之道)’, 공자의 도(道)가 바로 유학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다산 정약용은 ‘공자지도 효제이이(孔子之道孝弟而已)’, 공자의 학문인 도는 바로 효와 제(孝弟)일 뿐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였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 사이에 우애한다면 그것이 바로 공자의 도를 실현하는 일이어서, 효제를 강조하려고 그런 표현을 썼다고 보인다. 율곡 이이 또한 그의 『격몽요결』이라는 책에서 “학문이라고 하는 것은 효제를 비롯한 오륜(五倫)을 실천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심오한 이론이나 사상이 학문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 윤리인 효제를 비롯한 덕목을 실천하..

연잎 가득한 연못 너머 저 물길에 다산의 희로애락이 흐르네

연잎 가득한 연못 너머 저 물길에 다산의 희로애락이 흐르네 [아무튼, 주말] 남양주시와 함께하는 다산 발자취 기행 ①열수 박근희 기자 입력 2023.06.17. 03:00업데이트 2023.06.17. 10:57 2 '열수'는 한강의 옛 이름이다. 다산의 고향 집 앞을 흐르던 물길을 따라 걸으면 다산이 누린 소박한 '상심낙사(마음으로 감상하는 즐거운 일)'를 느껴볼 수 있다. 이 물길은 다산의 발자취를 가장 빠르게 만나는 지름이길이기도 하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1797년 초여름, 정조(1776~1800)의 총애를 받으며 승정원의 고위급 공무원으로 재직하던 다산 정약용(1762~1836)은 별안간 2박 3일간 ‘근무지 이탈’을 감행한다. 그길로 도성을 빠져나와 고향이자 생가가 있는 광주군 초부면 마..

달빛 내린 ‘다산의 집’ 앞마당에 思索(사색)의 꽃 만발했네

달빛 내린 ‘다산의 집’ 앞마당에 思索(사색)의 꽃 만발했네 [아무튼, 주말] 정약용 발자취 따라 간 남양주 마재마을 봄밤 야행 박근희 기자 입력 2022.05.14 03:00 어스름한 남양주 마재마을 정약용유적지 내 '여유당'에선 은은한 불빛이 새어나왔다. 낮 동안 여유당 안팎을 어지러이 날아다니던 제비 세 마리는 온데간데없고, 달빛과 풀벌레 소리 가득한 마당은 사색으로 이끌었다. /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주자소(활자 주조를 관장하는 곳)가 완성되면 다시 들어와 교서(교정 및 수정 작업을 하는 관직)를 맡아달라.” 1800년 6월 12일 늦은 밤,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은 서울 명동 집 ‘죽난서옥’에서 정조의 부탁과 함께 그가 보낸 책 ‘한서선(漢書選)’ 열 권을 받는다. 노론의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