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세상으로 내려가는시냇물(산문) 78

고향이 어디세요?

고향이 어디세요?나호열 시인〮· 문화평론가 오래 전 ‘생활문화사’ 강의 시간에 ‘현대문명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소재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소련(지금의 러시아)공산주의가 몰락하고 소련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몽고에 자본주의가 유입되면서 유목민들에게 거의 자급자족의 형태로 영위되었던 목축이 재산 축적의 수단이 되었다는 이야기, 그들이 기르던 양(羊)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초지가 부족해지고 풀이 자라던 지역이 사막화되면서 그 영향으로 우리나라에도 황사가 심해졌다는 이야기 끝에 몽고 사람들의 주거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아마도 수 천 년 동안 유목민들은 한 곳에 정주하기보다는 게르(Ger)나 빠오(包)라는 이동천막에서 생활하였기에 풀이 있는 곳, 광대한 자연이 그들의 고향이고 집이었던 셈..

오월의 의미

오월의 의미 나호열 오월이다. 계절의 여왕이라 부르는 오월의 달력에는 빼곡하게 기념일이 적혀 있다. 오월 초하루 근로자의 날부터 시작해서 어린이날 (5일), 어버이날(8일), 입양의 날(11일), 부처님 오신 날, 가정의 날, 스승의 날(15일), 5.18 민주운동기념일(18일), 성년의 날(20일), 부부의 날(21일), 방재의 날(25일), 바다의 날(31일) 까지 기념해야 하는 날들로 가득 차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날까지 지정해서 기념을 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개인을 떠나 사회구성원으로서 잊어서는 안되는 고급한 가치를 상기하고 그 가치를 실행에 옮기자는 뜻이 아니겠는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이상향 즉, 분쟁과 미움이 없는, 사람다움이 행해지는 사회를 일구어보자는 염원이 이렇게 수많은 ..

무등 無等의 세상을 꿈꾸며

무등 無等의 세상을 꿈꾸며 오래 전 팔공산 동쪽 자락에 있는 거조사(居祖寺)에 간 적이 있다. 어느 정도의 규모를 가진 사찰에는 나한전이 있게 마련인데 거조사 영산전(靈山殿)에 모셔진 오백나한상은 그 규모로 보아 으뜸이라 할 만하였다. 석가모니의 제자 중에 중생들에게 복락을 베풀고 소원성취를 이루게 한다는 아라한(阿羅漢)의 숭배는 기나긴 환난의 시간을 거쳐온 우리 민중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주로 고려 말, 조선 초에 유행한 맞배지붕 주심포(柱心包) 양식은 수덕사 대웅전, 부석사 무량수전, 봉정사 극락전에서 볼 수 있는데 거조사 영산전 역시 기둥 하나에 공포를 얹은 주심포 양식의 단아한 형식미가 돋보이는 정면 7칸 옆면 3칸 규모로 각기 다른 형상의 근엄한 오백나한을 모시는데 모자람이 없어 보였..

문득, 가을이다!

문득, 가을이다! 누군가 내게 트라우마가 있느냐고 물었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트라우마와 콤플렉스의 의미를 분간하지 못하므로 엉뚱하게 “인간성을 믿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몇몇 개별적 인간의 호불호를 떠나서 과연 지속적으로 변함없이 착한 사람과 착하지 않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때때로, 남에게 해를 입히지 않거나 가끔 불편한 행동을 서슴치 않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라고 회의(懷疑)하는 일이 나의 삶을 옭아매는 족쇄임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종심(從心)에 다다른 지금까지도 그 생각은 지워지지 않은 채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다. 트라우마인지 콤플렉스인지 그런 악령(惡靈)과 싸우면서 시를 방편삼아 선연(善緣)을 찾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을 뿐이다. 이십 여 년 전, 영..

잊혀져 가는 시의 길을 더듬다

내 서가의 귀중본 이동주 시선집 散調(산조) 잊혀져 가는 시의 길을 더듬다 나호열 비좁은 집을 차지하는 서가를 조금씩 비우고 있다. 젊은 날 등대가 되고 나침반이 되었던 책들이 이제는 눈이 어두워져서 내 남은 생에 벗이 될 몇 권을 남겨두고자하니 아쉽기는 하여도 시류가 변해도 맛과 멋이 변하지 않는 시집 한 권은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이동주 시인의 시선집『散調』는 내가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1979년 2월에 우일문화사에서 발간되었다. 시인이 그 즈음에 세상을 떠났으니 야릇한 일이기도 하거니와 병상에서 시인이 외운 시 30편만을 수록하였기에 그 뜻이 더욱 애틋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그 이후 산재해 있던 시들을 포함하여 총 165편의 시전집이 2010년 현대문학사에서 간행되어 시인의 작품을 함께 감..

문득, 가을이다!

문득, 가을이다! 누군가 내게 트라우마가 있느냐고 물었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트라우마와 콤플렉스의 의미를 분간하지 못하므로 엉뚱하게 “인간성을 믿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몇몇 개별적 인간의 호불호를 떠나서 과연 지속적으로 변함없이 착한 사람과 착하지 않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때때로, 남에게 해를 입히지 않거나 가끔 불편한 행동을 서슴치 않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라고 회의(懷疑)하는 일이 나의 삶을 옭아매는 족쇄임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종심(從心)에 다다른 지금까지도 그 생각은 지워지지 않은 채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다. 트라우마인지 콤플렉스인지 그런 악령(惡靈)과 싸우면서 시를 방편삼아 선연(善緣)을 찾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을 뿐이다. 이십 여 년 전, 영..

사랑을 위하여

사랑을 위하여 나호열 1. 사랑은, 그것을 잃어버리는 순간부터 비로소 완성된다. 2. 나는 수없이, 계속해서 가혹하게 죽어가고 있다. 으슥한 골목에서, 익명으로, 공중전화 박스에서 몰매를 맞고, 갑자기 의문의 칼에 찔리면서, 뺑소니차에 버려지면서, 불심검문을 받고 절해고도에 유폐되면서, 멍텅구리 배에 선원이 되기도 하고 아, 나는 선택이 없는 계급투쟁의 제물이 되면서 나는 수없이, 계속해서 죽어가는 것만큼 나는 수없이 헛발질을 하면서 더 참혹한 모습으로 외계인처럼 점점 더 흉측한 모습으로 태어나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 나는 왜 이렇게 사육되어야 하는 걸까? 왜 나는 하루만큼 죽어가고 그만큼 새로이 태어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가면의 시대 대면하고 있는 서로에 대하여 우리는 가면을 쓰고 있다고 스스로 믿..

폐사지를 읽다

폐사지를 읽다 나호열 폐사지는 말 그대로 절이 있던 빈 터입니다. 그러나 그 빈 터에 보물이나 국보로 가늠할 유물이 출토되거나 남아 있게 되면 법령에 따라 빈 터로 남겨지게 되는 것이지요. 보전되고 있는 폐사지에는 그래서 탑이나, 전에는 부도라 불렸던 승탑이나 고승들의 탑비, 그리고 석등이 남아 있습니다. 처음 폐사지를 만난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안정된 직장을 그만 두고 험난한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첫 걸음을 내딛었던 막 불혹에 이르렀던 삼십 년 전 여름이었지요. 강원도 고성 그러니까 휴전선 바로 밑이어서 625 전란이후 민간인 출입이 금지 되었던 건봉사가 처음 개방되었던 그 때, 반 세기 가까이 폐허로 살아있던 그곳에 발길이 닿았던 것이지요. 총탄 자국이 선명한 일주문을 지나니 풀들이 사람 키만큼 자라..

오늘을 천년 같이

오늘을 천년 같이 무릇 이순을 지나면 천명을 느끼게 된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 보다 순리에 맞춰 살아가고자 하는 지혜가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굳게 약속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의 삶을 증명하고, 인간다움을 통찰하면서 끝내 아름다운 세상을 만나기 위해 시를 택했다. 이백이나 두보에 비견할 바는 아니지만 얼추 삼 천 여 편의 시를 쓰면서 사십 여 성상을 모나고 비뚤어진 심성을 둥글게, 부드럽게 쓰다듬을 수 있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신해년을 보내면서 스무 번째 시집을 탈고했다. 세상으로 나가는 나의 시들이 어느 곳, 어느 사람들에게 가닿을지 궁금하면서도 부끄러움도 함께 하는 까닭은 조금이라도 헛된 욕심과 자만이 드러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이다. 그러나 어쩌랴! 다가오는 새해 임인년은 검은 호랑이의 해라..

토마스네 집

토마스네 집 나호열 누군가 ‘토마스!’라고 불렀다. 돌아보니 몇 년 전 나와 함께 예비교리를 받던 교우였다. ‘그래, 토마스였지. 내가!’ 역병으로 인한 봉쇄로 교회가 멀어지다 보니 까마득해진 이름이었는데 교우의 호명에 울컥 초심의 그 때가 되살아났다. 평생 무신론자인 내가 어찌 천주교도가 되었는가? 이순이 넘어가면서 불신과 증오가 창궐하는 시대에 대한 환멸, 늙어감의 한숨과 안식에 대한 열망이였다고 해두자. 아무튼 사월에 시작한 교리 학습은 장장 팔 개월이 지난 12월이 되어서야 끝났다. 오십이 갓 넘은 주임신부는 열정으로 가득 찬 분 이었다. 멋진(?) 사회생활을 하던 중에 삼십이 되어 신학교에 들어갔다고 한다. 뒤늦게 사제가 되었지만 현대인에게 왜 종교가 필요하며 신심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아직도 창동 살아요 !

아직도 창동 살아요 ! 나호열 고향이 어디야? 그게 뭔데? 오래 전 생활문화사 시간에 ‘현대문명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소제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소련(지금의 러시아)공산주의가 몰락하고 소련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몽고에 자본주의가 유입되면서 유목민들에게 거의 자급자족의 형태로 영위되었던 목축이 재산 축적의 수단이 되었다는 이야기, 그들이 기르던 양(羊)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초지가 부족해지고 풀이 자라던 지역이 사막화되면서 그 영향으로 우리나라에도 황사가 심해졌다는 이야기 끝에 몽고 사람들의 주거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아마도 수 천 년 동안 유목민들은 한 곳에 정주하기보다는 게르(Ger)나 빠오(包)라는 이동천막에서 생활하였기에 풀이 있는 곳, 광대한 자연이 그들의 고향이고 집이..

사랑을 위하여

사랑을 위하여 나호열 1. 사랑은, 그것을 잃어버리는 순간부터 비로소 완성된다. 2. 나는 수없이, 계속해서 가혹하게 죽어가고 있다. 으슥한 골목에서, 익명으로, 공중전화 박스에서 몰매를 맞고, 갑자기 의문의 칼에 찔리면서, 뺑소니차에 버려지면서, 불심검문을 받고 절해고도에 유폐되면서, 멍텅구리 배에 선원이 되기도 하고 아, 나는 선택이 없는 계급투쟁의 제물이 되면서 나는 수없이, 계속해서 죽어가는 것만큼 나는 수없이 헛발질을 하면서 더 참혹한 모습으로 외계인처럼 점점 더 흉측한 모습으로 태어나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 나는 왜 이렇게 사육되어야 하는 걸까? 왜 나는 하루만큼 죽어가고 그만큼 새로이 태어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가면의 시대 대면하고 있는 서로에 대하여 우리는 가면을 쓰고 있다고 스스로 믿..

외유내강 外柔內剛의 순박한 나무꾼 시인- 오만환 시인에게

외유내강 外柔內剛의 순박한 나무꾼 시인 - 오만환 시인에게 나호열 (시인) 45 년 전 이군요. 처음 오 시인과 처음 만났던 순간이 엊그제 같은데 약관에서 훌쩍 이순을 지났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생생하게 그 날의 장면이 선명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불량학생이었던 나는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