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세상으로 내려가는시냇물(산문) 85

6월의 기억

6월의 기억나호열(시인· 문화평론가) 지금으로부터 48년 전 6월 나는 푸른 제복을 벗었다. 미제 GMC 트럭을 타고 의정부를 지나고 동두천 너머 한탄강을 건너고 하염없이 비포장도로를 북으로 달려갈 때, 남녘 출신 훈련소 동기 이등병은 눈물을 쿨럭거리며 연신 먼지 내려앉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는데, 그 친구는 사고로 부상을 당해 조기 제대를 해 버리고 나만 영문營門을 빠져 나왔다. 34개월 하고도 15일의 군복무를 마치는 날 아침 ,유월의 하늘은 유난히 맑았고 바람은 신선했다.훈련기간 4개월을 빼고 3년 동안 서부 전선의 한 모퉁이에서 청춘을 보냈다고 하니 가슴 한 켠이 아릿해지면서 울컥 목젖을 치고 올라오는 뜨거운 기운이 솟아오르는 것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 당시는 교련 혜택이라는 것이 있어서 대..

백비를 찾아서(2)

백비를 찾아서(2) 나호열(시인·문화평론가) 사람의 마음 속엔 두 가지 욕구가 꿈틀거립니다. 그 하나는 표현의 욕구로서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려 살아감의 의미를 찾으려 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은폐의 요구로, 세파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입니다. 소위 악플로 불리는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과 일에 날을 세우는 일이 다반사가 되어버린 서글픈 현실이 이를 말해 줍니다. 드러냄과 감춤의 두 가지 욕구는 즐겁기도 하고 괴로운 일이 되기도 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 가까이에 도봉산이 있습니다. 그 중턱 숲 속에 시비가 하나 있는데 이병주 작가( 1921- 1992)의 「북한산 찬가」입니다. 나는 北漢山과의 만남을 계기로人生이전과 人生이후로 나눈다내가 겪은 모든 屈辱은내 스스로 사서 당한 굴욕이란 것을 알았다나..

내 자식을 훈계할 자격

내 자식을 훈계할 자격젊은 부부가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자식들에게 늘 착하고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들은 여느 부모들처럼 웅변학원, 미술학원이니 하는 곳으로 아이들을 내몰지 않았고 늘 아이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려고 노력했다. 공부가 싫은 아이들을 억지로 책상 앞에 앉히는 일도 없었고, 아이들의 성적에 연연해하지도 않았다.그들의 소박한 바램은 아이들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 길을 찾아서 평범하고 행복한 사회의 일원이 되는 일일 뿐, 아이들의 합리적이고 자연스런 성장을 위해 자신들의 사고를 맞춰 나갈 줄 아는, 어쩌면 이 시대에 그리 흔치 않은 부모였는지 모른다.어느 날, 일을 마치고 귀가한 남편은 집안을 감싸고 있는 침묵과 암울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는 잔뜩 주눅이 든 채로 구석을..

나무는 인생의 성소 聖所

나무는 인생의 성소 聖所나호열(시인)   과학의 시대에도 특정한 동식물을 신성시하는 토테미즘과 자연물에 혼령을 부여하는 애니미즘의 영향력은 여전히 우리의 삶에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나무입니다. 나무는 우리에게 숭배와 경외의 대상으로 지친 삶의 위안을 줍니다. 풍상에 구부러지고 휘어지면서 직립을 향해가는 꼿꼿함, 다른 수종樹種과의 치열한 생존경쟁을 가지와 잎과 뿌리로 치루어내면서도 오직 나이테에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침묵의 자세가 백년을 못 살면서 허우적거리는 우리에게 화두처럼 버티어 서 있는 것입니다.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마을의 당산나무로부터 도시의 가로수, 구중궁궐의 위엄을 상징하는 나무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울릉도 ..

한강이 남긴 것들

한강이 남긴 것들나호열 (시인)   2024년 10월 10일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대한민국의 소설가 한강을 선정했다. 우리나라 최초, 아시아 여성 작가로 최초, 거기다가 50대 초반의 젊은 작가가 영예를 안았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는 환호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2023년 통계에 따르면 연간 6만 2천 여종의 책이 출간되었는데 연간 독서량은 7권에 불과하며, 만 부가 팔리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는 나라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탄생했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이에 부응하여 그동안 발간되었던 한강의 소설집들을 다시 읽어보겠다고 서점으로 달려가는 통에 순식간에 100만부를 돌파했다는 뉴스가 잇달아 들려왔다. 나도 서가 모퉁이에서 그 책을 찾아냈지만『채식주의자』(2007..

숨어서 아름다운 사람들

숨어서 아름다운 사람들 나호열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잘났다고 떠드는 사람들은 많아도 스스로 자신의 모자람을 꾸짖는 사람들은 드문 세상입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는데 그 중에 반드시 배워야 할 사람이 있다( 삼인행 필유아사 三人行 必有我師)’ 는 공자의 말씀은 늘 나의 마음이 거들먹거리기 쉽고, 남을 앝보며, 스스로 위세를 가진 존재로 착각하기 쉬우므로 늘 지유조심只有操心, 자신의 마음을 낮추고 깨끗이 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뜻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행동거지가 올바르지 않은 사람을 경계하고, 자신보다 덕을 갖춘 사람을 본받으려하는 마음, 그리고 자기 자신도 그 누구에게 본보기가 된다는 자각이 널리 퍼질 때 세상은 좀 더 밝고 맑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래 전 막 대학 ..

한강이 남긴 것들

한강이 남긴 것들나호열 (시인)   2024년 10월 10일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대한민국의 소설가 한강을 선정했다. 우리나라 최초, 아시아 여성 작가로 최초, 거기다가 50대 초반의 젊은 작가가 영예를 안았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는 환호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2023년 통계에 따르면 연간 6만 2천 여종의 책이 출간되었는데 연간 독서량은 7권에 불과하며, 만 부가 팔리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는 나라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탄생했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이에 부응하여 그동안 발간되었던 한강의 소설집들을 다시 읽어보겠다고 서점으로 달려가는 통에 순식간에 100만부를 돌파했다는 뉴스가 잇달아 들려왔다. 나도 서가 모퉁이에서 그 책을 찾아냈지만『채식주의자』(2007..

가족에 대하여

가족에 대하여 나호열 시인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어머니는 시내에서 가게를 열었다. 동생 둘은 작은 이모님 댁에서, 나는 큰 이모 댁에 머물다가 고등학교 졸업 무렵에 시내 어머니 가게 가까운 곳에 방을 얻어 기거했다. 우리 형제가 다시 모이게 된 것은 내가 결혼을 하고 나서인데 그것도 2,3 년 잠시일 뿐 그 때 밑의 동생은 군대를 가고 막내 여동생은 대학을 졸업할 무렵이었으므로 형제애를 키우고 가족의 의미를 살뜰히 함께 공유할 수 있었던 시간은 거의 없었던 셈이다. 3년의 긴 군대 생활을 하고 있을 때 밑의 동생은 청춘의 고민을 나눌 사람이 필요했었고고등학교 사춘기였던 여동생은 여동생대로 성장기의 아린 시간들을 보내야만 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삼형제의 인생관은 다를 수밖에 없고 세상..

아파트에서 행복하게 살기

아파트에서 행복하게 살기나호열 (시인) 아파트가 산업화시대의 완결된 상징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좁은 국토와 많은 인구를 가진 우리나라의 형편에서 편리성을 갖춘 아파트는 도시적 삶의 향유뿐만 아니라 부의 축적수단으로 인식된 나머지 대도시를 벗어나 농어촌 산간벽지까지 우후죽순 숲을 이루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 인구의 65% 그러니까 1000만 가구 이상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음을 볼 때 공통주택에서의 삶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어버린 셈이다. 그러나 회색의 콘크리트 벽과 얇은 철근으로 엮은 천장을 잇댄 아파트는 공동체적 삶의 즐거움 대신 불화와 단절의 고통을 슬그머니 던져주고 있다. 옆집, 아랫집, 윗집에 어떤 사람이 사는 지 알 필요도 없고, 궁금하지도 않은 까닭에 엘리베이터..

고향이 어디세요?

고향이 어디세요?나호열 시인〮· 문화평론가 오래 전 ‘생활문화사’ 강의 시간에 ‘현대문명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소재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소련(지금의 러시아)공산주의가 몰락하고 소련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몽고에 자본주의가 유입되면서 유목민들에게 거의 자급자족의 형태로 영위되었던 목축이 재산 축적의 수단이 되었다는 이야기, 그들이 기르던 양(羊)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초지가 부족해지고 풀이 자라던 지역이 사막화되면서 그 영향으로 우리나라에도 황사가 심해졌다는 이야기 끝에 몽고 사람들의 주거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아마도 수 천 년 동안 유목민들은 한 곳에 정주하기보다는 게르(Ger)나 빠오(包)라는 이동천막에서 생활하였기에 풀이 있는 곳, 광대한 자연이 그들의 고향이고 집이었던 셈..

오월의 의미

오월의 의미 나호열 오월이다. 계절의 여왕이라 부르는 오월의 달력에는 빼곡하게 기념일이 적혀 있다. 오월 초하루 근로자의 날부터 시작해서 어린이날 (5일), 어버이날(8일), 입양의 날(11일), 부처님 오신 날, 가정의 날, 스승의 날(15일), 5.18 민주운동기념일(18일), 성년의 날(20일), 부부의 날(21일), 방재의 날(25일), 바다의 날(31일) 까지 기념해야 하는 날들로 가득 차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날까지 지정해서 기념을 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개인을 떠나 사회구성원으로서 잊어서는 안되는 고급한 가치를 상기하고 그 가치를 실행에 옮기자는 뜻이 아니겠는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이상향 즉, 분쟁과 미움이 없는, 사람다움이 행해지는 사회를 일구어보자는 염원이 이렇게 수많은 ..

무등 無等의 세상을 꿈꾸며

무등 無等의 세상을 꿈꾸며 오래 전 팔공산 동쪽 자락에 있는 거조사(居祖寺)에 간 적이 있다. 어느 정도의 규모를 가진 사찰에는 나한전이 있게 마련인데 거조사 영산전(靈山殿)에 모셔진 오백나한상은 그 규모로 보아 으뜸이라 할 만하였다. 석가모니의 제자 중에 중생들에게 복락을 베풀고 소원성취를 이루게 한다는 아라한(阿羅漢)의 숭배는 기나긴 환난의 시간을 거쳐온 우리 민중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주로 고려 말, 조선 초에 유행한 맞배지붕 주심포(柱心包) 양식은 수덕사 대웅전, 부석사 무량수전, 봉정사 극락전에서 볼 수 있는데 거조사 영산전 역시 기둥 하나에 공포를 얹은 주심포 양식의 단아한 형식미가 돋보이는 정면 7칸 옆면 3칸 규모로 각기 다른 형상의 근엄한 오백나한을 모시는데 모자람이 없어 보였..

문득, 가을이다!

문득, 가을이다! 누군가 내게 트라우마가 있느냐고 물었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트라우마와 콤플렉스의 의미를 분간하지 못하므로 엉뚱하게 “인간성을 믿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몇몇 개별적 인간의 호불호를 떠나서 과연 지속적으로 변함없이 착한 사람과 착하지 않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때때로, 남에게 해를 입히지 않거나 가끔 불편한 행동을 서슴치 않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라고 회의(懷疑)하는 일이 나의 삶을 옭아매는 족쇄임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종심(從心)에 다다른 지금까지도 그 생각은 지워지지 않은 채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다. 트라우마인지 콤플렉스인지 그런 악령(惡靈)과 싸우면서 시를 방편삼아 선연(善緣)을 찾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을 뿐이다. 이십 여 년 전, 영..

잊혀져 가는 시의 길을 더듬다

내 서가의 귀중본 이동주 시선집 散調(산조) 잊혀져 가는 시의 길을 더듬다 나호열 비좁은 집을 차지하는 서가를 조금씩 비우고 있다. 젊은 날 등대가 되고 나침반이 되었던 책들이 이제는 눈이 어두워져서 내 남은 생에 벗이 될 몇 권을 남겨두고자하니 아쉽기는 하여도 시류가 변해도 맛과 멋이 변하지 않는 시집 한 권은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이동주 시인의 시선집『散調』는 내가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1979년 2월에 우일문화사에서 발간되었다. 시인이 그 즈음에 세상을 떠났으니 야릇한 일이기도 하거니와 병상에서 시인이 외운 시 30편만을 수록하였기에 그 뜻이 더욱 애틋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그 이후 산재해 있던 시들을 포함하여 총 165편의 시전집이 2010년 현대문학사에서 간행되어 시인의 작품을 함께 감..

문득, 가을이다!

문득, 가을이다! 누군가 내게 트라우마가 있느냐고 물었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트라우마와 콤플렉스의 의미를 분간하지 못하므로 엉뚱하게 “인간성을 믿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몇몇 개별적 인간의 호불호를 떠나서 과연 지속적으로 변함없이 착한 사람과 착하지 않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때때로, 남에게 해를 입히지 않거나 가끔 불편한 행동을 서슴치 않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라고 회의(懷疑)하는 일이 나의 삶을 옭아매는 족쇄임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종심(從心)에 다다른 지금까지도 그 생각은 지워지지 않은 채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다. 트라우마인지 콤플렉스인지 그런 악령(惡靈)과 싸우면서 시를 방편삼아 선연(善緣)을 찾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을 뿐이다. 이십 여 년 전,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