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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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고갯길 25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24·끝〉 서울 230개 고개

고갯길이 거슬렸다 … 왕은 ‘답정너’였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3.05.06 00:21 김홍준 기자 구독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24·끝〉 서울 230개 고개 서울 성북구 돈암동과 길음동을 잇는 미아리고개. 한국전쟁 당시 국군과 인민군의 교전이 벌어진 곳이다. 당시에는 이곳이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였다. 인민군이 후퇴할 때는 북으로 데려가는 남쪽 사람들의 가족들이 이곳에서 배웅했다고 해서 '단장의 미아리고개'라는 노래도 만들어졌다. 1960년대에서부터 생기기 시작한 점성촌은 1980년대에는 100여 개 이상이 자리잡았지만, 현재는 20개 안팎만 남아있다. 김홍준 기자 왕이 물어봤다. 자신의 능 자리로 어디가 좋겠냐고. 좌의정 하륜(1347~1416)이 대답했다. 할미산이 좋겠다고 했다. 태종(1367..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23〉 부산 150여개 고개

물 귀하고 변 넘치고…100억 사기도 판친 고갯마루 중앙선데이 입력 2023.04.01 00:21 업데이트 2023.04.03 09:23 업데이트 정보 더보기 지면보기 김홍준 기자 구독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23〉 부산 150여개 고개 부산 만덕고개길 병품암석불사 바위에 새겨진 석가모니·미륵·나한 등 석불 수십 기는 한국전쟁 때 피란 온 조각가 김석담과 박판암의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김홍준 기자 “물은 귀했지, 똥은 넘쳤지. 다 비탈져서 그런가 싶었어.” 노인은 가게 물건을 계속 정리했다. 부산 대티고개마을. ‘만복슈퍼’를 꾸리는 김현선(74)씨의 얼굴이 잔뜩 상기됐다. “술 안 마셨다니까!” 노인은 이렇게 말하며 기자의 팔을 탁, 가볍게 쳤다. 붉고 거친 그의 볼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한..

〈22〉 추자도 묵리고개·신대고개

제주에 ‘고개’ 없는데…그 속섬 추자엔 바다 밑에도 있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3.02.11 01:08 업데이트 2023.02.11 08:22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22〉 추자도 묵리고개·신대고개 제주에 ‘고개’는 없다. 추자도를 이루는 유인도 네 곳 중 하추자도 동쪽 끝에는 '눈물의십자가'가 갯바위에 서있다. 1801년 백서사건으로 황사영이 처형되고 부인 정난주(정약현의 딸이자 정약용의 조카)가 제주로 유배 가면서 두살배기 아들인 황경한을 이곳, 하추자도 예초리의 갯바위에 놓고 갔다. 천주교 교단에서는 황경환의 묘와 눈물의십자가를 성역화 했다. 김홍준 기자 고개는 제주 사람들에게 육지의 말이다. “제주에서는 고개라는 말을 안 쓴다”고 오순희(53) 전 제주산악안전대장이 말했다. 쇠질고개가 있..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21〉 전남·전북 잇는 갈재

사생아로 태어나고 쿠데타로 집권…피난길 고개 넘은 왕의 반전 중앙선데이 입력 2023.01.07 00:20 업데이트 2023.01.08 05:04 업데이트 정보 더보기 김홍준 기자 구독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21〉 전남·전북 잇는 갈재 순(詢)이 몽진(蒙塵)했다. 거란의 2차 침입 때인 1010년 12월(음력), 요즘 같은 한겨울이었다. 몽진은 왕의 피난을 뜻한다. 그렇다면 ‘순’은? 전북 정읍시 입암면 옛 호남선 철길의 터널 내부. 1987년 호남선 복선화로 철길 일부 구간이 사라지면서 1914년 만들어진 두 개의 터널도 '폐터널'로 이름을 고치게 됐다. 김홍준 기자 왕의 사후에 붙은 ‘묘호(廟號)’는 현종(顯宗·왕순, 992~1031)이다. 고려 8대 국왕인 그의 출생과 즉위 직전·직후가 순탄..

〈20〉 - 강원도 칠족령

개가 고개 이름 만들었다…동강 U라인, 뼝대 V라인이 빚은 명승 중앙선데이 입력 2022.12.10 00:01 업데이트 2022.12.10 08:22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20〉 - 강원도 칠족령 U와 V. 여기는 모든 게 가파르다. 고개에 올라서면 동강은 360도 U턴하듯 줄기를 숨 가쁘게 틀어버린다. 동강을 낀 절벽은, 강원도 말로 치면 뼝대는, 강 건너 기울기 급한 산비탈과 함께 V자를 그린다. 강원도 백운산 칠족령(漆足嶺)에서 바라보는 U라인과 V라인 비경이다.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마하리 문희마을과 정선군 신동읍 덕천리 제장마을을 잇는 백운산 칠족령에서 바라본 동강과 뼝대(절벽). 칠족령은 2021년12월 명승으로 지정됐다. 김홍준 기자 물은 강원 정선에서 조양강이 되고 영월 동쪽에서 동..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19〉 웅치·이치

임진왜란 판을 바꿨다, 영화 '한산'에 나오는 이 고개 중앙선데이 입력 2022.10.01 00:01 업데이트 2022.10.02 10:38 업데이트 정보 더보기 지면보기 김홍준 기자 구독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19〉 웅치·이치 웅치(熊峙)는 어디인가. 웅치는 725만 관객을 모은 영화 ‘한산 : 용의 출현’에 나온다. 임진왜란 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고개다. ‘육지의 한산대첩’으로 불린다. 웅치는 호남을 지킨 임진왜란의 성지(聖地)다. 원불교 성지도 근처에 품은 웅치는 이제는 트레킹과 라이딩·드라이빙의 성지가 됐다. 웅치는 전북 완주군과 진안군을 잇는 고개다. 사진 앞 능선을 가로지로는 고개는 덕봉길로 옛 웅치라고도 부르며, 뒤의 익산-포항고속도로가 보이는 곳에는 현재의 웅치, 즉 곰티재가 ..

〈18〉 강원도 인제·고성 잇는 대간령

지루한 진부령, 험악한 미시령 사이 유순한 길 “사람 겁나게 와” 중앙선데이 입력 2022.08.06 00:20 업데이트 2022.08.06 10:52 김홍준 기자 구독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18〉 강원도 인제·고성 잇는 대간령 강원도 인제군과 고성군을 잇는 백두대간 고개 대간령(641m)을 현지 사람들은 새이령 또는 샛령으로 부른다. 진부령과 미시령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한 탐방객이 영동과 영서를 오간 관리들이 묵었던 원(院)터 근처를 지나고 있다. 김홍준 기자 원래는 이 길이 아니었다. 군부대가 수백 년간 이어져 온 길을 막아버렸다. 하지만 긴요하면, 사람이 들락이면 길은 바위나 바다에도 생기고 만다. 그래서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3리에서 대간령(大間嶺·641m)으로 향하는 길은, ..

구불구불 육십령 오르니, 돈가스가 맞이해 주었다

구불구불 육십령 오르니, 돈가스가 맞이해 주었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2.06.11 00:02 업데이트 2022.06.11 07:28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17〉 백두대간 80고개 와인딩(하) 해발 1172m로, 지리산에서 차로 다다랄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인 정령치. 김홍준 기자 고개에는 돈가스가 있다. 고개에는 후백제 왕을 ‘추앙’하는 마을이 있다. 고개에는 전쟁이 쉴 새 없이 벌어졌다. 백두대간 고개는 사정없이 몸을 낮춘다. 충북 보은과 경북 상주를 잇는 화령(320m)이다. 고개 이름은 문헌에서 화령(化寧)이 되기도 하고 화령(火嶺)이 되기도 한다. 고개애는 사람이 드나들고 삶이 깃들어 있다. 전남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에 사는 고복순(81) 할머니가 메주를 쑤기 위한 불쏘시개 낙엽을 ..

죽령 석불 머리가 없고, 하늘재 불상은 머리만 있어 웬일?

죽령 석불 머리가 없고, 하늘재 불상은 머리만 있어 웬일? 중앙선데이 입력 2022.04.30 00:21 업데이트 2022.04.30 09:25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16〉 백두대간 80고개 와인딩(중) 굽이치는 말티재 도로. 말티재는 백두대간 고개가 아니지만 백두대간 80고개를 오토바이로 종주하는 '카이저 루트'에 포함된다. 정준희 기자 “남편 몸이 좀 안 좋아요. 온 지 한 달이 돼서야 눈에 힘이 느껴져요. 잘 왔어요. 정말로.” 몸속의 나쁜 불부터 끄자고, 서미영(55)씨는 멀리 인천에서 강원도 정선 임계까지 왔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서야 백복령(780m)에 올라왔다. 서씨의 말대로, 이중환(1691~1756)은 『택리지』에 임계를 ‘별다른 동천(洞天·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으로..

〈15〉 백두대간 80고개 와인딩(상)

장갑 4겹 끼고 라이딩한 여자들 …1500㎞, 백두대간 80고개 넘었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2.04.02 00:23 업데이트 2022.04.02 07:30 김홍준 기자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15〉 백두대간 80고개 와인딩(상) 백두대간 고개 80곳, 1500㎞를 차로 넘었다. 6박 7일간 한반도 허리가 되는 고개를 구불구불하게 오르내리는 와인딩(winding)이었다. 집에서 첫 고개 진부령으로, 마지막 고개 성삼재에서 집으로 500㎞를 더해 총 2000㎞를 달렸다.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는 ‘백두대간 80고개 와인딩’을 세 편에 나눠 싣는다. 지난해 11월 22일, 겨울의 초입에서 차 시동을 걸었다. 고개에는 추위와 눈이 마중 나와 있었지만, 사람과 이야기의 온기가 한편에 지펴지고 있었다...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14〉 자하문고개·탕춘대고개

연산군 폐위된 날 '탕춘대'가 죄목…실록 올라갔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2.02.12 00:02 업데이트 2022.02.12 14:50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14〉 자하문고개·탕춘대고개 인왕산과 백악산을 가르는 자하문고개 위로 창의문이 보인다. 멀리 북한산 줄기에 우뚝 솟은 봉우리는 보현봉이다. 김홍준 기자 폐왕(廢王) 연산군(1476~1506)에게 ‘조지서’는 둘이다. 하나는 조선의 종이를 만들었던 조지서(造紙署)다. 다른 하나는 세자 시절 스승인 조지서(趙之瑞, 1454~1504)다. ‘관아 조지서’와 ‘사람 조지서’는 연산군을 가늠하는 징검다리다.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에 모두 등장하는 이 둘은 고개 몇 곳을 건너면 뚜렷해진다. 한양도성 창의문. 1396년(태조 5년) 세워져 풍수지리에 근거..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13〉 문경새재

신립 장군이 버린 조령 … 20대 “서울시청 앞에서 걸어왔어요” 중앙선데이 입력 2021.12.25 00:02 업데이트 2021.12.25 08:37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13〉 문경새재 과연 큰 고개다. 새벽부터 하루를 온전히 바쳐야만 두루 살필 수 있는 큰길이다. 옛사람들이 ‘영남대로’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그 큰 고개를 큰 사내 하나가 저벅저벅 넘어왔다. 경기도 광주에 사는 강모(29)씨다. 조령 혹은 새재라고 부르던 문경새재는 하늘재를 밀어내고 영남과 호서를 잇는 큰 고개가 됐지만 20세기 들어 추풍령에게 길목이라는 자리를 내줬다. 문경새재는 이제 본연의 '쓸모'보다 볼거리와 이야기를 전하는 관광지가 됐다. 김홍준 기자 “20대의 마지막 해, 마지막 달인데 뭐라도 남기고 싶어 국토대장정에 ..

소백산자락길

태백과 소백 사이, 꽁꽁 숨은 두메에서 가을과 작별 중앙일보 입력 2021.11.12 00:03 다자우길 ⑧ 소백산자락길 올가을도 지나가고 있다. 소백산 자락을 걸은 뒤 부석사에 들었다. 마침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산사 중턱에 올라 저녁놀을 바라봤다. 소백산에 내려앉은 단풍만큼 석양이 고왔다. 누군가는 이 시간, 울고 있을 것 같았다. 첩첩산중의 오지 마을을 찾아 들어갔다. 소백산 동쪽 기슭을 오르내리는 길의 이름은 소백산자락길 9자락길과 10자락길. 심심산골에 희미하게 난 숲길과 띄엄띄엄 놓인 산촌을 잇는 마을길이다. 굳이 이맘때 내륙 산간지역의 두메산골을 찾아 걸은 건, 지금이 11월이어서다. 늦가을의 정취도 정취려니와,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는 계절이어서다. 난을 피해 숨어들었다는 터에서 부처의..

스무고개, 수많은 이야기 〈11〉 교통 요충지 추풍령

하도 밋밋해 은근슬쩍 넘어갔다, 철도·고속도·국도 다 품은 고개 중앙선데이 입력 2021.10.23 00:21 업데이트 2021.10.24 12:32 김홍준 기자 스무고개, 수많은 이야기 〈11〉 교통 요충지 추풍령 경부선 철도, 경부고속도로, 국도 4호선 뿐만 아니라 지선도로도 추풍령을 고개 중의 으뜸으로 만들었다. 사진 왼쪽의 추풍령면에서 추풍령로·신안로와 만나 추풍령 삼거리를 만드는 작점로가 추풍령저수지와 마암산을 휘감아 돌고 있다. 김홍준 기자 “여기가 거기요. 거기도 매한가지고.…네, 네.” 다방 주인에게 물어봤다. 고갯마루가 어디냐고. 그 답이 이랬다. 으레 고개에는 정점이 있기 마련이지만 여기는 어딘가 뜨뜻미지근하다. 워낙 낮은 데다가, 비탈이라고 할 것도 없다. 조선 조정에서도 알았다. 유..

강원도 만항재

"먹고살자" 석탄 구뎅이 들어갔다…1330m 고개 밑 검은 물이 흘렀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1.09.18 00:16 업데이트 2021.09.19 21:34 김홍준 기자 3년만 버티자며, 20대 남자는 강원도 사북으로 향했다. 탄광산업 호황으로 개도 만 원권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시절, 1971년이었다. 한 탄좌(炭座·석탄 광구의 집합체)를 찾아갔더니, 50㎏짜리 포대를 들라고 하더란다. 가족 생계가 달린 몸, 으라차차 수차례 들어 올렸다. 합격. 회사에서는 이튿날부터 일하러 나오라고 했다. 김기식(79·사북읍)씨의 회상이다. 한반도 남쪽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강원도 태백시와 정선군 사이의 함백산(1573m) 정상. 최은규(39·경기도 고양시)씨 가족이 만항재(1330m) 고갯마루로 향하는 414번 지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