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기구 가게에서 조명기구 가게에서 아직 영혼이 깃들지 않은 아기의 얼굴 電球들은 반짝인다 작으면 작은대로 어울리고 큰 것들은 저 홀로 당당히 뽐내기도 하면서 아직 이어지지 않은 전선의 끝에 아득히 아득히 내가 서 있다 잠재된 필라멘트의 혈관 속으로 뜨겁게 흘러드는 나의 목숨 궁휼한 하나님의 뜻대로 흔들리는 뭇별과도 같이, 누구인가 스윗치를 내리고 스스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저 이는 우리 함께 사는 사람들 2( 1984) 2023.01.19
바람 考 1 바람 考 1 화병 속에서 개나리꽃이 잠든다, 잠든 꽃잎 속에서 노오란 색깔이 잔잔하게, 잠든 누이의 얼굴에 내려 앉는다. 겨울동안 內出血을 앓던 누이의 얼굴에서 소문처럼 번져나가는 바람, 나는 어느새 그 울타리 속에 갇혀서, 어깨동무하며 밀려오는 누이의 나이를 셈하고 있다. 우리 함께 사는 사람들 2( 1984) 2023.01.09
포우즈 포우즈 나무들이 흔들리고 있다 바람에 기대인 채 생각에 젖고 있다 햇살을 따라갔던 발걸음 잎으로 지고 어디쯤일가 속으로 금을 긋는 세월 깊은 땅 밑에 얼굴을 숨겨두고 물구나무 서 있는 기다림의 자세 우리 함께 사는 사람들 2( 1984) 2023.01.09
퇴근 무렵 퇴근 무렵 울고 싶어라 노을을 바라보면 누군가 나를 위해 고운 피 한 방울 떨구고 갔는가 엷게 번져가는 한 장의 미소. 지워지고 어둠이 끝간데 없이 발등을 밀어넣으며 天地보다 더 큰 天地와 나보다 더 큰 나 하나를 자물쇠 채우고, 풀벌레처럼 기어가는 그대의 넓은 손바닥 안에서 오늘은 그냥 울고 싶어라 우리 함께 사는 사람들 2( 1984) 2023.01.09
시작 노트 내 몸의 피와 살을 버리고 사람들은 창가에 있고 싶어 한다. 창는 하나의 통로이다. 막연하게 열려 있는 통로를 바라보기를 사람들은 좋아한다. 인간이 인간에게 이르는 길, 인간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 우리가 일생동안 추구하고열망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숨쉬는 가슴 속에 펄덕이는 핏줄 속에 퍼덕이고 있는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다. 괄호친 그 무엇을 향하여 내가 서 있고 그 통로를 사이에 두고 창이 있다. 그 창이 내게는 시가 되고 나의 시는 끊임없이 세상을 거부하는 자유의 몸짓이다. 나는 가급적이면 내 몸의 피와 살을 버리고 살고 싶다. 살아가면서 버려지는 피와 살로 일구어지는 시가 존재할 수 있기를, 이윽고는 하나의 빈 새장으로, 저무는 들판에 버려질 수 있기를, 꿈꾸면서 시를 쓰고 싶다. 우리 함께 사는 사람들 2( 1984) 2023.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