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모의 세계를 가로지르는 몰락의 상상력 박 진 희(문학평론가 ․ 대전대 교수) 나호열 시인이 2015년 시집 『촉도』를 낸 데 이어 그의 열여섯 번째 시집 『물든다는 말』을 상재한다. 198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한 이래 30여 년간 평균 2년에 한 권 정도로 시집을 낸 셈이니 실로 왕성하고도 꾸준한 창작열을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이러한 시력이 시인 스스로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하는지도 모르겠다. 시적 발전이 보이지 않으면 시를 그만 써야할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시인으로부터 벌써 수차례 들어온 터이기 때문이다. 만약 시인이 시를 놓아야 하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때일까. 그것은 아마도 진실을 드러낼 완벽한 말을, 표현을 찾았을 때이거나 진실에 대한 욕망 자체가 사라졌을 때가 아닌가 한다. 진실을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