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나호열의 시창작론 41

시적 대상의 관찰과 활용 기법

시적 대상의 관찰과 활용 기법 나호열   생각한다는 것은 반드시 '~ 무엇에 대한' 생각이다. 말하자면 생각을 위한 재료가 수반된다는 것이다. 창작의 계기는 여러 경로를 가질 수 있을 터인데 첫째, 어떤 주제를 설정한 상태에서 그 주제를 잘 드러내고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을 찾으려고 할 때이다. 이때 마주치는 대상은 객관적 상관물이라는 장치로써 사용하게 된다. 객관적 상관물(客觀的 相關物)은 창작자가 표현하려는 자신의 정서나 감정, 사상 등을 다른 사물이나 상황에 빗대어 표현할 때 이를 표현하는 사물이나 사건을 뜻한다. 즉, 개인적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사물과 사건을 통해서 객관화하려는 창작기법이다. 두 번째, 의도하지 않았던 사물이나 사건과의 조우를 통해서 새로운 자각이나 통찰을 이끌어내는..

위기지학 爲己之學의 詩

시 5편 매화 천지에 꽃이 가득하다젊어서 보이지 않던 꽃들이이제사 폭죽처럼 눈에 보인다향기가 짙어야 꽃이고자태가 고와야 꽃이었던그 시절 지나고꽃이 아니어도꽃으로 보이는 이 조화는바람 스치는 인연에도눈물 고이는 세월이 흘러갔음인가피는 꽃만 꽃인 줄 알았더니지는 꽃도 꽃이었으니두 손 공손히 받쳐 들어당신의 얼굴인 듯혼자 마음 붉히는천지에 꽃이 가득하다 바람과 놀다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들이 더 많이 살고 있는고향으로 갑니다어느 사람은 서쪽으로 흘러가는 강이냐 묻고어느 사람은 죽어서 날아가는 먼 서쪽 하늘을 그리워합디다만서천은 에둘러 굽이굽이 마음 적시고꿈을 입힌 비단 강이어머니의 품속 같은 바다로 잦아드는 곳느리게 닿던 역은 멀리 사라지고역 앞 허름한 여인숙 어린 종씨는어디서 늙고 있는지누구에게 닿아도 내력..

인물시를 어떻게 쓸까?

인물시를 어떻게 쓸까? 나호열 (시인 · 문화평론가) 누구나 시를 쓸 수 있다 !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특징을 이야기한다면 ‘다양성’과 ‘경계 없음’이다. 이 두 개의 명제는 상호보완적이면서 동전의 양면처럼 동질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한 예로 예전과 같으면 문화(文化)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소수의 창조자들이 이끌어가는 개념으로 이해되었다면 지금은 모든 사람이 문화 창조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런 다양한 계층들이 서로를 포섭할 뿐만 아니라 더 새로운 의미로 확정되어 간다고 믿는다. 덧붙여 간단히 요약한다면 아마튜어와 프로의 경계가 사라진 상태로 말할 수 있다.『도봉열전』에 참여한 분들도 오래 시를 연마해온 분들도 있을 것이고, 처음 시작(詩作)에 입문한 분도 있을 것이다. 어째든 자..

인물시의 몇 가지 유형

인물시의 몇 가지 유형 ◆ 인물에 대한 시 쓰기의 요점 1. 한 인물이 지니고 있는 특징을 찾아내라. 2. 상투적인 찬양이나 미담은 가급적 피하라. 3. 시적 대상으로 택한 인물이 주는 의미나 가치를 표현하라. 4. 시를 쓰는 주체의 명징한 해석을 가미하라. 매헌을 만나/ 정한용 봄비, 뜰이 적막하다 아무도 없는 충의사* 마당으로 슬며서 들어선다 한참 그렇게 서 있는데 빈 터 가득 작은 떨림 소리가 인다 무명의 언어 측백나무다. 조팝나무와 패랭이가 나누는 대화다 해독하기 어렵고 번역하기 불가능하지만 분명 이국어는 아니다 젓국내 나는 사투리 닮았다 손 젓거나 눈썹 치켜뜰 때 그 말과 찬찬히 빗줄기 흝어낼 때 그 말이 다르다 때론 약강조, 때로는 강약약조로, 스미는 소리 뜰에 넘친다 아마 내가 거기 숨어 엿..

‘좋은 시’라는 유령을 찾아서

‘좋은 시’라는 유령을 찾아서 나호열 1. 시인들은 시를 잘 쓰고 싶어 하고 독자들은 좋은 시를 읽고 싶어 한다. 그러나 잘 쓴 시는 무엇이고, 좋은 시가 무엇인지 제대로 헤아리기는 쉽지 않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는 많은데,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소리를 들어본 지는 오래되었다. 시가 왜 이렇게 어렵냐는 푸념이 안팎에서 들리고 그럼에도 ‘어려움’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입을 닫는다. 문학상은 또 어떤가? (수상에 관련된 이런저런 풍문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한 마디로 이 모든 소문의 중심에는 ‘좋은 시’라는 해괴한 관념만이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좋은 시이기 때문에 상을 받고, 평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다. 거기다가 해마다 '올해의 좋은 시'라는 표제를 달고 출간되는 시들을 읽으..

세 편의 시와 이야기

세 편의 시와 이야기 나호열(시인․ 문화평론가) 시인이기 때문에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를 부단히 써가면서 완전한 시인의 이데아에 다가서는 일 사랑을 배우는 일 사랑이란 무엇인가 Ⅰ. 관념적 정의 1. 잘랄루딘 루미(Jalal ad-Din Muhammad Rumi·1207~1273), 사디 시라지(Abu-Muhammad Muslih al-Din bin Abdullah Shirazi·1210~1291) : 페르시아 시인 사랑이란 우주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다. 2. 플라톤의 향연 饗宴 에로스 Eros : Polos와 Penia 사이의 딸 중간자 풍요와 빈곤 사이를 오가는 존재 3. 사랑의 단계: 1) 에로스 Eros : 육체의 성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려는 육체적인 충동 2) 스테르고 : 헌신: 가족 구성..

한국 현대시를 읽는 길

2019.10.26 함석헌기념관 14:00 한국 현대시를 읽는 길 나호열 ◆ ‘시란 무엇인가?’에서 ‘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로의 전이 내 작품이 문학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검토해 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물론 '나는 커다란 야심이 없이 쓰는 것이 즐거워 그냥 쓰여지는 대로 쓸 뿐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한다고 이 질문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작품을 쓰고, 발표하는 행위는 이다. 그러므로, 작품을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두고 혼자 읽거나 같은 수준의 사람들끼리 동인회를 조직해서 돌려 읽을 게 아니라면 통시적(通時的)으로 그리고 공시적(共時的)으로 자기 작품이 어떤 변별성을 지녔는가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 시인들 전체는 세계 문..

시詩의 생활화를 위하여

시詩의 생활화를 위하여 나호열 수백 개의 문학상과 문예지를 가진 나라, 세계유일의 신춘문예라는 등단제도가 한 세기 가까이 유지되고 있는 나라, 수 만 명에 이르는 시인들이 살아가는 나라, ‘풍요 속에 빈곤’이라는 경제학의 이론이 오늘의 우리 문단에 절절하게 와 닿는다는 것이 기우杞憂이기를 바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소수만이 즐기는 고급예술이 문학이라고 자위를 하면서도 보다 많은 대중이 시를 읽고, 시에서 고단한 삶을 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마는 매스컴의 강력한 선택을 받은 몇몇 시인들을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훌륭한 시인들이 녹록치 않은 현실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의 문학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들고 있는가? 첫 째로 우리나라 교육에서 국어를 비롯한 문학교육의 부재를 ..

육화되지 않은 새로움은 뼈만 남은 생선에 얹히는 허공과도 같다.

<시작노트> 육화되지 않은 새로움은 뼈만 남은 생선에 얹히는 허공과도 같다. 나호열 1. 군집 群集생활을 하는 아프리카의 얼룩말의 줄무늬는 같은 것이 없다고 한다. 우리 인간도 예외는 아니어서 지문과 목소리도 다 다르다. 이 ‘다름’이야말로 전체와 부분을, 집합과 분할을 각성..

상식 常識과 감상 感傷과의 싸움

상식 常識과 감상 感傷과의 싸움 나호열 하루에도 몇 편의 시를 읽고, 책 몇 권을 - 다 읽지는 못해도 - 들척거린다. 이런 일이 요즘은 시들하다. 혹자는 이런 나의 푸념에 핀잔을 퍼부을지도 모르겠다. '팔자 좋은 놈이군!' 그러나 나는 여전히 팔자 좋은 놈은 아니다. 방식만 다를 뿐이지 생계를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것은 여늬 사람과 다름없으며 자잘한 희노애락의 수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일도 고만고만하니까 말이다. 어째든 다른 사람의 시를 읽고 내 시(?)를 쓰고 책을 읽는 일이 생계에 직접 부딪치는 일이 될 때 글을 쓰고 읽는 일은 그리 녹녹한 짓거리가 되지 못함은 틀림이 없다. 무감각과 권태는 일의 반복으로부터 빚어지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 아닌가? 일탈과 도피는 예술의 지평에서는 파격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