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나호열의 시창작론 42

시는 깨달음의 경전이 아니라 가슴으로 쓰는 기도문이다.

나의 시, 나의 시론나호열  북 북은 소리친다속을 가득 비우고서가슴을 친다한 마디 말밖에 배우지 않았다한 마디 말로도 가슴이벅차다그 한 마디 말을 배우려고북채를 드는 사람이 있다북은 오직 그 사람에게말을 건다한 마디 말로평생을 노래한다   - 『당신에게 말걸기』 (2007) 시는 깨달음의 경전이 아니라 가슴으로 쓰는 기도문이다.나호열 시 공부에 입문한 지 오십 년, 고희를 맞이하여 시선집『울타리가 없는 집』(2023)를 냈습니다. 첫 시집『담쟁이덩굴은 무엇을 향하는가』(1989)를 발간한 이후 시집『안부』(2021)까지 21권의 시집 중에서 200편을 선정하기로 하고 작품을 고르기 시작했습니다, 얼추 천 오백 편의 시에서 어떻게 골라낼까 고심을 했는데 의외로 짧은 시간에 선정 작업이 끝났습니다. 내게는 ..

시적 대상의 관찰과 활용 기법

시적 대상의 관찰과 활용 기법 나호열   생각한다는 것은 반드시 '~ 무엇에 대한' 생각이다. 말하자면 생각을 위한 재료가 수반된다는 것이다. 창작의 계기는 여러 경로를 가질 수 있을 터인데 첫째, 어떤 주제를 설정한 상태에서 그 주제를 잘 드러내고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을 찾으려고 할 때이다. 이때 마주치는 대상은 객관적 상관물이라는 장치로써 사용하게 된다. 객관적 상관물(客觀的 相關物)은 창작자가 표현하려는 자신의 정서나 감정, 사상 등을 다른 사물이나 상황에 빗대어 표현할 때 이를 표현하는 사물이나 사건을 뜻한다. 즉, 개인적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사물과 사건을 통해서 객관화하려는 창작기법이다. 두 번째, 의도하지 않았던 사물이나 사건과의 조우를 통해서 새로운 자각이나 통찰을 이끌어내는..

위기지학 爲己之學의 詩

시 5편 매화 천지에 꽃이 가득하다젊어서 보이지 않던 꽃들이이제사 폭죽처럼 눈에 보인다향기가 짙어야 꽃이고자태가 고와야 꽃이었던그 시절 지나고꽃이 아니어도꽃으로 보이는 이 조화는바람 스치는 인연에도눈물 고이는 세월이 흘러갔음인가피는 꽃만 꽃인 줄 알았더니지는 꽃도 꽃이었으니두 손 공손히 받쳐 들어당신의 얼굴인 듯혼자 마음 붉히는천지에 꽃이 가득하다 바람과 놀다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들이 더 많이 살고 있는고향으로 갑니다어느 사람은 서쪽으로 흘러가는 강이냐 묻고어느 사람은 죽어서 날아가는 먼 서쪽 하늘을 그리워합디다만서천은 에둘러 굽이굽이 마음 적시고꿈을 입힌 비단 강이어머니의 품속 같은 바다로 잦아드는 곳느리게 닿던 역은 멀리 사라지고역 앞 허름한 여인숙 어린 종씨는어디서 늙고 있는지누구에게 닿아도 내력..

인물시를 어떻게 쓸까?

인물시를 어떻게 쓸까? 나호열 (시인 · 문화평론가) 누구나 시를 쓸 수 있다 !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특징을 이야기한다면 ‘다양성’과 ‘경계 없음’이다. 이 두 개의 명제는 상호보완적이면서 동전의 양면처럼 동질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한 예로 예전과 같으면 문화(文化)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소수의 창조자들이 이끌어가는 개념으로 이해되었다면 지금은 모든 사람이 문화 창조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런 다양한 계층들이 서로를 포섭할 뿐만 아니라 더 새로운 의미로 확정되어 간다고 믿는다. 덧붙여 간단히 요약한다면 아마튜어와 프로의 경계가 사라진 상태로 말할 수 있다.『도봉열전』에 참여한 분들도 오래 시를 연마해온 분들도 있을 것이고, 처음 시작(詩作)에 입문한 분도 있을 것이다. 어째든 자..

인물시의 몇 가지 유형

인물시의 몇 가지 유형 ◆ 인물에 대한 시 쓰기의 요점 1. 한 인물이 지니고 있는 특징을 찾아내라. 2. 상투적인 찬양이나 미담은 가급적 피하라. 3. 시적 대상으로 택한 인물이 주는 의미나 가치를 표현하라. 4. 시를 쓰는 주체의 명징한 해석을 가미하라. 매헌을 만나/ 정한용 봄비, 뜰이 적막하다 아무도 없는 충의사* 마당으로 슬며서 들어선다 한참 그렇게 서 있는데 빈 터 가득 작은 떨림 소리가 인다 무명의 언어 측백나무다. 조팝나무와 패랭이가 나누는 대화다 해독하기 어렵고 번역하기 불가능하지만 분명 이국어는 아니다 젓국내 나는 사투리 닮았다 손 젓거나 눈썹 치켜뜰 때 그 말과 찬찬히 빗줄기 흝어낼 때 그 말이 다르다 때론 약강조, 때로는 강약약조로, 스미는 소리 뜰에 넘친다 아마 내가 거기 숨어 엿..

‘좋은 시’라는 유령을 찾아서

‘좋은 시’라는 유령을 찾아서 나호열 1. 시인들은 시를 잘 쓰고 싶어 하고 독자들은 좋은 시를 읽고 싶어 한다. 그러나 잘 쓴 시는 무엇이고, 좋은 시가 무엇인지 제대로 헤아리기는 쉽지 않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는 많은데,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소리를 들어본 지는 오래되었다. 시가 왜 이렇게 어렵냐는 푸념이 안팎에서 들리고 그럼에도 ‘어려움’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입을 닫는다. 문학상은 또 어떤가? (수상에 관련된 이런저런 풍문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한 마디로 이 모든 소문의 중심에는 ‘좋은 시’라는 해괴한 관념만이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좋은 시이기 때문에 상을 받고, 평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다. 거기다가 해마다 '올해의 좋은 시'라는 표제를 달고 출간되는 시들을 읽으..

세 편의 시와 이야기

세 편의 시와 이야기 나호열(시인․ 문화평론가) 시인이기 때문에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를 부단히 써가면서 완전한 시인의 이데아에 다가서는 일 사랑을 배우는 일 사랑이란 무엇인가 Ⅰ. 관념적 정의 1. 잘랄루딘 루미(Jalal ad-Din Muhammad Rumi·1207~1273), 사디 시라지(Abu-Muhammad Muslih al-Din bin Abdullah Shirazi·1210~1291) : 페르시아 시인 사랑이란 우주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다. 2. 플라톤의 향연 饗宴 에로스 Eros : Polos와 Penia 사이의 딸 중간자 풍요와 빈곤 사이를 오가는 존재 3. 사랑의 단계: 1) 에로스 Eros : 육체의 성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려는 육체적인 충동 2) 스테르고 : 헌신: 가족 구성..

한국 현대시를 읽는 길

2019.10.26 함석헌기념관 14:00 한국 현대시를 읽는 길 나호열 ◆ ‘시란 무엇인가?’에서 ‘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로의 전이 내 작품이 문학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검토해 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물론 '나는 커다란 야심이 없이 쓰는 것이 즐거워 그냥 쓰여지는 대로 쓸 뿐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한다고 이 질문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작품을 쓰고, 발표하는 행위는 이다. 그러므로, 작품을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두고 혼자 읽거나 같은 수준의 사람들끼리 동인회를 조직해서 돌려 읽을 게 아니라면 통시적(通時的)으로 그리고 공시적(共時的)으로 자기 작품이 어떤 변별성을 지녔는가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 시인들 전체는 세계 문..

시詩의 생활화를 위하여

시詩의 생활화를 위하여 나호열 수백 개의 문학상과 문예지를 가진 나라, 세계유일의 신춘문예라는 등단제도가 한 세기 가까이 유지되고 있는 나라, 수 만 명에 이르는 시인들이 살아가는 나라, ‘풍요 속에 빈곤’이라는 경제학의 이론이 오늘의 우리 문단에 절절하게 와 닿는다는 것이 기우杞憂이기를 바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소수만이 즐기는 고급예술이 문학이라고 자위를 하면서도 보다 많은 대중이 시를 읽고, 시에서 고단한 삶을 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마는 매스컴의 강력한 선택을 받은 몇몇 시인들을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훌륭한 시인들이 녹록치 않은 현실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의 문학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들고 있는가? 첫 째로 우리나라 교육에서 국어를 비롯한 문학교육의 부재를 ..

육화되지 않은 새로움은 뼈만 남은 생선에 얹히는 허공과도 같다.

<시작노트> 육화되지 않은 새로움은 뼈만 남은 생선에 얹히는 허공과도 같다. 나호열 1. 군집 群集생활을 하는 아프리카의 얼룩말의 줄무늬는 같은 것이 없다고 한다. 우리 인간도 예외는 아니어서 지문과 목소리도 다 다르다. 이 ‘다름’이야말로 전체와 부분을, 집합과 분할을 각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