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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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시킨 일 2011

저 소나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4. 1. 23:18

 

저 소나무

 

- 제주도 기행. 7

 

말하자면 무턱대고 우리가 세상에 내린 것처럼

정류장에서 한참을 걷다보니 입산을 결심했던 것

길에는 바름과 그름이 없으므로

산길이 시작되는 곳까지 따라온 공동묘지는

덧없는 시간의 비석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그 산에는 절이 없었다

바다가 한 눈에 보이고

돌아서면 산이 가로 막았던 곳

나는 발목을 묻었다

고요히 절간이 되어가기로 한 것은 아니었으나

용케 허리가 휘지 않은 것은 저 채찍질

산과 바다 바람이 밤낮으로 나를 후려쳤기 때문이다

새가 날아와서 잠시 머물렀으나 집은 아니라 했고

산꾼들도 고단한 등허리를 내밀지 않았다

독야청청은 내가 바란 바는 아니었으나

맞은 매 만큼 독이 올랐다

그대들은 모른다

날름거리는 혀가 겨냥하는 푸른 하늘

똬리를 튼 채로 허물을 벗으려 안간 힘 쓰는

서서 우는 뱀의 꿈을 해독하지 못한다

속이 텅 빈

저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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