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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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칼럼 10

꼰대란 무엇인가

참으로 어렵구나, ‘참꼰대’ 노릇 하기중앙일보입력 2024.05.21 00:32지면보기     꼰대란 무엇인가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5월에는 어린이날도 있고 어버이날도 있지만 스승의 날이라는 다소 어색한 날도 있다. 직업적 ‘꼰대’의 일원으로서 5월을 맞아 ‘꼰대’에 대해서 생각한다. ‘꼰대’란 무엇인가?꼰대라는 멸칭의 역사동아일보 1961년 2월 10일 자 기사가 ‘꼰대’를 ‘영감 걸인’이란 뜻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오늘날 용례와 거리가 있다. 그 후 신문 지상에서 꼰대라는 말이 나오지 않다가 경향신문 1970년 11월 13일 자 기사가 선생의 멸칭으로서 꼰대라는 말을 소개하고 있다. 멸칭으로서 선생이라는 뜻은 오늘날 꼰대 용례에도 들어 있으니, 적어도 반세기 동안 꼰대는 그 기본적인 뜻을 꾸준..

김영민 칼럼 2024.05.21

현실과 해석은 분리될 수 있나

토리노의 말을 보고 니체는 왜 미쳤는가 중앙일보 입력 2024.03.26 00:38 현실과 해석은 분리될 수 있나 1889년 1월 3일 니체는 이탈리아 토리노의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에서 마부에게 채찍질 당하는 말을 보게 된다. 그리고 울부짖으며 말에게 달려간다. 말의 목을 감싸 안고 날아오는 채찍질을 막으려 든다. 바로 이 순간 니체는 미쳐버린다. 그 이후 죽을 때까지 10년이 넘도록 그 광기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한다. 니체는 왜 미쳐버린 것일까. 채찍질당하는 말을 감싼 니체 작고하기 얼마 전, 베스트셀러 작가 이어령은 토리노의 말 사건을 실제로 있었던 일로 간주하며 이렇게 말했다. “토리노 광장에서 얻어맞는 말이 예수야.”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인간의 편에 서지 말고 동물의 편에 서라는 신의 부르..

김영민 칼럼 2024.03.28

싸워야만 한다면 잘 싸우자

싸워야만 한다면 잘 싸우자 중앙일보 입력 2024.02.27 00:32 지면보기 싸움의 기술 잘 지냈어? 혼자 있을 때 나는 가끔 나 자신에게 말을 건넨다. 마음이 몸에게 먼저 안부를 묻는다. “오늘 어땠어?” 몸이 대답한다. “너무 힘들었어.” 마음이 대꾸한다. “그 정도로 힘들어하면 어떡해. 한국에서 이 정도는 기본이라구.” 몸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다. “의지만으로 다 되는 건 아니야. 네가 날 너무 몰아세우면 견딜 도리가 없어.” “내가 널 너무 몰아세웠다고?” 토라진 마음은 몸에게 소리친다. “넌 너무 저질이야!” 그래. 난 저질이다. 난 평균 이하의 저질 체력이다. 그러나 이 험난한 세상에서 저질 체력도 살아가야 한다. 싸우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지금부터 소개할 것은 저질 체력을 위한 싸..

김영민 칼럼 2024.03.22

정치인에게 무협 만화 ‘앵무살수’를 권한다

정치인에게 무협 만화 ‘앵무살수’를 권한다 중앙일보 입력 2024.01.30 00:48 무협을 통해 정치를 생각한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정치인들은 홍보 수단으로 책을 활용한다. 다독가로 알려진 김대중 전 대통령 이래, 대통령들은 자신이 어떤 책을 읽었는지 홍보하기도 하고 추천하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경리의 『토지』를, 문재인 전 대통령은 『명견만리』를, 이명박 전 대통령은 리처드 탈러의 『넛지』를 추천한 적이 있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탄핵소추로 인해 직무가 정지되었을 때,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었다고 알려졌다. 이런 책들은 이미 베스트셀러 혹은 스테디셀러였다. 따라서 추천자의 개인적 성향이 극명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게다가 대통령 주변에는 비서들이 있어서,..

김영민 칼럼 2024.02.26

살아남는다는 것은 투쟁입니다, 기적입니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투쟁입니다, 기적입니다 중앙일보 입력 2024.01.02 02:51 업데이트 2024.01.02 03:29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올 한 해를 잘 살아낼 수 있을까. 잘 살아내기 위해서는 일단 생존하는 데 성공해야 한다. 지난 연말에도 가자지구에는 폭탄이 떨어지고 사람들이 연이어 죽어 나갔다. 이 시각 살아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비극적 사태를 간신히 모면한 생존자들이다. 국내로 눈을 돌려도 마찬가지다. 출생, 노인 빈곤, 자살에 있어 최악의 선두를 다투는 나라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살고 있었던 게 아니라 살아남고 있었다. 근원 모를 전염병으로부터, 느닷없는 재해로부터, 예고 없는 불운으로부터, 돌발적인 사고로부터 살아남고 있었다. 다들 살아있는 게 기적이다. 만국..

김영민 칼럼 2024.01.02

영화 ‘서울의 봄’이 묻다, 쿠데타란 무엇인가

영화 ‘서울의 봄’이 묻다, 쿠데타란 무엇인가 중앙일보 입력 2023.12.05 00:47 업데이트 2023.12.05 09:07 1979년 12·12와 한국 정치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성수 감독의 영화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에 일어난 군사 반란을 다룬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 이후 계엄 상황에서, 전두환이 이끄는 세력이 계엄사령관을 연행하고, 마침내 대통령의 사후 재가를 얻어냄으로써 실질적으로 대한민국의 정치 권력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이 숨 막히는 과정을 그린 영화 ‘서울의 봄’은 실화에 기반하긴 했어도 실제가 아니라 극적 재현(representation)이다. 그래도, 혹은 그렇기 때문에 ‘서울의 봄’은 12·12를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실패하면 ..

김영민 칼럼 2023.12.05

당신의 고향은 있습니까? ‘허구’라도 좋습니다

당신의 고향은 있습니까? ‘허구’라도 좋습니다 중앙일보 입력 2023.11.07 00:41 업데이트 2023.11.07 15:3 이 시대의 허구를 찾아서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예술가 김범이 1998년 전시를 위해 출간한 『고향』이라는 책자는 “이 책은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에 있는 운계리라는 마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마을의 지명, 위치, 교통, 주변 환경, 구조, 경관, 생활, 산업, 풍물, 경제, 주민에 관한 정보를 고루 담고 있다. “마을버스가 운계리의 학봉다방 앞에서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98년 현재 운계 주민의 자동차 보유 대수는 자가용이 30여 대, 트럭이 20여 대이다.” “근래의 무속신앙으로는 5·16 전후 한때 마을로 들어온 무당 ..

김영민 칼럼 2023.11.23

시민사회란 무엇인가중앙일보

시민사회란 무엇인가 중앙일보 입력 2020.07.23 00:15 시민사회의 핵심인 자율성을 찾아서 그라픽=최종윤 독일의 문예비평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20세기 전반 파리의 쇼핑 아케이드를 거닐면서 유럽의 현대에 대해 생각했다. 소비자의 욕망을 한껏 자극하는 물건들로 가득한 아케이드에서 벤야민은 현대인이 갖는 집착적인 물욕과 그것이 갖는 몰정치성에 대해 생각했다. 21세기 전반 반바지를 입고 서울의 변두리를 거닐면서 한국의 현대에 대해 생각한다. 동네마다 하나둘씩 꼭 있는 건강원과 개소주 집을 보며, 한국인이 갖는 강박적인 건강욕과 그것이 갖는 정치성에 대해 생각한다. 0723 생각의공화국 한국은 과로에 젖은 사회다. 지친 사람들은 휴양지 빌라 발코니에서 해안선을..

김영민 칼럼 2023.08.07

허구와 함께 살아가는 법중앙일보

김영민의 생각의 공화국 허구와 함께 살아가는 법 중앙일보 입력 2020.06.25 00:15 공화국을 지탱하는 정치적 허구 생각의 공화국 6/25 세상은 악업(惡業)과 고통으로 가득하고, 삶은 종종 불쾌하다.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필요하다. 오스트리아의 작가 로베르트 무질(Robert Musil)이 그랬던가, 삶은 불쾌하므로, 담배를 피워야 견딜 수 있다고. 비흡연자들도 희망이라는 이름의 구름과자가 없으면, 삶을 견디기 어렵다. 흡연자들이 주기적으로 담배 연기를 삼키듯이, 비흡연자들도 간헐적으로 희망이라는 구름을 삼킨다. 스스로 삼킨 희망에 기대어 사람들은 또 하루를 살아간다. 희망이라는 허구가 없었다면 오늘도 또 하루가 갔다는 평범한 우울감을 견디지 못했을지 모른다. 연애 감정은 쉽게 휘발하..

김영민 칼럼 2023.07.31

인문학을 위한 인문학자에 의한 인문학적 설득

인문학을 위한 인문학자에 의한 인문학적 설득 중앙일보 입력 2022.11.10 00:28 업데이트 2022.11.10 16:23 위기의 인문학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이른바 인문학 위기는 이제 상식이 되었다. 현직 대통령이 대선주자 시절 “인문학이라는 건 공학이나 자연과학 분야를 공부하며 병행해도 되는 것”이라며 “많은 학생들이 대학 4년과 대학원까지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은 유명하다. 이것이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의 입장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과거에 다른 정당 출신 대통령도 “대학도 산업이다”라고 일갈해서 산업화가 어려운 인문학에 찬물을 끼얹은 적이 있다. 인문학 위기란 도대체 무슨 뜻일까. 대학 내 인문학 계열 학과가 사라지거나 통폐합되는 것? 인문학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이 줄고 있..

김영민 칼럼 2023.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