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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해원의 말글 탐험 35

[220] 그때그때 다른 띄어쓰기

[양해원의 말글 탐험] [220] 그때그때 다른 띄어쓰기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24.04.19. 03:00 대통령 선거 2년 만에 집권당 참패, 그것도 사상 최대 격차의 여소야대. 의회 권력 다툼은 그렇게 결판났다. 여권이 얼마나 한심하면 그 어이없는 야당 후보들도 국회의원 된단 말인가. ‘민심은 천심’이 실감 나는 한 주였다. 1년하고 두 달 만에 정식 당대표를 두 번이나 갈아치웠으니 거덜나지 않을 리가. 더 샛길로 빠지기 전에 각설(却說)하고…. ‘결판나다’ ‘거덜나다’는 붙여 쓰는데 ‘실감 나다’는 한 단어가 아니라 띄운다. 명사가 동사 ‘나다’와 만나 똑같은 꼴이건만, 무슨 근거로 이렇게 가를까. 뜻은 비슷해도 ‘결딴나다’와 ‘고장 나다’로 달라진다. ‘야단’은 ‘나다’와 합쳐지는데 ‘난리..

[212] ‘때문’은 외로울 수 없다

[양해원의 말글 탐험] [212] ‘때문’은 외로울 수 없다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24.01.12. 03:00업데이트 2024.03.25. 15:52 서울 시내 도로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사 내용과 무관한 사진./연합뉴스 한겨울 일요일 밤은 유독 쓸쓸하다. 가게들도 일찌거니 닫아 장막 같은 큰길. 지나는 이 없는 건널목 신호등만 외롭게 끔벅거린다. 눈 내려 얼어붙은 골목길이 반드르르한데. 대낮 같으면 미끄럼 한번 지쳐 보련만, 고양이 그림자도 비치지 않으니 되레 머쓱하다. 게다가 자빠지기라도 해 봐. 부질없는 생각이 꿈틀대 곱다시 집에 들어갔다. 체면 덕분이었을까, 때문이었을까. ‘덕분’은 ‘베풀어 준 은혜나 도움’이니, 무사 귀가를 고맙게 여기는 마음이 담겨 있다. ‘때문’은 ‘어떤 ..

[211] 성탄절 불빛 속에서

[양해원의 말글 탐험] [211] 성탄절 불빛 속에서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23.12.29. 03:00 성탄절 새벽에 울린 소리는 찬송가가 아니라 화재 경보였다. 아파트 이웃들이 부리나케 피하는 와중에 젊은 아버지가 목숨 던져 딸을 살려냈다. 일곱 달 난 아기 다칠세라 포대기로 감싸 안은 채. 부모와 동생 먼저 피신시키고 정작 자신은 빠져나오지 못한 이도 있었다. 그런 아득한 상황이 닥치면 어찌 할까,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는데…. 입으로는 엔간해서 하지 않는 표현을 글로 쓰고 말았다. ‘농담을 던지다, 미소를 던지다, 눈길을 던지다’처럼. 말로 하자면 어색하기도 하려니와, 판에 박은 듯 ‘던지다’를 꼭 써야 하느냐는 궁금증이 든다. ‘질문하다, 농담하다, 미소 짓다, 눈짓하다’ 해도 괜찮을 법한데..

[210] 가능하면 다냐

[양해원의 말글 탐험] [210] 가능하면 다냐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23.12.15. 03:00 올 것이 왔다. 승강기 한 달 공사. 통로 하나뿐인 아파트라 꼼짝없이 18층까지 걸어 다녀야 한다. 여덟 계단 내려가 뒤로 돌고, 또 여덟 계단 내려가 돌고. 차라리 오를 때는 헉헉대느라 어지러워할 겨를이 없다. 그래 봐야 몇 분, 남들은 마라톤도 하는데. 앙상한 종아리며 허벅지가 공짜 헬스장 삼으란다. 그래, 이참에 너희를 우람하게 키워주마. 가능할까? ‘중재 요청하면 원만한 해결이 가능하다’ ‘세금 정보를 환히 공개할 때 부패 감시가 가능하다’…. ‘불가능은 없다’를 증명하고픈지 ‘가능(可能)’이란 말 참 흔히 쓴다. ‘원만히 해결할 수 있다’ ‘부패를 감시할 수 있다’ 하면 자연스러울 텐데. ‘..

[208] ‘필요’는 늘 필요한 말일까

[양해원의 말글 탐험] [208] ‘필요’는 늘 필요한 말일까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23.11.17. 03:00 ‘과속 운전 금지’ ‘차로 변경 금지’. 아무렴, 터널인데. ‘부당 추….’ 한눈에 담지 못한 마지막 글귀를 100여 미터 지나 확인하니 얼떨떨했다. 부당 추월 엄금. 우선 ‘부당 추월’. 터널에서는 당연히 앞지르기 금지인데? 부당 추월이라 함은 정당한 추월도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추월은 부당하다는 뜻으로 썼나. ‘추월 엄금’도 아리송했다. 금지면 금지지, 엄금(嚴禁)이라니. 과속이나 차로 변경은 봐줄 수도 있다는 얘기인지. 좋게 보면 강조지만, 따지고 보면 불필요한 말이 이뿐이랴. ‘노인들이 건강하게 자립하려면 체력 증진이 반드시 필요하다.’ ‘필요(必要)하다’가 무슨 뜻인가. ‘반..

‘自身’의 바른 용법

[양해원의 말글 탐험] ‘自身’의 바른 용법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17.02.16. 03:10 거기가 거기일 줄이야. 후배 늦장가 축하하러 간 곳은 한때 예식장의 대명사였다. 그 ‘목화’는 어디 가고, 설디선 라틴어, 그것도 합성어로 이름이 바뀌어버린 것이다. 오직 기시감(旣視感)이려니 할 수밖에. 이곳만 그런 게 아니니 새삼 투덜거릴 일도 못 된다. ~웨딩, ~컨벤션, ~타워, ~스퀘어, ~하우스, ~가모, ~티움, ~블레스, ~몽드, ~펠리체, 더~, 아베~ …. 어쩌다 우리말이래야 끝자락에 달라붙은 '귀족' 정도다. 이름만으로는 대체 어느 나라 예식장인지 모르겠다. 외국 영화, 특히 어릴 적 보던 배우 얼굴이며 이름처럼 현란하다. 눈부시도록 찬란한 현란(絢爛)이 아니다. 정신 못 차릴 만큼 ..

우리말 같지 않은 憲法 조문들

[양해원의 말글 탐험] 우리말 같지 않은 憲法 조문들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17.02.09. 03:09 볼만했다. 일사부재의(一事不再議) 원칙을 어기지 않나, 사람인 국회의원 수를 반올림(사사오입·四捨五入)하지 않나. 대통령을 체육관에서 뽑기도 했다. 3연임도 모자라 영구 집권을 가능하게 한 시절도 있었으니. 그렇게 아홉 번을 뜯어고쳤건만, 우리 헌법이 여전히 몸에 딱 맞지는 않는 모양이다.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제27조 ①항이다. 헌법 전체에 이 ‘에 의하여’만 66번 나온다. ‘에 의한’ 10번 ‘에 의하지’ 6번 ‘에 의한다’ 1번…. ‘~에 의하다’ 구문(構文)이 합쳐서 83번이다. 영어와 일본어 영향이라 그런지 남의 옷..

改憲한다면 문장도 손봐야

[양해원의 말글 탐험] 改憲한다면 문장도 손봐야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17.02.02. 03:09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중략)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이다. 341자 163단어를 한 문장으로 엮었다. 200자 원고지 2장이 넘으니, 다 옮기면 이 난(欄)의 근 40%를 채운다. 안 그래도 말 많은 헌법이 서두부터 참 길다. 걸리는 게 이뿐이면 좋겠는데…. 헌법 전문(全文)은 1만4286자. 여기에 관형격조사 '의'만 429번 나온다. 전체 어절(語節)이 4401개이니, 띄어쓰기 열 번에 한 번꼴이다. 대통령제답게 87번 나오는 '대..

설은 그냥 설일 뿐, 舊正이라니…

[양해원의 말글 탐험] 설은 그냥 설일 뿐, 舊正이라니…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17.01.26. 03:02 공휴일 아닌 설이 이상했다. 구정(舊正)이라 부르는 것도 영…. 모처럼 친척 집 오가며 명절(名節) 음식 실컷 맛보기가 마음 같지 않았다. 웬만해선 뵙기 어려운 세종대왕이 그래서 더 반가웠다. 신정(新正)처럼 사흘 쉬면 그 만원짜리 세뱃돈 얼마쯤 늘어나려나. 어린 마음은 얄팍했다. 겨울방학이 끝났는데 설이 오면 심통마저 났다. 학교 가야 했으니까. 고등학생이 돼서야 알았던가. 이 신정·구정이 일제(日帝)의 간악(奸惡)한 노림이었음을. '식민지 조선의 얼이 담긴 전통을 내버려둘 수 없다. 설은 그냥 구정이라 불러라. 대신 우리처럼 양력 1월 1일을 신정 명절로 쇠라.' 되찾은 나라에서도 우리는..

‘우연찮게’라 써놓고 ‘우연히’로 읽어라?

[양해원의 말글 탐험] ‘우연찮게’라 써놓고 ‘우연히’로 읽어라?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17.01.12. 03:03 “아유 이 사람, 얼마나 마셨는지 문을 못 여는 거 있지? 내가 아주 그냥. … 우리 아들은 지금 ○○○○ 다니잖아. 딸내미는 ○○대 경제학과랑 ○○대 경영학과 냈어.” 쉴 틈 없는 옆자리 두 승객의 대화. 온 식구 나이쯤은 저절로 알게 생겼다. 유난히 한 분 말씀이 끝도 없다. 목소리 크기도 전철 소음(騷音)에 댈 바 아니다. 이분만 좀 조용히 해주면 좋으련만. 그러거나 말거나 남들은 무덤덤해 보인다. 나 혼자만 귀 따가운 건가. 하필 그 자리에 앉은 내가 잘못이지. 어수선하던 머릿속에 전류처럼 한마디가 흐른다. "어제 시내 나갔다가 우연찮게 ○○이를 만난 거야 글쎄." 직업의식이..

‘~위하여’ 天下에서 신음하는 語尾들

[양해원의 말글 탐험] ‘~위하여’ 天下에서 신음하는 語尾들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17.01.05. 03:09 나가자, 우아미, 너나잘해…. 흔히들 외친다는 새해맞이 구호다. ‘나라를 위하여, 가정을 위하여, 자신을 위하여’ ‘우아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위하여’ ‘너와 나의 잘나가는 한 해를 위하여’. 이 위하여, 꽤 묵은 말인데 아직은 정정(亭亭)해 보인다. 오죽하면 그 이름으로 숙취(宿醉) 해소제까지 있을까. 무언가를, 누군가를 위함은 좋은 일이다. 다만 불문곡직(不問曲直) 위할 때는 또 얼마나 위험한가. 지난가을부터 실컷 겪는 일이다. 그 통에 ‘위하여’를 빗댄 ‘위하야’도 새삼 기세를 탔다 하니…. ‘함 선생은 우리나라 마라톤 미래를 위해 어렵게 쓴소리를 꺼냈다.’ ‘측천무후는 인재를 몹시 ..

’10발의 미사일' 對 ‘미사일 10발’

[양해원의 말글 탐험] ’10발의 미사일' 對 ‘미사일 10발’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16.12.22. 03:09 럭비공답다. 일찌감치 샅바 매고 한판 붙자는 그분. 초장(初場)부터 기를 꺾어놓고 싶은가 보다. 앞으로 내내 씨름해야 할 맞수니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11일 “중국이 무역 등의 문제에서 우리와 협상하지 않는다면 미국이 왜 ‘하나의 중국’ 원칙에 얽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 북핵과 무역 문제 등에서 중국이 협력하지 않으면 ‘하나의 중국’ 원칙을 깰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중국은 미국의 수중(水中) 드론 낚아채기로 맞섰다. 이 양강(兩强)의 전초전 결과 말고 궁금한 점이 또 있다. ‘하나의 중국’은 영어로 ‘one China(policy)’다. ..

‘오실게요’ 말고 ‘오세요’라 하세요

[양해원의 말글 탐험] ‘오실게요’ 말고 ‘오세요’라 하세요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16.12.15. 03:09 승강기에 함께 탄 너덧이 모두 한 층에서 내린다. 많이 기다려야겠군. 아니나 다를까, 막 진료 시작한 토요일 아침인데 앉을 자리가 마땅찮다. 휠체어 탄 초로(初老) 아주머니가 접수대를 지난다. 어머니, 감기는 좀 나으셨어요? 간호사가 다정스럽다. 중년(中年)이 넘었다 싶으면 다 어머니요 아버님이다. 하기는 전화번호 붙여 ’1234님' 하던 방송식 호칭도 있었는데. 간호사가 누구를 부른다. 엑스레이부터 찍으실게요. 어떤 동작이나 상태의 주체(환자)를 존대(尊待)하는 선어말어미(先語末語尾)가 ‘-(으)시-’다. 이걸 말하는 이(간호사)의 의지를 나타내는 어미 ‘-ㄹ게’와 마구 버무렸다. 보조..

‘경우’는 어떤 경우에 쓸까?

[양해원의 말글 탐험] ‘경우’는 어떤 경우에 쓸까?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16.12.08. 03:03업데이트 2020.12.02. 15:07 엄마를 보자마자 딸아이는 통곡(痛哭)했다. 시험 친 학교를 채 나서기도 전이었다. 답을 밀려 쓴 것 같아요. 죄송해요…. 포기하고 싶었던 그다음 시간을 엄마 생각에 버텼다 했다. 열아홉 살짜리한테 이런 모진 일이 어디 있을꼬. 몇 해 지난 올 수능(修能)시험. 어느 수험생 도시락에서 울린 휴대전화가 또 사람을 울린다. 딸이나 엄마나, 얼마나 속상했을까. 날벼락을 맞고도 그 재수생은 같은 시험장 수험생들한테 죄송하다는 글을 올렸다. 보기 드물게 경위(涇渭) 바르다. 무경위한 어른이 쌔고 쌘 판에. 한데 이 경위 비슷한 뜻으로 '경우(境遇)'를 올린 사전도 있..

‘가성비’로는 품질과 만족도 따지지 말길

[양해원의 말글 탐험] ‘가성비’로는 품질과 만족도 따지지 말길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16.12.01. 03:09업데이트 2020.12.02. 15:08 순배는 요즘 통 재미가 없다. 불러주는 사람이 드문 탓이다. 한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러지는 않았는데. 술자리 잔 돌리기가 사라져 가니…. 불경기(不景氣)는 불경기인가 보다. 이 ‘순배(巡杯)’하고 달리 불경기라 잘나가는 친구가 있다. '불황이 오래가고 실질 가계소득이 줄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점점 많은 사람이 해외여행을 즐기고 있다. … 가격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상품별로 꼼꼼히 비교하기에, 경기가 나쁠 때 가성비 높은 해외여행을 오히려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외국 여행이 아니라 '가성비' 얘기다. 몇 년 새 부쩍 많이 쓰는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