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의 바다 안개의 바다 밤이 그토록 깊었던 까닭을 길을 잡고 나서야 알 것 같았다 출렁거렸고 아득한 멀미에 잠 이루지 못했던 꽃봉오리의 개화를 문득 깨닫게 되었다 덕산에서 면천, 면천에서 당진으로 가는 길 꽃 향기가 빛을 내고 그 빛이 바다를 이루고 섬처럼 마을이 옆구리를 스쳐지나가고 .. 눈물이 시킨 일 2011 2013.03.25
밤과 꿈 밤과 꿈 대체로 지상에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늦은 밤 하늘을 바라본다 검은 도화지에 무엇을 그릴 수 있나 망망하게 모르는 사람들 눈빛이 마주칠 때 비로소 태어나는 별들 소름 돋듯 시름 위에 얹히고 멀기는 하지만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깊은 동굴 속에서 희미하게 바라보이는 아득.. 눈물이 시킨 일 2011 2013.03.11
강물 위를 걷다 강물 위를 걷다 하루 종일 강물 위를 걸었는데 발바닥에 티눈이 박혔다 흘러가는 것들이 내게 남긴 발자국일까 걸으면서 아프면서 웃는 연습 웃음이 절뚝거린다. 눈물이 시킨 일 2011 2013.03.08
두루마리 휴지 두루마리 휴지 홀연히 사라졌던 일주문 배롱나무가 또 허물을 벗는 지 뜰 아래 연못에 그림자 떠 있다 일주문과 배롱나무와 연못은 전생이 같다 세월을 감았다 풀었다 올록볼록 가득한 주름살은 눈물의 어둠을 닦기 편하다 눈물이 시킨 일 2011 2013.02.24
말 馬의 습성 말 馬의 습성 오래 되었지만 질주의 기품이 남아 있었다 오래 되었지만 멀리 가지 않았던 까닭 눈빛은 그래서 맑고 차다 그 옆에 오래 되지 않았지만 먼 곳을 휘둘러 온 평발 움직일 때 마다 불평과 잡소리가 나는 내가 서 있을 때 은장도로 제 속을 베어내어 낸 나이테로 제 몸을 묶은 나.. 눈물이 시킨 일 2011 2013.02.23
추억하는 소 추억하는 소 되새김질을 하는 소의 입 진득하게 흐르는 침과 어쩐지 외로워 보이는 입의 근육들과 간간히 보이는 누런 이빨 소는 늘 엉거주춤 서 있다 벌 준 사람은 없는데 스스로 벌 서는 추억의 힘! 눈물이 시킨 일 2011 2013.02.20
운동 후기 運動 後記 운동 후기 運動 後記 - *노동이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 Arbeit Macht Frei 몸에서 화약 냄새가 지워지지 않는 것은 그해 시월 때문이다 놀이와 노동 사이에서 태어난 나는 늘 힘이 모자랐다 낙하하는 포탄의 작열과 가지에서 떨어지는 벚꽃의 아우성이 피와 살의 힘 나는 빗나간 화약으로 태어.. 눈물이 시킨 일 2011 2013.02.19
거룩한 환생 거룩한 환생 오래 되었다 사랑도 없이 먹먹한 세월이 설렘을 곰삭혔을까 그와 함께 있다는 것이 부끄럽고 역겨울 때 액자 안에서 멋쩍게 웃고 있는 시선이 허공을 떠도는 먼지 같을 때 슬며시 다가오는 기억 같은 것 훔치고 닦아내면서 진저리치는 까닭에 언제나 마지막 뒤처리는 깨끗이.. 눈물이 시킨 일 2011 2013.02.17
독과 약, 또는 독약 독과 약, 또는 독약 나란히 있다 아니 서로를 서로 속에 감추며 독도 약이 될 수 있는지 약도 독이 될 수 있는지 치사량을 가늠할 수 없다 저 붉은 사과 나는 금단의 붉음과 둥긂을 입맛 다시며 절체절명의 순간을 겨누고 있다 저 원융 圓融 속에 이빨이 박히는 순간 찌르르 내 생을 가.. 눈물이 시킨 일 2011 2013.02.16
조롱 밖의 새 조롱 밖의 새 간밤의 두통은 문을 두드리는 부리로 쪼아대는 듯한 그대의 절규 때문이다 내 안에 있는데 밖에서 열 수 밖에 없는 문고리는 팔이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량의 물과 한 웅큼도 안되는 양식과 차양막 사이로 간간히 들어오는 햇빛 그대는 수인처럼 내 속에서 울었다 그 때마.. 눈물이 시킨 일 2011 2013.02.14
불꽃 불꽃 나는 아직 모른다 불이 꽃인지 아니면, 꽃이 불인지 모르면서 나는 불꽃이라고 성급하게 너를 잡는다 물이 깊은지 흘러가는 것인지 물수제비 뜨려고 돌멩이 하나 쥐어드는 순간 어디서 굴러왔는지 아니, 어디서 그렇게 짓눌리며 살아 왔는지 납작하게 그 얼굴 낯이 익다 어느 날인.. 눈물이 시킨 일 2011 2013.02.11
무지개는 밤에 뜨지 않는다 무지개는 밤에 뜨지 않는다 처음이 없으니 끝이 없고 입구가 없으니 출구가 없고 이쪽에서 보면 저쪽이고 저쪽에서 서 있으면 이쪽인 곳 손을 뻗어 빛과 물이 맞잡은 순간 허공에 다리가 걸렸다 너무 가파르고 외줄이었던 그 다리 조금 휘어 둥그러질 때 우리는 짧은 해를 기억하지 못했.. 눈물이 시킨 일 2011 2013.02.10
눈물이 시킨 일 눈물이 시킨 일 한 구절씩 읽어가는 경전은 어디에서 끝날까 경전이 끝날 때쯤이면 무엇을 얻을까 하루가 지나면 하루가 지워지고 꿈을 세우면 또 하루를 못 견디게 허물어 버리는, 그러나 저 산을 억 만 년 끄떡없이 세우는 힘 바다를 하염없이 살아 요동치게 하는 힘 경전은 완성이 아.. 눈물이 시킨 일 2011 2013.02.09
숲 숲 아빠가 말했다 우리 애는 학예회 내내 주인공 이었어요 글쎄, 처음부터 끝까지 배경으로 서 있는 나무였다니까요 엄마가 말했다 나무를 두 팔로 안아봐 그리고 나무에 귀를 대고 나무가 너에게 뭐라고 말하는 지 들어봐 아이가 말했다 나무가 사랑해 라고 말했어요 눈물이 시킨 일 2011 2013.02.08
파문 波紋 파문 波紋 쭈굴거리는 나를 보고 방긋거리는 어린 아기의 웃음이 가슴에 물컹 닿는다 말을 배우기 전에 말의 씨앗이 꽃이라는 것을 부드럽게 구름과 구름이 만나듯이 잔 물결이 일어난다 뿌리 채 고스란히 뽑혀 어디론가 높은 고개를 넘어가던 소나무의 정적이 저만큼 푸를까 이 세상의 .. 눈물이 시킨 일 2011 2013.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