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정민의 세설신어 185

[186] 각곡류목(刻鵠類鶩)

[정민의 세설신어] [186] 각곡류목(刻鵠類鶩)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2.11.27. 23:30    후한의 명장 마원(馬援)에게 형이 남긴 조카 둘이 있었다. 이들은 남 비방하기를 즐기고, 경박한 협객들과 어울려 지내기를 좋아했다. 멀리 교지국(交址國)에 나가 있던 그가 걱정이 되어 편지를 보냈다. 간추린 내용은 이렇다."나는 너희가 남의 과실 듣기를 부모의 이름 듣듯 했으면 좋겠다. 귀로 듣더라도 입으로 옮겨서는 안 된다. 남의 잘잘못을 따지기 좋아하고, 바른 법에 대해 망령되이 시비하는 것은 내가 가장 미워하는 일이다. 죽더라도 내 자손이 이런 행실이 있다는 말은 듣고 싶지가 않다. 용백고(龍伯高)는 돈후하고 신중해서 가려낼 말이 없다. 겸손하고 검소하며 청렴해서 위엄이 있다. 그래서..

[185] 영서연설(郢書燕說)

[정민의 세설신어] [185] 영서연설(郢書燕說)정민 · 한양대 교수 · 고전문학입력 2012.11.20. 23:30업데이트 2012.11.21. 01:36우암 송시열 선생께서 손자를 가르치다가 영 속이 상하셨던 모양이다. 손자에게 주는 시 두 수를 남겼다. 그중 둘째 수. "내가 직접 모범 보여 손자 교육 못하니, 타일러도 우습게 아는 것이 당연하다. 내 말은 그래도 성현의 말씀이고, 네 자질은 다행히 못난 사람 아니로다. 맹상군이 무를 캠이 어이 뿌리 때문이랴, 영서(郢書)의 거촉(擧燭)으로 어진 신하 길 열었네. 선생 비록 바르지 않다손 치더라도, 네 덕을 새롭게 함에 어이 방해되겠느냐?(我敎小孫不以身, 宜其邈邈此諄諄. 余言而自聖賢說, 汝質幸非愚下人. 趙相采 豈下體, 郢書擧燭開賢臣. 雖云夫子未於正,..

[184] 채봉채비(采葑采菲)

[정민의 세설신어] [184] 채봉채비(采葑采菲)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2.11.13. 23:30    전국시대 제(齊)나라 재상 맹상군(孟嘗君)이 초나라로 갔다. 초왕이 상아로 만든 상(床)을 신하 등도직(登徒直)을 시켜 선물로 전하게 했다. 등도직이 맹상군의 문인 공손술(公孫述)을 찾아갔다. “상아 상은 값이 천금이오. 조금만 흠이 가면 처자식을 다 팔아도 변상할 수가 없소. 이 심부름을 하지 않게 해준다면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보검을 그대에게 바치겠소.”공손술이 허락하고 들어가 맹상군에게 말했다. “상아 상을 받으시렵니까?” “무슨 말이냐?” “작은 나라들이 나리께 재상의 인(印)을 바치는 것은 그들의 어려움을 능히 건져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리의 의리와 청렴함을 사모해 마지않..

[183] 길광편우 (吉光片羽)

[정민의 세설신어] [183] 길광편우 (吉光片羽)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2.11.06. 23:30      한나라 무제(武帝) 때 서역에서 길광(吉光)의 털로 짠 갖옷을 바쳤다. 갖옷은 물에 여러 날 담가도 가라앉지 않았고, 불에 넣어도 타지 않는 신통한 물건이었다. 이 옷만 입으면 어떤 깊은 물도 문제없이 건너고, 불 속이라도 끄떡없이 견딜 수 있었다. 길광이 대체 뭘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길광은 신수(神獸), 또는 신마(神馬)의 이름으로 나온다. '해내십주기(海內十洲記)'에는 "길광의 갖옷은 황색인데, 신마의 종류"라 했다. 진(晋)나라 갈홍(葛洪)의 '포박자(抱朴子)'에도 "길광이란 짐승은 3000년을 산다"고 썼다.글에서는 반드시 길광편우(吉光片羽)로만 쓴다. 편우는 한 조각이다. ..

[182] 지미무미(至味無味)

[정민의 世說新語] [182] 지미무미(至味無味)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10.30. 23:30 유명한 냉면집을 안내하겠다 해서 갔더니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맛을 보곤 실망했다. 좋게 말해 담백하고 그저 말해 밍밍했다. 네 맛도 내 맛도 없었다.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 꼽는다는 냉면집 맛이 학교 앞 분식집만도 못했다. 나처럼 실망한 사람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집 벽에 순수한 재료로만 육수를 내서 처음 맛보면 이상해도 이것이 냉면 육수의 참맛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여러 해 전 일인데도 가끔 생각난다. 감미료로 맛을 낸 육수 국물에 길들여진 입맛들이 얼마나 투덜댔으면 주인이 그런 글을 써 붙일 생각을 했을까? 그래도 사람들이 여전히 줄을 서서 찾는 걸 보면, 맛을 아는 사..

[181] 소객택인 (召客擇人)

[정민의 세설신어] [181] 소객택인 (召客擇人) 정민 /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10.23. 23:31 측천무후(則天武后) 원년(692)의 일이다. 흉년으로 사람들이 굶어 죽자 온 나라에 도살과 어류 포획을 금지했다. 우습유(右拾遺) 장덕(張德)이 귀한 아들을 얻어 사사로이 양을 잡아 잔치했다. 보궐(補闕) 두숙(杜肅)이 고기 전병 하나를 몰래 품고 나와 글을 올려 장덕을 고발했다. 이튿날 태후가 조회할 때 장덕에게 말했다. "아들 얻은 것을 축하하오." 장덕이 절을 올리며 사례했다. "고기는 어디서 났소?" 장덕이 고개를 조아려 사죄했다. 태후가 말했다. "내가 도살을 금했지만 길한 일과 흉한 일의 경우는 예외요. 경은 이제부터 손님을 청할 때 사람을 가려서 하는 것이 좋겠소." 그러면..

[180] 만이불일(滿而不溢)

[정민의 世說新語] [180] 만이불일(滿而不溢)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10.16. 23:30 이조판서 이문원(李文源·1740~1794)의 세 아들이 가평에서 아버지를 뵈러 상경했다. 아버지는 아들들이 말을 타고 온 것을 알고 크게 화를 냈다. "아직 젊은데 고작 100여리 걷는 것이 싫어 말을 타다니. 힘쓰는 것을 이렇듯 싫어해서야 무슨 일을 하겠느냐?" 아버지는 세 아들에게 즉시 걸어 가평으로 돌아갔다가 이튿날 다시 도보로 올 것을 명령했다. 그 세 아들 중 한 사람이 이존수(李存秀·1772~1829)다. 조부는 영의정을 지낸 이천보(李天輔)였다. 영의정의 손자요 현임 이조판서의 아들들이 말 타고 왔다가 불호령을 받고 걸어갔다가 걸어왔다. 엄한 교육을 받고 자란 이존수 또한 뒤에 ..

[179] 불출악성 (不出惡聲)

[정민의 세설신어] [179] 불출악성 (不出惡聲)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10.09. 23:30 연암 박지원이 안의현감으로 있을 때 윤광석(尹光碩)은 이웃 고을 함양 군수였다. 자주 왕래하며 친하게 지냈다. 윤광석이 선대의 문집을 간행하면서 연암의 선조를 잘못된 사실로 모독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뒤늦게 이 일을 안 연암의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윤광석은 자기가 직접 한 일이 아니며, 미처 살피지 못해 일어난 일이니 당장 판을 헐어 새로 찍겠다고 연암에게 사과했다. 막상 딴 데 가서는, 내용이 좋다고 연암이 칭찬까지 해놓고 이제 와서 저런다며 힐난했다. 윤광석은 한술 더 떠 지금도 둘 사이가 전처럼 좋고 술자리에서 단란한 정을 나누며 지낸다며 떠들고 다녔다. 연암은 부들부들 치를 떨었..

[178] 성문과정(聲聞過情)

[정민의 세설신어] [178] 성문과정(聲聞過情)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10.02. 23:32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소식(蘇軾)의 시에, "선비가 시골에 있을 때에는 강태공(姜太公)과 이윤(伊尹)에다 저를 비기지. 시험 삼아 써보면 엉망이어서, 추구(蒭狗)를 다시 쓰기 어려움 같네(士方在田里, 自比渭與莘. 出試乃大謬, 蒭狗難重陳)"란 구절이 있다. 추구는 짚으로 엮어 만든 개다. 예전 중국에서 제사 때마다 만들어 쓰고는 태우곤 했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재야에 있을 때는 하도 고결하고 식견이 높은 듯 보여 맡기면 안 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막상 써보니 1회용도 못 되는 알량한 그릇이었다는 말이다. 소식이 '증전도인(贈錢道人)'이란 시에서 또 말했다. "서생들 몹시도 책만 믿고..

[177] 분도양표(分道揚鑣)

[정민의 세설신어] [177] 분도양표(分道揚鑣)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9.25. 23:31 남북조 시절 북위(北魏)의 대신 원제(元齊)는 여러 차례 국가에 큰 공을 세웠다. 황제가 그를 높여 하간공(河間公)에 봉했다. 그의 아들 원지(元志) 또한 총명해서, 임금의 총애를 받아 낙양령(洛陽令)에 임명되었다. 얼마 후 어사중위(御史中尉) 이표(李彪)의 건의로 산서성 평성(平城)에 있던 도읍이 낙양으로 옮겨오게 되었다. 일개 지방 현령이었던 원지는 하루아침에 경조윤(京兆尹)이 되었다. 경조윤은 오늘로 치면 서울특별시장에 해당한다. 원지는 평소 제 재주를 자부하여, 조정의 지위 높은 벼슬아치를 우습게 보았다. 하루는 밖에 나갔다가 공교롭게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이표의 수레와 마주쳤다. 조정..

[176] 단미서제 (斷尾噬臍)

[정민의 세설신어] [176] 단미서제 (斷尾噬臍)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9.18. 23:32 주(周)나라 때 빈맹(賓孟)이 교외를 지나다 잘생긴 수탉이 꼬리를 제 부리로 물어뜯는 것을 보았다. "하는 짓이 해괴하구나." 시종이 대답했다. "다 저 살자고 하는 짓입니다. 고운 깃털을 지니고 있으면 잡아서 종묘 제사에 희생으로 쓸 것입니다. 미리 제 꼬리를 헐어 위험을 벗어나려는 것입지요." 빈맹이 탄식했다. 단미웅계(斷尾雄鷄), 이른바 위험을 미연에 차단코자 제 잘난 꼬리를 미리 자른 수탉의 이야기다. '춘추좌전'에 나온다. 고려가 망해갈 무렵 시승(詩僧) 선탄(禪坦)이 새벽에 개성 동문 밖을 지나다가 닭울음 소리를 듣고 시를 썼다. 그 끝 연이 이랬다. "천촌만락 모두다 어둔 꿈에..

[175] 오교삼흔 (五交三釁)

[정민의 세설신어] [175] 오교삼흔 (五交三釁)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9.11. 23:30 갑자기 오랜 우정의 절교가 세간의 화제가 되는 모양이다. 중국 남조(南朝) 때 유준(劉峻·463~522)의 광절교론(廣絶交論)이 생각난다. 세리(勢利)를 좇아 우정을 사고파는 당시 지식인들의 장사치만도 못한 세태를 풍자한 글이다. 먼저 우정에는 소교(素交)와 이교(利交)의 두 종류가 있다. 비바람 눈보라의 역경에도 조금의 흔들림이 없는 것은 현인달사(賢人達士)의 소교, 즉 변함없는 우정이다. 속임수와 탐욕을 바탕에 깔아 험악하기 짝이 없고 변화무쌍한 것은 제 이익만 추구하는 이교다. 소교가 사라지고 이교가 일어나면서 천하는 어지러워지고 천지의 운행이 조화를 잃게 되었다. 이교는 장사치의 우..

[174] 서중사치 (書中四痴)

[정민의 세설신어] [174] 서중사치 (書中四痴)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9.04. 23:30 "빌리는 놈 바보, 빌려주는 놈 바보, 돌려달라는 놈 바보, 돌려주는 놈 바보(借一痴, 借二痴, 索三痴, 還四痴)." 책 빌리기와 관련해 늘 우스개 삼아 오가는 네 가지 바보 이야기다. 당나라 때 이광문(李匡文)이 '자가집(資暇集)'에서 처음 한 말이다. 송나라 때 여희철(呂希哲)도 '여씨잡기(呂氏雜記)'에서 "책을 빌려 주는 것과 남의 책을 빌려와서 돌려주는 것은 둘 다 바보다(借書而與之,借人書而歸之,二者皆痴也)"라고 했다. 한번 이 말이 유행한 뒤로 천하에 남에게 책을 빌려주려 들지 않는 나쁜 풍조가 싹텄다. 공연히 귀한 책을 빌려주고 나서 책 잃고 사람 잃고 바보 소리까지 듣고 싶지 ..

[173] 식진관명(植眞觀命)

[정민의 세설신어] [173] 식진관명(植眞觀命)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8.28. 23:30 삶이 쾌적해지기 위해 지켜야 할 여덟 단계를 제시한 이덕무의 '적언찬(適言讚)'이란 글이 있다. 첫 단계는 식진(植眞)이다. 참됨을 심어야 한다. 사물은 참됨을 잃는 순간 가짜 껍데기가 된다. 아무리 닮아도 가짜는 가짜다. 본질을 깊숙이 응시해야 가짜에 현혹되지 않는다. 그다음은 관명(觀命)이다. 운명을 살핀다 함은 오늘 할 일 오늘 하고 어제 할 일 어제 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마음을 갖는 태도를 말한다. 점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다음은 병효(病殽)다. 마음을 다스려 잡다한 것에 현혹됨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색과 재물, 능변과 모략, 이런 것에 휘둘리면 방법이 없..

[172] 건상유족(褰裳濡足)

[정민의 세설신어] [172] 건상유족(褰裳濡足)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8.21. 23:31업데이트 2012.08.28. 16:37 굴원의 『초사(楚辭)』 「사미인(思美人)」에 나오는 한 구절. “벽라 넝쿨 걷어내려 해도 발꿈치 들어 나무 오르기 귀찮고, 연꽃으로 중매를 삼고 싶지만 치마 걷어 발 적시고 싶지는 않네.(令薜荔以爲理兮,憚擧趾而緣木. 因芙蓉而爲媒兮,憚褰裳而濡足.” 지저분한 벽라 넝쿨을 말끔히 걷어내고 싶지만, 나무를 타고 오를 일이 엄두가 안 난다. 연꽃을 바쳐 사랑하는 여인의 환심을 사고 싶은데, 옷을 걷고 발을 적셔가며 물에 들어가기는 싫다. 『후한서(後漢書)』「최인전(崔駰傳)」에도 이런 말이 있다. “일이 생기면 치마를 걷어 발을 적시고, 관이 걸려있어도 돌아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