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정민의 세설신어 211

[212] 노다정산(勞多精散)

[정민의 세설신어] [212] 노다정산(勞多精散)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5.29. 03:31  명나라 왕상진(王象晋·1561~1653)이 편집한 '일성격언록(日省格言錄)'을 펼쳐 읽는데, 다음 구절에 눈이 멎는다."눈은 육신의 거울이다. 귀는 몸의 창문이다. 많이 보면 거울은 흐려지고, 많이 들으면 창문이 막히고 만다. 얼굴은 정신의 뜨락이다. 머리카락은 뇌의 꽃이다. 마음이 슬퍼지면 얼굴이 초췌해지고, 뇌가 감소하면 머리카락이 하얘진다. 정기(精氣)는 몸의 정신이다. 밝음은 몸의 보배다. 노고가 많으면 정기가 흩어지고(勞多精散), 애를 쏟으면 밝음이 사라진다."(眼者身之鏡, 耳者體之牖. 視多則鏡昏, 聽衆則牖閉. 面者神之庭, 髮者腦之華. 心悲則面焦, 腦減則髮素. 精者體之神, 明者身之寶...

[211] 수이불실(秀而不實)

[정민의 세설신어] [211] 수이불실(秀而不實)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5.22. 03:03  모를 심어 싹이 웃자라면 이윽고 이삭 대가 올라와 눈을 내고 꽃을 피운다. 그 이삭이 양분을 받아 알곡으로 채워져 고개를 수그릴 때 추수의 보람을 거둔다. 처음 올라오는 이삭 대 중에는 아예 싹의 모가지조차 내지 못하는 것이 있고, 대를 올려도 끝이 노랗게 되어 종내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것도 있다. 이런 것은 농부의 손길에 솎아져서 뽑히고 만다. 싹의 모가지가 싹아지, 즉 싸가지다. 이삭 대의 이삭 패는 자리가 싹수(穗)다. 싸가지는 있어야 하고, 싹수가 노래서는 안 되는 이유다. 사람도 마찬가지다.공자는 논어 '자한(子罕)'에서 이렇게 말했다. "싹만 트고 꽃이 피지 않는 것이 있고, 꽃은 ..

[210] 신용어시(愼用於始)

[정민의 세설신어] [210] 신용어시(愼用於始)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5.14. 23:19   성대중(成大中)이 '청성잡기(靑城雜記)'에서 말했다. "소인은 군자에 비해 재주가 뛰어날 뿐 아니라 언변도 좋고 힘도 세고 일도 잘한다. 일을 맡기면 반드시 해낸다. 윗사람이라면 누군들 그에게 일을 맡기려 들지 않겠는가? 살펴야 할 것은 마음 씀씀이다. 하지만 자취가 드러나기 전에야 가늠할 수 있겠는가? 그 죄악이 다 드러나면 나랏일은 이미 그르치고 말아 구할 방법이 없다. 비록 형벌로 죽인다 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그런 까닭에 군자는 처음에 쓰는 것을 삼가는 것(愼用於始)이다."(小人之於君子, 不惟才勝之也, 言辯勝, 彊力勝, 功伐勝. 任之事必辦, 在上者, 孰不欲任使之耶? 其可議者, 心..

[209] 세심방환(洗心防患)

[정민의 세설신어] [209] 세심방환(洗心防患)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5.07. 23:06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갑과 을의 논란이 전에 없이 뜨겁다. 늘 있어온 일인데 갑들의 잇단 안하무인 격 폭력과 횡포가 드러나면서 이참에 제대로 공론화가 될 모양이다. 힘센 갑이 약한 을 위에 군림하며 함부로 굴어온 관행이 빚은 결과다. 함께 건너가는 공생의 파트너를 천한 아랫것 다루듯 하니, 돈 버는 문제 이전에 인간적 모멸을 견딜 수가 없다. 천민 자본주의의 탄식이 절로 나온다.명나라 때 설선(薛瑄)은 '종정명언(從政名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낮은 백성이 억울한데도 그 억울함이 풀리지 않는 것은 윗사람이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위를 지닌 자는 절대로 번거롭고 싫은 일을 마다하면..

[208] 불학지인(不學之人)

[정민의 세설신어] [208] 불학지인(不學之人)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4.30. 23:01   한 대기업 임원의 비행기 난동으로 시끄러웠다. 눈에 뵈는 것 없이 멋대로 행동한 안하무인의 얘기를 듣다 보니 그런 상사에게 날마다 시달렸을 그의 부하 직원들이나 하도급업체 사람들이 불쌍하게 생각되었다. 성대중(成大中)은 귀해졌다고 교만을 떨고, 힘 좋다고 제멋대로 구는 것은 다 못 배운 사람(不學之人)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제 힘만 믿고 교만 떨며 함부로 굴다가 급전직하 나락으로 떨어진 뒤에는 후회해도 때가 늦다.1606년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사신을 보내 통신(通信)의 화호(和好)를 요청하면서 임진왜란은 자기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조선 정부는 첨지(僉知) 전계신(全繼信)..

[207] 불위선악(不爲善惡)

[정민의 세설신어] [207] 불위선악(不爲善惡)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4.23. 23:12업데이트 2013.04.24. 04:36  을사사화 때 임형수(林亨秀·1504~ 1547)가 나주에서 사약을 받았다. 열 살이 못 된 아들에게 말했다. "글을 배우지 말거라." 아들이 울며 나가니, 다시 불러 말했다. "글을 안 배우면 무식하게 되어 남의 업신여김을 받을 테니, 글은 배우되 과거는 보지 말라." '연려실기술'에 나온다.후한 때 범방(范滂·137~169)은 만인의 존경을 한몸에 받던 인물이었다. 영제(靈帝) 때 자청해서 형을 받으러 나가면서 아들에게 말했다. "네게 악을 행하라 권하고 싶구나. 하지만 악은 할 수가 없는 법. 그래서 네게 선을 권하려 한다만, 나는 악이나 행하지 않으..

[206] 시아비아(是我非我)

[정민의 세설신어] [206] 시아비아(是我非我)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4.16. 23:27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이만영(李晩榮·1604~1672)이 사신으로 갔다가 중국 화가 호병(胡炳)이 그린 초상화를 갖고 왔다. 똑 닮은 모습에 사람들이 감탄했고, 자신도 흡족했다. 18년 뒤 예전 초상화를 꺼내 거울 속 모습과 견줘 보니 조금도 같은 구석이 없었다. 거울 속의 나도 분명히 나이고, 그림 속 나도 틀림없는 나인데, 두 나는 전혀 달랐다. 그는 느낌이 있어 초상화 속 나를 위해 '화상찬병서(畵像贊幷序)'를 썼다."그대가 지금의 나란 말인가? 내가 그래도..

[205] 오괴오합(五乖五合)

[정민의 세설신어] [205] 오괴오합(五乖五合)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4.09. 23:15   조희룡(趙熙龍·1789~1866)이 '한와헌제화잡존(漢瓦軒題畵雜存)'에 쓴 짧은 글이다. '어제도 할 수 없고 오늘도 할 수 없었습니다. 삼가 마음이 열리는 길한 날을 가려 선생의 축수를 위해 바칠까 합니다. 난 하나 바위 하나 그리기가 별 따기보다 어렵군요. 참담하게 애를 써 보았으나 허망함을 느낍니다. 비록 아직 못 그리긴 했지만 그린 것과 다름없습니다.'부탁받은 그림을 그리긴 해야겠는데, 붓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얘기다. 서화가의 그림이나 글씨가 붓과 종이만 주면 공장에서 물건 찍듯 나오는 줄 알면 오산이다.당나라 때 서예가 손과정(孫過庭)은 '서보(書譜)'에서 글씨가 뜻대로 될..

[204] 고보자봉(故步自封)

[정민의 세설신어] [204] 고보자봉(故步自封)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4.02. 23:12   청말 양계초(梁啓超)가 '애국론(愛國論)'에서 말했다. "부인네들이 십년간 전족(纏足)을 하다 보니 묶은 것을 풀어주어도 오히려 다닐 수가 없다. 그래서 예전 걸음으로 스스로를 얽어매고 만다." 옛 걸음으로 스스로를 묶는다는 고보자봉(故步自封)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어릴 때부터 여자 아이의 발을 꽁꽁 동여매 발의 성장을 막는다. 성장하면서 발등의 뼈가 휘어 기형이 된다. 전족은 근대 중국의 낙후성을 나타내는 한 상징이었다. 뒤에 여성을 압제에서 해방한다면서 전족을 풀게 했다. 하지만 그녀들은 이미 정상적인 걸음걸이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발을 꽁꽁 싸맨 천을 풀자 지지해줄 것이 없어 통증만..

[203] 지유조심(只有操心)

[정민의 세설신어] [203] 지유조심(只有操心)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3.27. 02:44    이덕무가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에서 말했다. "사람이 한번 세상에 나면 부귀빈천을 떠나 뜻 같지 않은 일이 열에 여덟아홉이다. 한번 움직이고 멈출 때마다 제지함이 고슴도치 가시처럼 일어나, 조그만 몸뚱이 전후좌우에 얽히지 않음이 없다. 얽힌 것을 잘 운용하는 사람은 천 번 만 번 제지를 당해도 얽힌 것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 얽힌 것에 끌려 다니지도 않는다. 때에 따라 굽히고 펴서 각각 꼭 알맞게 처리한다. 그리하면 얽힌 것에 다치지 않게 될 뿐 아니라, 내 화기(和氣)를 손상시키지도 않아 저절로 순경(順境) 속에서 노닐게 된다. 저 머리 깎고 산에 드는 자 중에도 괴롭게 그 제지함을 ..

(202) 금불급고(今不及古)

[정민의 세설신어] (202) 금불급고(今不及古)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3.20. 03:05     근세 홍콩의 저명한 서화 수장가 진인도(陳仁濤·1906~1968)가 쓴 '금궤논화(金匱論畵)'를 읽었다. 지금 그림이 옛것만 못한 원인을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그림에서 지금이 옛날에 미치지 못하는(今不及古) 것은 무엇 때문인가? 옛사람은 생활이 간소하고 질박해서 먹고살 도리를 구해야 하는 급박함이나 세상에 이름을 남기겠다는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일생토록 기예를 익혀, 오랜 뒤에는 절로 신묘한 조화를 두루 갖추게 된다. 지금 사람은 물질의 유혹에 빠져 생활에 아등바등한다. 입고 먹는 것을 다만 그림에만 의지한다. 조잡한 작품을 마구 그려 대량 생산하거나, 이름난 거장의 그림을 따라 익혀..

[201] 제심징려(齊心澄慮)

[정민의 세설신어] [201] 제심징려(齊心澄慮)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3.13. 03:04   연암 박지원이 열하에서 요술 구경을 했다. 요술쟁이는 콩알만 하던 환약을 점점 키워 달걀만 하고 거위알만 하게 만들더니 장구만 하고 큰 동이만 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놀라 빤히 보는 중에 그것을 쓰다듬고 어루만져 잠깐 사이 손안에 넣고 손바닥을 비비니 그마저도 없어졌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그는 기둥에 제 손을 뒤로 묶게 했다. 피가 안 통하는지 손가락 색이 검게 변했다. 요술쟁이는 순식간에 기둥에서 떨어져 섰다. 손은 어느새 가슴 앞에 와 있고, 끈은 애초에 묶인 그대로였다. 일행 중 하나가 성을 내면서 돈을 주고 한 번 더 해보라고 했다. 그러고는 제 채찍으로 직접 요술쟁이의 손을 ..

[200] 하정투석(下井投石)

[정민의 세설신어] [200] 하정투석(下井投石)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3.06. 03:05  홍대용(洪大容·1731~1783)이 1766년 연행(燕行)을 다녀왔다. 그는 연경에서 만난 엄성(嚴誠)·육비(陸飛)·반정균(潘庭筠) 등 세 사람의 절강 선비들과 필담으로 심교(心交)를 나누고, 의형제까지 맺고 돌아왔다. 홍대용은 귀국 후 그들과 나눈 필담과 서찰을 정리해서 책자로 만들어 가까운 사람들에게 돌려 보였다. 이 일은 당시 지식인 사회의 단연 뜨거운 화제였다. 박제가는 안면이 없던 홍대용을 직접 찾아가 실물 보기를 청했고, 이덕무는 그 글을 읽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반발과 비방도 만만치 않았다. 김종후(金鍾厚·1721~1780)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홍대용이 비린내 나는 더러운 원..

[199] 조락공강 (潮落空江)

[정민의 世說新語] [199] 조락공강 (潮落空江)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2.27. 03:04  당나라 때 이정(李�H)이 쓸쓸한 송강역(松江驛) 물가에서 저물녘에 배를 대다가 시 한 수를 썼다."조각배에 외론 객이 늦도록 머뭇대니, 여뀌꽃이 피어 있는 수역(水驛)의 가을일세. 세월에 놀라다가 이별마저 다한 뒤, 안개 물결 머무느니 고금의 근심일래. 구름 낀 고향 땅엔 산천이 저무는데, 조수 진 텅 빈 강서 그물을 거두누나. 여기에 예쁜 아씨 옛 노래가 들려오니, 노 젓는 소리만이 채릉주(采菱舟)로 흩어진다(片帆孤客晩夷猶, 紅蓼花前水驛秋. 歲月方驚離別盡, 烟波仍駐古今愁. 雲陰故國山川暮, 潮落空江網��收. 還有吳娃舊歌曲, 棹聲遙散采菱舟).참으로 적막하고 쓸쓸한 광경이다. 조각배를 탄 나그..

[198] 유언혹중(流言惑衆)

[정민의 세설신어] [198] 유언혹중(流言惑衆)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2.20. 03:07  말이 많아 탈도 많다. 쉽게 말하고 함부로 말한다. 재미로 뜻 없이 남을 할퀸다. 할큄을 당한 본인은 선혈이 낭자한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죽어야 끝이 날까? 요즘 악플은 죽은 사람조차 놓아주지 않는다. 이유가 없다. 그냥 재미있으니까.송나라 때 이방헌(李邦獻)이 엮은 '성심잡언(省心雜言)'을 읽었다. 몇 구절에 밑줄을 긋는다."말로 남을 다치게 함은 예리하기가 칼이나 도끼와 같다. 꾀로 남을 해치는 것은 독랄하기가 범이나 이리와 한가지다. 말은 가려 하지 않을 수 없고, 꾀도 가려 하지 않을 수 없다(以言傷人者, 利如刀斧. 以術害人者, 毒如虎狼. 言不可不擇, 術不可不擇也)." 남을 다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