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정민의 세설신어 221

[222] 몽환포영(夢幻泡影)

[정민의 세설신어] [222] 몽환포영(夢幻泡影)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8.07. 03:04   남공철(南公轍·1760~1840)의 '진락선생묘지명(眞樂先生墓誌銘)'은 처사 남유두(南有斗)의 일생을 기록한 글이다. 그는 평생 곤궁했지만 자족의 삶을 살았다. 쌀독이 비었다고 처자식이 푸념하면 "편하게 생각하라"고 말했다. 젊어서는 시로 이름이 높았다. 나이 들자 시도 짓지 않으면서 "나는 말을 잊고자 한다"고 했다. 경전에 침잠해 침식을 잊었고, 시무책을 지으면 경륜이 높았다. 대제학 조관빈(趙觀彬)과 정승 유척기(兪拓基)가 그를 천거해 벼슬을 내리려 해도 듣지 않았다. 정승 유언호(兪彦鎬)가 당대의 급선무를 묻자 돌아온 대답이 "독서를 더 하고 나서 물으시오"였다.그는 자신의 허리띠에 ..

[221] 환이삼롱(桓伊三弄)

[정민의 세설신어] [221] 환이삼롱(桓伊三弄)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7.31. 03:03  진(晋)나라 때 환이(桓伊)는 뛰어난 피리 연주자였다. 그가 작곡한 '낙매화곡(落梅花曲)'이 유명했다. 이백(李白)은 "황학루 위에 올라 옥피리 빗기 불자, 5월이라 강성에서 매화꽃이 떨어지네(黃鶴樓上吹玉笛, 江城五月落梅花)"라 노래했다. 5월이면 꽃이 진작에 다 지고 매실이 주렁주렁 달릴 시절이다. 하지만 황학루에서 누군가 부는 젓대 소리를 듣고 있자니 갑자기 눈앞에서 난분분 날리는 매화 꽃잎의 환영을 보는 것만 같더라는 뜻이다. 허공으로 흩어지는 피리 소리에서 바람에 흩날리는 매화 꽃잎을 연상한 것은 참 대단하다. 이백은 이때 환이의 '낙매화곡'을 떠올린 것이 분명하다.하루는 왕휘지(王徽之..

[220] 체수유병(滯穗遺秉)

[정민의 세설신어] [220] 체수유병(滯穗遺秉)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7.24. 02:59   정조는 특이한 임금이었다. 경연(經筵)에서 신하의 강의를 듣지 않고 자신이 직접 강의를 했다. '시경'을 강의할 때 전후로 내준 숙제만 800문항이 넘었다. 큰 학자라도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 많았다. 신하들은 끊임없는 임금의 숙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이 강의에서 단연 이채를 발한 학생은 정약용이었다.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척척 대답해서 제출했다. 정조가 다산의 답안지에 어필(御筆)로 내린 평가가 이랬다. "백가의 말을 두루 인증해 출처가 끝이 없다. 평소의 온축이 깊고 넓지 않고는 이렇게 할 수가 없다." 다산의 작업 비결은 생활화된 메모의 습관에서 나왔다. 옛글을 읽다가 한 구절이라..

[219] 지만계영(持滿戒盈)

[정민의 세설신어] [219] 지만계영(持滿戒盈)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7.17. 03:04   공자께서 노나라 환공(桓公)의 사당을 구경했다. 사당 안에 의기(欹器), 즉 한쪽으로 비스듬히 기운 그릇이 놓여 있었다. 묘지기에게 물었다. "이건 무슨 그릇인가?" "자리 곁에 놓아두었던 그릇(宥坐之器)입니다. 비면 기울고, 중간쯤 차면 바르게 서고, 가득 차면 엎어집니다. 이것으로 경계를 삼으셨습니다." "그렇구려." 제자에게 물을 붓게 하니 과연 그 말과 꼭 같았다. 공자께서 탄식하셨다. "아! 가득 차고도 엎어지지 않을 물건이 어디 있겠느냐?"제자 자로(子路)가 물었다. "지만(持滿), 즉 가득 참을 유지하는 데 방법이 있습니까?" "따라내어 덜면 된다." "더는 방법은요?" "높아지..

[218] 십년독서(十年讀書)

[정민의 세설신어] [218] 십년독서(十年讀書)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7.10. 03:05  밤낮 책만 읽는 허생을 보던 아내는 부아가 끓었다. 꽁한 표정으로 한마디 던진다. "그깟 책은 읽어 뭐하우. 밥이 나와, 쌀이 나와." 허생은 책에서 눈도 떼지 않고 건성으로 대답한다. "공부가 아직 부족해." "식구들 쫄쫄 굶기면서 책을 읽고 있으면 배가 부른가 보지? 물건을 만들든가, 장사라도 하든지." "기술도 밑천도 없는 걸 어찌 하나." 하는 말마다 염장을 지른다. "밤낮 글 읽더니 못 한다는 말만 배웠소? 차라리 도둑질이라도 배우든지." 견디다 못한 허생이 책을 탁 덮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안타깝다. 내 십년독서가 이제 겨우 7년인데 나머지를 못 채우는구나."그는 뭐가 애석했..

[217] 무료불평(無聊不平)

[정민의 세설신어] [217] 무료불평(無聊不平)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7.03. 03:03  료(聊)는 부사로 쓸 때는 '애오라지'로 새기고, 보통은 힘입다, 즐긴다는 의미로 쓴다. 무료(無聊)하다는 말은 즐길 만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옛글에서는 흔히 무료불평(無聊不平)이라고 썼다. 회재불우(懷才不遇)! 재주를 품고도 세상과 만나지 못했다. 꿈이 있고 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있는데 세상은 나를 외면하고 쓸모없는 사람 취급을 한다. 이때 생기는 마음이 무료불평이다. 마음에 맞는 일이 없어 무료하고, 그 끝에 남는 것이 불평이다. 불평은 마음이 들쭉날쭉 일정하지 않아 울근불근하는 상태다.유성룡(柳成龍·1542~1607)이 우성전(禹性傳)에게 쓴 짧은 편지에서 "그의 글은 앞..

[216] 이매망량(魑魅魍魎)

[정민의 세설신어] [216] 이매망량(魑魅魍魎)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6.26. 03:22  이매망량(魑魅魍魎)은 우리말로 두억시니 또는 도깨비의 지칭이다. 정도전(鄭道傳)은 '사이매문(謝魑魅文)'에서 이매망량을 "음허(陰虛)의 기운과 목석(木石)의 정기가 변화해서 된,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며, 이승과 저승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로 보았다. 이매망량은 음습한 곳에 숨어 있다가 사람을 홀려서 비정상적 행동을 하게 만든다. '사기'의 오제본기(五帝本紀)에 나온 풀이에는 "이매魑魅)는 사람 얼굴에 짐승의 몸뚱이로 발이 네 개다. 사람을 잘 홀린다"(魑魅人面獸身四足, 好惑人)고 했다. '산해경'에는 "강산(剛山)에는 귀신이 많다. 그 모습은 사람 얼굴에 짐승의 몸뚱이를 했고, 다리..

[215] 작문육오(作文六誤)

[정민의 세설신어] [215] 작문육오(作文六誤)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6.19. 03:06  명나라 장홍양(張洪陽)이 '담문수어(談文粹語)'에서 글 쓸 때 빠지기 쉬운 여섯 가지 잘못을 지적했다. 세상 사는 이치도 이와 다를 게 없어 소개한다.첫째는 말을 비틀어 어렵고 험벽하게(艱險) 써놓고 제딴에는 새롭고 기이하지(新奇) 않으냐고 여기는 것이다. 사실은 괴상할(怪) 뿐이다. 참신한 시도와 망측한 행동을 잘 구분해야 한다. 기이함은 뜻에서 나오지 남이 하지 않은 말이나 행동을 처음 하는 데서 생기지 않는다.둘째는 뜻을 복잡하게 얽어놓고(鉤深) 스스로 정밀하고 투철하다(精透)고 여기는 경우다. 하도 뒤엉켜서 제법 생각도 깊어 보이고, 공부도 많이 한 것 같다. 하나하나 짚어 보면 겉보기..

[214] 음주육폐(飮酒六弊)

[정민의 세설신어] [214] 음주육폐(飮酒六弊)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6.12. 03:03   명나라 때 사조제(謝肇淛)가 '문해피사(文海披沙)'에서 지나친 음주가 가져오는 여섯 가지 폐단을 말했다.첫째, 치신(治身), 즉 몸가짐상의 '패덕상의(敗德喪儀)'다. 평소에 쌓아온 덕을 무너뜨리고, 점잖던 거동을 잃게 만든다. 술 취한 개라더니 체면이 영 말씀이 아니다. 둘째는 대인(待人)상의 '기쟁생흔(起爭生釁)'이다. 없어도 될 다툼을 일으키고, 공연한 사단을 부르는 것이 다 술기운을 못 이긴 탓이다. 셋째, 위학(爲學)상의 '폐시실사(廢時失事)'다. 공부에 힘 쏟아야 할 젊은이들이 때를 놓치고 할 일을 잃게 만드는 원흉이 술이다. 넷째, 치가(治家)에 있어 '초도생간(招盜生姦)'이다. ..

[213] 홍진벽산(紅塵碧山)

[정민의 세설신어] [213] 홍진벽산(紅塵碧山)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6.05. 03:05  조선 시대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삼전도(三田渡)를 건너며 지었다는 시다. "바야흐로 백사장에 있을 적에는, 배 위 사람 뒤처질까 염려하다가, 배 위에 올라타 앉고 나서는, 백사장의 사람을 안 기다리네."(方爲沙上人, 恐後船上人. 及爲船上人, 不待沙上人.) 백사장에서는 나룻배가 자기만 떼어놓고 갈까 봐 애가 탔다. 겨우 배에 올라타 앉고 나자, 저만치 달려오는 사람은 눈에 안 보이고 왜 빨리 출발하지 않느냐며 사공을 닦달한다는 것이다. 이덕무의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에 나온다.발을 동동 구르며 쫓기듯 하루가 간다. 아무 일 없이 가만있으면 불안하다. 금세 뭔 일이 날 것 같고, 나만 뒤처..

[212] 노다정산(勞多精散)

[정민의 세설신어] [212] 노다정산(勞多精散)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5.29. 03:31  명나라 왕상진(王象晋·1561~1653)이 편집한 '일성격언록(日省格言錄)'을 펼쳐 읽는데, 다음 구절에 눈이 멎는다."눈은 육신의 거울이다. 귀는 몸의 창문이다. 많이 보면 거울은 흐려지고, 많이 들으면 창문이 막히고 만다. 얼굴은 정신의 뜨락이다. 머리카락은 뇌의 꽃이다. 마음이 슬퍼지면 얼굴이 초췌해지고, 뇌가 감소하면 머리카락이 하얘진다. 정기(精氣)는 몸의 정신이다. 밝음은 몸의 보배다. 노고가 많으면 정기가 흩어지고(勞多精散), 애를 쏟으면 밝음이 사라진다."(眼者身之鏡, 耳者體之牖. 視多則鏡昏, 聽衆則牖閉. 面者神之庭, 髮者腦之華. 心悲則面焦, 腦減則髮素. 精者體之神, 明者身之寶...

[211] 수이불실(秀而不實)

[정민의 세설신어] [211] 수이불실(秀而不實)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5.22. 03:03  모를 심어 싹이 웃자라면 이윽고 이삭 대가 올라와 눈을 내고 꽃을 피운다. 그 이삭이 양분을 받아 알곡으로 채워져 고개를 수그릴 때 추수의 보람을 거둔다. 처음 올라오는 이삭 대 중에는 아예 싹의 모가지조차 내지 못하는 것이 있고, 대를 올려도 끝이 노랗게 되어 종내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것도 있다. 이런 것은 농부의 손길에 솎아져서 뽑히고 만다. 싹의 모가지가 싹아지, 즉 싸가지다. 이삭 대의 이삭 패는 자리가 싹수(穗)다. 싸가지는 있어야 하고, 싹수가 노래서는 안 되는 이유다. 사람도 마찬가지다.공자는 논어 '자한(子罕)'에서 이렇게 말했다. "싹만 트고 꽃이 피지 않는 것이 있고, 꽃은 ..

[210] 신용어시(愼用於始)

[정민의 세설신어] [210] 신용어시(愼用於始)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5.14. 23:19   성대중(成大中)이 '청성잡기(靑城雜記)'에서 말했다. "소인은 군자에 비해 재주가 뛰어날 뿐 아니라 언변도 좋고 힘도 세고 일도 잘한다. 일을 맡기면 반드시 해낸다. 윗사람이라면 누군들 그에게 일을 맡기려 들지 않겠는가? 살펴야 할 것은 마음 씀씀이다. 하지만 자취가 드러나기 전에야 가늠할 수 있겠는가? 그 죄악이 다 드러나면 나랏일은 이미 그르치고 말아 구할 방법이 없다. 비록 형벌로 죽인다 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그런 까닭에 군자는 처음에 쓰는 것을 삼가는 것(愼用於始)이다."(小人之於君子, 不惟才勝之也, 言辯勝, 彊力勝, 功伐勝. 任之事必辦, 在上者, 孰不欲任使之耶? 其可議者, 心..

[209] 세심방환(洗心防患)

[정민의 세설신어] [209] 세심방환(洗心防患)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5.07. 23:06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갑과 을의 논란이 전에 없이 뜨겁다. 늘 있어온 일인데 갑들의 잇단 안하무인 격 폭력과 횡포가 드러나면서 이참에 제대로 공론화가 될 모양이다. 힘센 갑이 약한 을 위에 군림하며 함부로 굴어온 관행이 빚은 결과다. 함께 건너가는 공생의 파트너를 천한 아랫것 다루듯 하니, 돈 버는 문제 이전에 인간적 모멸을 견딜 수가 없다. 천민 자본주의의 탄식이 절로 나온다.명나라 때 설선(薛瑄)은 '종정명언(從政名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낮은 백성이 억울한데도 그 억울함이 풀리지 않는 것은 윗사람이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위를 지닌 자는 절대로 번거롭고 싫은 일을 마다하면..

[208] 불학지인(不學之人)

[정민의 세설신어] [208] 불학지인(不學之人)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4.30. 23:01   한 대기업 임원의 비행기 난동으로 시끄러웠다. 눈에 뵈는 것 없이 멋대로 행동한 안하무인의 얘기를 듣다 보니 그런 상사에게 날마다 시달렸을 그의 부하 직원들이나 하도급업체 사람들이 불쌍하게 생각되었다. 성대중(成大中)은 귀해졌다고 교만을 떨고, 힘 좋다고 제멋대로 구는 것은 다 못 배운 사람(不學之人)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제 힘만 믿고 교만 떨며 함부로 굴다가 급전직하 나락으로 떨어진 뒤에는 후회해도 때가 늦다.1606년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사신을 보내 통신(通信)의 화호(和好)를 요청하면서 임진왜란은 자기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조선 정부는 첨지(僉知) 전계신(全繼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