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정민의 세설신어 217

[218] 십년독서(十年讀書)

[정민의 세설신어] [218] 십년독서(十年讀書)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7.10. 03:05  밤낮 책만 읽는 허생을 보던 아내는 부아가 끓었다. 꽁한 표정으로 한마디 던진다. "그깟 책은 읽어 뭐하우. 밥이 나와, 쌀이 나와." 허생은 책에서 눈도 떼지 않고 건성으로 대답한다. "공부가 아직 부족해." "식구들 쫄쫄 굶기면서 책을 읽고 있으면 배가 부른가 보지? 물건을 만들든가, 장사라도 하든지." "기술도 밑천도 없는 걸 어찌 하나." 하는 말마다 염장을 지른다. "밤낮 글 읽더니 못 한다는 말만 배웠소? 차라리 도둑질이라도 배우든지." 견디다 못한 허생이 책을 탁 덮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안타깝다. 내 십년독서가 이제 겨우 7년인데 나머지를 못 채우는구나."그는 뭐가 애석했..

[217] 무료불평(無聊不平)

[정민의 세설신어] [217] 무료불평(無聊不平)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7.03. 03:03  료(聊)는 부사로 쓸 때는 '애오라지'로 새기고, 보통은 힘입다, 즐긴다는 의미로 쓴다. 무료(無聊)하다는 말은 즐길 만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옛글에서는 흔히 무료불평(無聊不平)이라고 썼다. 회재불우(懷才不遇)! 재주를 품고도 세상과 만나지 못했다. 꿈이 있고 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있는데 세상은 나를 외면하고 쓸모없는 사람 취급을 한다. 이때 생기는 마음이 무료불평이다. 마음에 맞는 일이 없어 무료하고, 그 끝에 남는 것이 불평이다. 불평은 마음이 들쭉날쭉 일정하지 않아 울근불근하는 상태다.유성룡(柳成龍·1542~1607)이 우성전(禹性傳)에게 쓴 짧은 편지에서 "그의 글은 앞..

[216] 이매망량(魑魅魍魎)

[정민의 세설신어] [216] 이매망량(魑魅魍魎)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6.26. 03:22  이매망량(魑魅魍魎)은 우리말로 두억시니 또는 도깨비의 지칭이다. 정도전(鄭道傳)은 '사이매문(謝魑魅文)'에서 이매망량을 "음허(陰虛)의 기운과 목석(木石)의 정기가 변화해서 된,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며, 이승과 저승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로 보았다. 이매망량은 음습한 곳에 숨어 있다가 사람을 홀려서 비정상적 행동을 하게 만든다. '사기'의 오제본기(五帝本紀)에 나온 풀이에는 "이매魑魅)는 사람 얼굴에 짐승의 몸뚱이로 발이 네 개다. 사람을 잘 홀린다"(魑魅人面獸身四足, 好惑人)고 했다. '산해경'에는 "강산(剛山)에는 귀신이 많다. 그 모습은 사람 얼굴에 짐승의 몸뚱이를 했고, 다리..

[215] 작문육오(作文六誤)

[정민의 세설신어] [215] 작문육오(作文六誤)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6.19. 03:06  명나라 장홍양(張洪陽)이 '담문수어(談文粹語)'에서 글 쓸 때 빠지기 쉬운 여섯 가지 잘못을 지적했다. 세상 사는 이치도 이와 다를 게 없어 소개한다.첫째는 말을 비틀어 어렵고 험벽하게(艱險) 써놓고 제딴에는 새롭고 기이하지(新奇) 않으냐고 여기는 것이다. 사실은 괴상할(怪) 뿐이다. 참신한 시도와 망측한 행동을 잘 구분해야 한다. 기이함은 뜻에서 나오지 남이 하지 않은 말이나 행동을 처음 하는 데서 생기지 않는다.둘째는 뜻을 복잡하게 얽어놓고(鉤深) 스스로 정밀하고 투철하다(精透)고 여기는 경우다. 하도 뒤엉켜서 제법 생각도 깊어 보이고, 공부도 많이 한 것 같다. 하나하나 짚어 보면 겉보기..

[214] 음주육폐(飮酒六弊)

[정민의 세설신어] [214] 음주육폐(飮酒六弊)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6.12. 03:03   명나라 때 사조제(謝肇淛)가 '문해피사(文海披沙)'에서 지나친 음주가 가져오는 여섯 가지 폐단을 말했다.첫째, 치신(治身), 즉 몸가짐상의 '패덕상의(敗德喪儀)'다. 평소에 쌓아온 덕을 무너뜨리고, 점잖던 거동을 잃게 만든다. 술 취한 개라더니 체면이 영 말씀이 아니다. 둘째는 대인(待人)상의 '기쟁생흔(起爭生釁)'이다. 없어도 될 다툼을 일으키고, 공연한 사단을 부르는 것이 다 술기운을 못 이긴 탓이다. 셋째, 위학(爲學)상의 '폐시실사(廢時失事)'다. 공부에 힘 쏟아야 할 젊은이들이 때를 놓치고 할 일을 잃게 만드는 원흉이 술이다. 넷째, 치가(治家)에 있어 '초도생간(招盜生姦)'이다. ..

[213] 홍진벽산(紅塵碧山)

[정민의 세설신어] [213] 홍진벽산(紅塵碧山)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6.05. 03:05  조선 시대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삼전도(三田渡)를 건너며 지었다는 시다. "바야흐로 백사장에 있을 적에는, 배 위 사람 뒤처질까 염려하다가, 배 위에 올라타 앉고 나서는, 백사장의 사람을 안 기다리네."(方爲沙上人, 恐後船上人. 及爲船上人, 不待沙上人.) 백사장에서는 나룻배가 자기만 떼어놓고 갈까 봐 애가 탔다. 겨우 배에 올라타 앉고 나자, 저만치 달려오는 사람은 눈에 안 보이고 왜 빨리 출발하지 않느냐며 사공을 닦달한다는 것이다. 이덕무의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에 나온다.발을 동동 구르며 쫓기듯 하루가 간다. 아무 일 없이 가만있으면 불안하다. 금세 뭔 일이 날 것 같고, 나만 뒤처..

[212] 노다정산(勞多精散)

[정민의 세설신어] [212] 노다정산(勞多精散)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5.29. 03:31  명나라 왕상진(王象晋·1561~1653)이 편집한 '일성격언록(日省格言錄)'을 펼쳐 읽는데, 다음 구절에 눈이 멎는다."눈은 육신의 거울이다. 귀는 몸의 창문이다. 많이 보면 거울은 흐려지고, 많이 들으면 창문이 막히고 만다. 얼굴은 정신의 뜨락이다. 머리카락은 뇌의 꽃이다. 마음이 슬퍼지면 얼굴이 초췌해지고, 뇌가 감소하면 머리카락이 하얘진다. 정기(精氣)는 몸의 정신이다. 밝음은 몸의 보배다. 노고가 많으면 정기가 흩어지고(勞多精散), 애를 쏟으면 밝음이 사라진다."(眼者身之鏡, 耳者體之牖. 視多則鏡昏, 聽衆則牖閉. 面者神之庭, 髮者腦之華. 心悲則面焦, 腦減則髮素. 精者體之神, 明者身之寶...

[211] 수이불실(秀而不實)

[정민의 세설신어] [211] 수이불실(秀而不實)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5.22. 03:03  모를 심어 싹이 웃자라면 이윽고 이삭 대가 올라와 눈을 내고 꽃을 피운다. 그 이삭이 양분을 받아 알곡으로 채워져 고개를 수그릴 때 추수의 보람을 거둔다. 처음 올라오는 이삭 대 중에는 아예 싹의 모가지조차 내지 못하는 것이 있고, 대를 올려도 끝이 노랗게 되어 종내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것도 있다. 이런 것은 농부의 손길에 솎아져서 뽑히고 만다. 싹의 모가지가 싹아지, 즉 싸가지다. 이삭 대의 이삭 패는 자리가 싹수(穗)다. 싸가지는 있어야 하고, 싹수가 노래서는 안 되는 이유다. 사람도 마찬가지다.공자는 논어 '자한(子罕)'에서 이렇게 말했다. "싹만 트고 꽃이 피지 않는 것이 있고, 꽃은 ..

[210] 신용어시(愼用於始)

[정민의 세설신어] [210] 신용어시(愼用於始)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5.14. 23:19   성대중(成大中)이 '청성잡기(靑城雜記)'에서 말했다. "소인은 군자에 비해 재주가 뛰어날 뿐 아니라 언변도 좋고 힘도 세고 일도 잘한다. 일을 맡기면 반드시 해낸다. 윗사람이라면 누군들 그에게 일을 맡기려 들지 않겠는가? 살펴야 할 것은 마음 씀씀이다. 하지만 자취가 드러나기 전에야 가늠할 수 있겠는가? 그 죄악이 다 드러나면 나랏일은 이미 그르치고 말아 구할 방법이 없다. 비록 형벌로 죽인다 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그런 까닭에 군자는 처음에 쓰는 것을 삼가는 것(愼用於始)이다."(小人之於君子, 不惟才勝之也, 言辯勝, 彊力勝, 功伐勝. 任之事必辦, 在上者, 孰不欲任使之耶? 其可議者, 心..

[209] 세심방환(洗心防患)

[정민의 세설신어] [209] 세심방환(洗心防患)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5.07. 23:06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갑과 을의 논란이 전에 없이 뜨겁다. 늘 있어온 일인데 갑들의 잇단 안하무인 격 폭력과 횡포가 드러나면서 이참에 제대로 공론화가 될 모양이다. 힘센 갑이 약한 을 위에 군림하며 함부로 굴어온 관행이 빚은 결과다. 함께 건너가는 공생의 파트너를 천한 아랫것 다루듯 하니, 돈 버는 문제 이전에 인간적 모멸을 견딜 수가 없다. 천민 자본주의의 탄식이 절로 나온다.명나라 때 설선(薛瑄)은 '종정명언(從政名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낮은 백성이 억울한데도 그 억울함이 풀리지 않는 것은 윗사람이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위를 지닌 자는 절대로 번거롭고 싫은 일을 마다하면..

[208] 불학지인(不學之人)

[정민의 세설신어] [208] 불학지인(不學之人)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4.30. 23:01   한 대기업 임원의 비행기 난동으로 시끄러웠다. 눈에 뵈는 것 없이 멋대로 행동한 안하무인의 얘기를 듣다 보니 그런 상사에게 날마다 시달렸을 그의 부하 직원들이나 하도급업체 사람들이 불쌍하게 생각되었다. 성대중(成大中)은 귀해졌다고 교만을 떨고, 힘 좋다고 제멋대로 구는 것은 다 못 배운 사람(不學之人)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제 힘만 믿고 교만 떨며 함부로 굴다가 급전직하 나락으로 떨어진 뒤에는 후회해도 때가 늦다.1606년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사신을 보내 통신(通信)의 화호(和好)를 요청하면서 임진왜란은 자기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조선 정부는 첨지(僉知) 전계신(全繼信)..

[207] 불위선악(不爲善惡)

[정민의 세설신어] [207] 불위선악(不爲善惡)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4.23. 23:12업데이트 2013.04.24. 04:36  을사사화 때 임형수(林亨秀·1504~ 1547)가 나주에서 사약을 받았다. 열 살이 못 된 아들에게 말했다. "글을 배우지 말거라." 아들이 울며 나가니, 다시 불러 말했다. "글을 안 배우면 무식하게 되어 남의 업신여김을 받을 테니, 글은 배우되 과거는 보지 말라." '연려실기술'에 나온다.후한 때 범방(范滂·137~169)은 만인의 존경을 한몸에 받던 인물이었다. 영제(靈帝) 때 자청해서 형을 받으러 나가면서 아들에게 말했다. "네게 악을 행하라 권하고 싶구나. 하지만 악은 할 수가 없는 법. 그래서 네게 선을 권하려 한다만, 나는 악이나 행하지 않으..

[206] 시아비아(是我非我)

[정민의 세설신어] [206] 시아비아(是我非我)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4.16. 23:27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이만영(李晩榮·1604~1672)이 사신으로 갔다가 중국 화가 호병(胡炳)이 그린 초상화를 갖고 왔다. 똑 닮은 모습에 사람들이 감탄했고, 자신도 흡족했다. 18년 뒤 예전 초상화를 꺼내 거울 속 모습과 견줘 보니 조금도 같은 구석이 없었다. 거울 속의 나도 분명히 나이고, 그림 속 나도 틀림없는 나인데, 두 나는 전혀 달랐다. 그는 느낌이 있어 초상화 속 나를 위해 '화상찬병서(畵像贊幷序)'를 썼다."그대가 지금의 나란 말인가? 내가 그래도..

[205] 오괴오합(五乖五合)

[정민의 세설신어] [205] 오괴오합(五乖五合)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4.09. 23:15   조희룡(趙熙龍·1789~1866)이 '한와헌제화잡존(漢瓦軒題畵雜存)'에 쓴 짧은 글이다. '어제도 할 수 없고 오늘도 할 수 없었습니다. 삼가 마음이 열리는 길한 날을 가려 선생의 축수를 위해 바칠까 합니다. 난 하나 바위 하나 그리기가 별 따기보다 어렵군요. 참담하게 애를 써 보았으나 허망함을 느낍니다. 비록 아직 못 그리긴 했지만 그린 것과 다름없습니다.'부탁받은 그림을 그리긴 해야겠는데, 붓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얘기다. 서화가의 그림이나 글씨가 붓과 종이만 주면 공장에서 물건 찍듯 나오는 줄 알면 오산이다.당나라 때 서예가 손과정(孫過庭)은 '서보(書譜)'에서 글씨가 뜻대로 될..

[204] 고보자봉(故步自封)

[정민의 세설신어] [204] 고보자봉(故步自封)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4.02. 23:12   청말 양계초(梁啓超)가 '애국론(愛國論)'에서 말했다. "부인네들이 십년간 전족(纏足)을 하다 보니 묶은 것을 풀어주어도 오히려 다닐 수가 없다. 그래서 예전 걸음으로 스스로를 얽어매고 만다." 옛 걸음으로 스스로를 묶는다는 고보자봉(故步自封)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어릴 때부터 여자 아이의 발을 꽁꽁 동여매 발의 성장을 막는다. 성장하면서 발등의 뼈가 휘어 기형이 된다. 전족은 근대 중국의 낙후성을 나타내는 한 상징이었다. 뒤에 여성을 압제에서 해방한다면서 전족을 풀게 했다. 하지만 그녀들은 이미 정상적인 걸음걸이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발을 꽁꽁 싸맨 천을 풀자 지지해줄 것이 없어 통증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