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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시킨 일 2011

참, 멀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4. 30. 16:06

 

참, 멀다

 

한 그루 나무의 일생을 읽기에 나는 성급하다

저격수의 가늠쇠처럼 은밀한 나무의 눈을 찾으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창을 열어보인 적 없는 나무

무엇을 품고 있기에 저렇게 둥근 몸을 가지고 있을까

한 때 바람을 가득 품어 풍선처럼 날아가려고 했을까

외로움에 지쳐 누군가가 뜨겁게 안아주기를 바랐을까

한 아름 팔을 벌리면 가슴에 차가운 금속성의 금이 그어지는 것 같다

베어지지 않으면 결코 보이지 않는 시간의 문신

비석의 글씨처럼 풍화되는 법이 없다

 

참, 멀다

나무에게로 가는 길은 멀어서 아름답다

살을 찢어 잎을 내고 가지를 낼 때

꽃 피고 열매 맺을 때

묵언의 수행자처럼 말을 버릴 때

나무와 나 사이는 아득히 멀어진다

 

한여름이 되자 나무는 인간의 마을로 온다

자신의 몸에 깃든 생명을 거두어

해탈의 울음 우는 매미의 푸른 독경을

아득히 떨어지는 폭포로 내려 쏟을 때

가만가만 열뜬 내 이마를 쓸어내릴 때

나무는 그늘만큼 깊은 성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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