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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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시인론·시평 192

김결 시집 『당신은 낡고 나는 두려워요』: 공극孔隙의 슬픔과 스며듦의 미학

공극孔隙의 슬픔과 스며듦의 미학 나호열 시인·문화평론가속을 드러내는 일은 언제나 자신이 없다 김결 시인의 첫 시집 『당신은 낡고 나는 두려워요』는 기의記意를 해체하는 독특한 발화發話를 통해 의식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기억을 더듬고 스스로를 위무하는 길을 탐색하고 있다. 마치 부손蕪村의 하이쿠 「거면居眠」, “꾸벅 졸면서/ 나에게로 숨을까/ 겨울나기여”처럼 결코 그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생의 고독함을 이겨 내기 위해 또 다른 타자인 자신의 의식 속으로 스며드는 독백인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낡고 나는 두려워요』는 존재 간의 공극―결코 결합될 수 없는 간극―을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당신과 나의 거리는 얼마가 적당할까사랑하다가 한날한시에 같이 묻혀도 간극은 있다― 「공극」 부분 시인의 이러한 ..

선연선과善緣善果의 의미를 묻다

선연선과善緣善果의 의미를 묻다 나호열 1. 선연선과의 뜻을 직역하면 좋은 인연이 좋은 결과를 맺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연因緣은 또 무엇인가? 어떤 원인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결과 -사물의 생멸이나 어떤 사건의 진위 -로 이해할 때 우리는 불가佛家의 연기설緣起說을 떠올리게 된다. 한 마디로 모든 존재는 서로 서로에게 원인이며 결과인 까닭에 이러한 상호작용있어서 우열이나 승패를 가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진상은 어떠할까? 모든 생물은 어찌 되었던 생명의 연장과 종족 보존에 전력을 다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런 본능적 상황을 넘어서 욕망의 가치를 넘본다. 장수長壽의 욕심을 넘어서서 부와 명예, ..

이은경 시집 『꽃잎 사이로 바람이 분다』:‘사이’를 탐색하는 묵상默想의 언어

‘사이’를 탐색하는 묵상默想의 언어 나호열 (시인· 문화평론가) 귀가 순해지니 들리는 걸 다 포용하라 - 「이순 즈음에 · 1」 1. 『꽃잎 사이로 바람이 분다』는『1시 15분』(2018)에 이은 이은경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첫 번째 시집을 상재한 이후 5년이 흘렀으므로 시인에게도 심신心身의 변화가 있었으리라 짐작이 되고 그 변화의 중심에 인간사人間事에 대한 여러 가지 상념들이 자리잡고 있음이 시집 『꽃잎 사이로 바람이 분다』에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여러 정황을 살펴볼 때 이은경 시인은 이순을 지났을 것으로 보인다. 이순耳順은 한 생애의 원숙기 또는 정신의 일관성을 확인하는 시기로서 급변하는 세태에 흔들리지 않는 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보고자 하는 분기점分岐點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지면 지나온..

김광진 시집 『낯선 곳 그리고 설렘』: 만유일체의 지혜를 묻다

만유일체의 지혜를 묻다 나호열 (시인· 문화평론가) 여행이란 무엇인가? 여행旅行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가 사는 곳을 떠나 유람을 목적으로 객지를 두루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인류의 시조들이 저 아프리카를 떠나 보다 나은 생존의 터전을 찾아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간 여정도 여행일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거나 성지를 찾아가는 종교적 순례, 정복을 목적으로 하는 이동移動도 여행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호기심만큼의 두려움을 안고 겪어보지 못한 환경과 낯선 사람들과 마주치는 여행은 예기하지 못했던 문화의 충돌과 혼융을 경험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여행은 극히 일부분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행운(?)이었고, 평범한 사람들이 먼 곳, 먼 길..

최수경 시집 『긍정을 걸었다』:일상에서 삶의 비의秘義를 찾다

일상에서 삶의 비의秘義를 찾다 나호열 (시인 ⁃ 문화평론가) 1. “누구나 시를 쓸 수 있으나 아무나 시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떠올린다. 이 말은 여러 뜻으로 풀이할 수 있겠는데 표현 욕구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를 읊조릴 수 있으나 예술가로서의 시인에게는 단순한 표현 욕구를 넘어서는 일관된 세계관, 전인미답 前人未踏의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기교, 더 나아가서는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적 삶을 향한 지적 탐구를 시로 환치하려는 근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하면 시인은 시작 詩作을 통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始作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에 완성이 있을 수 없듯이, 시인은 영원히 시인이라는 이데아를 향하여 자신의 영혼을 바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유숙희 시집 『자유를 꿈꾸는 씨앗』:세월의 풍화風化와 삶의 정화淨化

세월의 풍화風化와 삶의 정화淨化 나호열 (시인 ⁃ 문화평론가) 시는 마음속의 불꽃이고 수사학은 눈송이다 불꽃과 눈송이가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겠는가 칼릴 지브란 들어가며 인간은 표현하는 존재이다. 이 말은 인간은 단독으로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인 까닭에 자신의 삶을 타인에게 투영投影하고 그 투영을 통해서 주체적 존재임을 확인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표현은 타인과의 소통을 지향하는 행위이지만 동시에 자아의 심층을 은폐하는 모순적 성향을 띄게 된다. 시詩는 이와같이 표현이 의미하는 드러냄과 감춤의 줄다리기를 보여주는 장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시에서의 표현은 일상적인 드러냄과는 다른 층위를 지닌다. 자신의 인상을 드러내는 의상이나, 장신구, 일반적인 언술과는 다른 어떤 정서의 간절함을..

김정희 시집『가방을 메고 아침을 건너간다』: 한 그루 나무에는 몇 개의 나뭇잎이 달려 있을까?

한 그루 나무에는 몇 개의 나뭇잎이 달려 있을까? 나호열 (시인· 문화평론가) 시란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알지 못하는 사실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정민 시인 김정희 『가방을 메고 아침을 건너간다』는 김정희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이다. 2015년 첫 시집『너는 봄꽃이다』펴낸 이후 2년에 한 권씩 꾸준히 시집을 상재하였으니 시인에게 시마詩魔가 깃들어있음이 틀림이 없다. 시마란 무엇인가? 요약해서 말하면 시를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강렬한 충동, 표현의 열망을 뜻하는 것이다. 이 시마와 관련해서 떠오르는 생각이 옛 시론 중의 하나인 ‘시궁이후공 詩窮而後工’이다. 이는 물질적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간에 어떤 결핍의 감정이 시를 짓게 만든다는 뜻이다. 그런데 시마와 시궁이후공의 맥락으로 김정희 시인의..

이비단모래 시집 『꽃잠』: 슬픔의 밥으로 피워낸 꽃, 詩

슬픔의 밥으로 피워낸 꽃, 詩 나호열(시인· 문화평론가) 들어가면서 지금으로부터 삼년 전 그러니까 2020년 가을이 끝나갈 무렵 시집『비단모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 시집을 통독하고 난 후 ‘사랑이라는 신전을 향한 기도의 시’로 그 시집의 얼개를 조감했고, 그 끝에 시인 이비단모래를 일러 ‘망망한 사랑이라는 사막을 건너가는 낙타’로 내 멋대로 명명했다. 그런 까닭에서인지 시집『꽃잠』을 읽는 내내 시집『비단모래』의 여러 풍경이 남긴 잔영이 겹쳐지면서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길을 따라가는 특별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과연 또 다른 세계란 무엇일까? 시를 포함한 모든 예술은 독창성과 일관성이라는, 서로 길항拮抗하는 요소를 얼마만큼 융합시키느냐에 따라 그 성취가 가늠되는 것이라고 본다. 다시 말해서..

노희정 시집 『영등포』: 유목의 시대를 건너가는 낙타의 노래

유목의 시대를 건너가는 낙타의 노래 나호열 (시인⦁문화평론가) 『영등포』는 79편의 시와 한 편의 산문으로 꾸며진 노희정 시인의 문집이다. 이 문집은 영등포역이나, 여의도와 같은 장소를 오가며 스며든 시인의 서정과 영등포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여러 사람들의 일상을 스케치한 작품들로 오랫동안 영등포 신문에 연재되었던 자료들이다. 예전과 달리 디지털의 눈부신 발전은 유, 무형의 자산을 기록하고 보존하는데 필요한 다양한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드론을 이용한 풍경의 조감鳥瞰이라든지, 지면紙面의 제한을 넘어 무한정의 자료를 소장할 수 있는 컴퓨터의 기능이 그러한 것들이다. 그러나 그런 기능들은 살아있는 사람의 숨결을 온전히 감싸 안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문집『영등포』는 생애의 반 이상을 발붙이며 살아온 고장, ..

조광자 시집 『닿을 수 없는 슬픔에게』:슬픔의 제단에 바치는 레퀴엠Requiem

슬픔의 제단에 바치는 레퀴엠Requiem 나호열 시인· 문화평론가 1. 조광자 시인의 첫 시집 『닿을 수 없는 슬픔에게』를 읽어 내려가다 뜬금없이 ‘흥수아이’가 생각났다. ‘흥수아이’ 는 누구인가? ‘흥수아이’는 1982년 충청북도 청주시 문의면 두루봉 동굴에서 발견된 인골로서 4, 5세 정도의 어린아이로 추정되며 적어도 4만 년 전 구석기 시대에 살았던 우리 조상의 원류로 주목을 받았다. 그 이후 이 인골이 구석기가 아닌 근대의 유골이라는 반론이 제기되는 등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어찌 되었던 두루봉 동굴의 소유주 김흥수 씨의 이름을 따서 ‘흥수 아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발견 당시 뼈만 남았으나 거의 완벽한 형태로 제단 위에 가지런히 누운 ‘흥수 아이’의 주변에는 흩뿌려진 꽃의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나와 너 그리고 우리들의 소외 疏外

나와 너 그리고 우리들의 소외 疏外 나호열 1. 『문학과 의식』(2019년 봄 호)에 실린 열 다섯 편의 시들은 우리 현대시가 펼치고 있는 다양한 시선을 보여주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현재 간행되고 있는 몇 몇 잡지들은 그들의 편집 방향에 따라, 보다 밀도 있는 편향성을 지니고 그들만의 독자층을 확대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기는 하지만 일반 독자들의 시 읽기의 편의성을 고려한다면 다양한 시류 詩流를 보여주는 것이 시 읽기의 즐거움을 배가시키고 독자들이 시를 가까이 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어보게도 한다.『문학과 의식』에 실린 시들은 각양각색의 시풍을 보여주면서도 커다란 하나의 주제로 집약할 수 있어 (화이부동和而不同) 한국 현대시의 흐름을 개관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

김승수 시집 『그대와 사는 이유』: 탈 속에 숨은 삶의 애환을 해학諧謔으로 풀다

탈 속에 숨은 삶의 애환을 해학諧謔으로 풀다 나호열 시인· 문학평론가 1. 자의든, 타의든 탈을 쓰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난 표정이나 행동을 통해 한 사람의 진면목을 판단하는 일은 쉽지 않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옛말이 그저 오가는 푸념이 아닌 까닭은 사회생활에서 관계의 중요성이 증대될수록 위장僞裝 - 화장이나 옷매무새, 어투 같은 – 의 필요성도 함께 절실해지기 때문이다. 한 때 ’고객이 왕이다.’의 의미가 이윤을 창출하고 기업이나 기관의 이미지를 높이는 기준이 되어 소비자를 응대하는 사람들에게 감정노동 感情勞動을 당연시하는 풍조가 상식이 되던 때가 있었다. 사전적 의미에서 감정노동은 실제적 감정을 속이고 전시적 감정으로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노동으로서..

이효시집 『당신의 숨 한 번』: ‘숨’과 ‘쉼’의 풍경을 읽다

해설 ‘숨’과 ‘쉼’의 풍경을 읽다 나호열 (시인 · 문화평론가) 1.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을 보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 하나는 기적이 없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며, 또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기적奇跡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한다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 인과의 법칙을 넘어서서 이루어지는 것, 어떤 절망적 상황이 순식간에 극복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것은 기적이 필요하지 않는 평온한 삶이다. 기적이 요구되지 않는 삶, 언제든 쉬고 잠잘 수 있는 집이 있고, 언제든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넉넉한 양식糧食이 비축되어 있는, 어찌 보면 판에 박힌 쳇바퀴를 돌리는 삶일 수도 있는 것이다. ..

장현두 시집『몰래 보는 영화』: 만물萬物이 추구芻狗임을 배우는 시

跋文 만물萬物이 추구芻狗임을 배우는 시 나호열 (시인· 문화평론가) 장현두는 누구인가 나에게 시인 장현두는 늘 새롭게 다가오는 사람이다. 몇 년 전 시를 함께 공부하는 모임에 얼굴을 비쳤다가 홀연히 사라졌다. 그 이후 본 적이 없으니 얼굴도 희미한데 어느 날엔가 느닷없이 고구마 한 박스가 배달되어 충청도 괴산 땅 주소가 적혀 있어 어리짐작으로 귀촌歸村을 짐작할 뿐이었다. 그리고 또 몇 년 후 이번에는 몇 년간 필진으로 참여했던『산림문학』의 지면을 통해 그가 시인으로 등단했음을 알 수 있었고, 이윽고 이번 여름에는 백 편의 시를 묶어 내게로 찾아왔던 것이다. 시절인연時節因緣이 이런 것인가! 시집『몰래보는 영화』의 첫 독자가 되어 다시 시인 장현두의 면면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 것이 어찌 남다르지 않겠는가...

정빈 시집 : 『칸나의 독백』: 시간의 향기를 사랑으로 담다

跋文 시간의 향기를 사랑으로 담다 나호열 (시인. 문화평론가) 1. 우리는 삶의 가치를 의미하는 경계가 사라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공고해 보였던 규범이나 의식이 그 쓸모를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 페미니즘의 역사는 몰라도 남과 여의 차별적 의식이 무너지고 있음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이고 전통적 관혼상제冠婚喪祭도 점차 현실과 거리가 먼 의식儀式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닌 세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욜로 YOLO (you only live once )라는 신조어가 이제는 더 이상 새삼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욜로 YOLO를 직역하면 ‘너의 인생은 한번 뿐’이므로 불투명한 미래에 기대를 걸기보다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과 즐거움을 만끽하는데 힘을 기울이겠다는 요즘의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