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의 일기 사월의 일기 말문을 그만 닫으라고 하느님께서 병을 주셨다 몇 차례 황사가 지나가고 꽃들은 다투어 피었다 졌다 며칠을 눈으로 듣고 귀로 말하는 동안 나무속에도 한 영혼이 살고 있음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허공에 가지를 뻗고 파란 잎을 내미는 일 꽃을 피우고 심지어 제 머리 위에 둥지 하나 새..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4.25
황사 지난 후 황사 지난 후 눈길이 머무르는 곳 멀다 손길이 가 닿는 곳 이제는 멀다 아침이면 알게 되리라 밤새 창문에 머리 부딪치며 외우고 또 외웠던 경전의 마디 다 부질없었음을 부질없었으나 그것이 아무도 살지 않는 사막에서 온 것임을 그 가볍고 가벼운 것이 우리의 눈을 감게 만들고 다시 한 번 세월의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4.24
법고 치는 사내 법고 치는 사내 저녁 이었다 배롱나무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지만 어느 새 기지개를 펴고 주먹을 내지를 것이다 가지를 단단히 움켜 쥔 새가 호르륵 호르륵 앞 산 뒷산을 넘고 넘기는 기억의 씨는 더 깊게 무덤으로 파고들 것이다. 그가 구비치며 걸어 올라왔을 길이 이제는 혼자 휘적이며 내려가는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3.25
바람소리 바람소리 전화기 속으로 수많은 말들을 쏟아 넣었는데 먼 곳에서 너는 바람소리만을 들었다고 한다 돌개바람처럼 말들이 가슴으로부터 솟구쳐 올라 빙하의 목구멍을 지나는 동안 한 계절이 속절없이 지나고 텅 빈 머리 속에서 꽃이 졌던 것이다 고마운 일이다 처음부터 그 말들은 문법이 맞지 않고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3.18
바람은 손이 없다 바람은 손이 없다 처음부터 바람이었겠는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인줄 알았겠는가 처음부터 눈이 없었고 처음부터 손이 없었다 몸으로 부딪치고 몸으로 부서졌다 그의 사랑은 처음부터 그랬다 종말은 평화로웠다 없는 그의 손이 꽃을 피우고 없는 그의 눈이 잎을 지게 만들었을 뿐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3.17
내일이면 닿으리라 내일이면 닿으리라 내일이면 닿으리라 산새소리에 매화가 피고 시냇물 향기만큼 맑은 그 마을에 가 닿으리라 나그네는 밤길을 걸어야 하는 법 어둠이 피워내는 불빛을 보며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꽃인지 그것이 멀리에서 바라보아야만 얼굴이 보이는 꽃인지 알아 나그네는 또 걷고 걷는다 아침이..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3.15
기침소리 기침소리 떠나고 싶을 때 그러나 떠나지 못할 때 마음의 깃발은 저 홀로 펄럭인다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바람이 지나간 것이지 오래된 세월의 지도는 갈피마다 안개를 피어올리고 터벅거리는 발자국 뒷산으로 넘어간다 덮었다가 다시 펼쳐드는 지도 속의 길들은 비스듬히 기울어 몇 번인가 자..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3.15
고백하라, 오늘을 별보다 반짝이는 말이 있다 꽃보다 향기로운 말이 있다 바람보다 부드러운 말이 있다 누구나 그 말을 가슴 속에 간직하지만 그 말의 열쇠는 내 손에 없다 반짝이는, 향기로운, 부드러운... 그 말의 주어는 늘 침묵 속에 있다. ** 2006년 3월 13일, 아침에는 햇살 비치고, 눈보라 휘날리더니 황사가 펄럭거렸..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3.13
불꽃 불꽃 나는 아직 모른다 불이 꽃인지 아니면, 꽃이 불인지 모르면서 나는 불꽃이라고 성급하게 너를 잡는다 물이 깊은지 흘러가는 것인지 물수제비 뜨려고 돌멩이 하나 쥐어드는 순간 어디서 굴러왔는지 아니, 어디서 그렇게 짓눌리며 살아 왔는지 납작하게 그 얼굴 낯이 익다 어느 날인가 끓어오르다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3.01
당신에게 말 걸기 당신에게 말 걸기 이 세상에 못난 꽃은 없다 화난 꽃도 없다 향기는 향기대로 모양새는 모양새대로 다, 이쁜 꽃 허리 굽히고 무릎도 꿇고 흙 속에 마음을 묻은 다, 이쁜 꽃 그걸 모르는 것 같아서 네게로 다가간다 당신은 참, 예쁜 꽃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2.28
창 창 창을 갖고 싶었다. 처음에는 손가락으로 구멍을 내고 그 틈으로 하늘을 보았다. 아니 처음에는 길고 높은 벽이 보였다. 그 벽에 다시 구멍을 내자 하늘은 실핏줄같은 강 내음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마음의 창에 가득 번져오르던 울음 빛은 흘러가야만 보인다 창과 구멍을 구별하지 못한 것이 죄가 될..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2.28
어느 여배우의 죽음 어느 여배우의 죽음 그녀는 이혼녀였다. 그녀는 파출부였다 그녀는 바람난 여자였다. 그녀는 우아하게 와인을 마시고 강이 내려다보이는 하우스에서 잠을 잤다 그녀는 버림받았고 그녀는 배반했다. 그녀는 재즈를 불렀다 그녀 안에 있는 모든 그녀들이 그녀를 죽이려고 달려들었다 우울증에 걸린 이..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2.28
거룩한 손 거룩한 손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쳤다 투박하고 거친 손 나 이제 가네 지문이 지워진 은행잎이 하늘의 뜻이라며 전해준 바람 한 줌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2.28
인디고Indigo 책방 인디고Indigo 책방 나호열 요크데일, 인디고 책방 2층 창가에 앉아 있다 저 멀리 윌슨 역에 서성거리는 그림자들 조합되지 않은 기호들 같다 401 익스프레스웨이와 다운타운으로 들어가는 길 나는 고개를 돌려 길을 되짚어야 한다 길을 되짚으려면 시선은 가지런한 서가에 아프게 가 닿는다 저 미지의, 뚜..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2.28
봄, 마곡 봄, 마곡 나호열 이른 봄 마곡에 가서 마곡의 저녁을 만났다 아직 몽우리조차 움트지 못한 나무들과 칼을 입에 물고 있는 개울물 아직 몸을 곧게 펴지 못한 길을 보아서는 안되는 것인데 아, 만나서는 안되는 것이었는데 목을 매달아야 영혼을 던져야 맑은 솔바람을 내는 종이여 한 번 구비치고 두 번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