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물 진 뒤 큰 물 진 뒤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늘 다시 푸르고 햇빛은 강물에 뛰어 들어가 은빛 비늘을 반짝였다 사나운 마음이 그런 것처럼 붉은 혀 널름거리던 시간이 지나자 영영 사라져 없어질 것 같던 길이며 작은 풀꽃들 휘었던 어깨를 곧추세우고 어느 사람은 뛰고 어느 사람은 천천히 걷고 어느 사람은 힘..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7.30
잘 가 또는 안녕 잘 가 또는 안녕 네가 떠날 때는 잘 가 라고 말해야 한다 내가 너를 떠날 때에는 짧게 안녕이라고 되내어야 한다 아니, 네가 떠날 때는 안녕이라 말하고 아니, 내가 너를 떠날 때에도 안녕이라고 말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끝내 하지 못했다 갈증으로 늘어뜨린 두레박은 아직도 깊은 너의 가슴..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7.27
징검다리 징검다리 결코 이 작은 개울을 훌쩍 날아갈 수 없다 까짓것 빠지면 비지 가랑이나 젖고 말 일인데 물살 바라보면 어지럼증이 난다 다리 가랑이 찢어지지 않을 정도만 어른도 아이들도 폴짝거리며 건너서 간다 얼마나 우스운 모습인가 징검다리 돌은 하나씩만 디딜 수 있는 법 참새 한 마리 찌익 똥을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7.19
公山城에서 公山城에서 평생을 땅파는 일에 투신한 고고학자와 공산성에 오른다 멀리 내다보는 일이 꼭 앞으로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그의 굽은 등을 바라볼 때 파묻힌 것들의 숨결을 듣는 수없이 많았던 그의 屈身을 생각한다. 감나무에 매달린 감들이 익을 대로 익어 툭툭 눈물 떨어지던 초겨울 오후..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7.14
아침에 전해준 새 소리 아침에 전해준 새 소리 죽지 않을 만큼만 잠을 잔다 죽지 않을 만큼만 먹고 죽지 않을 만큼만 꿈을 꾼다 죽지 않을 만큼만 말을 하고 죽지 않을 만큼만 걸어간다 그래야 될 것 같아서 누군가 외로울 때 웃는 것조차 죄가 되는 것 같아서 그래야 될 것 같아서 아, 그러나, 모든 경계를 머물지 않고 죽지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7.10
정선 장날 정선 장날 이제는 늙어 헤어지는 일도 섭섭하지 않은 나이 사고 싶은 것도 없고 팔아야 할 것도 없는 장터 이쯤에서 산이 높아 일찍 노을 떨구는 잊어버린 옛사랑을 문득 마주친다면 한 번 놓치고 오래 기다려야 하는 버스를 기다리며 낯익은 얼굴들 묵묵부답인 저 표정을 배울 수 있을까 알아도 소용..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6.24
그가 말했다 그가 말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두통 같은 고독 때문에 슬프다고 그가 말했다. 황선홍 선수가 골을 넣고 세 번 손을 내저었던 것은 아내에게, 딸에게, 그리고 아들에게 보낸 자랑스런 선물이라고 벌써 사 년 전 얘기인데 티브이 화면 속에서 눈물이 울컥거릴 때였다. 마침 아무도 없는 텅 빈 오후였으..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6.07
긴 편지 긴 편지 風磬을 걸었습니다 눈물이 깨어지는 소리를 듣고 싶었거든요 너무 높이 매달아도 너무 낮게 내려놓아도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에 우두커니 오래 있다가 이윽고 아주 오랜 해후처럼 부둥켜 않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이지요 와르르 눈물이 깨질 때 그 안에 숨어 있던 씨앗들..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6.04
신탄리행 신탄리행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 사람 없다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는 사람 없다 가슴 서늘해지는 끝이라는 말 더 이상 갈 수 없는 마지막 역에서 얼마나 나는 부끄러워지는가 온기 가득했던 한 잔의 차를 다 마시기도 전에 작별의 편지 한 장 다 쓰기도 전에 이렇게 당도해버린 낯 선 곳에서 산 속으로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5.30
거울은 벽에 등을 대고 있다 거울은 벽에 등을 대고 있다 내 가슴에 있는데 그대에게 편지를 쓴다 그대에게 전화를 건다 내 가슴에 있는데 멀리 숲을 돌아서 가고 가을 건너서 간다 한번도 나는 내 가슴에 닿은 적이 없다 너무 깊거나 어두워서 혹은 너무 뜨거울 것 같아서 나는 손을 가슴에 넣지 못한다 완강히 거울은 벽에 등을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5.25
사막에 살다 사막에 살다 사막에 살기 위하여 나는 늑대가 되었다 숲에서는 모두들 나를 피해 달아나지만 이곳에서는 오로지 나 혼자일 뿐 혼자만의 바람이 불고 혼자만의 달이 떠서 추위에 떨고 있는 나와 혼자 부르는 어떤 이름과 돌아갈 길을 잃어버리는 이곳에서 멀다 사랑이여 굶주림으로 달려가는 저 꽃밭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5.22
다시 아우라지에서 다시 아우라지에서 웃음과 울음이 섞이면 저렇게 푸른 날빛이 되지 어디에 닿는 지도 모르면서 흘러갈 수 있는 것은 날아오르는 만큼 하늘을 들어 올리는 저 새가 날갯짓을 하는 까닭 산이 깊은 만큼 그림자 깊어지고 제 뒷모습 보려고 온몸을 뒤트는 몸부림이 아쉬운 까닭 배는 내 몸을 건네주고 내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5.21
그대 사는 곳 그대 사는 곳 그대 사는 높은 곳 구름을 본다 티베트의 산정 사원에 마릴린 몬로의 웃음 들리는 듯 아이스크림이 녹는다 폐허라도 저렇게 무너질 수 있다면 터무니없는 탑을 쌓고 또 쌓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하염없이 하늘을 터벅터벅 걸어서 올라간다 그대는 천국에 산다 새 우짖는 소리 가득한데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