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라, 오늘을 별보다 반짝이는 말이 있다 꽃보다 향기로운 말이 있다 바람보다 부드러운 말이 있다 누구나 그 말을 가슴 속에 간직하지만 그 말의 열쇠는 내 손에 없다 반짝이는, 향기로운, 부드러운... 그 말의 주어는 늘 침묵 속에 있다. ** 2006년 3월 13일, 아침에는 햇살 비치고, 눈보라 휘날리더니 황사가 펄럭거렸..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3.13
불꽃 불꽃 나는 아직 모른다 불이 꽃인지 아니면, 꽃이 불인지 모르면서 나는 불꽃이라고 성급하게 너를 잡는다 물이 깊은지 흘러가는 것인지 물수제비 뜨려고 돌멩이 하나 쥐어드는 순간 어디서 굴러왔는지 아니, 어디서 그렇게 짓눌리며 살아 왔는지 납작하게 그 얼굴 낯이 익다 어느 날인가 끓어오르다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3.01
당신에게 말 걸기 당신에게 말 걸기 이 세상에 못난 꽃은 없다 화난 꽃도 없다 향기는 향기대로 모양새는 모양새대로 다, 이쁜 꽃 허리 굽히고 무릎도 꿇고 흙 속에 마음을 묻은 다, 이쁜 꽃 그걸 모르는 것 같아서 네게로 다가간다 당신은 참, 예쁜 꽃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2.28
창 창 창을 갖고 싶었다. 처음에는 손가락으로 구멍을 내고 그 틈으로 하늘을 보았다. 아니 처음에는 길고 높은 벽이 보였다. 그 벽에 다시 구멍을 내자 하늘은 실핏줄같은 강 내음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마음의 창에 가득 번져오르던 울음 빛은 흘러가야만 보인다 창과 구멍을 구별하지 못한 것이 죄가 될..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2.28
어느 여배우의 죽음 어느 여배우의 죽음 그녀는 이혼녀였다. 그녀는 파출부였다 그녀는 바람난 여자였다. 그녀는 우아하게 와인을 마시고 강이 내려다보이는 하우스에서 잠을 잤다 그녀는 버림받았고 그녀는 배반했다. 그녀는 재즈를 불렀다 그녀 안에 있는 모든 그녀들이 그녀를 죽이려고 달려들었다 우울증에 걸린 이..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2.28
거룩한 손 거룩한 손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쳤다 투박하고 거친 손 나 이제 가네 지문이 지워진 은행잎이 하늘의 뜻이라며 전해준 바람 한 줌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2.28
인디고Indigo 책방 인디고Indigo 책방 나호열 요크데일, 인디고 책방 2층 창가에 앉아 있다 저 멀리 윌슨 역에 서성거리는 그림자들 조합되지 않은 기호들 같다 401 익스프레스웨이와 다운타운으로 들어가는 길 나는 고개를 돌려 길을 되짚어야 한다 길을 되짚으려면 시선은 가지런한 서가에 아프게 가 닿는다 저 미지의, 뚜..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2.28
봄, 마곡 봄, 마곡 나호열 이른 봄 마곡에 가서 마곡의 저녁을 만났다 아직 몽우리조차 움트지 못한 나무들과 칼을 입에 물고 있는 개울물 아직 몸을 곧게 펴지 못한 길을 보아서는 안되는 것인데 아, 만나서는 안되는 것이었는데 목을 매달아야 영혼을 던져야 맑은 솔바람을 내는 종이여 한 번 구비치고 두 번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2.28
하루 하루 그 편지는, 어김없이, 내 앞에 놓여져 있다. 발신인이 없는 편지는 수상하다. 나는 한번도 그 내용을 들여다 본 적이 없다. 되돌려 보낼 주소가 없으므로 투덜대다가 아예 그것을 잊어버리기로 한다. 집요하게 달려드는 흡혈귀처럼 날카로운 송곳니가 밀봉의 틈새로 언뜻 비치기도 한다. 장독대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2.28
낙엽에게 낙엽에게 나무의 눈물이라고 너를 부른 적이 있다 햇빛과 맑은 공기를 버무리던 손 헤아릴 수 없이 벅찼던 들숨과 날숨의 부질없는 기억의 쭈글거리는 허파 창 닫히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 때 더 이상 슬픔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하였다 슬픔이 감추고 있는 바람, 상처, 꽃의 전생 그 무수한 흔들림..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2.28
길을 찾아서 길을 찾아서 옷고름 여미듯이 문을 하나씩 닫으며 내가 들어선 곳은 어디인가 은밀하게 노을이 내려앉던 들판 어디쯤인가 꿈 밖에 떨어져 있던 날개의 털 길 모퉁이를 돌아 더러운 벤치에 어제의 신문을 깔고 누운 사람이여 어두운 계단을 점자를 읽듯이 내려가며 세상 밖으로 쫓기듯 떠나가고 있는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6.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