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로부인에게 보내는 연가 수로부인에게 보내는 연가 오창제 거친 땅바닥을 순결의 지뢰밭으로 여기고 헛바퀴 도는 자건거 페달을 뒤뚱거리면서 밟는다 작은 글씨들이 밤비에 불어서 등을 억누르는 좁은 길 헉헉거리며 휘어진 언덕길을 오를 때 가로등 불빛에 숨어있던 여인의 얼굴이 내 얼굴 위로 스쳐 지나간다..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2013.03.31
시인이 되려면/천양희 시인이 되려면/천양희 시인이 되려면 새벽하늘의 견명성(見明星)같이 밤에도 자지 않는 새같이 잘 때에도 눈뜨고 자는 물고기같이 몸 안에 얼음세포를 가진 나무같이 첫꽃을 피우려고 25년 기다리는 사막만년청풀같이 1킬로그램의 꿀을 위해 560만 송이의 꽃을 찾아가는 벌같이 성충이 되..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2012.08.27
늦어도 백일이면 / 양희봉 늦어도 백일이면 양 희 봉 아이야 건너 마을 금당지에 배롱 꽃이 붉다. 늦어도 백일이면 쌀밥 먹겠다. 꿈이 없으면 삶의 목표를 세울 수 없고, 삶의 목표가 없으면 수많은 길을 헤매이게 된다. 물질적 풍요와 만족만을 추구하는 꿈은 차라리 꿈꾸지 않는 것이 낫다. 남보다 자신만이 잘 할 ..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2012.07.24
호랑가시나무 호랑가시나무 이영식 바위에 칼을 갈고 있었다 아니, 칼날 숫돌 삼아 바위를 갈고 있었다 갈면 갈수록 무뎌지는 칼날 갈면 갈수록 날을 세우는 바위 바윗돌 갈아 거울을 빚어내려는 바람이 있었다 수수만년의 고독 잎을 갈아 호랑이 발톱을 짓고 있는 가시나무 아래서였다 --『휴』( 시작..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2012.07.01
달빛 끌어안기 달빛 끌어안기 김점숙(1962 ― ) 물고기들의 대중목욕탕 저수지에서 비린내가 어둠을 타고 올라온다 단체로 물때를 미는 것일까 물위로 벗어낸 허물들 때깔이 곱기도 하다 촉촉하게 젖은 몸 말리느라 통통 튀어오르다 보름달처럼 둥근 집을 갖고 싶었을까 크고 작은 동그라미 그리며 밤새..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2012.06.30
어느 산골 마을 이야기 어느 산골 마을 이야기 송 낙 현 뒷산에 산새가 꾸룩 꾸룩 울면 뭐하나 마을에 애기울음 끊어진지 오래인데 봄바람 싱그럽게 불면 뭐하나 에헴 에헴 새벽 기침 사라지고 있는데 개구리 개골개골 합창하면 뭐하나 문 닫는 마지막 수업 울음소리 요란한데 신토불이 신토불이 외치면 뭐하나..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2012.03.26
짧은 시, 긴 여운 아버지의 방 이채민 함경북도 길주군 영기동의 푸른 하늘과 탱자나무 울타리 빠져나온 저녁 연기와 철책선 넘어 온 기러기 떼 발자국이 빼곡했다 - 계간 『시와 시학』 2012년 봄호 마음을 움직인 것들을 현미경으로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쓴 시는 강가에 와 닿는 잔물결 같은 감흥을 준다...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2012.03.08
알몸들과 행복한 알몸들과 행복한 박만진 ( 1947 ~ ) 온천에서 옷을 벗네 물끄러미 알몸을 알몸이 지켜보네 젊은 스님 한 분이 일회용 면도기로 콧수염이랑 턱수염이랑 짧게 자란 머리털을 때를 밀듯이 박박 밀고 있네 목욕비 삼천오백 원, 이발비 이백 원, 따지고 보면 삼천칠백 원으로 목욕에다가 ..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2012.01.21
첫눈 첫눈 -신현득 첫눈은 첫눈이라 연습삼아 쬐금 온다 낙엽도 다 지기 전 연습삼아 쬐금 온다 머잖아 함박눈이다 알리면서 쬐끔 온다. 벌레알 잠들어라 씨앗도 잠들어라 춥기 전 겨울옷도 김장도 준비해야지. 그 소식 미리 알리려 첫눈은 서너 송이. 첫눈의 개념은 사실 모호하다. 올 ..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2011.12.09
백석의 시/백화 백화(白樺) 백 석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甘露) 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백..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2011.11.20
264△ 264△ 박상훈 (1954 ~ ) 나무들 사이마다 실로폰이 있다 비무장의 새들이 콕콕 쪼으면 죄없는 들판은 갈기를 세운다 비명처럼 외마디 線은 안보일 때까지 내질러져 있다 익숙한 오발의 총소리 나비 4㎞를 나는 솔개가 줍는다 저 길은 피양가는 길 두런두런 흰 옷까지 나부낄 듯 하다 아직도 황톳길은 손금..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2011.07.18
이야기의 배제와 서경 敍景의 돋을새김 2월 ․ 동백 / 정은희 2월 하늘이 쏟아지면서 새 움 하나 가지 끝에 걸리고 엎질러진 눈밭에는 눈만 내리고 조금씩 빨리 눈만 내리고 세상 한 가운데는 어둠이 똘똘 뭉쳐 이른 꽃눈으로 일어서고 있다 뻘밭에 던져진 하나의 빛인듯 무너져 내리는 하늘 가운데 캄캄한 아픔이 선홍의 꽃눈으로 타고 있다 ..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2011.01.31
거미줄 / 진란 거미줄 / 진란 자주 다니는 푸나무에 집을 지었지 사람들의 발길에 채여 구겨지길래 다시 허공에 이쪽과 저쪽을 연결하여 촘촘하게 끈끈하게 얼기설기 엮었지 파닥거리는 것들, 파닥거릴수록 더욱 수렁에 빠진 함정처럼, 빠져나가려고 수단을 쓸수록 옭아지는 으뭉한 늪처럼, 몇 겹의, 몇 겁의 내 사랑..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2010.12.03
전갈/ 류인서 전갈/ 류인서 봉투를 열자 전갈이 기어 나왔다 나는 전갈에 물렸다 소식에 물렸다 전갈이라는 소식에 물렸다 그로부터 나는 아무도 모르게 혼자 빙그레 웃곤 하였다 축축한 그늘 속 아기버섯도 웃었다 곰팡이들도 따라 웃었다 근사하고 잘생긴 한 소식에 물려 내 몸이 붓고 열에 들떠 끙끙 앓고 있으..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2010.11.24
탑 지난 10월 26일 경북 의성 고운사에 갔다가 고운사 백일장 입상작들을 만났다. 위의 작품은 보다시피 고등학교 1학년생이 쓴 시이다. 첫 연의 리드미컬한 '도'의 반복이 탑돌이의 발걸음을 더욱 더 깊게 만들고 3 연의 망자에 대한 애련한 감정은 4연에 이르러서는 서정적 그리움으로 승화되고 있다. 그 ..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2010.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