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알몸들과 행복한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2. 1. 21. 00:12

 

알몸들과 행복한

 

박만진 ( 1947 ~ )

 

온천에서 옷을 벗네

물끄러미 알몸을 알몸이 지켜보네

젊은 스님 한 분이

일회용 면도기로

콧수염이랑 턱수염이랑

짧게 자란 머리털을

때를 밀듯이 박박 밀고 있네

목욕비 삼천오백 원,

이발비 이백 원,

따지고 보면 삼천칠백 원으로

목욕에다가 이발까지

살뜰히 셈을 마친 셈이네

친구여! 덕산에 오면

알몸이 알몸들과 행복한 온천을 하게나

몸으로 마음을 씻고

마음으로 몸을 씻는

수덕사 스님들의 알몸을,

그 수행과정을

한 번쯤은 우연찮게 지켜볼 수도 있으리니

누구이든 그 다음부터는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

라고 욕보이는 말을

다시금 입에 담지 못 하겠네

 

6,7년 전 쯤인가, 북녘 땅 금강산에 갔을 때, 그 유명하다는 금강산 온천에 간 적이 있다. 그 때 마침 금강산 신계사에 큰 불사가 있었던 터라 남녘의 많은 스님들도 온천을 찾았다. 신분을 벗어던지고 알몸과 알몸으로 만나는 적나라한 풍경 속에서 문득 법정 스님이 제자에게 일렀던 말씀이 생각났던 것은 왜일까?

 

“입산 수도자는 세간에 있을 때의 체중보다 더 나가서는 안 된다!”는 그 말씀.

 

알몸을 보면 나는 왠지 쓸쓸해지고 측은해진다. 벗으면 다 한 모양인데(가죽푸대일 뿐인데)왜 그 몸을 우리는 함부로 대하고 있는가? 그래서 알몸을 향해서 미안한 마음에 몇 편의 시를 쓰기도 했는데, 나보다 한 걸음 앞서간 시를 읽는다. 시 「알몸들과 행복한」은 승려들의 목욕 행위를 바라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몸으로 마음을 씻고/ 마음으로 몸을 씻는 행위......유교에서 왜 修心이 아니라 修身을 강조했는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저 몸짓.....

이 시는 박만진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접목을 생각하며』(2006. 10, 열린시학 기획시선 37)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집을 받고 6년 만에 2011년 12월 1일 덕산 세심천 호텔에서 열린 충남시인협회 정기총회 자리에서 박만진 시인을 만났다. 그리고 정중히 그동안의 결례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다.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산골 마을 이야기  (0) 2012.03.26
짧은 시, 긴 여운  (0) 2012.03.08
첫눈  (0) 2011.12.09
백석의 시/백화   (0) 2011.11.20
264△  (0) 2011.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