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거미줄 / 진란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0. 12. 3. 21:33

거미줄 / 진란

 

 

자주 다니는 푸나무에 집을 지었지

사람들의 발길에 채여 구겨지길래

다시 허공에 이쪽과 저쪽을 연결하여

촘촘하게 끈끈하게 얼기설기 엮었지

파닥거리는 것들, 파닥거릴수록 더욱 수렁에 빠진

함정처럼, 빠져나가려고 수단을 쓸수록 옭아지는

으뭉한 늪처럼, 몇 겹의, 몇 겁의 내 사랑

마침내, 당신과 나를 이 그물에서 걷어낸 손은

더 큰 하늘, 우리가 미처 볼 수 없었던 힘

오늘, 스산한 바람에 벌레 울음만 걸려드는,

온 힘을 다하여 촘촘하고 끈끈하게 짰던 그 그물

홀로 흩어지고 홀로 흩날리고 있네

                                                                       계간 『시와 산문』2010년 겨울호 게제

 

 

다시 사랑을 묻다

 

 

 '사랑'이란 말은 아무리 써도 모자라지 않고 부끄럽지도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손님에게도, 이웃에게도 아무렇지 않게 이 말을 사용한다. 정말 피 한방울 나누지 않은 이웃들이, 단지 손님일 뿐인 사람들이 서로서로 사랑한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그래서 묵자 墨子는 겸애설 兼愛說을 주장하여 세상의 다툼과 미움을 해소할 수 있기를 희망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런 묵자를 대놓고 반박한 사람이 맹자 孟子이다. 맹자는 타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사랑은 있을 수 없다고 하면서 추은 推恩을 내세웠다. 자기 부모를 헤아리지 못하면서, 다른 어르신을 모실 수는 없으며 자신의 형제를 아끼지 않으면서 다른 이들을 아낄 수 없다는 것이 그 요체이다. 한 마디로 사랑은 배우고, 실천하는 가운데서 우러나는 희생과 봉사의 정신이 바탕이 된다. 연애를 할 때 주어도 주어도 아깝지 않았던 기억 하나쯤은 누구나 가지고 있으리라. 그래서 사랑은 소유욕의 완성이 아니고 완성을 향해가는 헌신의 과정인 것이다.

 

 진란의 「거미줄」은 우리가 입버릇처럼 내뱉는 '사랑'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을 일으키게 한다. "왜 사랑 하느냐?" 고 묻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으뭉한 늪처럼 그냥 빠져드는 것이고 파닥거리면서 기꺼이 수렁에 몸을 던지며 겁 劫을 희구하는 말도 안되는 일이 '사랑'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자정리 會者定離 는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법. 우리는 단독자인 까닭에 고독하고 고독하기 때문에 사람이다. 시 「거미줄」은 쓸쓸하고 허무한 포즈를 취하고 있지만 쓸쓸하고 허무한 까닭에 우리는 더 뜨겁게, 절실하게 주어진 시간을, 사람을 껴안아야 한다는 잠언을 숨기고 있다. 보물찾기 하듯이 시인이 숨겨놓은 진실을 찾아갈 때 시읽기의 즐거움은 한 없이 넓고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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