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2025/04 23

[나무편지] 봄의 발걸음을 재우치며 피어난 할미꽃에서 얼레지까지

[나무편지] 봄의 발걸음을 재우치며 피어난 할미꽃에서 얼레지까지 ★ 1,283번째 《나무편지》 ★ 계절의 흐름이 빨라진 것과 정반대로 사람의 발걸음은 느려졌습니다. 다른 누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 이야기입니다. 잘 채비해두고도 떠나지 못하는 일이 생각보다 잦아져서 하는 말입니다. 지금 한창 마무리 중인 새 책과 관련한 일이 밀려 있다는 부담이 큰 것도 사실이고, 예상치 않았던 이런저런 사정이 자주 벌어지는 것도 사실이기는 하지만, 천생 게으름의 관성이 갈수록 점점 더 깊어지는 것도 분명해 보입니다. 그리 머뭇거리는 사이에 세찬 비바람 몰아치고, 강산을 화려하게 물들인 봄꽃들이 속절없이 떨어지는 듯합니다. 결국 목련 잔치가 한창인 천리포수목원에 가지 못했습니다. 봄볕 아쉬워 하릴없이 가까이 찾아..

[25] 시금치도 아는 부끄러움

[정수윤의 하이쿠로 읽는 일본] [25] 시금치도 아는 부끄러움정수윤 작가·번역가입력 2024.12.11. 23:50업데이트 2024.12.12. 02:45   뿌리가 빨개부끄러움이 많은시금치ね あか はず そう根が赤きこと恥かしきほうれん草 시금치도 부끄러움을 안다. 뿌리 쪽이 발갛게 물든 채소를 보고 하이쿠 시인 스즈키 다카오(鈴木鷹夫·1928~2013)는 노래했다. 특히 추운 겨울 눈보라에 맞서 한파를 이겨 내고 자라난 노지 시금치는 뿌리가 더욱 붉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 낸 시금치가 수오지심(羞惡之心)을 더 잘 아는지도 모른다.자기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악행을 미워하는 마음. 맹자는 이것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라고 했다. 시금치의 빨간 뿌리에는 피를 만드는 망간과 철분이 풍부하다. 부끄러움을 아는 일..

[65] 내 눈에 저울 있다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65] 내 눈에 저울 있다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입력 2023.07.21. 03:00  김우영, Hanok 7109, 2019누가 봐도 아름다운 게 있다. 생존에 유리한 조건으로 인간의 유전자에 각인되었거나, 문화적으로 안착되어 반복 학습된 것들이 대개 그렇다. 그해 비하면 짧은 시간 동안 유행처럼 번져서 추종자를 만드는 미적 표준은 한동안 선호도가 높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내가 왜 이걸 아름답다고 했는지도 기억하기 어려워진다.예술은 새로운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보자 마자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아름다움은 이미 누군가가 오래전에 만들어서 교과서에서 외워 버린 것들이니 작가는 어떻게든 다른 걸 만들어야 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신선한 충격을 주거나 낯설어..

'71년간 한국서 사목' 프랑스 출신 두봉 주교 선종

'71년간 한국서 사목' 프랑스 출신 두봉 주교 선종정아임 기자입력 2025.04.10. 22:44업데이트 2025.04.11. 10:50  13일 경북 의성 봉양면 문화마을에서 두봉 주교가 인터뷰 하고 있다. /신현종 기자 6·25 전쟁 직후 한국으로 파견 나와 70년 넘게 사목 활동을 한 프랑스 출신 두봉 레나도(프랑스명 르레 뒤퐁) 주교가 10일 96세의 나이로 선종했다.천주교 소식통에 따르면 두봉 주교는 이달 6일 뇌경색으로 안동병원에서 긴급 시술을 받은 후 병원에서 치료 중이었으나, 이날 생을 마감했다.두봉 주교는 1929년 프랑스 오를레앙의 가톨릭 신자 가정에서 3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21세에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했고, 이후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과 동대학원에서 수학하고 1953년 6..

다솔사 숲길

다솔사 숲길 늦은 겨울인가 이른 봄인가따뜻한 듯 싸늘하고 추운 듯 포근한데완강한 벽으로 밀려오는 바람 속에홑겹의 한 사내 휘청거린다오래 걸어 발걸음 무거워도 멈출 수 없다쓰러져 누우면 죽는다막차를 놓쳤으나 첫 차를 기다리는 오기로아침 해가 떠오를 때까지그렇게 나무는 세월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불교문예 2025 여름호

언어 깨뜨린 철학자의 시집… 출간한 지 2주 만에 증쇄

언어 깨뜨린 철학자의 시집… 출간한 지 2주 만에 증쇄獨철학교수 박술의 '오토파일럿'… 첫 시집 증쇄하는 건 드문 경우황지윤 기자입력 2025.04.11. 00:51   /아침달 “F(MBTI 감정형)가 넘쳐나는 한국 시단에 신선한 T(사고형)의 시집이 나타났다. 세속의 뜨거운 광풍이 남긴 것을 이성으로 줍는다.”(전승민 문학평론가)박술(39)의 첫 시집 ‘오토파일럿’(아침달)이 화제다. 지난달 말 서울 혜화동 시집 서점 ‘위트앤시니컬’에서 진행한 낭독회는 티켓 판매 하루 만에 매진됐고, 출간 2주 만에 증쇄를 찍었다. 시인 고선경·유선혜 등을 제외하고 첫 시집 증쇄는 요즘 드문 일이다.김혜순 시인이 이례적으로 발문을 써 주목받았다. “이 시집엔 히브리어·라틴어·영어·독일어·한국어·안달루시아어 등등 시공..

울릉도

평생에 딱 한번 갈까 말까 한 ‘열망의 섬’… 1박 200만원, 송곳산 아래 꿈같은 하룻밤[박경일기자의 여행]문화일보입력 2025-04-10 09:13업데이트 2025-04-10 09:16울릉도 북쪽 해안가에 뾰족하게 솟은 송곳산(錐山·추산). 송곳산 아래 보이는 흰색 건물이 리조트단지 코스모스 울릉도의 새로운 공간인 ‘빌라 쏘메’다. 오는 5월 문을 연다.■ 박경일기자의 여행 - 초현실적 경험… 울릉도 고급리조트 숙박19개 객실뿐인 ‘코스모스 울릉도’돈 있다고 못가… 수고 감수해야모든객실 오션뷰에 추산 한눈에명상 공간부터 파인다이닝까지코발트빛 바다·기이한 해안바위울릉읍 ‘도동 해안산책로’ 절경서면엔 韓 10대 비경인 ‘대풍감’북면 ‘삼선암’ 풍광 시각적 충격울릉도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

카테고리 없음 2025.04.10

우리에겐 거북이 필요하다… 속사포 래퍼의 '저속 예찬'

우리에겐 거북이 필요하다… 속사포 래퍼의 '저속 예찬'[아무튼, 주말][정상혁 기자의 행각]파충류 전도사 아웃사이더힙합 20년, 사육 인생 30년정상혁 기자입력 2025.04.05. 00:31업데이트 2025.04.08. 10:30   미국 래퍼 리키 브라운이 역대 가장 빠른 랩으로 세계 기록을 세운 게 2005년이었다. 51.27초 동안 723음절을 쏘아댔다. 2016년 한국 래퍼 아웃사이더(42)는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보란 듯 이를 깨버렸다. 자신의 히트곡 ‘외톨이’ 가사 723음절을 시청자의 귓구멍에 때려 박는 데 걸린 시간은 50.26초. 드르륵, 거의 재봉틀 수준. 왜 한국인이 세계에서 가장 성질 급한 민족인지 증명해 내는 순간이었다.–기네스북에 등재됐나요?“가사가 영어가 아니라 안..

[223] 간간한한(間間閑閑)

[정민의 세설신어] [223] 간간한한(間間閑閑)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8.14. 03:28   매일 말의 성찬(盛饌) 속에 살아간다.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언어에는 실속이 없다. 사람들은 그저 있기 불안해 자꾸 떠든다. 약속하고 장담하며 허세를 부린다. 아무 문제 없다고, 끄떡없으니 나만 믿으라고 큰소리 친다. 정작 문제가 생겼을 때 그는 어느 틈에 숨고 없다. 아니면 그럴 줄 몰랐다고 남 탓만 하고 운수에 허물을 돌린다. 끝내 반성하지 않는다.허목(許穆·1595~1682)은 '기언서(記言序)'에서 이렇게 말했다. "경계할진저. 말을 많이 하지 말고, 일을 많이 벌이지 말라. 말이 많으면 실패가 많고, 일이 많으면 손해가 많다. 안락을 경계하고 후회할 일은 행하지 말라. 문제없다고 ..

[우리 동네 이런 서점] [3] 한남동 블루도어북스

예약하셨나요? 여기는 책 한 권과 쉬어가는 '호텔'[우리 동네 이런 서점] [3] 한남동 블루도어북스곽아람 기자입력 2025.02.04. 00:33업데이트 2025.02.04. 07:24  김진우 블루도어북스 대표는 “고객들이 우리 서점을 ‘2시간 이용 가능한 호텔’이라 여겼으면 좋겠다”면서 “책은 판매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사람들이 부담 없이 이곳을 찾도록 하는 수단”이라고 했다. /김지호 기자서울 한남동의 은행 건물 주차장, 건물 뒷문을 통해 지하로 내려가니 미로 같은 복도가 펼쳐졌다. 복도를 반쯤 지나자 ‘조금만 더 오시면 곧 블루도어북스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라고 적힌 팻말이 벽에 붙어 있었다. 파란색 크레용으로 ‘Exit to Bluedoorbooks(블루도어북스로의 비상구)’라 휘갈겨 쓴 액자가..

[나무편지] 빨라진 봄의 걸음에 따라 더 빨리 피어난 자목련 꽃

[나무편지] 빨라진 봄의 걸음에 따라 더 빨리 피어난 자목련 꽃   ★ 1,282번째 《나무편지》 ★   봄의 걸음걸이가 빨라졌습니다. 분명 활짝 피어난 자목련을 보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그런데 더 없이 아름다운 모양으로 활짝 피었습니다. 지난 23년 동안의 어느 봄이라도 거르지 않고 편안하게 만나서 인사 나누는 한 그루의 자목련입니다. 강원도 춘천 한림대학교 교정의 자목련입니다. 23년이라고 했지만, 해마다의 사진을 모두 기록으로 남겨둔 건 아니고, 또 제 강의실이 이 자리의 정 반대쪽에 배당되었던 적도 있어서, 어쩌면 한두 해는 빠뜨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목련 꽃 피어나는 봄이면 강의 시간이 비어있는 한낮에는 어김없이 캠퍼스를 거닐며 여러 아름다운 꽃들을 찾아보았기에 이 자목련을 놓친 적은 없..

예산 대흥슬로시티 여행

'의좋은 형제' '상생의 나무'가 있는 마을에서 천천히 너그럽게[아무튼, 주말]미담과 미풍을 간직한예산 대흥슬로시티 여행예산=박근희 여행기자입력 2025.04.05. 00:36업데이트 2025.04.08. 10:36   충남 예산 봉수산 임존성 동벽 건물지 부근에 오르면 전래 동화 '의좋은 형제'에서 '어느 마을'로 등장하는 충남 예산군 대흥면 일대가 내려다보인다. 예당호를 곁에 둔 '대흥슬로시티'엔 무해한 풍경이 가득하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광속에 지쳐 피로해지는 요즘, 자극 없는 순한 이야기를 나누고, 무해한 풍경을 보고 싶은 날, 슬로시티로 향한다. 우리나라 15개 슬로시티 가운데 충남 예산·대흥 슬로시티(이하 대흥슬로시티)는 수도권과 가까워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한 곳. 따스한 옛이야기가 ..

봄날

봄날 여보세요생명의 전화입니다죽고 싶어서 전화했어요봄이 왔는데 왜 꽃이 피지 않을까요그건 죽을 이유가 안되죠요금체납으로 아무데도 걸수가 없어요죽고 싶다면서 어떻게 전화하셨어요아무리 걸어도 집에 갈 수가 없어요오늘 30킬로를 걸었는데 생전에 집에 닿을수 없다는 생각에 너무 힘들어요집이 어디신데요제 집이요? 달이요 아직도 오십만 킬로가 남았잖아요 지구 밖으로 나갈 수도 없구요아 잠깐만요 전화 끊지 마시고요 농담하시는거죠? 수화기 너머로 벚꽃이 진다  계간 불교문예 2025 여름호

신기루를 향하여

신기루를 향하여눈을 감아도 보이는 얼굴이 있어귀를 막아도 들리는 목소리가 있어터벅터벅 걷는다아무리 걸어도 제자리 걸음인 줄알면서도즐거운 목마름으로신기루를 향해 간다내일이라는 신기루를 향해오늘이라는 사막을 건너간다길 없는 길이기에눈을 감아도 보이고귀를 닫아도 들리는바람의 고향그곳에내 마음의 그림자를솟대로 높이 세우기 위해터벅터벅 걷는다웃으며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