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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호랑가시나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2. 7. 1. 19:15

 

호랑가시나무

                            이영식

 

바위에 칼을 갈고 있었다

아니, 칼날 숫돌 삼아 바위를 갈고 있었다

 

갈면 갈수록 무뎌지는 칼날

갈면 갈수록 날을 세우는 바위

 

바윗돌 갈아 거울을 빚어내려는

바람이 있었다

 

수수만년의 고독

 

잎을 갈아 호랑이 발톱을 짓고 있는

가시나무 아래서였다

 

                                    --『휴』( 시작시인선 0139, 『천년의 시작』 2012)

 

호랑가시나무는 서해안을 따라 부안이 북방한계선인 나무이다. 부안 도청리 호랑가시나무군락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잎이 둥글지 않고 톱니처럼, 호랑이발톱처럼 날카로운 형상을 보인다.

시인은 호랑가시나무의 잎에서 ‘날카로움’이라는 열쇠말을 얻는다. 숨어 있는 만물의 고독을 노래한다. 칼날을 갈수록 칼날을 무뎌지고, 그 대신에 바위는 날카로워진다는 역설적 통찰, 날카로워진 바위를 다시 갈아 거울을 빚으려는 바람, 이 모든 일들은 연쇄적으로 무심히 수수만년 이어지는 무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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