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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이야기의 배제와 서경 敍景의 돋을새김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1. 1. 31. 00:25

 

2월 ․ 동백 / 정은희

 

2월 하늘이 쏟아지면서

새 움 하나 가지 끝에 걸리고

 

엎질러진 눈밭에는

눈만 내리고

 

조금씩 빨리

눈만 내리고

 

세상 한 가운데는 어둠이

똘똘 뭉쳐

이른 꽃눈으로 일어서고 있다

 

뻘밭에 던져진

하나의 빛인듯

 

무너져 내리는 하늘

가운데

 

캄캄한 아픔이

선홍의 꽃눈으로 타고 있다

 

- 시집 『쓸쓸한 곰팡이를 아십니까』 (1989년, 모모)에 수록

 

이야기의 배제와 서경 敍景의 돋을새김

 

동백은 이 땅의 시인들에게 가장 많이 노래되는 꽃일 것이다. 겨울, 붉음, 낙화의 처연함은 시인의 개별적 서사 敍事와 어우러지며 수많은 명편으로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자연과학의 눈으로 볼 때 동백은 혹한 속에 피어나는 꽃이 아니라 봄꽃이다. 주로 기후가 온화한 남쪽 해안지방에서 11월부터 개화하기 시작하여 3,4월에 절정을 맞이하는 상록수인 것이다. 그런데도 동백은 낙화의 처연한 행태로 말미암아 절대절명의 경지로 시인을 이끌고 간다.

 

「2월 ․ 동백」은 하늘과 땅, 눈밭과 뻘밭, 어둠과 빛과 같은 대립적 이미지가 "쏟아지고, 걸리고, 내리고, 일어서고, 타는" 동사와 결합되면서 결구에서 아픔 = 선홍 =꽃눈 이라는 동백의 이미지로 마무리되는 이미저리 imagery를 탄생시킨다.

2월은 봄에 한 걸음 다가서는 절기이지만 봄에 대한 간절한 기다림 때문에 더 스산해지는 때이기도 하다. 시인은 감정의 과잉을 풍경의 묘사로 제어하면서 자신의 절망을 꽃으로 승화시키면서 개화가 곧 소멸인 삶의 진의를 묘파해낸다.

 

아마도 시인은 남도 하동 어디쯤에서 겨울을 만나고 길을 잃었을 것이다. 꽃다운20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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