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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달빛 끌어안기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2. 6. 30. 14:53

 

달빛 끌어안기

 

김점숙(1962 ― )

 

 

물고기들의 대중목욕탕

저수지에서

비린내가 어둠을 타고 올라온다

단체로 물때를 미는 것일까

물위로 벗어낸 허물들 때깔이 곱기도 하다

촉촉하게 젖은 몸 말리느라

통통 튀어오르다

보름달처럼

둥근 집을 갖고 싶었을까

크고 작은 동그라미 그리며

밤새 뛰노는데

유혹당한 달빛 탕 속으로

미끄러지듯 몸을 담근다

 

시집 『꽃몸살』, (『문학의 전당』 시인선 131, 2012)

 

 

물고기의 집은 물이다. 작은 웅덩이, 냇물, 큰 강, 저수지, 바다....몇 달 비가 내리지 않으니 땅이 쩍쩍 갈라졌다. 드디어 어제 밤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밤새 그치지 않고 들리는 빗소리가 성가시지 않았다. 「달빛 끌어안기」는 무심한 듯, 당연한 듯 마주쳐왔던 평화로운 풍경의 한 단면이다. 저수지에 만월이 가득하다. 물이 저수지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보름달빛이 저수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아, ‘물고기의 집은 물이다’라는 문장을 바꾸어야겠다. ‘물고기들의 대중목욕탕’, 목욕탕은 집보다 문화적이다. ‘때’라는 열쇠 말이 한껏 천박해진 집의 교환가치를 순화시킨다. 집은 그저 달빛이 가득하고 그 가득한 달빛에 가리고 싶은, 더러운 육신의 때를 벗겨내는 은밀한 곳이면 그만이다. 갑자기 산정호수로 달려가고 싶다. 예당저수지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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