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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늦어도 백일이면 / 양희봉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2. 7. 24. 22:46

늦어도 백일이면

양 희 봉

 

아이야

건너 마을 금당지에

배롱 꽃이 붉다.

 

늦어도

백일이면 쌀밥 먹겠다.

 

꿈이 없으면 삶의 목표를 세울 수 없고, 삶의 목표가 없으면 수많은 길을 헤매이게 된다.

물질적 풍요와 만족만을 추구하는 꿈은 차라리 꿈꾸지 않는 것이 낫다. 남보다 자신만이 잘 할 수 있는 일, 그 일을 할 때 성취감과 만족감을 가질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그 일의 성과가 나와 이웃을 즐겁고 따듯하게 하는 일을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오늘의 사정은 남보다 더 많이 갖고 그래서 더 많이 으스대고 싶은 가짜 꿈으로 얼룩져 있다. 배고프지는 않으나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먹지 못하여 괴로운 안타까운 현실과 대비하여 이 시는 배고픔을 겪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전혀 현실감이 없으며, 그래서 감동도 없을 것이다.

양희봉 시인의 시 「늦어도 백일이면」 은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맛볼 수 있으며 시간의 뒤안길에 자리잡은 우리 삶의 슬픔을 여백으로 깔아놓았다. 한 여름 베롱꽃이 흐드러진 모습은 어느 선경과 견주어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 시의 화자는 아이에게 말한다. “배롱꽃이 붉다고.....”. 아이는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어 힘겹게 여름날을 지나고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이 아이에게 배롱꽃이 피는 것이 무슨 기쁨이고 무슨 감동을 주겠는가? 그러나 이 절망감은 “늦어도 / 백일이면 쌀밥 먹겠다.”는 희망의 메시지로 바뀐다. 백일은 석달하고도 10일이 지나야 한다. 추수가 끝나고 10월이 되어야 하는 백 일간의 기다림은 ‘늦어도’라는 언명으로 보다 낙관적인 기대로 기울게 한다.

젊은 세대의 대부분은 과거의 배고픔을 모른다. 보릿고개의 암담함을 모른다. 미국의 원조를 받아 살던 부끄러움을 벗어던진 것이 불과 40년 전 일이다. 이 시는 그런 시대의 아픔을 짧은 서술과 그 서술의 행간 사이, 그리고 시가 끝난 그 여백에 질펀하게 깔아놓았다.

 

말이 많으면 진실과 거리가 멀고 수식이 많으면 번다함이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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