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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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174

천천히…… 쉬엄쉬엄…… 더 좋은 나무 이야기를 찾아갑니다.

[나무 생각] 천천히…… 쉬엄쉬엄…… 더 좋은 나무 이야기를 찾아갑니다. 설 잘 쇠셨나요? 이번 설날은 여느 때보다 조용히 지났습니다. 아쉬움 없지는 않았지만, 연휴만큼은 무척 달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흘 동안, 오랜만에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푹 쉴 수 있었습니다. 하루도 쉬지 못했던 지난 가을 추석 명절 치 휴식까지 한꺼번에 몰아서 쉬었습니다. 쉬면서 올에는 무엇보다 정말 화급하게 재우치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했습니다. 누구나 다 하는 새해 계획 중에 제가 가장 먼저 집어든 화두는 ‘천천히’ 무슨 일을 하든 ‘쉬엄쉬엄’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돌아보면 스물 두 해 동안의 프리랜서 생활은 늘 분주했습니다. 어쩌면 해마다 ‘천천히 하자’는 식의 다짐은 했..

‘직지문인송’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영험한 소나무 한 그루

[나무를 찾아서] ‘직지문인송’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영험한 소나무 한 그루 김천 직지사 앞 ‘사하촌’이라 할 만한 마을에는 ‘문인송(文人松)’이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불리는 소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오래 된 소나무 가운데에는 ‘의암송’ ‘귀학송’ ‘수성송’처럼 고유명사로 불리는 나무가 적지 않습니다. 김천 향천리 문인송도 그런 식입니다. 삼백 년쯤 이 자리에서 살아온 문인송을 더러는 직지사에 가까운 마을에 있는 소나무임을 가리키기 위해서 ‘직지문인송’이라고 긴 이름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오늘의 《나무편지》에서도 지난 《나무편지》에 이어서 지난 해에 답사하고, 미처 전해드리지 못한 나무 가운데 한 그루 전해드리겠습니다. ○ 일제 순사들의 감시를 피해서 소원을 빌었던 나무 ○ 직지문인송이 서 ..

삼십 년만에 이뤄낸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심의 솔숲

[나무를 찾아서] 삼십 년만에 이뤄낸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심의 솔숲 나이 들어서 그런가요! 잘 모르던 내 곁에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또렷이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점점 더 좋아집니다. 오래 전 《나무편지》에서 “사람들은 내 집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는 이승우의 소설 제목을 인용하면서, 대개 우리는 가까이 있는 것들을 잘 살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나무도 그렇습니다. 우리 곁에 어떤 나무가 있는지 잘 모른다는 거죠. 안다 하더라도 일부러 멀리 찾아가서 만나 본 나무만큼 곁에 있는 나무를 바라보지 않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제 이야기입니다만, 다른 분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는 생각입니다. ○ 고작 30년쯤 만에 이뤄진 참 아름다운 도심의 솔숲 ○ 그런데 살다보니, ..

한많은 세월을 살다 간 숱하게 많은 여인의 원이 담긴 나무

[나무를 찾아서] 한많은 세월을 살다 간 숱하게 많은 여인의 원이 담긴 나무 사람의 마을에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던 큰 나무는 사람들의 소원을 한데 모아 하늘에 전했고, 하늘은 어진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었어요. 세월 흐르면서 사람들은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는 영험한 나무를 향해 홀로 가슴 깊이 묻어둔 소원까지 빌게 되었습니다. 소원은 제가끔 달랐습니다. 하지만 세상살이의 흐름 속에서 일정하게 사람들이 가지는 소원이 비슷할 때가 있을 수밖에 없지요. 그런 특별한 유형의 소원을 잘 들어주는 나무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아들을 낳게 해 달라는 소원’이었고, 나무 가운데에는 특별히 그 소원을 잘 들어주는 나무가 있습니다. ○ 여인의 소원을 들어주는 영험함을 가진 느티나무 ○ 경상북도 의성 지..

계절이 거푸 지나도 잊히지 않는 나무와 그 곁의 사람들

[나무를 찾아서] 계절이 거푸 지나도 잊히지 않는 나무와 그 곁의 사람들 나무를 찾아다니면서 때로는 마을에 있는 오래 된 큰 나무를 마을 사람들이 채 알지 못하는 경우를 만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무는 물론이고, 나무 주변의 사람살이 이야기가 매우 인상적인 경우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영남의 북부 지역을 집중적으로 답사한 지난 해 가을에 의성 용연리가 그 마을이고, 마을 뒷동산 재실 앞에 서 있는 느릅나무와 향나무가 그 나무입니다. 오늘 《나무편지》의 위에 보여드리는 넉 장의 사진이 〈의성 용연리 느릅나무〉이고, 그 아래로 이어지는 사진 넉 장은 느릅나무 맞은편에 서있는 향나무입니다. 두 그루 가운데에 산림청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는 향나무입니다. 보호수는 아니지만, 느릅나무 역시 오래되고 큰 나무입..

아직 젊지만 여느 노거수 못지 않게 크고 아름다운 반송

[나무를 찾아서] 아직 젊지만 여느 노거수 못지 않게 크고 아름다운 반송 새해 들어 처음 띄우는 첫 《나무편지》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나무편지》에서 오늘 보여드리는 나무는 〈봉화 서벽리 반송〉입니다. 반송(盤松)은 소나무의 한 종류로, 삿갓솔, 다복솔이라고도 불리는 소나무입니다. 밑둥치에서부터 가지가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면서 원 줄기와 가지의 구별이 없는 소나무를 우리가 흔히 보는 소나무와 나누어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가지가 여럿으로 갈라져 크게 자란다는 특징 외에는 소나무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반송도 곧 소나무라는 이야기입니다. 전체적으로 우산이나 부챗살 펼치듯 넓게 펼치는 품이 아름다워 조경이나 원예에서 귀중하게 여기는 소나무입니다. ○ 다음 주에 시작할 부천 상동도서관 《나무강좌》에..

한해 잘 마무리하시고 큰 나무처럼 건강한 새해 맞이하세요

[나무 생각] 한해 잘 마무리하시고 큰 나무처럼 건강한 새해 맞이하세요 고단했던 한해가 여전히 고단한 채로 저물어갑니다. 2020년의 끄트머리에서 띄우는 오늘의 《나무편지》가 올해 쉰두번 째로 띄우는 편지입니다. 고단하고 분주하게 보낸 한해였지만 《나무편지》는 시월 중에 한 차례 거른 걸 빼면 적어도 한 주일에 한 통씩은 띄운 셈입니다. 그런데 《나무편지》를 띄우는 메일링 서버가 고단했던 모양입니다. 허술하기는 했어도 빠짐없이 띄웠건만, 《나무편지》를 받지 못했다고 제게 연락해 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두세 주 정도를 걸렀다며, “무슨 일 있는 거 아니냐?”고 안부를 물어주신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고맙고 감사드릴 일입니다. 정말로 《나무편지》를 아껴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 올립니다. 고..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난 나무가 오래 기억되는 나무로……

[나무를 찾아서]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난 나무가 오래 기억되는 나무로…… 정처없는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나는 나무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사는 곳, 어디라도…… 지나는 길 어디라도 나무 없는 곳은 없으니까요. 가던 길을 멈추기 쉽지 않은 자동차 전용 도로에서 겁 없이 재우치기만 하는 속도는 그래서 사람 사는 마을을 지나는 길 위에 오를라치면 하냥 느려집니다. 그냥 지나치고는 자동차 백미러로 멀어져가는 큰 나무를 돌아보며 아쉬운 마음 달래기보다는 천천히 돌아보며 나무를 찾는 게 훨씬 마음 편한 일인 건 당연한 이치겠지요. 속도는 풍경을 잃고, 풍경은 속도를 잃을 수밖에요. ○ 새해 2021년에 이어갈 부천 상동도서관 《나무강좌》에 모십니다. ○ 한해를 마무리하는 이 즈음, 새해 채비 하나 일러드립니다. 줄..

사람의 마을 빠르게 바뀌어도 언제나 한결같은 큰 나무

[나무를 찾아서] 사람의 마을 빠르게 바뀌어도 언제나 한결같은 큰 나무 세월 지나며 참 많은 것들이 바뀝니다. 빠르게 바뀌는 것도 있고, 천천히 바뀌는 것도 있습니다. 바뀐다는 것, 그것은 살아있음의 뚜렷한 자취입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바뀝니다. 풍경도 사람도 세월 따라 바람 따라 바뀝니다. 살아있는 생명인 나무도 바뀝니다. 매우 천천히 사람의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울 만큼 천천히 바뀝니다. 바뀐 것을 알아채지 못할 때에 우리는 이상한 안도감을 얻습니다. 반대로 빠르게 많이 바뀐 것들을 보면 불안해집니다. 친근하게 여겼던 것들의 변화를 함께 하지 못한 데 대한 불안함이 그 까닭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을의 한가운데에서 육백 년 동안 마을을 지켜온 나무도 사람과 풍경이 빠르게 바뀌는 동안 바뀐 것을 ..

[나무를 찾아서] 은행나무 가지에 스치는 그 겨울 매운 바람과 그때 그 사람들

[나무를 찾아서] 은행나무 가지에 스치는 그 겨울 매운 바람과 그때 그 사람들 찬 바람 맞으며 큰 나무 앞에 섰습니다. 오랜만에 수인사를 나누게 된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입니다. 딱히 용계리 은행나무를 만나기 위한 길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안동 길안면을 지날 생각에, 이 은행나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지요. 하지만 서둘러 찾아봐야 할 나무들이 적지 않아 지도 위의 행선지에 표시하지 않고 지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익숙한 길, 익숙한 안내판이 눈에 띄는 바람에 어쩌는 수 없이 ‘눈인사’만이라도 하고 지나가는 게 도리이지 싶어 잠깐, 아주 잠깐 들렀습니다. 도저히 그냥 스쳐 지날 수 없는 나무가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입니다. 그러고보니, 용계리 은행나무를 찾아온 게 꽤 지난 일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

잎 떨군 나무는 겨울 채비를 마쳤건만 사람의 마을에는

잎 떨군 나무는 겨울 채비를 마쳤건만 사람의 마을에는 [나무 생각] 잎 떨군 나무는 겨울 채비를 마쳤건만 사람의 마을에는…… 마을 어귀에 우뚝 선 나무들이 겨울 채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초록의 나뭇잎 떨군 틈을 파고 든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세가 걷잡을 수 없이 거세지는 날이 이어집니다. 한해 내내 사람의 마을에 이어진 잠시멈춤과 거리두기는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을에는 아직 채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고단함은 하릴없이 이어질 수밖에요. 소슬 바람 매서워진 겨울 들판의 나무들을 찾아 나서야 하는 걸음이 무겁기만 합니다. 그래도 길 위에 올라야 합니다. 눈 내리기 전까지, 그리고 해 넘기기 전까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기만 합니다. 힘겹게 지난 계절을 지나온 나무들을 바라보는..

오랜 세월 동안 마을의 수호목으로 살아온 졸참나무의 위엄

[나무를 찾아서] 오랜 세월 동안 마을의 수호목으로 살아온 졸참나무의 위엄 지난 주 《나무편지》에 이어 졸참나무 이야기 하나 더 보탭니다. 어쩌면 보탠다기보다 지난 주에 전해드린 〈영덕 신기리 졸참나무〉 이야기가 오늘의 졸참나무 이야기를 위한 〈들어가기〉쯤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나무편지》에서 말씀드렸듯이, 졸참나무에 ‘졸병’이라는 이름이 붙기는 했지만, 잎과 열매가 ‘참나무과 육형제’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이지, 수형이나 나무 전체의 규모가 ‘졸병’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오래도록 크게 잘 자라는 나무라는 이야기이지요. 지난 번에 보여드린 〈영덕 신기리 졸참나무〉처럼 크게 잘 자란 졸참나무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 높이 20미터, 줄기둘레 3.5미터의 거목으로 자란 졸참나무 ○ 오늘 《나무편지》..

경북 의성 지역을 대표하는 선비 가문을 지켜온 나무

[나무를 찾아서] 경북 의성 지역을 대표하는 선비 가문을 지켜온 나무 산 아래 계곡에 구름이 감도는 것처럼 보여 산운(山雲)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이 있습니다. 경상북도 의성의 대표적인 양반 가문의 집성촌, 의성군 금성면 산운리가 그곳입니다. 산운마을은 조선 중기에 학동(鶴洞) 이광준(李光俊, 1531~1609)이 처음 자리를 잡은 뒤로 지금까지 영천 이씨 후손들이 살림살이를 이어가는 아늑한 마을입니다. 이 마을에는 영천이씨의 종택인 경정(敬亭)종택과 작은 종택이랄 수 있는 자암종택(紫巖宗宅)을 비롯해 학록정사(鶴麓精舍), 점우당(漸于堂), 운곡당(雲谷堂), 소우당(素宇堂) 등 40동이 넘는 고택이 여전히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 조선 선조 이후의 혼란기를 살았던 시인 이민성 ○ 마을의 중심이라..

[나무를 찾아서] 당신은 없는데…… 홀로 단풍만 보다가 돌아왔습니다

[나무를 찾아서] 당신은 없는데…… 홀로 단풍만 보다가 돌아왔습니다 단풍만 보다 왔습니다 당신은 없고요, 나는 석남사 뒤뜰 바람에 쓸리는 단풍잎만 바라보다 하아, 저것들이 꼭 내 마음만 같아야 어찌할 줄 모르는 내 마음만 같아야 저물 무렵까지 나는 석남사 뒤뜰에 고인 늦가을처럼 아무 말도 못 한 채 얼굴만 붉히다 단풍만 사랑하다 돌아왔을 따름입니다 당신은 없고요 - 최갑수, 《석남사 단풍》 전문 단풍만 보다가, 당신은 없는데, 홀로 단풍만 보다가 돌아왔습니다. 《나무편지》도 제때 드리지 못했습니다. 오랜만에 작업실 자리에 앉았습니다. 단풍 빛깔 짙은 들녘, 큰 나무 곁에 서면 언제나 나무보다 사람이 더 먼저 떠오릅니다. 시인 최갑수의 노래가 생각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땅의 모든 생명을 먹여 살릴 지상의..

곡식과 새떼와 사람, 그리고 나무가 지어내는 아름다운 풍경

[나무를 찾아서] 곡식과 새떼와 사람, 그리고 나무가 지어내는 아름다운 풍경 파란 가을 하늘 드높고, 들녘의 곡식은 누렇게 익어갑니다. 갈무리까지는 아직 약간의 시간이 남았습니다. 이 즈음 가장 바빠진 건 참새들입니다. 바람 더 차가워지기 전에 어서 배를 불리고, 다가오는 겨울을 채비해야 합니다. 바람이 거셌던지, 알곡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었던지, 들녘엔 벌써 비스듬히 누워버린 벼가 적지 않네요. 그 자리에 참새들이 떼를 지어 모여 들었습니다. 잘 익은 곡식을 챙기느라 짹짹이던 참세 떼가 누군가의 신호에 따라 일제히 날아오릅니다. 그러나 멀리 떠나지 않습니다. 바로 곁에 한 그루의 아름다운 나무 위로 오릅니다. 재우쳐 곡식을 쪼아먹던 참새들에게는 아주 근사한 쉼터입니다. 엊그제 만난 의성 서부리 향나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