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고규홍의 나무편지 149

나무와 더불어 살던 자리에 길을 내고 사람은 떠나고

[나무를 찾아서] 나무와 더불어 살던 자리에 길을 내고 사람은 떠나고 이른 아침, 작업실까지 천천히 걸을 때면 어김없이 알싸한 향기에 취합니다. KF94 마스크로 꼭꼭 막은 콧속으로 스미는 향기는 쥐똥나무 꽃에서 흘러나온 겁니다. 배경으로 피어있는 장미 꽃의 향기를 훨씬 뛰어넘는 향기입니다. 누가 뭐래도 이 즈음, 우리 마을의 주인공은 쥐똥나무입니다. 사실 이 마을의 원래 주인공은 복사나무였습니다. 여기는 오래 전부터 복숭아의 산지로 유명한 부천입니다. 지금 제가 걷는 이 길은 제가 대학생 즈음이던 젊은 시절에는 복숭아 과수원이었습니다. 그 자리를 갈아엎고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신도시를 세운 거죠. 이제는 복숭아도 복사나무도 보기 어려워졌습니다. 마을마다 그런 대표 나무가 있습니다. ○ 감나무 … 명품 ..

한 쌍의 느티나무와 한 마을의 사람들이 아름답게 사는 법

[나무를 찾아서] 한 쌍의 느티나무와 한 마을의 사람들이 아름답게 사는 법 돈이 많다고 해서, 부자라고 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들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건 아닙니다. 어떤 이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재산을 가진 덕에 개인적으로는 온갖 영화를 누리는 풍요가 짐작되지만, 많은 사람들의 끊임없는 비난에 눈감고 살아야 하는 사회적 빈곤을 면하지 못합니다. 또 어떤 이는 재산이 그만큼 많은 게 아니어서, 개인적 풍요와 영화에서야 그에 조금 못미치지만,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기도 합니다. 굳이 예를 들지 않아도 그런 두 종류의 인종은 충분히 볼 수 있습니다. 같은 ‘기원’을 가진 DNA의 아주 미묘한 차이만으로 같은 생물 종 사이에서 이처럼 큰 차이가 나타나는 건 이상한 ..

‘이별의 정’을 오동나무에 빗댄 옛 시인의 절창 한 수

[나무생각] ‘이별의 정’을 오동나무에 빗댄 옛 시인의 절창 한 수 지난 주 《나무편지》에서 말씀드렸던 대로 오늘 《나무편지》에서는 우리의 옛 사람 가운데 최고의 시인으로 손꼽히는 황진이의 시 한 수 보여드립니다. 제목 《奉別蘇判書世讓》만으로 일러드렸던 시입니다. 우선 전문을 보겠습니다. 아, 참! html 로 옮겨지는 중에 한자가 깨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제 홈페이지 솔숲닷컴 http://solsup.com 에 와서 보시면 제대로 보실 수 있습니다. 奉別蘇判書世讓 - 黃眞伊 月下梧桐盡 霜中野菊黃 樓高天一尺 人醉酒千觴 流水和琴冷 梅花入笛香 明朝相別後 情與碧波長 ○ 이 땅 최고의 시인 ‘황진이’의 절창 한 수 ○ 대개의 경우, 한시漢詩의 멋과 맛을 한글로 온전히 옮기에는 쉽지 않습니다만, 황..

버빗원숭이와 이팝나무가 언어로 사람에게 전하는 메시지

[나무생각] 버빗원숭이와 이팝나무가 언어로 사람에게 전하는 메시지 버빗원숭이의 언어에 대한 글을 읽는 중이었습니다.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여기는 원숭이들 사이에 분명한 소통의 수단이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언어’의 정의에 얼마나 가까운지는 뒤로 미룬다 해도, 분명한 건 버빗원숭이들 사이에 단순한 ‘소리’를 뛰어넘는 ‘언어’가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를테면 포식자가 공중에서 날아올 때와 땅 아래에서 나타났을 때에 그들이 동료들에게 전하는 말은 달랐습니다. 동료 버빗원숭이들은 그 말에 따라 행동 방식이 달랐습니다. 분명히 내용을 가진 언어에 근접한 신호를 발화한 것이고, 다른 버빗원숭이들은 명백히 알아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포식자에게 쫓기는 버빗원숭이는 거의 한 시간 동안 한 마디도 말..

세상 모든 생명의 순서에 따라 조금 늦게 피어난 노란 꽃

[나무를 찾아서] 세상 모든 생명의 순서에 따라 조금 늦게 피어난 노란 꽃 지금 그 곳의 하얀 목련은 어떤가요? 그 아름답던 꽃 이미 다 시들어 떨었겠지요. 하얀 화려함으로 이 땅의 침잠한 봄을 노래하던 백목련 종류의 꽃이었건만……. 그러나 곳곳을 잘 살펴보면 조금 늦게 피어난 목련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백목련 종류가 피고난 뒤에 피어나는 자목련 종류의 꽃이 아직 남아있을 수도 있겠지요. 세상의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 모두 저마다의 ‘순서’가 있습니다. 목련 종류에도 꽃 피는 순서가 있지요. 세계적으로 1천 종류에 가까운 목련이 한 순간에 모두 화들짝 피어나지는 않습니다. 생명체에 내재하는 생리적 순서가 있을 뿐 아니라, 지역과 기후에 따른 순서도 있으니까요. ○ 흔한 종류는 아니지만 차츰 곳곳에서 많이..

우리 곁에 있는 나무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기를……

[나무를 찾아서] 우리 곁에 있는 나무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기를…… 집 앞의 나무에 봄이 환히 내려앉았습니다. 쥐똥나무의 앙증맞은 초록 이파리가 올망졸망 피어나는 걸 시작으로, 아파트 울타리 곁에서 노랗게 피어난 개나리 꽃으로 이어진 새 봄이 우리 곁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반갑고 여느 때보다 고맙습니다. 언제나 그런 것처럼 이 봄에도 역시 목련의 봄 노래는 세상 시름과 무관하게 환하고 아름답습니다. 아파트 단지 안에 하얀 목련 꽃이 모두 활짝 피었습니다. 하나 둘 살펴보니, 아파트 건물 북쪽에 서 있는 목련은 지금이 한창이지만 남쪽의 목련은 어느 새 낙화를 시작했습니다. 방안에 틀어박혀 있는 동안 나무가 우리 곁으로 고요히 봄을 불러온 겁니다. ○ 사람 사는 곳 어디라도 나무 없는 곳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