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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나무를 찾아서] 은행나무 가지에 스치는 그 겨울 매운 바람과 그때 그 사람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0. 12. 7. 13:52

[나무를 찾아서]

은행나무 가지에 스치는 그 겨울 매운 바람과 그때 그 사람들

찬 바람 맞으며 큰 나무 앞에 섰습니다. 오랜만에 수인사를 나누게 된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입니다. 딱히 용계리 은행나무를 만나기 위한 길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안동 길안면을 지날 생각에, 이 은행나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지요. 하지만 서둘러 찾아봐야 할 나무들이 적지 않아 지도 위의 행선지에 표시하지 않고 지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익숙한 길, 익숙한 안내판이 눈에 띄는 바람에 어쩌는 수 없이 ‘눈인사’만이라도 하고 지나가는 게 도리이지 싶어 잠깐, 아주 잠깐 들렀습니다. 도저히 그냥 스쳐 지날 수 없는 나무가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입니다.

그러고보니, 용계리 은행나무를 찾아온 게 꽤 지난 일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우리의 은행나무는 여전합니다. 올에도 어김없이 노랗게 단풍 물 올렸을 잎사귀들은 모두 내려놓고, 겨울잠에 든 나무의 자태는 그저 의젓하기만 합니다. 십 여 년 전만 해도 이 나무를 찾아올 때마다 함께 찾아 뵙고 인사 드렸던 ‘월로댁 할머니’가 계시지 않는다는 건 어쩔 수 없이 깊은 허전함을 떠오르게 합니다. 함께 냄새 나는 은행을 주우며 느릿느릿 이야기를 나누던 날들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나무가 오롯이 남았기에 떠난 사람의 빈 자리는 더 크게 느껴집니다.

다 내려놓고, 나무 앞에 가만히 더 오래 머무르고 싶었습니다만, 갈 길을 재우쳐야 하는 건, 지금 이 땅에 살아있는 사람에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싶습니다. 아쉬움 안고 나무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는 길이 참 쓸쓸했습니다. 봄이 오면 다시 찾아오겠다고 나무에게 아쉬운 인사를 남겼습니다. 그때에는 월로댁 할머니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내 또래의 마을 이장 권 형과도 이야기를 나누며 오래오래 머무르다 돌아갈 겁니다.

깊어가는 겨울 날의 한밤 중입니다. 곧 눈도 내리겠지요. 눈 내려 길 끊기기 전에 갈 길을 재우쳐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밤에 《나무편지》 띄웁니다. 새벽, 해 뜨기 전에 나무 찾아 다시 또 길 떠나야 하는 때문입니다. 다녀와 나무 소식 또 전해 올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사람 떠난 자리에 홀로 의연히 서 있는 나무를 바라보며 12월 7일 한밤중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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