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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난 나무가 오래 기억되는 나무로……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0. 12. 22. 10:18

[나무를 찾아서]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난 나무가 오래 기억되는 나무로……

정처없는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나는 나무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사는 곳, 어디라도…… 지나는 길 어디라도 나무 없는 곳은 없으니까요. 가던 길을 멈추기 쉽지 않은 자동차 전용 도로에서 겁 없이 재우치기만 하는 속도는 그래서 사람 사는 마을을 지나는 길 위에 오를라치면 하냥 느려집니다. 그냥 지나치고는 자동차 백미러로 멀어져가는 큰 나무를 돌아보며 아쉬운 마음 달래기보다는 천천히 돌아보며 나무를 찾는 게 훨씬 마음 편한 일인 건 당연한 이치겠지요. 속도는 풍경을 잃고, 풍경은 속도를 잃을 수밖에요.

○ 새해 2021년에 이어갈 부천 상동도서관 《나무강좌》에 모십니다. ○

한해를 마무리하는 이 즈음, 새해 채비 하나 일러드립니다. 줄곧 이어온 부천 상동도서관의 《나무강좌》 계획입니다. 올에는 변화가 많았습니다. 일월 둘째 수요일에 한 차례 열고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쉬었다가 칠월부터 둘째 수요일과 넷째 수요일에 비대면 형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올에도 열한 차례의 강좌를 열어, 모두 45강까지를 마쳤습니다. 새해 2021년에도 《나무강좌》는 이어집니다. 일단 전반기에는 다달이 둘째 수요일에 비대면으로 진행할 예정으로 참가자를 모집합니다. 참가 인원에 제한은 없습니다만 참가를 신청하신 분만 강좌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새해에도 《나무강좌》에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https://bit.ly/2WD0IXz <== 상동도서관 《고규홍의 나무강좌》 신청 페이지

지난 가을에 다시 찾은 〈울진 소태리 소나무〉도 머리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난 나무였습니다. 오래 전의 일이었지요. 처음 이 소나무와의 우연한 만남은 십년도 더 지난 2005년의 가을날이었습니다. 그때의 기록을 보니, 울진 주인리 황금소나무를 찾아간 날이었습니다. 황금소나무의 특별한 자태를 한참 보고 돌아오는 길에 울진 죽변리 향나무, 울진 수산리 굴참나무를 거쳐 울진 행곡리 처진소나무까지 실컷 보고, 백암온천이 터잡은 백암산 자락을 넘어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 길 위에 서서 저절로 걸음을 멈추게 하는 소나무 ○

크고 특별한 나무들을 가슴 깊이 담고 돌아오는 길, 또 다른 나무를 찾아보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풍요로운 귀가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무들이 길을 멈추게 했습니다. 우선 백암온천 오르는 길에 늘어선 배롱나무 가로수들이 그랬습니다. 꽃 한 송이 남지 않은 배롱나무이고, 아직은 작은 나무들이지만, 줄기와 가지가 보여주는 화려한 수피는 속도를 줄이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보여드리는 이 소나무 앞에서는 아예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크고 아름다운 나무였습니다. 이 길을 지나는 누구라도 그러했을 겁니다. 멈추기까지는 않았다 해도 속도는 줄였을 겁니다.

아무 생각 없이 이처럼 우연히 만나는 나무들은 정말 많습니다. 물론 나무를 찾아 헤매 돌아다닌 지 이십 년이 넘다보니, 마을마다 꼭 보고 싶은 나무들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 채 만나지 못한 나무들이 더 많고 보니, 〈울진 소태리 소나무〉처럼 갑자기 새로 만나게 되는 나무들이 있을 수밖에요. 이렇게 계획 없이 뜻밖에 만나게 된 나무는 마음에 더 오래 남습니다. 넉넉한 채비를 하지 않고 만나게 된 나무이니, 다른 건 둘째 치고라도 시간이 모자랄 때가 많아서 그럴 겁니다. 이를테면 계획한 장소까지 가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할 때도 있고, 좋은 나무를 만났지만, 이미 해 질 무렵일 때도 있으니까요. 아쉬울 수밖에요.

○ 삼백 년 동안 백암산 자락, 사람의 길을 지켜온 나무 ○

〈울진 소태리 소나무〉도 처음 만나던 그날 그때에 그리 많은 시간을 내지 못했습니다. 그 뒤에 몇 차례 더 찾아본 건 당연한 순수였습니다. 산림청 보호수로 지정한 나무입니다. 천연기념물도 지방기념물도 아닌, 어쩌면 우리의 시골 마을 길가에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한 그루의 소나무일 지도 모릅니다. 보호수 기록에 적힌 이 소나무의 규모도 그 동안 만났던 큰 소나무에 비해 그리 크지 않습니다. 수령도 300년밖에 안 되는 젊은 소나무입니다. 그러나 그와 만나게 된 인연의 소중함이 먼저 떠오르는 때문인지, 오래도록 각별한 나무로 마음에 남습니다.

올 가을에 다시 만난 〈울진 소태리 소나무〉에도 세월의 켜가 내려앉았습니다. 둘로 나뉘며 솟아오른 굵은 가지 가운데 한쪽의 가지는 아예 중간에서 부러져나갔습니다.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지만, 둘 중의 한쪽 가지가 완전히 부러져나간 소나무는 예전과 다른 생김새를 했습니다. 언제 부러졌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만, 처음에 길을 멈추게 했던 그때의 모습과는 완연히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이곳 백암산 자락을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큰 소나무로의 위용은 여전합니다. 세월 흐르고 가지가 부러져나가도 처음 그때의 인상을 한결같이 간직하는 나무, 몇 번을 되풀이해서 나무를 다시 찾아야 할 이유입니다.

바람이 지난 주보다 더 차가워졌습니다. 건강에 각별히 조심하셔야 할 때입니다. 하루하루 더 조심하시며 한해 마무리 잘 채비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우연히 만나서 더 각별하게 기억되는 소나무를 바라보며 12월 21일 아침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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