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고규홍의 나무편지 149

잎 떨군 나무는 겨울 채비를 마쳤건만 사람의 마을에는

잎 떨군 나무는 겨울 채비를 마쳤건만 사람의 마을에는 [나무 생각] 잎 떨군 나무는 겨울 채비를 마쳤건만 사람의 마을에는…… 마을 어귀에 우뚝 선 나무들이 겨울 채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초록의 나뭇잎 떨군 틈을 파고 든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세가 걷잡을 수 없이 거세지는 날이 이어집니다. 한해 내내 사람의 마을에 이어진 잠시멈춤과 거리두기는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을에는 아직 채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고단함은 하릴없이 이어질 수밖에요. 소슬 바람 매서워진 겨울 들판의 나무들을 찾아 나서야 하는 걸음이 무겁기만 합니다. 그래도 길 위에 올라야 합니다. 눈 내리기 전까지, 그리고 해 넘기기 전까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기만 합니다. 힘겹게 지난 계절을 지나온 나무들을 바라보는..

오랜 세월 동안 마을의 수호목으로 살아온 졸참나무의 위엄

[나무를 찾아서] 오랜 세월 동안 마을의 수호목으로 살아온 졸참나무의 위엄 지난 주 《나무편지》에 이어 졸참나무 이야기 하나 더 보탭니다. 어쩌면 보탠다기보다 지난 주에 전해드린 〈영덕 신기리 졸참나무〉 이야기가 오늘의 졸참나무 이야기를 위한 〈들어가기〉쯤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나무편지》에서 말씀드렸듯이, 졸참나무에 ‘졸병’이라는 이름이 붙기는 했지만, 잎과 열매가 ‘참나무과 육형제’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이지, 수형이나 나무 전체의 규모가 ‘졸병’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오래도록 크게 잘 자라는 나무라는 이야기이지요. 지난 번에 보여드린 〈영덕 신기리 졸참나무〉처럼 크게 잘 자란 졸참나무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 높이 20미터, 줄기둘레 3.5미터의 거목으로 자란 졸참나무 ○ 오늘 《나무편지》..

경북 의성 지역을 대표하는 선비 가문을 지켜온 나무

[나무를 찾아서] 경북 의성 지역을 대표하는 선비 가문을 지켜온 나무 산 아래 계곡에 구름이 감도는 것처럼 보여 산운(山雲)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이 있습니다. 경상북도 의성의 대표적인 양반 가문의 집성촌, 의성군 금성면 산운리가 그곳입니다. 산운마을은 조선 중기에 학동(鶴洞) 이광준(李光俊, 1531~1609)이 처음 자리를 잡은 뒤로 지금까지 영천 이씨 후손들이 살림살이를 이어가는 아늑한 마을입니다. 이 마을에는 영천이씨의 종택인 경정(敬亭)종택과 작은 종택이랄 수 있는 자암종택(紫巖宗宅)을 비롯해 학록정사(鶴麓精舍), 점우당(漸于堂), 운곡당(雲谷堂), 소우당(素宇堂) 등 40동이 넘는 고택이 여전히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 조선 선조 이후의 혼란기를 살았던 시인 이민성 ○ 마을의 중심이라..

[나무를 찾아서] 당신은 없는데…… 홀로 단풍만 보다가 돌아왔습니다

[나무를 찾아서] 당신은 없는데…… 홀로 단풍만 보다가 돌아왔습니다 단풍만 보다 왔습니다 당신은 없고요, 나는 석남사 뒤뜰 바람에 쓸리는 단풍잎만 바라보다 하아, 저것들이 꼭 내 마음만 같아야 어찌할 줄 모르는 내 마음만 같아야 저물 무렵까지 나는 석남사 뒤뜰에 고인 늦가을처럼 아무 말도 못 한 채 얼굴만 붉히다 단풍만 사랑하다 돌아왔을 따름입니다 당신은 없고요 - 최갑수, 《석남사 단풍》 전문 단풍만 보다가, 당신은 없는데, 홀로 단풍만 보다가 돌아왔습니다. 《나무편지》도 제때 드리지 못했습니다. 오랜만에 작업실 자리에 앉았습니다. 단풍 빛깔 짙은 들녘, 큰 나무 곁에 서면 언제나 나무보다 사람이 더 먼저 떠오릅니다. 시인 최갑수의 노래가 생각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땅의 모든 생명을 먹여 살릴 지상의..

곡식과 새떼와 사람, 그리고 나무가 지어내는 아름다운 풍경

[나무를 찾아서] 곡식과 새떼와 사람, 그리고 나무가 지어내는 아름다운 풍경 파란 가을 하늘 드높고, 들녘의 곡식은 누렇게 익어갑니다. 갈무리까지는 아직 약간의 시간이 남았습니다. 이 즈음 가장 바빠진 건 참새들입니다. 바람 더 차가워지기 전에 어서 배를 불리고, 다가오는 겨울을 채비해야 합니다. 바람이 거셌던지, 알곡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었던지, 들녘엔 벌써 비스듬히 누워버린 벼가 적지 않네요. 그 자리에 참새들이 떼를 지어 모여 들었습니다. 잘 익은 곡식을 챙기느라 짹짹이던 참세 떼가 누군가의 신호에 따라 일제히 날아오릅니다. 그러나 멀리 떠나지 않습니다. 바로 곁에 한 그루의 아름다운 나무 위로 오릅니다. 재우쳐 곡식을 쪼아먹던 참새들에게는 아주 근사한 쉼터입니다. 엊그제 만난 의성 서부리 향나무 ..

[나무를 찾아서] 우암 송시열의 후손들이 터잡은 남해 바닷가 마을의 지킴이

[나무를 찾아서] 우암 송시열의 후손들이 터잡은 남해 바닷가 마을의 지킴이 [알립니다] Web 주소가 http://​ 가 아닌, https://​ 로 시작하는 웹페이지에서 나무편지를 '크롬'으로 수신하실 경우, 이미지가 모두 보실 수 없게 됐다고 합니다. 이는 https://로 시작하는 웹페이지의 보안정책 때문이랍니다. 이 경우, '크롬'이 아닌 '익스플로러' 등 다른 브라우저에서는 모두 정상적이라고 합니다. 빠른 시간 안에 더 좋은 대책을 찾아보겠습니다. 벌써 팔 년이나 지났습니다. “봄바람에 실려온 편지 한 장 달랑 들고 먼 길을 떠났다.”라고 시작하며, 한 그루의 큰 나무를 신문에 칼럼으로 쓴 게 말입니다. ‘봄바람에 실려온 편지’를 보낸 사람은 그때 대학에서 제가 진행하는 ‘콘텐츠 제작’ 수업을 ..

정갈한 마을, 동네 어귀에 단정한 자태로 우뚝 선 왕버들

[나무를 찾아서] 정갈한 마을, 동네 어귀에 단정한 자태로 우뚝 선 왕버들 코로나 사태로 사람의 출입이 금지된 마을회관과 그 앞으로 펼쳐진 마을 입구의 공터가 환합니다. 마을회관 앞으로는 작은 화단이 이어지고, 화단 안쪽에는 ‘죽순정(竹筍亭)’이라는 편액을 건 작은 정자가 있습니다. ‘대밭’을 뜻하는 ‘죽전(竹田)’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의 정자 이름으로는 제법 운치가 있습니다. 주변에 잘 가꾼 화단 때문일 겁니다. 화단 곁으로는 ‘죽순양어장’이라는 표지석이 큼지막하게 세워진 널찍한 연못이 펼쳐지고. 양어장 안에는 지금은 멈춰진 물레방아가 물이 아니라 바람에 꾸물거립니다. 정갈한 풍경입니다. 정갈한 마을 풍경의 백미는 무엇보다 공터 한켠에 우뚝 서 있는 잘 생긴 한 그루의 나무입니다. 〈상주 죽전동 왕버..

이 땅의 큰 나무들에게 가장 알맞춤한 자리를 생각합니다

[나무를 찾아서] 이 땅의 큰 나무들에게 가장 알맞춤한 자리를 생각합니다 모든 생명들에게는 제가끔 제 자리가 있겠지요. 알맞춤한 제 자리를 찾아 뿌리 내린 생명들이라면 그의 생명에 주어진 기품과 아름다움을 갖추고 오래오래 살아갈 겁니다. 한 그루의 느티나무를 바라보며 그런 이야기를 글로 써 정리하다 날짜를 보니, 앗! 벌써 월요일이네요. 시간 가는 걸 모르고 한 주일을 보냈습니다. 분주한 탓이기도 했지만, 별다른 변화 없이 한 주일을 작업실에만 틀어박혀 지낸 탓도 있겠지요. 지난 계절의 답사를 되짚으며, 나무 사진을 끄집어내고, 나무 곁에서 끄집어낸 사람살이 이야기를 생각하며 글로 쓰는 일들은 하염없이 이어집니다. 글 속에 담는 나무마다 생김새가 서로 다르고, 그 나무 안에 담긴 사람살이 역시 서로 다르..

소원 비는 한 그루의 회화나무에게 이 땅의 평안을 빌며

[나무를 찾아서] 소원 비는 한 그루의 회화나무에게 이 땅의 평안을 빌며 지난 번 《나무편지》도 숫자로 시작했는데 ……, 오늘 또 다시 숫자를 헤아리게 됩니다. 지난 번에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숫자들 103 …, 166 …. 279 …, 197 …은 고작 시작에 불과했나봅니다. 곧바로 3백을 넘어서 급기야 어제는 397로……, 무려 4백에 가까운 숫자에 이르렀습니다. 애써 이어온 우리의 안간힘을 창졸간에 무너뜨리는 한없이 ‘무지몽매’한 망동들에 말문이 막힙니다. 바이러스는 생명체도 아닙니다. 그저 숙주의 몸을 찾아 헤매고, 숙주의 몸에 들어가 복제밖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미세한 물질입니다. 이 미세한 물질에 턱없이 몸과 마음을 붙잡혀야 하는 참담하고 황당한 날들입니다. ○ 모두의 안간힘을 한 순간에..

겨우 맞이한 이 여름, 지금 이 땅은 무궁화의 계절입니다

[나무를 찾아서] 겨우 맞이한 이 여름, 지금 이 땅은 무궁화의 계절입니다 28, 34, 54, 56, 그리고 다시 103 …, 166 …. 279 …, 197 …. 조금은 무감해질 수 있는 숫자 변화가 다시 새로워졌습니다. 다시 민감하게 바라보게 합니다. 참 황폐한 하늘 아래 핍진한 날들입니다. 유례없이 긴 장맛비와 물난리까지 ……. 우리 곁의 시간이 잔혹하게 흘러갑니다. 지난 봄부터 애써 견뎌오고, 차근차근 익힌 몸가짐만으로 이제 겨우 긴 여름 장마 보내며 숨 한 번 내쉬며, 아주아주 조심스럽게 가을맞이에 나서려는 즈음이었거늘, 103, 166, 279, 197 ……. 다시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숫자들입니다. 빼앗긴 봄에 이어 이 여름과 다가오는 가을까지 잃어버리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

수국과 모감주나무 꽃이 더 아름답게 지켜주는 이 여름

[나무를 찾아서] 수국과 모감주나무 꽃이 더 아름답게 지켜주는 이 여름 길가에 모감주나무 꽃이 피었습니다. 곳곳이 노란 모감주나무 꽃차례가 화려합니다. 온갖 빛깔의 꽃도 초록 잎의 무성함을 당하지 못한다는 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의 계절이지만, 샛노란 빛깔로 무성하게 피어난 모감주나무 꽃차례가 싱그러움은 예외입니다. 오래 가는 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앞으로 며칠 동안은 한여름에 들어섰음을 알려주는 상징으로 우리 곁을 환하게 밝힐 겁니다. 사계절 어느 때라도 우리 곁을 지켜주는 아름다운 꽃들이 있어서 이 땅의 어디에서라도 걸음은 늘 즐겁고 상큼합니다. ○ 가을 바람 솔솔 불어올 때까지 피어있을 탐스러운 꽃차례 ○ 장맛비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에 천리포 바닷가 숲에 다녀왔습니다. 지금은 수국 꽃 천지입니..

[나무를 찾아서] 이 땅의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나무를 심은 사람

[나무를 찾아서] 이 땅의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나무를 심은 사람 지난 《나무편지》에서 미리 말씀드렸던 나무 이야기를 전해드릴 차례입니다. 구미에서 만난 한 그루의 아주 예쁘게 잘 자라고, 잘 지켜진 모과나무입니다. 구미 선산읍 신기리의 풍광 좋은 언덕 마루에 놓인 ‘송당정사’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옛 정자 앞에 서 있는 예쁜 나무입니다. 나무를 찾아 구미 지역을 부지런히 다니던 중에 선산읍에 들게 됐습니다. 이름난 선비들이 많은 고장으로 이름난 고장이어서, 더 많은 나무를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 길이었지요. 그중에 남다른 삶의 과정을 지나온 송당(松堂) 박영(朴英, 1471~1540) 선생의 흔적이 있는 신기리에 들어섰습니다. 처음엔 주소를 잘못 검색하는 바람에 신기리 강변까지 가서도, 송당정사를..

허공에 흩어지는 참혹한 말들 사이로 말없이 떠오르는 나무

[나무를 찾아서] 허공에 흩어지는 참혹한 말들 사이로 말없이 떠오르는 나무 길을 가다가 멈춰야 할 만큼 눈에 확 들어오는 풍경을 만났습니다. 풍경의 중심에는 물론 나무가 있었습니다. 지난 번 《나무편지》에서 하늘로 불쑥 치솟아오른 나무 줄기의 끝 부분만 보여드렸던 나무입니다. 지난 답사 중에 구미시의 외곽에서 만난 나무입니다. 지난 번 《나무편지》에서는 두 그루의 나무 이야기를 전해드리겠다고 미리 말씀드렸는데요. 그 가운데 별다른 이야기 없이 풍경만으로도 충분하다 싶은 느티나무부터 보여드립니다. 〈구미 백현리 느티나무〉입니다. 백현리는 구미시의 동쪽 산동면에 속하는 작은 마을입니다. ○ 환경자원화시설의 일환으로 지은 야외공연장을 지키는 나무 ○ 나무가 서 있는 자리는 백현리에 속하는 곳이기는 하지만, 사..

백범 김구의 은거 자취를 지닌 마을 숲과 치유의 나무

[나무를 찾아서] 백범 김구의 은거 자취를 지닌 마을 숲과 치유의 나무 길을 가다가 예정에 없던 나무를 만나게 되면 무척 반갑습니다. 마치 복권에 당첨된 듯한 기분까지 들곤 하지요. 반대로 세심하게 동선 계획을 짜고, 디지털지도의 로드뷰로 현장 상황까지 탐색한 뒤에 찾아보려 계획한 나무를 여러 이유로 현장에서 만날 수 없을 때에는 참 허탈합니다. 이십 년 넘게 나무를 찾아다니는 동안 그 두 가지 상황은 늘 되풀이해 교차했습니다. 답사 경험이 쌓이고, 더불어 실시간 교통상황까지 지원하는 네비게이션이 나온 뒤로, 10만분의 1 축적 지도와 나침반을 이용해 다닐 때에 비하면 헛걸음이 많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일정한 헛걸음은 감수해야 합니다. ○ 다가올 가을을 더 알차게 맞이하기 위한 《나무강좌》에 초대합니다..

봄의 꼬리를 붙들고 장마 든 폭염의 여름을 맞이합니다

[나무를 찾아서] 봄의 꼬리를 붙들고 장마 든 폭염의 여름을 맞이합니다. 천리포 바닷가 숲에 다녀왔습니다. 꽃 피는 시기가 언제나 늦은 편인 곳이기는 하지만, 봄꽃은 이미 다 졌습니다. 이제는 숲에서도 여름이 느껴집니다. 여름 꽃들이 무성하게 피어난 것은 아니어도 여름 채비에 나선 나무들의 수런거림은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나뭇잎의 초록은 한층 짙어졌고, 열매를 익혀가는 나무도 있습니다. 봄은 이미 다 지났지만, 아직 봄의 꼬리를 붙들고 서 있는 꽃들도 있습니다. 지난 달, 그러니까 오월 중순 쯤에 화려하게 피었던 만병초 종류의 꽃(위 사진)들, 때죽나무의 꽃(아래 사진)들의 대부분은 이미 시들어 떨어졌는데, 그 가운데 아직 남아있는 꽃들이 적지 않아 반갑기도 하고, 이 험한 봄날을 잘 버텨온 꽃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