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고규홍의 나무편지 172

이 땅의 큰 나무들에게 가장 알맞춤한 자리를 생각합니다

[나무를 찾아서] 이 땅의 큰 나무들에게 가장 알맞춤한 자리를 생각합니다 모든 생명들에게는 제가끔 제 자리가 있겠지요. 알맞춤한 제 자리를 찾아 뿌리 내린 생명들이라면 그의 생명에 주어진 기품과 아름다움을 갖추고 오래오래 살아갈 겁니다. 한 그루의 느티나무를 바라보며 그런 이야기를 글로 써 정리하다 날짜를 보니, 앗! 벌써 월요일이네요. 시간 가는 걸 모르고 한 주일을 보냈습니다. 분주한 탓이기도 했지만, 별다른 변화 없이 한 주일을 작업실에만 틀어박혀 지낸 탓도 있겠지요. 지난 계절의 답사를 되짚으며, 나무 사진을 끄집어내고, 나무 곁에서 끄집어낸 사람살이 이야기를 생각하며 글로 쓰는 일들은 하염없이 이어집니다. 글 속에 담는 나무마다 생김새가 서로 다르고, 그 나무 안에 담긴 사람살이 역시 서로 다르..

소원 비는 한 그루의 회화나무에게 이 땅의 평안을 빌며

[나무를 찾아서] 소원 비는 한 그루의 회화나무에게 이 땅의 평안을 빌며 지난 번 《나무편지》도 숫자로 시작했는데 ……, 오늘 또 다시 숫자를 헤아리게 됩니다. 지난 번에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숫자들 103 …, 166 …. 279 …, 197 …은 고작 시작에 불과했나봅니다. 곧바로 3백을 넘어서 급기야 어제는 397로……, 무려 4백에 가까운 숫자에 이르렀습니다. 애써 이어온 우리의 안간힘을 창졸간에 무너뜨리는 한없이 ‘무지몽매’한 망동들에 말문이 막힙니다. 바이러스는 생명체도 아닙니다. 그저 숙주의 몸을 찾아 헤매고, 숙주의 몸에 들어가 복제밖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미세한 물질입니다. 이 미세한 물질에 턱없이 몸과 마음을 붙잡혀야 하는 참담하고 황당한 날들입니다. ○ 모두의 안간힘을 한 순간에..

겨우 맞이한 이 여름, 지금 이 땅은 무궁화의 계절입니다

[나무를 찾아서] 겨우 맞이한 이 여름, 지금 이 땅은 무궁화의 계절입니다 28, 34, 54, 56, 그리고 다시 103 …, 166 …. 279 …, 197 …. 조금은 무감해질 수 있는 숫자 변화가 다시 새로워졌습니다. 다시 민감하게 바라보게 합니다. 참 황폐한 하늘 아래 핍진한 날들입니다. 유례없이 긴 장맛비와 물난리까지 ……. 우리 곁의 시간이 잔혹하게 흘러갑니다. 지난 봄부터 애써 견뎌오고, 차근차근 익힌 몸가짐만으로 이제 겨우 긴 여름 장마 보내며 숨 한 번 내쉬며, 아주아주 조심스럽게 가을맞이에 나서려는 즈음이었거늘, 103, 166, 279, 197 ……. 다시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숫자들입니다. 빼앗긴 봄에 이어 이 여름과 다가오는 가을까지 잃어버리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

수국과 모감주나무 꽃이 더 아름답게 지켜주는 이 여름

[나무를 찾아서] 수국과 모감주나무 꽃이 더 아름답게 지켜주는 이 여름 길가에 모감주나무 꽃이 피었습니다. 곳곳이 노란 모감주나무 꽃차례가 화려합니다. 온갖 빛깔의 꽃도 초록 잎의 무성함을 당하지 못한다는 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의 계절이지만, 샛노란 빛깔로 무성하게 피어난 모감주나무 꽃차례가 싱그러움은 예외입니다. 오래 가는 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앞으로 며칠 동안은 한여름에 들어섰음을 알려주는 상징으로 우리 곁을 환하게 밝힐 겁니다. 사계절 어느 때라도 우리 곁을 지켜주는 아름다운 꽃들이 있어서 이 땅의 어디에서라도 걸음은 늘 즐겁고 상큼합니다. ○ 가을 바람 솔솔 불어올 때까지 피어있을 탐스러운 꽃차례 ○ 장맛비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에 천리포 바닷가 숲에 다녀왔습니다. 지금은 수국 꽃 천지입니..

[나무를 찾아서] 이 땅의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나무를 심은 사람

[나무를 찾아서] 이 땅의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나무를 심은 사람 지난 《나무편지》에서 미리 말씀드렸던 나무 이야기를 전해드릴 차례입니다. 구미에서 만난 한 그루의 아주 예쁘게 잘 자라고, 잘 지켜진 모과나무입니다. 구미 선산읍 신기리의 풍광 좋은 언덕 마루에 놓인 ‘송당정사’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옛 정자 앞에 서 있는 예쁜 나무입니다. 나무를 찾아 구미 지역을 부지런히 다니던 중에 선산읍에 들게 됐습니다. 이름난 선비들이 많은 고장으로 이름난 고장이어서, 더 많은 나무를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 길이었지요. 그중에 남다른 삶의 과정을 지나온 송당(松堂) 박영(朴英, 1471~1540) 선생의 흔적이 있는 신기리에 들어섰습니다. 처음엔 주소를 잘못 검색하는 바람에 신기리 강변까지 가서도, 송당정사를..

허공에 흩어지는 참혹한 말들 사이로 말없이 떠오르는 나무

[나무를 찾아서] 허공에 흩어지는 참혹한 말들 사이로 말없이 떠오르는 나무 길을 가다가 멈춰야 할 만큼 눈에 확 들어오는 풍경을 만났습니다. 풍경의 중심에는 물론 나무가 있었습니다. 지난 번 《나무편지》에서 하늘로 불쑥 치솟아오른 나무 줄기의 끝 부분만 보여드렸던 나무입니다. 지난 답사 중에 구미시의 외곽에서 만난 나무입니다. 지난 번 《나무편지》에서는 두 그루의 나무 이야기를 전해드리겠다고 미리 말씀드렸는데요. 그 가운데 별다른 이야기 없이 풍경만으로도 충분하다 싶은 느티나무부터 보여드립니다. 〈구미 백현리 느티나무〉입니다. 백현리는 구미시의 동쪽 산동면에 속하는 작은 마을입니다. ○ 환경자원화시설의 일환으로 지은 야외공연장을 지키는 나무 ○ 나무가 서 있는 자리는 백현리에 속하는 곳이기는 하지만, 사..

백범 김구의 은거 자취를 지닌 마을 숲과 치유의 나무

[나무를 찾아서] 백범 김구의 은거 자취를 지닌 마을 숲과 치유의 나무 길을 가다가 예정에 없던 나무를 만나게 되면 무척 반갑습니다. 마치 복권에 당첨된 듯한 기분까지 들곤 하지요. 반대로 세심하게 동선 계획을 짜고, 디지털지도의 로드뷰로 현장 상황까지 탐색한 뒤에 찾아보려 계획한 나무를 여러 이유로 현장에서 만날 수 없을 때에는 참 허탈합니다. 이십 년 넘게 나무를 찾아다니는 동안 그 두 가지 상황은 늘 되풀이해 교차했습니다. 답사 경험이 쌓이고, 더불어 실시간 교통상황까지 지원하는 네비게이션이 나온 뒤로, 10만분의 1 축적 지도와 나침반을 이용해 다닐 때에 비하면 헛걸음이 많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일정한 헛걸음은 감수해야 합니다. ○ 다가올 가을을 더 알차게 맞이하기 위한 《나무강좌》에 초대합니다..

봄의 꼬리를 붙들고 장마 든 폭염의 여름을 맞이합니다

[나무를 찾아서] 봄의 꼬리를 붙들고 장마 든 폭염의 여름을 맞이합니다. 천리포 바닷가 숲에 다녀왔습니다. 꽃 피는 시기가 언제나 늦은 편인 곳이기는 하지만, 봄꽃은 이미 다 졌습니다. 이제는 숲에서도 여름이 느껴집니다. 여름 꽃들이 무성하게 피어난 것은 아니어도 여름 채비에 나선 나무들의 수런거림은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나뭇잎의 초록은 한층 짙어졌고, 열매를 익혀가는 나무도 있습니다. 봄은 이미 다 지났지만, 아직 봄의 꼬리를 붙들고 서 있는 꽃들도 있습니다. 지난 달, 그러니까 오월 중순 쯤에 화려하게 피었던 만병초 종류의 꽃(위 사진)들, 때죽나무의 꽃(아래 사진)들의 대부분은 이미 시들어 떨어졌는데, 그 가운데 아직 남아있는 꽃들이 적지 않아 반갑기도 하고, 이 험한 봄날을 잘 버텨온 꽃들이..

나무와 더불어 살던 자리에 길을 내고 사람은 떠나고

[나무를 찾아서] 나무와 더불어 살던 자리에 길을 내고 사람은 떠나고 이른 아침, 작업실까지 천천히 걸을 때면 어김없이 알싸한 향기에 취합니다. KF94 마스크로 꼭꼭 막은 콧속으로 스미는 향기는 쥐똥나무 꽃에서 흘러나온 겁니다. 배경으로 피어있는 장미 꽃의 향기를 훨씬 뛰어넘는 향기입니다. 누가 뭐래도 이 즈음, 우리 마을의 주인공은 쥐똥나무입니다. 사실 이 마을의 원래 주인공은 복사나무였습니다. 여기는 오래 전부터 복숭아의 산지로 유명한 부천입니다. 지금 제가 걷는 이 길은 제가 대학생 즈음이던 젊은 시절에는 복숭아 과수원이었습니다. 그 자리를 갈아엎고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신도시를 세운 거죠. 이제는 복숭아도 복사나무도 보기 어려워졌습니다. 마을마다 그런 대표 나무가 있습니다. ○ 감나무 … 명품 ..

한 쌍의 느티나무와 한 마을의 사람들이 아름답게 사는 법

[나무를 찾아서] 한 쌍의 느티나무와 한 마을의 사람들이 아름답게 사는 법 돈이 많다고 해서, 부자라고 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들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건 아닙니다. 어떤 이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재산을 가진 덕에 개인적으로는 온갖 영화를 누리는 풍요가 짐작되지만, 많은 사람들의 끊임없는 비난에 눈감고 살아야 하는 사회적 빈곤을 면하지 못합니다. 또 어떤 이는 재산이 그만큼 많은 게 아니어서, 개인적 풍요와 영화에서야 그에 조금 못미치지만,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기도 합니다. 굳이 예를 들지 않아도 그런 두 종류의 인종은 충분히 볼 수 있습니다. 같은 ‘기원’을 가진 DNA의 아주 미묘한 차이만으로 같은 생물 종 사이에서 이처럼 큰 차이가 나타나는 건 이상한 ..

‘이별의 정’을 오동나무에 빗댄 옛 시인의 절창 한 수

[나무생각] ‘이별의 정’을 오동나무에 빗댄 옛 시인의 절창 한 수 지난 주 《나무편지》에서 말씀드렸던 대로 오늘 《나무편지》에서는 우리의 옛 사람 가운데 최고의 시인으로 손꼽히는 황진이의 시 한 수 보여드립니다. 제목 《奉別蘇判書世讓》만으로 일러드렸던 시입니다. 우선 전문을 보겠습니다. 아, 참! html 로 옮겨지는 중에 한자가 깨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제 홈페이지 솔숲닷컴 http://solsup.com 에 와서 보시면 제대로 보실 수 있습니다. 奉別蘇判書世讓 - 黃眞伊 月下梧桐盡 霜中野菊黃 樓高天一尺 人醉酒千觴 流水和琴冷 梅花入笛香 明朝相別後 情與碧波長 ○ 이 땅 최고의 시인 ‘황진이’의 절창 한 수 ○ 대개의 경우, 한시漢詩의 멋과 맛을 한글로 온전히 옮기에는 쉽지 않습니다만, 황..

버빗원숭이와 이팝나무가 언어로 사람에게 전하는 메시지

[나무생각] 버빗원숭이와 이팝나무가 언어로 사람에게 전하는 메시지 버빗원숭이의 언어에 대한 글을 읽는 중이었습니다.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여기는 원숭이들 사이에 분명한 소통의 수단이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언어’의 정의에 얼마나 가까운지는 뒤로 미룬다 해도, 분명한 건 버빗원숭이들 사이에 단순한 ‘소리’를 뛰어넘는 ‘언어’가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를테면 포식자가 공중에서 날아올 때와 땅 아래에서 나타났을 때에 그들이 동료들에게 전하는 말은 달랐습니다. 동료 버빗원숭이들은 그 말에 따라 행동 방식이 달랐습니다. 분명히 내용을 가진 언어에 근접한 신호를 발화한 것이고, 다른 버빗원숭이들은 명백히 알아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포식자에게 쫓기는 버빗원숭이는 거의 한 시간 동안 한 마디도 말..

세상 모든 생명의 순서에 따라 조금 늦게 피어난 노란 꽃

[나무를 찾아서] 세상 모든 생명의 순서에 따라 조금 늦게 피어난 노란 꽃 지금 그 곳의 하얀 목련은 어떤가요? 그 아름답던 꽃 이미 다 시들어 떨었겠지요. 하얀 화려함으로 이 땅의 침잠한 봄을 노래하던 백목련 종류의 꽃이었건만……. 그러나 곳곳을 잘 살펴보면 조금 늦게 피어난 목련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백목련 종류가 피고난 뒤에 피어나는 자목련 종류의 꽃이 아직 남아있을 수도 있겠지요. 세상의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 모두 저마다의 ‘순서’가 있습니다. 목련 종류에도 꽃 피는 순서가 있지요. 세계적으로 1천 종류에 가까운 목련이 한 순간에 모두 화들짝 피어나지는 않습니다. 생명체에 내재하는 생리적 순서가 있을 뿐 아니라, 지역과 기후에 따른 순서도 있으니까요. ○ 흔한 종류는 아니지만 차츰 곳곳에서 많이..

우리 곁에 있는 나무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기를……

[나무를 찾아서] 우리 곁에 있는 나무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기를…… 집 앞의 나무에 봄이 환히 내려앉았습니다. 쥐똥나무의 앙증맞은 초록 이파리가 올망졸망 피어나는 걸 시작으로, 아파트 울타리 곁에서 노랗게 피어난 개나리 꽃으로 이어진 새 봄이 우리 곁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반갑고 여느 때보다 고맙습니다. 언제나 그런 것처럼 이 봄에도 역시 목련의 봄 노래는 세상 시름과 무관하게 환하고 아름답습니다. 아파트 단지 안에 하얀 목련 꽃이 모두 활짝 피었습니다. 하나 둘 살펴보니, 아파트 건물 북쪽에 서 있는 목련은 지금이 한창이지만 남쪽의 목련은 어느 새 낙화를 시작했습니다. 방안에 틀어박혀 있는 동안 나무가 우리 곁으로 고요히 봄을 불러온 겁니다. ○ 사람 사는 곳 어디라도 나무 없는 곳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