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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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159

의문의 원효로 ‘심원정터’를 말없이 지켜온 느티나무 노거수군

[나무편지] 의문의 원효로 ‘심원정터’를 말없이 지켜온 느티나무 노거수군 오늘의 《나무편지》는 다시 서울의 나무 이야기입니다. 용산문화원 뒤편 언덕에는 심원정(心遠亭)이란 정자 터가 있습니다. ‘심원정’이라는 현판이 걸린 정자가 있긴 하지만, 이는 새로 지은 정자이고 원래의 정자는 오래 전에 사라진 상태입니다. ‘심원정터’라고 해야 하는 거죠. 바로 곁에 용산문화원이 있고, 그 곁 언덕 위의 작은 공원이 바로 ‘심원정터’입니다. 알려진 대로라면 이 자리는 임진왜란 때에 명나라 쪽의 심유경(沈惟敬)과 왜군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강화를 교섭한 장소입니다. 그 증거로 ‘왜명강화지처비(倭明講和之處碑)’란 기념비까지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왜명강화지처비’를 비롯한 실제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고증에는 여러 ..

고려 공민왕의 흔적에서 조선시대 관원의 녹봉 관리 자취까지

[나무편지] 고려 공민왕의 흔적에서 조선시대 관원의 녹봉 관리 자취까지 ‘곤지암 소머리국밥’은 널리 알려졌지만, ‘곤지암’이 대관절 바위인지, 절집인지 헷갈릴 수 있습니다. 뭐 그런 예를 들자면 한이 없을 겁니다. 오늘 《나무편지》에서 이야기할 ‘광흥창’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 마포의 ‘광흥창역’은 잘 알아도 정작 ‘광흥창’이 뭐하는 데인지를 아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는 이야기이지요. 우리 사람살이의 긴 역사를 간직한 지역이 한두 곳 아니고, 긴 역사를 바탕으로 한 이름은 입에 익어도 그 내력을 우정 짚어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누구를 탓하려는 게 아니라, 도시 생활이라는 게 죄 그런 거 아닌가 싶다는 거죠. 오늘 《나무편지》에서 전해드리려는 나무가 바로 광흥창터 공민왕사당에 있는 회화나무와 느티..

가을의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품고 길섶에 피어난 팜파스글래스 꽃차례

[나무편지] 가을의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품고 길섶에 피어난 팜파스글래스 꽃차례 마음이 급한 것일까요? 가을 다가오는 속도가 느리지 않나 싶습니다. 충남 지역에 때아닌 폭염특보까지 내렸던 지난 금요일에 충남 태안의 천리포수목원에 다녀왔습니다. 구월 중순에 폭염특보라니요. 그 날 천리포수목원은 무척 더웠습니다. 한여름 무더위에 견줄만한 뜨거운 날씨였습니다. 이제 그만 여름을 떠나보내려는 나무들의 몸짓은 뚜렷했지만, 아직 가을 빛깔은 채 올리지 않았습니다. 물론 화려한 단풍도 아직은 이릅니다. 좀더 기다려야 합니다. 단풍이 아름댜우려면 앞으로도 거의 한 달은 기다려야 할 겁니다. 그저 이맘때면 이른 봄에 꽃 피어나기 기다리는 것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날짜를 손꼽아보곤 합니다. 천리포수목원의 가을 풍경을 압도하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사랑했던 별서의 들고난 사람살이를 지킨 소나무

[나무편지]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사랑했던 별서의 들고난 사람살이를 지킨 소나무 ‘거리두기 해제 후 첫 명절 연휴’를 절호의 기회로 생각하고 단단히 채비했습니다. 멀리 떠나려는 게 아니라 가까운 곳을 천천히 여유로이 헤집고 다닐 기회라 생각했습니다. 서울 노거수 조사에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되리라는 짐작이었지요. 사람도 자동차도 많은 서울 지역의 노거수를 찾아다니는 건 언제나 매우 번거로운 일이거든요. 혼잡한 교통과 번거로운 주차 사정을 생각하면 서울 지역 답사는 당연히 걸어서 다니는 게 좋습니다. 지난 봄부터 서울 지역의 큰 나무를 답사하는 과정에 몇 차례는 자동차를 이용해 이동했지만, 그때마다 혼잡한 도로 사정을 버텨내기가 버거웠고, 겨우 목적지에 다다랐어도 자동차를 주차하지 못해, 한참 돌아다니다가 목..

태풍 피해 이겨내고 천 년을 살아남은 크고 아름다운 은행나무

[나무편지] 태풍 피해 이겨내고 천 년을 살아남은 크고 아름다운 은행나무 폭풍전야의 고요한 아침입니다. 위험지역에서 살짝 벗어난 중부지방이라고는 해도, 비와 바람은 결코 편안하지 않으리라는 예보입니다. ‘한 번도 예상 못한 피해’가 올 수도 있다는 태풍의 위세는 전혀 꺾이지 않은 채 조금씩 다가옵니다. 오늘 내일 이틀 동안은 모두, 특히 태풍이 직접 올라온다는 남부지방에 계신 분들은 조심하셔야 하겠습니다. 전문가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재산 피해는 어쩔 수 없어도, 인명 피해만큼은 최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태풍 잘 견뎌 넘기시고, 수요일쯤에는 모두 편안한 마음으로 명절 채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태풍은 벼락과 함께 들녘에 홀로 우뚝 서 있는 큰 나무에게 가장 큰 위협입니다. 몰려오는 ..

[나무편지] 조선 문신 ‘이교면’의 돌 기념으로 심은… 최고의 상수리나무 노거수

[나무편지] 조선 문신 ‘이교면’의 돌 기념으로 심은… 최고의 상수리나무 노거수 여름의 끝, 팔월의 마지막 주 월요일입니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경술국치’의 치욕적 사건이 벌어진 날이기도 합니다. 처서處暑 지나자 바람 결에 스민 가을 빛이 또렷이 느껴집니다. 무더위로 잠시 주춤했던 발길 재우쳐, 단풍 들고 잎 지기 전에 더 많은 나무들을 찾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지난 주 중에는 비를 맞으며 서울 동대문구 일대의 큰 나무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우산을 들고 걸어서 이동해야 하는 길이어서 번거로웠지만, 도심 특히 우리 역사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서울에서의 나무 답사는 힘든 만큼 특별한 결과가 적지 않습니다. 몇 그루의 의미 있는 나무를 살펴보았습니다만, 서울의 나무 이야기는 다음 기회..

〈하동 평사리 위민정 팽나무〉는 〈푸조나무〉의 잘못입니다.

[나무편지] 〈하동 평사리 위민정 팽나무〉는 〈푸조나무〉의 잘못입니다. [나무편지] 〈하동 평사리 위민정 팽나무〉는 〈푸조나무〉의 잘못입니다. 안녕하세요. 고규홍입니다. 아침에 띄운 《나무편지》에 잘못이 있었습니다. 제목과 본문에 나무 이름을 〈하동 평사리 위민정 팽나무〉라고 했는데, 그건 〈하동 평사리 위민정 푸조나무〉의 잘못이었습니다. 돌아보니 제가 《나무편지》에 이 나무를 두 번 소개했는데요. 처음에는 ‘팽나무’로 쓰고 뒤에 또 소개할 때에는 ‘푸조나무’로 썼네요. 굳이 변명을 올리자면, 이 나무에 대한 기초 정보에 오류가 있었는데, 그걸 별 의심 없이 그대로 따른 것이었습니다. 위의 사진은 2008년에 이 나무를 찾았을 때에 나무 아래에 놓여있던 ‘보호수 표지석’입니다. 이 표지석에는 나무 종류를..

백성의 고된 삶을 위로하기 위한 ‘위민정’을 지켜온 팽나무

[나무편지] 백성의 고된 삶을 위로하기 위한 ‘위민정’을 지켜온 팽나무 ‘백성의 시름을 위로하기 위한 자리’로 점지하여, ‘위민정慰民亭’이라는 이름을 붙인 자리가 있습니다. 때로는 간단히 ‘백성을 위한 자리’라는 뜻에서 ‘위민정爲民亭’이라고 쓰기도 한다는 오붓한 자리입니다. 한자 뜻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한글 발음이 똑같을 뿐 아니라, 그 속뜻에서도 큰 차이가 없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경상남도 하동 평사리 팽나무 그늘이 바로 그런 자리입니다. 난데없이 요즘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리는 팽나무입니다. 팽나무는 산림청 보호수로 지정한 천삼백 그루가 넘을 만큼 많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남부지방에는 느티나무 못지않게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입니다. 하동 평사리 팽나무를 처음 찾아와 ‘위민정’이라는 이름을 붙..

[나무편지] 이름만으로도 무더위를 식혀줄 듯한 물푸레나무 큰 나무 한 그루

[나무편지] 이름만으로도 무더위를 식혀줄 듯한 물푸레나무 큰 나무 한 그루 팔월의 첫날 아침입니다. 태풍 하나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듯한데, 또 하나의 태풍이 올라온답니다. 바람은 크지 않을 듯한데, 비를 많이 몰고 온다네요. 태풍 탓에 한낮의 더위는 조금 식는다고는 해도 열대야가 이어진답니다. 초복 중복 다 지나고 이번 주말은 입추立秋입니다만 폭염은 이제 시작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아직은 태풍도 폭염도 안심하기에는 이르지 싶습니다. 아마 이번 주는 더위를 피해 잠시 쉬는 휴가를 보내는 분들이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한 해 중에 가장 견디기 어려운 더위가 이 즈음일테니, 쉬어가는 게 더 좋을 겁니다. 즐겁고 평안한 휴가 보내시기 바라면서 《나무편지》 전해 올립니다. ‘무더위..

[나무편지] 더 좋은 나무 이야기를 찾으려 애쓰다가 한 권의 책 때문에……

[나무편지] 더 좋은 나무 이야기를 찾으려 애쓰다가 한 권의 책 때문에…… 하루 종일……. 한 권의 책을 찾느라 하루 종일을 보냈습니다. 책장 어딘가에 틀어박혀있을 듯해서 책등만 나란히 드러난 책장을 한바퀴 훑었습니다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천칠 년에 출판된 책인데, 눈에 보이지 않으니, 내가 이 책을 오래 전에 봤다는 건 착각이었나보다 생각했습니다. 좋은 책이어서 지금이라도 구하려고 인터넷 서점을 찾아보니 품절이었습니다. 혹시 중고도서로 구할 수 있나 싶어 검색해보니, 몇 권의 책이 있었고, 상태가 그리 좋지 않음에도 값은 애초 정가의 네 배 정도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중고서점 운영하시는 분들이 책의 가치는 정확히 아시더라고요. 품절된 좋은 책의 값은 천정부지로 매기는 게 다반사이거든요. 너무 비싸다는..

사람살이를 위해 사람이 지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숲

[나무편지] 사람살이를 위해 사람이 지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숲 예고했던 대로 오늘 《나무편지》에서는 함양상림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숲 전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이곳의 문화재 명칭은 ‘함양상림’입니다만, 이 숲을 시민 누구라도 편안히 이용할 수 있는 곳이어서 흔히 ‘함양 상림공원’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숲은 총 넓이가 이십일 헥타아르, 익숙한 넓이 단위로 환산하면 육만사천 평 정도 되는 큰 숲입니다. 함양읍 서쪽을 흐르는 위천(渭川)강가에 있는 이 숲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인공림이라는 점이 문화재로서 높은 가치를 가지는 곳입니다. 숲을 처음 이룬 건 통일신라 진성여왕(재위 887∼897) 때 고운 최치원에 의해서입니다. 최치원이 함양의 태수로 있던 때의 일입니다. 그때에는 앞에서..

수목장…… 그리고 오래된 숲에서 신비롭게 피어난 자귀나무 꽃

[나무편지] 수목장…… 그리고 오래된 숲에서 신비롭게 피어난 자귀나무 꽃 아내 부모님의 묘지를 수목장으로 옮겼습니다. 제가 뵈온 적 없는 아버님은 사십오 년 전에 돌아가셔서 천주교회 묘원에 계셨고, 십삼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님은 묘원의 아버님 바로 곁에 계셨지요. 세월 지나며 더 좋은 곳에 모시기 위해 오래 준비한 일이었습니다. 주말의 분주한 시간을 피해 이른 아침에 수목장례를 치르기 위해 수목장지 근처의 한적한 마을에서 가족과 함께 머물렀습니다. 오백 년 된 큰 나무가 마을 한가운데에 서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그리고 뽀얀 안개가 자욱한 이른 아침, 수목장 묘원에서 두 분을 한 그루의 잣나무 아래에 전보다 더 가까이 바짝 붙여서 한 자리에 모시고 돌아왔습니다. 칠월 초순의 더위로는 그 동안의 경험치를 ..

[나무편지] 꽃 없어도 좋지만 그래도 꽃을 기다리게 되는 여름의 절집 나무

[나무편지] 꽃 없어도 좋지만 그래도 꽃을 기다리게 되는 여름의 절집 나무 조금 이르지 싶긴 해도 배롱나무가 붉은 꽃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장마 시작되면서 비가 세차게 내리고, 주말엔 삼십도 넘는 무더위를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겠지요. 우리의 여름을 붉고 화려하게 수놓는 아름다운 꽃, 배롱나무 꽃이 떠오르는 건 당연한 순서입니다.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곳곳에서 자라는 배롱나무들이 살살 꽃망울을 올리고 여름 채비를 마쳤으리라 짐작됩니다. 오래 전에는 따뜻한 남쪽에서만 자라던 나무이지만, 최근의 기후에는 중부지방에서도 너끈히 심어 키우게 된 나무입니다. 경상북도 구미시의 연악산(淵岳山) 자락에 자리잡은 천년고찰 수다사(水多寺) 마당 가장자리에 서 있는 배롱나무가 떠오른 건, 며칠 전 삼천포에서 ..

어지러웠던 우리의 봄날이 꼬리를 접고 멀리 돌아갑니다

[나무편지] 어지러웠던 우리의 봄날이 꼬리를 접고 멀리 돌아갑니다 봄날의 끝자락이면 우리 곁에서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화려하게 피어나는 꽃들이 있습니다. 모란 작약이 그 중의 하나이지요. 이미 오월 지나 유월 들어서서 한 주일이 지나는 참이어서, ‘아직 작약 꽃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은 하릴없이 심드렁했습니다. 예상대로 널따랗게 조성한 작약 화원의 꽃들은 한창 때를 지났습니다. 인천 장수동 인천대공원의 인천수목원 작약원 이야기입니다. 한참 때에 더 없이 화려하게 피었던 갖가지 작약 꽃들이 거개는 시들어 가는 중입니다. 그나마 뒤늦게 피어난 몇몇 꽃송이들만 작약의 화려함을 내려놓지 않았을 뿐입니다. 꽤 많은 작약들이 어우러진 곳이어서, 그 가운데 아직 싱그럽다 할 만한 몇 송이의 꽃을 찾아내는 데에는 ..

[나무편지] 고려 임난수 장군이 지킨 충절의 상징으로 살아남은 나무 한 쌍

[나무편지] 고려 임난수 장군이 지킨 충절의 상징으로 살아남은 나무 한 쌍 국립수목원이 있는 세종에 다녀왔습니다. 선입견일까요, 세종에서는 새로 단장한 새 도시만의 세련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정돈된 분위기가 때로는 알 수 없는 답답함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이곳이 사람이 많이 사는 행정 중심 도시라는 걸 생각하면 나쁘지 않습니다. 세종수목원 옆으로 곧게 뚫린 도로를 지날 때면 오래 전, 연기군 양화리이던 시절에 찾아오던 때가 저절로 떠오릅니다. 가을에 유난히 아름다운 은행나무 두 그루가 반기는 곳이었지요. 아름다운 마을이었습니다. 두 그루의 은행나무를 처음 찾아본 뒤로 이십 년도 더 넘게 흘렀습니다. 그 사이에 연기군은 세종시로 바뀌었고, 나무가 있는 양화리는 ‘세종시 연기면 세종리’로 바뀌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