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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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172

긴 겨울의 끝, 봄의 첫 자리에서 나무와 땅을 물들이는 붉은 꽃

[나무편지] 긴 겨울의 끝, 봄의 첫 자리에서 나무와 땅을 물들이는 붉은 꽃 남녘에선 복수초 매화 개화 소식이 빠르게 한 무더기씩 다가옵니다. 매화 피어나는 이 즈음에 함께 피어나는 붉은 꽃이 있습니다. 동백나무 꽃입니다. 동백나무의 개화를 이야기할 때마다 그 시기를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남쪽 바닷가 마을에서 자라는 크고 작은 동백나무들은 벌써 꽃을 피웠고, 싱그러운 채로 땅 위에 떨어진 꽃송이까지 다 시들어 스러졌을 겁니다. 그러나 동백나무 꽃의 명소라 할 수 있는 곳들에서는 삼월 들어서, 그것도 삼월 중순 넘어야 겨우 피어납니다. 개화시기를 한 마디로 모아서 이야기하기 어려운 까닭입니다. 충남 서천 마량리 동백나무 숲의 축제 준비 소식도 있습니다. 서천 마량리 동백나무 숲도 삼월 중순 되면 붉은 꽃을..

봄마중 채비에 나선 늦겨울 은행나무의 싱그러운 아침

[나무편지] 봄마중 채비에 나선 늦겨울 은행나무의 싱그러운 아침 이제 더 기다릴 게 없습니다. 이 즈음이라면 꽃샘바람 잎샘추위가 분명 댑차게 찾아올 걸 모르지 않지만, 나무는 그래도 봄마중에 나섭니다. 아직 사람들의 겉옷은 바뀌지 않았지만, 두꺼운 겨울 옷깃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에 담긴 한기는 한결 덜합니다. 이제는 겨울을 떠나보내고 화창한 봄 마중을 채비해야 합니다. 나무들이 언제나처럼 봄마중의 맨 앞자리에 나섰습니다. 꼭 한 해 전 이맘 때 찾아본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의 이 즈음 소식이 궁금합니다. 가을이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은행나무로 여기며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는 은행나무입니다. 크고 아름다운 은행나무로는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를 따를 나무 없을 겁니다. 대개는 온 잎이 노랗게 물드는 가을..

먼 곳에서 찾아와 피어난 꽃들 … 낯설어서 더 어여쁜 꽃들의 노래

[나무편지] 먼 곳에서 찾아와 피어난 꽃들 … 낯설어서 더 어여쁜 꽃들의 노래 찬 바람 피해 따뜻한 유리온실을 찾았습니다. 잠깐 짬을 내 다녀올 수 있는 작업실 근처의 작은 식물원, ‘부천 호수공원 수피아식물원’에 다녀왔습니다. 아카시아 꽃을 보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습니다. 세종시의 ‘국립 세종수목원’에서 노랗게 피어난 아카시아 꽃을 보았던 게 지난 해 이맘 때였거든요. 지나치듯 들를 수 있는 곳이어서 아무 부담이 없는 걸음이었지만, 목적이 있었던 탓으로 조금은 설��습니다. 과연 아카시아 꽃을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죠. 세종수목원에서는 지난 해 이맘 때 피었던 게 사실이지만, 유리온실 안의 나무여서 개화 시기를 단정할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안 피었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도 함께였습니다. ..

치앙마이 2천5백미터 고지에서 만난 만병초와 벚꽃, 태국수련

[나무편지] 치앙마이 2천5백미터 고지에서 만난 만병초와 벚꽃, 태국수련 도이인타논 국립공원(Doi Inthanon National Park)은 해발 2,565m의 도이인타논 산을 중심으로 한 구역입니다. 태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 해서 ‘태국의 지붕’이라고 불린다고도 합니다. 히말라야 산맥의 끝자락이라는 것도, 영화 ‘아바타’의 모티브가 된 산이라고도 알려져 있다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널리 알려진 국립공원이니만큼 가볍게 2시간 남짓 그리 힘들지 않게 걸을 수 있는 짧은 트레킹 코스를 개발해 관광용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관광객을 위해 트레킹 중에 살펴볼 관람 포인트를 여러 곳 설명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반가운 식물 군락지가 있었습니다. 만병초 군락지였습니다. ‘로도덴드론 Rhododendron 군락지..

설 뒤 갑작스런 한파주의보 속에도 꿈틀거리는 우리의 봄 기미

[나무편지] 설 뒤 갑작스런 한파주의보 속에도 꿈틀거리는 우리의 봄 기미 고향 마을 당산나무는 여전하겠지요! 고향 집 어머니 아버지 뵙고 돌아오셨을 설날, 잘 보내셨지요. 세상 떠나신 어머니 아버지의 넋이 묻힌 고운 동산은 어떠하던가요? 어딘지 모르게 조금씩 달라졌나요? 아니면 그때와는 눈에 띄게 달라졌던가요? 모두가 좀 달라졌다 해도 어릴 적 뛰놀던 마을 어귀의 그 큰 나무만큼은 여전하지 않던가요! 고향이랄 마을이 따로 있지도 않고, 어머니 아버지와 따로 떨어져 살아본 적도 없는지라, 가야 할 곳도 오라는 곳도 없는 처지이지만 명절 때라면 경험해 보지 않은 고향 마을을 그려보게 됩니다. 가보지 않은 곳을 그리워한 누구처럼 마음 속의 고향 마을을 떠올려 봅니다.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 생각이 뒤이어 유난..

겨울과 봄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살아있는 변증의 생명

[나무편지] 겨울과 봄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살아있는 변증의 생명 겨울 숲은 오묘합니다. 겨울은 숲에 담긴 생명의 신비로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계절입니다. 겨울과 봄의 아슬아슬한 경계, 그건 어쩌면 삶과 죽음의 경계, 생명의 변증이 살아있는 경계라 할 수 있습니다. 겨울 숲에는 다 익은 열매를 떨구는 나무와 다가오는 봄을 채비하며 꽃봉오리를 피워내는 나무가 함께 있습니다. 다른 생명의 힘을 빌려 열매를 널리 퍼뜨려 다음 세대의 번성을 꿈꾸는 나무가 남은 힘을 다 하는가 하면, 그 곁에는 다시 또 새 생명을 키우려 안간힘하는 나무가 있습니다. 삶과 죽음, 혹은 떠남과 만남의 변증이 오묘하게 어우러진 계절이 이 즈음입니다. 겨울 숲을 느끼기 위해 월든 호숫가 숲으로 들어갈 결심을 했다는 소로의 생각이 읽..

연못에서 깨달음을 얻은 절집의 불상 앞 마당에 서 있는 불가의 나무

[나무편지] 연못에서 깨달음을 얻은 절집의 불상 앞 마당에 서 있는 불가의 나무 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천 상동도서관의 나무강좌〉 소식부터 전해드립니다. 2017년부터 다달이 한 차례씩, 7년에 걸쳐 정기 강좌 69회와 두 차례의 ‘번외편’ 강좌까지 모두 71회를 이어온 부천 상동도서관의 〈나무강좌〉입니다. 올에는 비대면 대면 방식을 혼용해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상반기의 대면 강좌는 6월에 진행할 예정이고, 1월부터 5월까지는 네이버밴드를 통해 수강하실 수 있습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시고 ‘상동도서관 나무강좌 안내 페이지’를 통해 가입하시면 됩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기다리겠습니다. https://bit.ly/3X9NDCs

사람의 향기를 하늘에 전하는 향나무처럼 싱그러운 새 날 이루소서

[나무편지] 사람의 향기를 하늘에 전하는 향나무처럼 싱그러운 새 날 이루소서 새해입니다. 이천이십삼년 첫 《나무편지》에서는 향나무 이야기를 전합니다. 줄기에서 독특한 향이 난다는 뜻에서 한자로는 목향(木香)이라고도 쓰는 향나무는 소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와 함께 오래 사는 우리의 나무 가운데 하나입니다. 줄기에서 붉은 빛이 돌기 때문에 자단(紫檀)이라고 쓰기도 한 나무이지요. 대부분의 향기를 나무에서 만들어내던 오래 전에 민간에서 정성껏 심어 키운 나무입니다. 향나무의 향기는 몸과 마음을 맑게 할 뿐 아니라, 그 향기가 하늘 끝까지 뻗어나간다는 생각에서 하늘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중요한 수단으로 여겼습니다. 민간의 제사 때에는 물론이고, 불가의 여러 의식에서 향을 피우는 것도 그런 까닭에서입니다. 산림청 보..

저무는 해 보람되이 마무리하시고 복된 새해 즐거이 맞이하세요

[나무편지] 저무는 해 보람되이 마무리하시고 복된 새해 즐거이 맞이하세요 흰 눈이 참 많이 내린 크리스마스 시즌 지나고, 이제 이천이십이년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돌아보면 모두에게 여러 일들이 있었겠지요. 좋은 일 못지 않게 나쁜 일도 있었을 것이며, 슬픈 일 못잖게 기쁜 일도 많았을 겁니다. 언제나 그렇겠지만, 내내 좋은 일, 기쁜 일만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나쁜 일, 슬픈 일만 있지도 않았습니다. 달력 바꾸어 건다고 해서 그런 사람살이가 바뀔 리도 없겠지요. 이 땅의 큰 나무를 찾아, 나무에 담긴 사람살이의 무늬를 짚어내고, 나무 이야기를 엮어내는 일 또한 달라질 것 없습니다. 그래도 해가 바뀐다는 까닭에 지난 일들을 한 매듭 지어 돌아볼 짬을 가질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지 싶습니다. 이천이십삼년..

좋은 크리스마스 맞이하시고, 저무는 한 해 훌륭히 마무리하세요

[나무편지] 좋은 크리스마스 맞이하시고, 저무는 한 해 훌륭히 마무리하세요 시계가 멈췄습니다. 책상에 자리하고 앉아서 고개 들면 바라보이는 책장의 벽시계가 멈췄습니다. 고장은 아닐테고 언제 갈아끼웠는지 기억나지 않는 건전지가 다 된 모양입니다. 공교롭게 책상 위에 놓인 작은 탁상시계도 비슷한 시간에 건전지가 다 닳았는지, 함께 멈추었습니다. 시간을 보려면 휴대전화기를 들어올려 화면을 깨우거나 늘 켜있는 에이오디 기능의 손목시계를 들여다 봐야 하겠지만 잠시 시간을 모르는 채 가만히 앉아 있기로 했습니다. 두 개의 멈춘 시계가 작업실의 시간이 모두 멈추어놓았습니다. 새 건전지는 새해가 시작되는 이천이십삼년 일월일일에 새로 끼워넣을 생각입니다. 멈춘 시간 안에 가만히 머무르겠습니다. 크리스마스입니다. 한 해를..

사람의 보금자리를 헐어내면서까지 살려낸 한 그루의 큰 나무

[나무편지] 사람의 보금자리를 헐어내면서까지 살려낸 한 그루의 큰 나무 지난 번에 띄운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린 서울의 큰 나무, 〈서울 화양동 느티나무〉에 이어 오늘의 《나무편지》에서도 서울의 큰 나무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서울 화양동 느티나무〉 못지않게 널리 잘 알려진 오늘의 나무는 〈서울 방학동 은행나무〉입니다. 1968년에 지정번호 ‘서 10-1’의 산림청 보호수로 지정 보호해 오다가 2013년 3월에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승격 지정한 나무입니다. 〈서울 방학동 은행나무〉 이야기는 제가 요즘 연재중인 ‘경향신문’ 칼럼 ‘큰 나무 이야기’의 지난 11월1일치 지면에 소개하기도 했고, 이 칼럼은 제 홈페이지 ‘칼럼’ 게시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문의 지면이 너무 작아, 다 할 수 없었던..

느릅나무과의 대표 수종인 느릅나무 가운데에 최고의 느릅나무

[나무편지] 느릅나무과의 대표 수종인 느릅나무 가운데에 최고의 느릅나무 [나무편지] 느릅나무과의 대표 수종인 느릅나무 가운데에 최고의 느릅나무 이태 전 경상북도, 지난 해 충청북도 그리고 올해의 서울 지역까지, 골골샅샅 헤집어 찾아 다니며 만난 큰 나무 가운데에 인상적인 나무는 많이 있습니다. 《나무편지》에서 전해드리겠다고 마음 먹고 갈무리해 둔 폴더에 쌓인 파일들은 넘칩니다. 시간 지나면서 그냥 쌓인 파일들을 피씨의 ‘휴지통’으로 보내고 만 나무 이야기도 꽤 많습니다. 돌아보면 지난 몇 해 동안만 그랬던 건 아닐 겁니다. 나무를 찾아 정처없이 떠돈 지난 이십삼 년의 세월에서 만난 크고 작은, 그리고 참 아름다운 나무 이야기는 끝이 없습니다. 사람 이야기 못지 않게 나무 이야기도 끊임없이 이어질 수밖에 ..

도시에서 낙엽을 밟으며 가을의 시정을 느낀다는 것은……

[나무편지] 도시에서 낙엽을 밟으며 가을의 시정을 느낀다는 것은…… 낮 길이가 짧아지는 게 느껴지던 즈음에 어느 자리에서 그런 말을 했습니다. “낙엽 떨어진 거리를 걸으며, 가을의 시정詩情을 느낄 수 있으면 참 좋겠는데, 도시에서는 낙엽을 그냥 두지 않고 곧바로 쓸어버려서 아쉬워요.” 그러자 함께 하신 어떤 분께서 “낙엽을 그냥 두면 여러 문제가 생긴다”면서 “낙엽 쌓인 길이 미끄러워지면 넘어져서 크게 다칠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게 맞는 말이지요. 가을 기운을 느끼겠다고 공연히 폼 잡는 사이에 누군가는 미끄러워진 길을 걸으며 넘어져 크게 다칠 수 있는 게 맞는 말입니다. 도시라는 공간이 가지는 어쩔 수 없는 한계입니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지난 주에 잠깐 들이닥쳤던 비에도 도시 곳곳에..

의문의 원효로 ‘심원정터’를 말없이 지켜온 느티나무 노거수군

[나무편지] 의문의 원효로 ‘심원정터’를 말없이 지켜온 느티나무 노거수군 오늘의 《나무편지》는 다시 서울의 나무 이야기입니다. 용산문화원 뒤편 언덕에는 심원정(心遠亭)이란 정자 터가 있습니다. ‘심원정’이라는 현판이 걸린 정자가 있긴 하지만, 이는 새로 지은 정자이고 원래의 정자는 오래 전에 사라진 상태입니다. ‘심원정터’라고 해야 하는 거죠. 바로 곁에 용산문화원이 있고, 그 곁 언덕 위의 작은 공원이 바로 ‘심원정터’입니다. 알려진 대로라면 이 자리는 임진왜란 때에 명나라 쪽의 심유경(沈惟敬)과 왜군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강화를 교섭한 장소입니다. 그 증거로 ‘왜명강화지처비(倭明講和之處碑)’란 기념비까지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왜명강화지처비’를 비롯한 실제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고증에는 여러 ..

고려 공민왕의 흔적에서 조선시대 관원의 녹봉 관리 자취까지

[나무편지] 고려 공민왕의 흔적에서 조선시대 관원의 녹봉 관리 자취까지 ‘곤지암 소머리국밥’은 널리 알려졌지만, ‘곤지암’이 대관절 바위인지, 절집인지 헷갈릴 수 있습니다. 뭐 그런 예를 들자면 한이 없을 겁니다. 오늘 《나무편지》에서 이야기할 ‘광흥창’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 마포의 ‘광흥창역’은 잘 알아도 정작 ‘광흥창’이 뭐하는 데인지를 아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는 이야기이지요. 우리 사람살이의 긴 역사를 간직한 지역이 한두 곳 아니고, 긴 역사를 바탕으로 한 이름은 입에 익어도 그 내력을 우정 짚어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누구를 탓하려는 게 아니라, 도시 생활이라는 게 죄 그런 거 아닌가 싶다는 거죠. 오늘 《나무편지》에서 전해드리려는 나무가 바로 광흥창터 공민왕사당에 있는 회화나무와 느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