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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곡식과 새떼와 사람, 그리고 나무가 지어내는 아름다운 풍경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0. 10. 14. 23:27

[나무를 찾아서] 곡식과 새떼와 사람, 그리고 나무가 지어내는 아름다운 풍경

파란 가을 하늘 드높고, 들녘의 곡식은 누렇게 익어갑니다. 갈무리까지는 아직 약간의 시간이 남았습니다. 이 즈음 가장 바빠진 건 참새들입니다. 바람 더 차가워지기 전에 어서 배를 불리고, 다가오는 겨울을 채비해야 합니다. 바람이 거셌던지, 알곡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었던지, 들녘엔 벌써 비스듬히 누워버린 벼가 적지 않네요. 그 자리에 참새들이 떼를 지어 모여 들었습니다. 잘 익은 곡식을 챙기느라 짹짹이던 참세 떼가 누군가의 신호에 따라 일제히 날아오릅니다. 그러나 멀리 떠나지 않습니다. 바로 곁에 한 그루의 아름다운 나무 위로 오릅니다. 재우쳐 곡식을 쪼아먹던 참새들에게는 아주 근사한 쉼터입니다. 엊그제 만난 의성 서부리 향나무 풍경입니다.

○ 적은 인원으로 오붓이 진행할 《백두대간 나무기행》에 초대합니다. ○

오늘은 어렵사리 마련한 〈답사 프로그램〉부터 소개하겠습니다. 경북 봉화의 《백두대간수목원》에서 기획하고 진행하는 《백두대간 나무기행》 프로그램입니다. 지난 해 말에 기획해, 계절의 흐름에 따라 봄부터 진행하려던 프로그램이었으나, 모두 아시다시피 그 동안 미룰 수밖에 없었지요. 이제 여러 대책을 마련하여 가까스로 실행하게 된 귀한 프로그램입니다. 참가 비용은 모두 무료이고, 참가인원을 최소로 했기에 답사 과정은 더 오붓하고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여행이 쉽지 않은 시절이지만, 숲에서 가을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이 프로그램에 관심과 성원 보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여 살펴보시면 됩니다.

https://j.mp/30WB5DP <== 백두대간 나무기행 참가 신청 페이지

보호수로 지정해 보호하는 의성 서부리 향나무는 2백 년 전에 이 마을에 살던 한 사내가 마을 앞 들녘의 풍광을 더 아름답게 하기 위해 심어 키우던 나무입니다. 나무를 심은 사람은 이 마을에 살던 ‘김기한’이라는 분이라고 전합니다. 그러니까 2백 년 된 아직은 어린 나무이지요. 큰 나무라 할 수는 없지만, 더 없이 예쁘게 생긴 이 향나무는 가지를 넓게 펼치며 들녘 가장자리에 서서 마을 사람들의 들고남을 바라보았습니다. 더불어 들녘의 곡식이 익어가는 가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참새들에게 좋은 쉼터가 되어주기도 했지요.

○ 나무를 팔고는 큰 병에 시달렸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나무 ○

나무는 도담도담 잘 자랐지만, 나무만큼 오래 살 수 없는 사람은 나무를 그대로 둔 채 세상을 떠나야 하지요. 나무를 심은 김기한씨도 그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자 나무에 대한 생각보다는 당장에 먹고 사는 게 다급했던 김기한씨의 아들은 여러 생각 끝에 나무를 팔기로 했습니다. 워낙 아름다운 모습으로 잘 자란 나무여서 높은 값을 매겨 팔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해서라도 집안 형편에 보탬을 마련할 요량이었지요. 그의 생각처럼 나무는 금세 팔렸습니다. 나무수집상은 김기한씨의 아들에게 나무 대금을 먼저 지불했는데, 그날 밤부터 김기한의 아들에게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큰 병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더불어 싱그럽던 향나무도 가지를 늘어뜨리고 시들시들해졌지요.

아무래도 나무에 심고 키우던 아버지의 넋이 ‘아무리 살림살이가 어려워도 나무는 잘 지켜야 한다’는 경고 메시지의 신호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곰곰 생각한 끝에 김기한씨의 아들은 곧바로 나무 수집상을 찾아가 미리 받아두었던 나무 대금을 돌려주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그날 저녁부터 몸이 가뿐해지고, 며칠 동안 심하게 앓았던 큰 병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나무는 다시 처음에 나무를 심었던 사람처럼 마을 논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게 됐습니다. 다시 나무와 마을에 평화가 찾아왔고 들녘의 곡식을 쪼아먹다가 잠시 다리쉼을 하기 위해 찾아오던 참새들도 아무 걱정없이 나무를 찾아왔습니다.

○ 연륜이나 규모보다는 생김생김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향나무 ○

하마터면 팔려나갈 뻔했던 의성 서부리 향나무는 높이가 4미터밖에 안 되고, 가슴높이 줄기둘레는 1미터를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작은 나무인 셈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무를 지난 2008년에 보호수로 지정한 이유는 실제로 나무의 생김새를 보면 금세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참 예쁜 나무입니다. 물론 연륜이나 규모에서 의성 서부리 향나무보다 훨씬 오래 됐고, 더 큰 나무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요. 하지만 1백 년을 넘게 살아온 오래 된 향나무 가운데에 이만큼 아름다운 수형을 갖추고 살아 있는 나무를 찾아내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마을 살림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공간의 경계인 조붓한 아스팔트 도로 한켠에 아담한 크기로 홀로 서 있는 의성 서부리 향나무는 마을로 들어서는 길 멀리에서도 눈에 들어옵니다.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쌓은 화단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면 나뭇가지 아래 쪽의 신비로운 모습이 펼쳐집니다. 서서히 솟아오른 하나의 줄기 끝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나뭇가지들이 사방으로 고르게 펼쳐진 모습은 장관입니다. 부분적으로는 비틀리고 꼬이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곧게 뻗어나간 나뭇가지들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돋아났습니다.

○ 들녘의 곡식과 새떼와 사람, 그리고 나무가 이룬 정겨운 풍경 ○

나무는 행복한 표정입니다. 행복한 나무 아래에 펼쳐진 논에서 쓰러진 벼의 알곡을 쪼아내기에 여념이 없던 참새들이 후드득 날아올라 향나무로 달려듭니다. 떼를 지어 날아오르는 참새들의 날갯소리도 나무처럼 행복합니다. 참새들은 잠시 나뭇가지에 내려앉았다가 곧바로 먹을 것을 찾아 다시 논으로 날아갑니다. 사람이 심은 향나무 한 그루에 새들이 깃들며 온 세상의 평화가 서립니다. 아름다운 가을 한낮, 의성 서부리 들녘의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그 풍경의 중심에 다소곳하게 서 있는 향나무 이야기였습니다.

고맙습니다.

- 나날이 달라지는 가을 들녘의 풍경을 찾아 다시 길 떠나며 10월 12일 아침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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