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 긴 여운 아버지의 방 이채민 함경북도 길주군 영기동의 푸른 하늘과 탱자나무 울타리 빠져나온 저녁 연기와 철책선 넘어 온 기러기 떼 발자국이 빼곡했다 - 계간 『시와 시학』 2012년 봄호 마음을 움직인 것들을 현미경으로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쓴 시는 강가에 와 닿는 잔물결 같은 감흥을 준다...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2012.03.08
삼부연 폭포 삼부연 폭포 왜 울고 싶은 날이 없을까요 서러운 마음 뚜우뚝 떨어지고 떨어지고 혼절해버린 울음이 그네처럼 너울거리네요 꽃들이 죽어 별이 되다가 육신을 얻어 꽃이 되려던 별이 누군가의 시린 벽을 부여잡고 있네요 시퍼런 하늘을 장작 패는 날 바람처럼 도끼가 사방에서 날아드는 .. 타인의 슬픔 2008 2012.03.07
어떤 참회록 / 나호열 어떤 참회록 / 나호열 어둠으로 켜켜이 쌓여 있는 한 생애를 읽는다 으스러지도록 껴안았던 상대는 무엇이었을까 작은 물방울들이 으깨어져 안개로 흐느적거리는 실존의 외길을 날마다 조금씩 읽으며 조금씩 더 잊어버리며 한 장씩 넘기면 어둠 탓으로 돌리며 짚어 내려가던 아버지의 .. 칼과 집 1993 2012.03.04
장성 지날 때 장성 지날 때 총알 같은 것이 휘익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섬광 같은 것이 망막 속으로 텀벙 뛰어들었다 무엇을 그리 부여잡았는지 굳은살이 손금을 타고 넘을 때 눈 한 송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속도위반 통지서 고갯길을 숨차게 달려 넘었던 언제였나 나비 떼가 꽃으로 피던 겨울, 어느날.. 타인의 슬픔 2008 2012.03.04
적소 謫所의 그늘 적소 謫所의 그늘 -괴산 산막이길 들머리 왁자지껄 여럿이 가다보니 어느새 참나무 두 그루 수심 깊은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다 봄이었는데 한 뼘씩 비껴 떨어지는 햇살마냥 행운은 내 것이 아니었나보다 바위 틈에 뿌리를 내린 돌단풍 희게 웃고 있으나 목 빠진 소식 오지 않고 기다림의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2.03.04
사소한 감사 언제부터인가 토요일부터 휴일내내 거의 내 휴대전화는 잠잠하다. 우스개소리로 나이가 들어 이 세상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탓이라고 주절대기도 한다. 또 언제부터인가 전화기에 저장되지 않은 전화번호가 뜨게 되면 일부러 받지 않기도 한다. 대출을 해준다니 반갑.. 혼자 중얼거리다 2012.03.03
겨울밤 겨울밤 / 나호열 황소가 한 마리 들어온다 두 마리 들어온다 망나니의 칼이 허공을 가른다 틈을 막아야 했는데 틈으로 들어오는 손을 피해 태아처럼 온몸을 둘둘 둥글린 방이 먼저 허공에 뜬다 저 탯줄을 끊어야 해 손은 방 안을 황소처럼 헤집고 칼 비린내를 풍긴다 나는 허공에 갇히고, .. 타인의 슬픔 2008 2012.03.02
풍문의 땅 풍문의 땅 나는 가슴보다 작고 터벅터벅 먼 사막보다 넓은 땅을 가지고 있다 하루 안에 해가 뜨고 지는 광경을 볼 수 없어 말들이 바람처럼 내달리는 곳 영화에 물들었던 나의 전생이 잠든 그곳은 페허이다 썩을 것은 썩고 무너질 것은 무너졌으나 완강히 묻힐 것을 거부한 말들은 죽창처..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2.03.02
산에 들어 / 나호열 산에 들어 / 나호열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겨울 산에 들어 그 산이 품고 있는 한 권의 책을 읽어내고 싶었다 직립한 나무들의 선정과 곤줄박이 같은 작은 새들의 지저귐과 얼음으로 굳어 있는 말들과 낙엽 속에서 움트고 있는 새싹들을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주인이면서 주인임을 부.. 타인의 슬픔 2008 2012.03.01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2012.03.01 00:15 / 수정 2012.03.01 00:20 정강현 기자 커피 두 잔 값이면 좀 더 나은 존재로 비상할 수 있으니 … 당신은 이달에 책을 사느라 2만570원을 썼습니다. 지난해 대한민국 2인 이상 가구가 책 구입에 쓴 월평균 비용이군요. 통계청 발표에 따르자면 .. 뭇별이 들려주는 이야기(마음글) 2012.03.01
부유하는 존재를 향한 서정의 시선 -오정국 시집 - 『파묻힌 얼굴』 부유하는 존재를 향한 서정의 시선 오정국 시집 - 『파묻힌 얼굴』 나호열 (시인) 시가 정보의 언어로 구성되었다 하더라도 시는 정보를 전달하는 언어게임으로 사용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 비트겐슈타인 시의 새로운 지평 오늘에 있어서 문학, 특히 시의 앞길은 탄탄대.. 내가 쓴 시인론·시평 2012.02.29
이사 이사 나호열 강남 이 편한 세상에 그가 왔다 검은 제복 젊은 경비원이 수상한 출입자를 감시하는 정문을 지나 대리석 깔린 안마당에 좌정했다 몸이 반쪽으로 쪼개져도 죽지 않고 용케 당진 어느 마을 송두리째 뭉글어져 사라져도 용케 살아남았다 마을을 오가는 사람들의 머리 쓰다듬어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2.02.29
제 1부 내일이면 닿으리라 제 1부 내일이면 닿으리라 폭설 / 나호열 하늘이 똥을 누신다 무량하게 경전을 기다리는 사람들 위로 몇날 며칠을 똥을 누신다 거름이다 말씀이다 사람들이 만든 길을 지우고 몇 그루의 장송도 넘어뜨렸다 아우성에도 아랑 곳 없이 부질없는 쇠기둥을 휘게 만들었다 하늘에 방목한 것은 .. 타인의 슬픔 2008 2012.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