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속으로
사거리 껌벅이는 우리은행의 현금인출기에는 우리가 없다 사거리 건너편 국민은행에는 국민이 없다 며칠 째 참 만두 빚어 파는 푸른 트럭의 아줌마 보이지 않고 몇 년 째 신용불량자 장씨 즉석 짜장 봉고는 불법 주차 중이다 늘 막차를 타고 한강을 건너가는 구두 수선 아저씨는 오늘도 정직하게 헤진 구두를 깁고 부러진 우산을 밤늦도록 고쳤다 헌 주인이 망하고 새 주인이 들어선 지하 사우나 탕에서 뭉실뭉실 비누 냄새가 올라온다. 뽀얗게 불그스레한 얼굴들이 어둠 속에 섞이고 난 뒤에도 세상의 향기가 가시지 않는다 문득 이 세상의 향기는 완강한 세상에 몸을 부비는 우리도 아니고 국민도 되지 못하는 저들의 땀 때문이라는 생각이 꽃을 피운다 한없이 마모되어가는 딱딱한 비누가 어느 순간 쭈굴해진 엄마의 젖가슴처럼 뭉클하게 몸을 허무는 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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