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 향을 피우다 사이 사랑꽃은 일년 내내 핀다 땅에다 수없이 머리를 조아릴 뿐 난초는 몇 년에 한 번 은은한 향을 하늘에 바친다 적막을 자르는 비수처럼 초록은 날카롭다 사랑꽃과 난초 그 사이에서 평생을 헤매다 배운 말 뚝! 꽃이 떨어질 때 세상은 비로소 아름다워지는 것이거늘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7.07.23
뉘우친다 뉘우친다 산이 내 눈 앞에 서성거릴 때에는 나는 산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주저하며 힘들어하며 산을 넘어갔을 때 문득 등 뒤에서 산은 내게 아는 척을 한다 아! 저 헛기침 안다고 능청 떨었던 생의 아득한 거리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7.07.15
사랑은 사랑은 사랑은 꽃이 아니다 꽃 지고 난 후의 그 무엇 사랑은 열매가 아니다 열매 맺히고 난 후의 그 무엇 그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한다 이 지상에 처음으로 피어나는 꽃 이 지상에 마지막으로 맺히는 열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한다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7.07.14
어느 나무에게 어느 나무에게 이제 그곳에 가지 않습니다 눈 감고도 먼 길을 갈 수 있는데 왠지 눈 앞이 자주 흔들립니다 어느 날에는 한 페이지의 적막을 읽다 오고 또 어느 날에는 민들레처럼 주저앉아서 솜털 같은 생각들을 날려 보내기도 했었지요 한 그루 나무 앞 구름을 타고 가기도 하고 바람을 따라 터벅거리..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7.07.02
경강이라는 곳 경강이라는 곳 주인이 사라진 거미줄에 하늘이 걸려 있다 문은 하나인데 너는 출구라고 하고 나는 입구라고 우긴다 하늘이나 깊은 바다를 본 탓이다 푸름을 시간에 잘못 입력했던 까닭에 출렁거리는 현에 날개가 닿는 순간에도 눈빛이 맑다 참을성이 많은 주인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크게..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7.06.20
그림자 놀이 그림자 놀이 초대 받지 않았지만 나는 이곳에 왔다 내 자리가 없으므로 나는 서 있거나 늘 떠돌아야 했다 가끔 호명을 하면 먼 곳의 나무가 흔들리고 불빛이 가물거리다가 흐느끼듯 꺼지곤 했다 그림자는 우울하다 벗어버린 옷에는 빛이 빚으로 남아 있어 얼룩을 지우지 못한다 나는 내가 그립다 바다..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7.06.18
허튼 꿈 허튼 꿈 달려갈 때에는 가볍게 씨앗으로 날아올랐다 아주 멀었지만 모든 것을 내어주는 대지의 가슴은 깊이 꿈을 꾸기에는 한 겨울에도 따뜻했었다 그 마을로 바람이 데려다 주었을 때 잠시 꿈을 꾸고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 늘 뉘우침으로 뒤돌아보는 생처럼 깨어날 때에는 얼만큼의 아픔이 필요한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7.03.15
백발의 꿈 백발의 꿈 갑자기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리는 꿈을 꾼 그 젊은 날은 얼마나 서러웠는지 지금은 어느새 백발이 되어가는 내가 서러웠던 그 젊은 날을 꿈꾸고 있는 중 얼마나 하늘에 가까이 닿아야 만년설을 머리에 인 설산이 될 수 있을까 불화살 같은 햇빛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아무런 말씀도 쓰여지..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7.03.11
문 문 그가 문을 닫고 떠날 때마다 나의 생애는 오래 흔들거렸다 위태롭게 걸려 있던 별들이 우수수 떨어지기도 했고 정전의 암흑이 발자국들을 엉키게도 했다 세차게 닫히는 쿵하는 소리가 눈물을 한웅큼씩 여물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 두렵고도 즐거운 일이기도 하였다 우리는 역방향으로 빠르게 사라..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7.03.10
추억하는 소 추억하는 소 되새김질을 하는 소의 입을 자세히 살펴보다가 나는 그만 웃어버렸다 진득하게 흐르는 침과 어쩐지 외로워 보이는 입의 근육들과 간간히 보이는 새하얀 이빨. 소는 늘 서 있다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7.03.06
검 검 미간 사이로 이제는 지워지지 않는 주름살이 깊이 패여 있다 웃어도 지워지지 않고 눈을 감아도 흐려지지 않는다 메리 고 라운드 돌아가는 회전목마를 탄 웃을 때마다 꽃무더기 무너져 내리던 주인공 아프지 않게 시간이 할퀴고 간 흔적이다 그 검을 찾아라, 내어 놓아라! 몽환 속을 들락거리는 혀..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7.03.04
분리 수거 분리 수거 자루 앞에 붙여진 팻말대로 넣어 주세요 유리병, 팻트 병, 깡통, 스티로폼, 플라스틱 무엇인가 담겨져 있던 용기들이 미련없이 버려지는 어느 하루 어디다 넣어야 할지 망설여지는 머리 속으로 불쑥 들어왔다가 황급히 빠져나가는 손 뭉클하게 가슴을 건드린다 병은 병대로 깡통은 깡통대로..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7.03.03
사막의 금언 사막의 금언 목마른 자에게는 신기루를 보여주고 꿈을 가진 자에게는 길을 내어준다 몇 십 년 만에 한 번 그것도 한 순간 내리는 비에 눈을 뜨는 풀들과 애벌레들 부드러우면서도 잔인한 침묵의 혀에 매달려 있다 끝까지 가라 앞으로 가거나 뒷걸음질 치거나 맹목 盲目!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07.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