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양성에서 1 모양성에서 1 / 나호열 무너지고 틈 갈라지고 그 사이에 잡초 우거지고 그래 도 서운해 하지 말일 꺾이고 깨지고 풀어지는 판소리 한마당 가득하여 발길 이 깊으니 망루에 올라 할일없이 낮잠 든 노인네들 눈앞이 캄캄 하다 손길 발길 닿지 않으니 사람때 끼지 않아 벌서고 있는 공적비 누가 기억하고 .. 우리는서로에게슬픔의 나무이다97 2011.08.11
山幕 山幕 / 나호열 영양에서 봉화장 가는 군내버스 쉬엄쉬엄 일월산 고개 턱에 그예 펄썩 주저않는다. 무임승차한 해는 봉화 쪽으 로 서둘러 기울고 주막 여주인은 방금 소주 한 병을 딴 다. 에따 나도 한 잔 주쇼,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 내려갈 란다, 서둘러 山菊이 화장을 지우고 31번 국도도 따라서 파장.. 우리는서로에게슬픔의 나무이다97 2011.08.09
사과 사과 / 나호열 바람에 흔들리는 혼불 다가가서 보면 주먹만한 햇살덩이 청송에서 영양가는 31번 국도 옆에 서 있기만 해도 얼굴 붉어지던 여자 깨물어보고 싶던 앙큼한 속살 지금 언뜻 광주리 좌판에 먼지 뒤집어 쓴 저 청승스런 신맛! 우리는서로에게슬픔의 나무이다97 2011.08.07
노을 노을 / 나호열 어둠끼리 살 부딪쳐 돋아나는 이 세상 불빛은 어디서 오나 쓰러질 듯 쓰러질 듯 서해 바다 가득한 노을을 끌고 돌아오는 줄포항 목선 그물 속 살아서 퍼득거리는 화약냄새 우리는서로에게슬픔의 나무이다97 2011.08.03
격포에서 격포에서 / 나호열 사막을 미치도록 그리워했던 그 여자가 울고 또 울고 또 세 번을 울었다는 바다, 그저 풍문으로 들었을 뿐인 그 사연은 알며 치정이 된다. 면벽하듯 바라보니 밀려오는 파도 속에 내가 풀어야 할 문제와 단박에 깨우쳐야 할 해답이 까무러치고 까무러치고 이 파도 소리 들리냐고 잘 .. 우리는서로에게슬픔의 나무이다97 2011.07.30
곰소 염전 곰소 염전 / 나호열 누가 뿌린 눈물이기에 이렇게 아리도록 흰 어여쁨이냐 발가벗은 온몸으로 승천하는 것이냐 언젠가 숙명으로 다가왔던 바다는 없고 세월에 절은 이 짠맛! 우리는서로에게슬픔의 나무이다97 2011.07.28
아우라지 사랑 아우라지 사랑 / 나호열 동해 지나 백복령 넘기 전 무릉도원 있다는데 아리아리 전설 숨바꼭질 하듯 삼화사 절간 옮겨 숨었 다는데 때로는 모른 척 넘어가고 일부러 지나치기도 하는 것이 사랑이라기에 구름, 치마 위로 올리며 백복령 넘었다 아라리 듣기에 턱없이 가벼운 나의 삶 차마 쑥스러워 양수,.. 우리는서로에게슬픔의 나무이다97 2011.07.25
진부령을 넘으며 진부령을 넘으며 / 나호열 언제면 나도 황태가 될 수 있을까요 비비꼬인 사랑과 미움의 내장 해탈하고 죽어서도 말하고 싶은 천형으로 목구멍에 말뚝 박히고 매운 바람과 눈 맞으며 언제면 나도 철들 수 있을까요 이 세상 어디에도 맞지 않는 초점 죽어서도 죽도록 두들겨 맞아 그대의 시원한 입맛으.. 우리는서로에게슬픔의 나무이다97 2011.07.24
청간정에서 청간정에서 / 나호열 죽은 채로 이렇게 살겠다 불끈 쥔 주먹 같은 숯 검덩이 가슴 같은, 아니, 시커멓게 타버린 눈물 같은 솔방울 몇 개 달고 철 안든 대나무 곁에 서 있다. 두 눈에 불을 켜고 바닷속을 뒤집는 오징어배의 노동이 허약한 팔뚝에 낚싯줄처럼 걸리고 수평선에 목매고 싶은 그런 여름은 가.. 우리는서로에게슬픔의 나무이다97 2011.07.21
건봉사, 그 폐허 건봉사, 그 폐허 / 나호열 온몸으로 무너진 자에게 또 한번 무너지라고 넓은 가슴 송두리째 내어주는 그 사람 봄이면 이름 모를 풀꽃들에게 넉넉하게 자리 내어주고 여름에는 우중첩첩 내리쏟는 장대비 꼿꼿이 세워주더니 가을에는 이 세상 슬픔은 이렇게 우는 것이라고 풀무 치, 쓰르레미, 귀뚜라미 .. 우리는서로에게슬픔의 나무이다97 2011.07.18
춘천 가는 길 춘천 가는 길 / 나호열 속으로 울음 감추고서 울음 꼬옥 껴안고서 약속도 없이 천천히 걸어가는 거라고 떠밀리는 대로 등 내어주며 쉬임 없이 무엇이 될 거라고 큰 일을 할거라고 중얼중얼 흘러가다가 불끈 고개 치켜들고 오던 길 되짚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 물살 헤치며 태어난 곳 찾아가는 가쁜 .. 우리는서로에게슬픔의 나무이다97 2011.07.15
여행길 2 / 나호열 여행길 2 / 나호열 가난은 대개 큰 길에서 벗어나 있다. 가난은 항상 그래 왔다, 평범한 여행자는 간선도로를 벗어나는 경우가 없다, 오늘날 그는 각 州로 연결된 고속도로를 달린다. 그는 30년대의 웨일즈 지방을 묘사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마을들이 즐비한 팬실배니아 계곡에 들르지 않는다. 그는 열.. 우리는서로에게슬픔의 나무이다97 2011.07.15
여행길 1 / 나호열 여행길 1 / 나호열 그 가족은 에어컨, 자동 핸들, 자동 브레이크가 장치된 연분홍색 차를 타고 포장이 엉망이고 쓰레기, 남루한 건물, 벌써 오래 전에 땅 밑에 설치했어야 할 전봇대 등에 의해 더러워진 도시를 통과하여 피크닉을 떠난다. 그들은 상업광고에 의해 대부분 풍경이 가려진 시골을 통과한다.. 우리는서로에게슬픔의 나무이다97 2011.07.15
자서 自序 / 나호열 지난 세월의 흔적을 모아놓고 보니 남루일 뿐이다. 눈에 들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깨버리는 도공들의 형 형한 눈빛을 그리워하며 다시 하나의 약속을 한다. 조용히 적막 앞에 무릎 꿇기로, 함부로 말을 버리지 않 기로 한다. 아직도 떫거나 시다. 더 벌을 서야 한다. 1999년 초겨울 우리는서로에게슬픔의 나무이다97 2011.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