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길을 잃다 3 / 나호열 문득 길을 잃다 3 / 나호열 내가 반짝거릴 수 있는 것은 어딘가에 별들이 숨어있기 때문이지요 큰 별 하나가 아니라 작은 별 여러 개가 나뭇잎처럼 달려있기 때문이지요 빛나기 위해서는 어두움 그리고 바람이 필요합니다 힘센 바람은 아주 먼 곳까지 빛을 옮겨 놓습니다 슬픔도 빛나고 .. 우리는서로에게슬픔의 나무이다97 2012.10.30
문득 길을 잃다 2 문득 길을 잃다 2 / 나호열 한 사람 눈이 멀고 한 사람 말문이 막혔네 흐드러진 복사꽃마다 달빛이 타오르는데 밤길은 아직 멀었다 눈이 먼 길 말문이 막힌 길 손이라도 뜨겁게 잡아 저 새벽 너머 또 무슨 생각이 미치게 하겠는가 두 나그네 우리는서로에게슬픔의 나무이다97 2012.09.11
문득 길을 잃다 1 문득 길을 잃다 1 / 나호열 무거운 짐을 가득 지고 나귀는 앞질러 갔다 뒤처져 따르는 일기장이나 편지 같은 것 녹슨 추억의 꾸러미는 쓸데없이 무겁다 지친 울음으로 나귀가 나를 부른다 너는 어디에 있느냐 우리는서로에게슬픔의 나무이다97 2012.08.15
상사화 상사화 / 나호열 하행선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회덕인터체인지에서 호남고속도로로 접어들어 논산, 익산, 고개 숙인 만경 강 슬쩍 곁눈질하고 김제나 태인 그렇지 않으면 정읍에서 고창, 영광 쪽으로 빠져 이십칠 킬로 선운사 앞마당 사랑, 사랑 말들 많지만 진국 사랑을 볼 수 있.. 우리는서로에게슬픔의 나무이다97 2012.08.13
겨울 把溪寺 겨울 把溪寺 / 나호열 너무 빨리 그리고 너무 쉽게 지나쳐버린 삶 또는 죽음 헝클어진 바람 한 꾸러미 대숲에 놓아주려 흔적없이 푸르른 웃음으로 전생을 걸어가려 하네 아픔을 잊고 아픈 다리까지 잊어버릴 때 나무들이 뿜어내는 침묵이 더욱 짙은 향기로 퍼져가고 새들이 날아가네 수.. 우리는서로에게슬픔의 나무이다97 2012.08.11
만해시인학교 / 나호열 만해시인학교 / 나호열 탈옥한 죄수의 이름표를 매단 차를 풀밭에 버려두고 산길을 걷는다. 살아 지는 하루를 벗고 사라지는 길, 참 아득하다 어느 사람은 한풀이로 삼 년을 보내고 어느 사람은 삼 년을 침묵을 배우고 내려간 길, 배반할 줄 모르는 나무들아, 새들아, 벌레들아 모두들 안.. 우리는서로에게슬픔의 나무이다97 2011.12.02
멍든 빵 / 나호열 멍든 빵 / 나호열 푸르게 굳은 빵, 멍든 추억을 씹는다 밥만 먹고 살 수는 없어 이빨 자국 선연하게 물어뜯고 싶은 추억 이미 굳어버린 벌써 딱딱해져버린 사랑은 맛이 없다 밀밭 길을 밤새 미쳐 뛰어다닌 파랗게 물든 바람과 당분이 빠져 쭈글해진 세월 흔들리는 이빨 사이로 헝클.. 우리는서로에게슬픔의 나무이다97 2011.11.30
실크로드 / 나호열 실크로드 / 나호열 누가 이렇게 이쁜 이름 걸어놓고 황홀하게 죽어갔는가 무지개 그 양쪽 끝에서 터벅거리는 사랑 사막 지옥 우리는서로에게슬픔의 나무이다97 2011.11.28
도솔암 가는 길 도솔암 가는 길 / 나호열 표지판 일러주는 대로 걸었다 길 따라 마음은 가지 않았다 높은 곳 더 높은 곳으로 향하는 마음 속에서 조용히 자세를 세우는 나무들 죽은 듯 살아라 살아도 죽은 듯 하라 숨죽여 뿌리는 깊어지고 둥글어지고 머리와 멀어지는 아득한 깨우침 낮게 사랑하.. 우리는서로에게슬픔의 나무이다97 2011.11.07
연꽃 연꽃 / 나호열 진흙에 묻힌, 그리하여 고개만 간신히 내민 몸을 보아서는 안된다고 네가 말했다. 슬픔에 겨워 눈물 흘리는 것보다 아픔을 끌어당겨 명주실 잣듯 몸 풀려나오는 미소가 더 못 견디는 일이라고 네가 말했다. 우리는서로에게슬픔의 나무이다97 2011.09.25
내원암 가는 길 내원암 가는 길 / 나호열 몸에서 모과 향기가 나네 큰 길 벗어나 한참을 걸어도 욕계는 끝나지 않고 익숙해진 문과 헛된 이름들 그 사이를 지나는 몸만 무거워지네. 숲을 물고 산새는 어디로 가나 어디를 둘러보아도 모과나무는 없다 썩어가면서도 깨물고 싶은 그 향기, 먼 길 미련 버리지 못할 때 다리.. 우리는서로에게슬픔의 나무이다97 2011.09.22
彌勒를 지나며 彌勒를 지나며 / 나호열 거미줄 같은 주름살 퍼지고 또 퍼져 이윽고 거울이 깨졌다 희롱하듯 툭툭 건드리며 지나가는 바람에 잠 깨이는 희미한 웃음 여기에 나를 두고 간 사람을 어찌 잊겠느냐고 단단하게 고쳐먹은 마음도 가끔씩 흔들리는 늙은 은행나무와 함께 물든 때도 있었거니 때로는 울컥 오장.. 우리는서로에게슬픔의 나무이다97 2011.09.19
떠난다는 것은 / 나호열 떠난다는 것은 / 나호열 그리웁다는 것은 그 무엇이 멀리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함께 동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행하면서도 등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등 돌린 채로 등 돌린 채로 아무리 불러봐도 뒤돌아 보지 않는 것이다 그리웁다는 것은 아직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대가 있어 아.. 우리는서로에게슬픔의 나무이다97 2011.08.30
강화섬 강화섬 / 나호열 마리, 고려 쌍 돛대에 푸른 바람을 가득 먹여도 먼 바다로 나가지 못한다 뭍을 떠나지 못하는 배 강화섬은 그렇게 떠 있다 아득한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 참성단과 지석묘 그 사이에 웃음보다는 울음이 질펀하게 깔린 땅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아프게 삭인 눈물이 하도 많아 가슴.. 우리는서로에게슬픔의 나무이다97 2011.08.29
모양성에서 2 모양성에서 2 / 나호열 여기 이 자리에 그대가 서 있었고 저기 저만큼 그 때, 그대가 걸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이여, 체온이 닿지 않는 사랑은 쓸쓸하다. 함께 가기로 약속했던 곳 그 어디인가, 튼튼한 기둥이기를, 비바람 막 아줄 벽과 지붕이기를 우리 약속하지 않았던가, 추억.. 우리는서로에게슬픔의 나무이다97 2011.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