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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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와 시집에 대한 평론 99

후생(後生)

詩想과 세상 후생(後生) 경향신문 입력 : 2022.02.21 03:00 수정 : 2022.02.21 03:01 저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다 얼굴도 없이 뼈도 없이 맹물에도 풀리면서 더러운 것이나 훔치는 생을 살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하늘만 바라보면서 고고했던 의지를 꺾은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무엇이든 맞서 싸우되 한 뼘 땅에 만족했던 우직함이 나를 쓰러뜨렸다 나무는 벌거벗어도 실체가 없음의 다른 말이다 벌거벗어도 보일 것이 없으니 부끄럽지 않다 당신이 나를 가슴에 품지 않고 쓰레기통에 넣는다 해도 잠시라도 나를 필요로 할 때 기꺼이 나는 휴지가 되기로 한다 나는 당당한 나무의 후생이다 나호열(1953~) 나무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연필, 의자, 책상…. 연필은 글씨를 쓰는데, ..

겨울 숲의 은유

겨울 숲의 은유 살아남기 위하여 단 하나 남은 잎마저 떨구어 내는 나무들이 무섭다 저 혼신의 몸짓을 감싸는 차디찬 허공 슬픔을 잊기 위해서 더 큰 슬픔을 안아들이는 눈물 없이는 봄을 기다릴 수 없다 - 시집 『칼과 집』 (시와 시학 1993) 피할 수 없는 것과 피하지 않아야 할 것들 어떤 나무는 새잎이 나올 때까지 잎을 달고 있지만 대부분의 나무는 겨울이 올 때마다 모든 잎을 떨구고 온전히 벗은 몸으로 겨울을 이겨냅니다. 그것은 죽으려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고, 더 풍성하게 여름을 맞이하기 위한 처절한 삶의 몸부림인 것이지요. 혹자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실연의 슬픔을 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새로운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 그보다도 가장 확실하게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은 그 슬픔과 온전히 함께 하는 것이지..

나호열 시인의 시집 『안부』(밥북)를 읽고/한혜영

나호열 시인의 시집 『안부』(밥북)를 읽고/한혜영 나호열 시인의 시는 내면의 성찰과 반성이 주를 이룹니다. 나직한 톤의 음성이 따뜻하게 느껴지고요. 서정적이어서 편안하게 읽히면서도 공감하기에 좋습니다. 불친절한 시들 때문에 독자의 불만이 높은 때에 반갑고 고마운 시집이지요. 시인끼리만 알아먹는 시집이 아니고, 일반 독자하고의 소통이 원활한 시집이니 말이에요. 쉽게 읽히면서 독자의 감동까지 이끌어낸다는 거! 이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나름의 진지함과 깊은 사유가 없으면 절대로 쓸 수 없는. 그래서 시들이 자칫 어려워지지요. 공연히 비틀고 쥐어짜기도 하고. 물론 완성도나 문학성을 놓고 말하라면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것이 시지만 말입니다. 냉장고에서 꺼낸 달걀은 진화론의 지루한 서문이다 무정란의 하..

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시평 (14)나호열 시인, 「목발」

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시평 (14)나호열 시인, 「목발」 목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유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속박당한 사람들이 이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숱하게 부르짖었고, 쓰러졌고, 목말라했다. 자유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서 의식하는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고 에리히 프롬이 말한다. 김수영 시인은 생활인으로서 얽매인 자유와 이런 삶을 반성케 하는 1960년대의 강요가 빈한함에 대한 성찰과 비판을 통해 참여시의 한 행로를 만들어나갔다. 인간은 누구나 자유로운 존재로 살기 위해 정치, 경제, 사회에 변혁을 일으켜 의미 있는 삶을 찾고자 한다. 하지만 강력한 자본주의 힘에 침윤 당해 현재 우리는 많은 부분 자유가 억제된 채 살고 있다. 나호열 시인의 『안녕, 베이비 박스』에서 한 주제..

날 것의 이미지로 무지개다리를 건너가는 ‘나호열’ 시인

문예감성 2021 봄호 한국의 대표문인을 만나다 3 날 것의 이미지로 무지개다리를 건너가는 ‘나호열’ 시인 지난해 ‘안녕, 베이비 박스’ 시집을 출간하고 시의 철학적 사유가 이 시대의 독자들에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의미가 무엇인지 화두를 던져 준 나호열 시인을 만났다. 경복궁의 서쪽 서촌의 박미산 시인이 운영하는 ‘백석, 흰 당나귀’ 카페에서 늦은 점심으로 국수를 먹으면서 코로나로 지친 사람에 대한 허기를 달래는 인터뷰를 시작했다. 김남권: 안녕하세요. 선생님, 지난 11월 대전의 비단모래 시집 출판기념회에서 뵙고 두 달 남짓 지나서 다시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코로나가 일 년 넘게 극성을 부려서 외출 하기도 눈치가 보이고 친한 문인을 만나는 것도 꺼려지는 데 선뜻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안아주기

안아주기-나호열 김한결 기자 | eco@ecomedia.co.kr | 입력 2021-01-27 17:25:08 안아주기 (나호열) 어디 쉬운 일인가 나무를, 책상을, 모르는 사람을 안아 준다는 것이 물컹하게 가슴과 가슴이 맞닿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대, 어둠을 안아 보았는가 무량한 허공을 안아 보았는가 슬픔도 안으면 따뜻하다 마음도 안으면 따뜻하다 가슴이 없다면 우주는 우주가 아니다 - 『타인의 슬픔』, (연인M&B,2008) 서양 사람들은 처음 만나면 서로 안고 가벼운 입맞춤을 나누지만, 그들과 달리 우리는 사람을 만나면 악수가 고작입니다.그들과 문화가 다른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이나 내 가족만을 안아줍니다. 모르는 사람은 절대 안아주지 않습니다. 저는 한동안 단전호흡 수련을 한 적이 있..

내일이면 닿으리라

[박미산의마음을여는시] 내일이면 닿으리라 입력 : 2020-12-28 23:42:44 수정 : 2020-12-28 23:42:43 내일이면 닿으리라 나호열 내일이면 닿으리라 산새소리에 매화가 피고 시냇물 향기만큼 맑은 그 마을에 가 닿으리라 나그네는 밤길을 걸어야 하는 법 어둠이 피워내는 불빛을 보며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꽃인지 그것이 멀리 있어야 바라보이는 그리운 얼굴인지 알아 나그네는 또 걷고 걷는다 아침이면 닿으리라 그러나 머물지는 않으리라 모른 척 잊어버린 척 마을을 멀리 돌아가리라 2020년이 이틀 남았습니다. 올해는 꽃내음이 얼마나 향기로운지, 아침에 지저귀는 산새 소리가 얼마나 상쾌한지, 거미줄에 걸려있는 새벽 이슬이 얼마나 영롱한지, 어둠이 피워내는 불빛이 아름다운지를 느끼지 못하고 지나..

그리움의 대상과 방식 - 나호열 시집 <그리움의 저수지엔 물길이 없다>

그리움의 대상과 방식 - 나호열 시집 소설가 · 전 예 숙 시가 이미지와 직관을 포착해 내는 작업의 소산이라 한다면, 그 이미지를 감성적으로 잡아내 형상화 시키는 일, 그것이 시인의 몫이 아닐지. 시인의 작업 중에 빠져서는 안될 것이 있는데, 바로 작가의 세계관·철학이다. 왜냐하면 문학은 사유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좋은 시라고 말하는 작품들을 생각해 보라. 삶에 대한 깊은 사유를 함께 읽어갔을 것이다. 결국 사유를 떠난 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억지 같은 논리를 체험하게 된다. 또 어떤 문학 작품에서든 그 속에는 인간이 들어앉아 있는데, 작가는 그 인간을 여러 각도로 탐구하게 된다. 나호열 시인의 시에서도 인간에 대한 사유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데, 그 인간 존재 방식이 흥미롭다. 인간의 존재방..

[박미산의마음을여는시] 내일이면 닿으리라

[박미산의마음을여는시] 내일이면 닿으리라 입력 : 2020-12-28 23:42:44 수정 : 2020-12-28 23:42:43 내일이면 닿으리라 / 나호열 내일이면 닿으리라 산새소리에 매화가 피고 시냇물 향기만큼 맑은 그 마을에 가 닿으리라 나그네는 밤길을 걸어야 하는 법 어둠이 피워내는 불빛을 보며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꽃인지 그것이 멀리 있어야 바라보이는 그리운 얼굴인지 알아 나그네는 또 걷고 걷는다 아침이면 닿으리라 그러나 머물지는 않으리라 모른 척 잊어버린 척 마을을 멀리 돌아가리라 2020년이 이틀 남았습니다. 올해는 꽃내음이 얼마나 향기로운지, 아침에 지저귀는 산새 소리가 얼마나 상쾌한지, 거미줄에 걸려있는 새벽 이슬이 얼마나 영롱한지, 어둠이 피워내는 불빛이 아름다운지를 느끼지 못하고 ..

[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당신에게 말 걸기

[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당신에게 말 걸기 /나호열 이 세상에 못난 꽃은 없다 화난 꽃도 없다 향기는 향기대로 모양새는 모양새대로 다, 이쁜 꽃 허리 굽히고 무릎도 꿇고 흙속에 마음을 묻은 다, 이쁜 꽃 그걸 모르는 것 같아서 네게로 다가간다 당신은 참, 예쁜 꽃 [태헌의 한역] 攀話於君(반화어군) 此世無醜英(차세무추영) 亦無帶怒花(역무대노화) 有香因香麗(유향인향려) 有形緣形嘉(유형연형가) 弓腰又屈膝(궁요우굴슬) 埋心土肉裏(매심토육리) 天下許多榮(천하허다영) 悉皆休且美(실개휴차미) 君或不識此(군혹불식차) 吾人薄君傍(오인박군방) 吾君於吾何(오군어오하) 丁寧爲姸芳(정녕위연방) [주석] * 攀話(반화) : 말을 걸다. / 於君(어군) : 그대에게, 당신에게. 此世(차세) : 이 세상. / 無醜英(무추영..

은은함에 대하여

은은함에 대하여 황정산(시인, 문학평론가)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영화제목처럼 나이 들었다는 것이 대접받지 못한 시대이다. 오래된 삶의 지혜보다는 발 빠른 움직임과 적응력이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경험보다는 번득이는 아이디어가 잔잔한 성찰보다는 광기에 가까운 열정이 더 각광을 받는다. “미쳐야 성공한다.”라는 말이 이런 경향을 잘 대변해 준다. 문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시가 젊어졌다.”라는 말이 칭찬이 된 시대이다. 하지만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거칠어진다. 더 빨리 움직여야 하고 더 자주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미친 열정을 위해 나의 욕망을 더 끌어 올려야 한다. 이런 사회에서 한 발 물러난 점잖은 태도는 패배주의나 비겁한 도피로 여겨진다. 나의 욕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