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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와 시집에 대한 평론

나호열 시인의 시집 『안부』(밥북)를 읽고/한혜영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1. 22. 11:27

나호열 시인의 시집 『안부』(밥북)를 읽고/한혜영

나호열 시인의 시는 내면의 성찰과 반성이 주를 이룹니다. 나직한 톤의 음성이 따뜻하게 느껴지고요. 서정적이어서 편안하게 읽히면서도 공감하기에 좋습니다. 불친절한 시들 때문에 독자의 불만이 높은 때에 반갑고 고마운 시집이지요. 시인끼리만 알아먹는 시집이 아니고, 일반 독자하고의 소통이 원활한 시집이니 말이에요.
쉽게 읽히면서 독자의 감동까지 이끌어낸다는 거!
이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나름의 진지함과 깊은 사유가 없으면 절대로 쓸 수 없는. 그래서 시들이 자칫 어려워지지요. 공연히 비틀고 쥐어짜기도 하고. 물론 완성도나 문학성을 놓고 말하라면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것이 시지만 말입니다.

냉장고에서 꺼낸 달걀은
진화론의 지루한 서문이다
무정란의 하루가 거듭될수록
저 커다란 눈물 한 덩이의 기나긴 내력을
통째로 삶거나 짓이기고 싶은
약탈의 가여움을 용서하고 싶지 않다
비상을 포기한 삶은 안락을 열망한 실수
사막으로 쫓겨 온 낙타 아버지와
초원을 무작정 달리는 어머니의 말
그렇게 믿어왔던 맹목의 날들이
닭대가리의 조롱으로 메아리친다
다시 나를 저 야생의 숲으로 보내다오
삶에게 쫓기며 도망치다 보면
날개에 힘이 붙고
휘리릭 창공을 박차 올라
매의 발톱에 잡히지 않으려는 수만 년이 지나면
쓸데없는 군살과 벼슬을 버린
새가 되리라
진화론의 서문이 너무 길어
달걀을 깨버리는
이 무심한 밤
「진화론을 읽는 밤」 전문

언제부턴가 닭들의 미래(알)는 “통째로 삶거나 짓”이겨지는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비상을 포기하고 가축이 되면서부터 생긴 일이니 예고된 비극이지요. 화자의 삶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사막으로 쫓겨 온 낙타 아버지와/초원을 무작정 달리는 어머니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맹목으로 하루하루를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닭대가리의 조롱”을 문득 듣습니다. 축사의 달걀이란 ‘커다란 눈물 한 덩이’에 불과하다는 것도 깨닫고요. 무정란에게는 미래의 꿈도 희망도 없잖아요. 그러니 “다시 나를 저 야생의 숲으로 보내”달라며 절규를 하는 것입니다. “삶에게 쫓기며 도망치다 보면” “쓸데없는 군살과 벼슬을 버린/새가 되”어 날아오를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안락함이 결코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것. 은퇴한 사람이라면 바쁘게 일하던 과거가 오히려 그리워질 수도 있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도서관은
문이 없다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친숙한
무한정 대출이 가능하고
신분증이 필요 없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장서
그러나 단 한 권의 책만 가득한 곳

그곳으로 가서
나는 하늘을 우러르고
힘껏 팔을 벌려 감싸 안는다
딱딱한 침묵 속에
세월의 심장 소리
기다려라

나무는 내게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이다
「토마스가 토마스에게 12」-천태산 은행나무

숲을 세상에서 가장 큰 도서관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친숙한/무한정 대출이 가능하고/신분증이 필요 없는” 도서관이랍니다. 그도 그럴 것이 숲은 누구라도 들어설 수 있는 곳이니까요. “무한정 대출이 가능”하다는 것은 누구라도 나무를 볼 수 있다는 말이고요. 거저 보니까 신분증도 필요 없지요. 그렇다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장서”란 무슨 의미일까요? 책은 종이로 만들고 종이는 나무로 만드니까 나무 하나하나가 책인 셈이지요. 그런 책은 아무리 많아도 ‘나무’를 말하는, “단 한 권의 책”일 수밖에 없는 거고요.

개천의 지렁이가 용이 되려면
고시考試가 외길이었지
청춘을 불사르고 가는 벼랑길
십년 전쯤
우연히 만난 친구가 고시원에 있다 하기에 면박을 주었지
이제 용이 되기엔 너무 늦은 나이
허튼 꿈을 버리라고 했지
그믐달처럼 휘어진 그의 등이
마지막 모습
언젠가 고시원에 불이 나서
죽은 사람들
개천에서 태어나 하늘로 오르는
용이 되고 싶었던 사람들
한두 평 숨 쉴 수만 있으면 꿈도 꿀 수 있다고
저마다 고된 하루를 눕히던 고시원
맞다 맞아!
쪽방도 아니고 여인숙도 아니고 합숙소도 아니고 고시원이라니
어차피 인생이란 죽을 때까지 치러야 할 엄숙한 시험
꿈으로 불타오르는 용들의 작은 집
온 세상이 한 채의 거대한 고시원
맞다, 맞아!
「고시원」 전문

고시원의 화재 사건을 접하자 화자는 십년 전쯤에 우연히 만났던 친구를 떠올립니다. 고시원에 있다고 하는 친구에게 “이제 용이 되기엔 너무 늦은 나이/허튼 꿈을 버리라”고 했던 기억. 정색을 하면 친구가 민망할까봐 짐짓 농담처럼 말했지요. 그때 보았던 “그믐달처럼 휘어진 그의 등”을 화자는 아직도 지우질 못했습니다. “한두 평 숨 쉴 수만 있으면 꿈도 꿀 수 있다고/저마다 고된 하루를 눕히던 고시원”에 살 수밖에 없는 그의 처지에 측은지심을 가졌기 때문이지요. 그러다 중요한 사실을 깨닫습니다. “어차피 인생이란 죽을 때까지 치러야 할 엄숙한 시험”이기에 “온 세상이 한 채의 거대한 고시원”에 불과하다는.
맞습니다. 그러기에 밤늦은 시간까지 창문의 불은 꺼지지 않는 거겠지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중에는 시인고시를 보려고 머릴 싸매는 시인지망생도 있을 것입니다.

안부를 기다린 사람이 있다
안부는
별일 없냐고
아픈 데는 없냐고 묻는 일
안부는
잘 있다고
이러저러하다고 알려주는 일
산 사람이 산 사람에게
산 사람이 죽은 사람에게
고백하는 일
안부를 기다리는 사람과
안부를 묻는 사람의 거리는
여기서 안드로메다까지만큼 멀고
지금 심장의 박동이 들릴 만큼 가깝다
꽃이 졌다는 슬픈 전언은 삼키고
꽃이 피고 있다는 기쁨을 한아름 전하는 것이라고
안부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날마다 마주하는 침묵이라고
안부를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안부는 낮이나 밤이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리지 않고
험한 길 만리 길도 단걸음에 달려오는
작은 손짓이다
어두울수록 밝게 빛나는
개밥바라기별과 같은 것이다
평생 동안 깨닫지 못한 말뜻을
이제야 귀가 열리는 밤
안부를 기다리던 사람이
내게 안부를 묻는다
기다림의 시간이 구불구불
부끄럽게 닿는다
「안부安否」 전문

이 시는 ‘안부’에 대한 정의를 내려줍니다. 안부는 대단한 것이 아니라 내 안위를 궁금해 하고 걱정해 주는 사람에게 잘 있다고 안심을 시켜주는 것이라고. 그런데 우린 어떻게 하는가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며 안부 전하는 것을 묵살하기 일쑤지요. 아니면 멋대로 하거나. 꽃이 피면 꽃 피었다고 불쑥 연락하고, 첫눈이 내리면 첫눈이 온다고 불쑥 연락하고. 순전히 자기 기분에 따라 연락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말랍니다. “안부는 낮이나 밤이나/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리지 않고/험한 길 만리 길도 단걸음에 달려오는/작은 손짓”이니 수시로 연락하라는 거지요. “어두울수록 밝게 빛나는/개밥바라기별과 같은 것이” 안부이니 자주 전하고 살아야겠습니다.

세월은 거짓말도 용서한다
모질게 도망치듯 너를 보냈는데
때는 눈보라 치는 겨울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다리에서
내게 결별의 찬 손을 내민 것은
너였다고 말한다
다시 어디서든 너를 만날까 두려웠는데
내 눈 안에 너의 얼굴이 담겨 있어
눈물로 씻어내려 했다고 말한다
세월은 자꾸 흘러
거짓말은 거짓말의 진실이 되고
나는 견우 너는 직녀라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있을 때
온몸을 웅크린 채 땅바닥에 내쳐진
돌멩이는 딱딱한 눈물이었다
세월은 주어를 이렇게 바꿔주는 것이다
「미안하다 애인아」 전문

오래 전 화자가 먼저 이별을 고해놓고는 “결별의 찬 손을 내민 것은/너”였다고 말합니다. 모질게 연인을 돌려보냈던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이지요. “다시 어디서든 너를 만날까 두려웠”던 만큼 마음의 부담이 컸음을 의미하기도 하고요. “세월은 자꾸 흘러/거짓말은 거짓말의 진실”이 된다는 말에서는 ‘리플리 증후군’이 떠오릅니다. 거짓일지라도 스스로에게 계속 주입을 하다 보면 결국엔 참으로 믿는다니까요.
아무튼 이제는 ‘너’에게 미안했던 마음은 거의 잊었습니다. “나는 견우 너는 직녀라고/밤하늘의 별을 바라”볼 정도가 되었으니까요. 왜 견우와 직녀냐고요? 그들은 일 년에 딱 한 번 만나잖아요. 그렇듯 ‘나’는 어쩌다 ‘너’를 생각한다는 거지요. 이 정도가 되면 말랑말랑하던 눈물이 돌멩이처럼 딱딱해질 수밖에요. “결별의 찬 손을 내민 것은” ‘너’라고 주어까지 바꾸기에도 충분해보입니다. 세월은 깡패여서 못할 짓이 하나도 없으니까요.

잠시라도 틈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배웠다
빈틈은 사이와 뭐가 다를까를 생각하는 동안
아스팔트 갈라진 틈 사이로 개미자리가 몸을 틀었다 거센 바퀴가 지나가 뭉그러져도
시퍼렇게 되살아나 꽃까지 피워냈다 틈과 사이가 뭐가 다른가 생각하는 동안 한 일생이 지나갔다

「틈」 전문

화자는 ‘틈’에 대해서 부정적입니다. “잠시라도 틈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배웠”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어째서 틈을 보면서 “사이와 뭐가 다를까”를 생각했을까요?
‘틈’과 ‘사이’는 언뜻 비슷하지만 분명히 다릅니다. ‘틈’은 무엇을 노리거나 누구를 공격할 때 상대의 허점 따위를 말하는 거고요. ‘사이’는 공간적인 의미의 성격이 강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침묵과 침묵 사이’, ‘차와 차 사이’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두 단어를 하나처럼 쓰기도 하지요. “아스팔트 갈라진 틈 사이로 개미자리가 몸을 틀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빈틈은 사이와 뭐가 다를까” 하는 의문을 화자가 품었을 테고요.
어쩌면 우리는 구태여 구분하지 않아도 될 것에 의문을 품고 일생을 골똘하게 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틈 사이를 뚫고 올라온 개미자리처럼 자동차 바퀴에 짓이겨지면 그 상처를 딛고 또 일어서는 불굴의 의지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이기 때문이지요.

이것으로 나호열 시인의 『안부』에 대한 감상문을 마칠까 합니다. 코로나 시대에 위로받기 충분해 보여서 소개했는데, 공연한 사족으로 시 읽기를 방해했는지도 모르겠네요. 타국까지 시집을 부쳐주신 시인께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며, 끝으로 멋진 시 한 편 올릴게요. 나름대로 감상해 주시기 바랍니다.

바람으로 옷 한 번 지어보려고 바람을 키워 본 적이 있다 바람을 키워보려고 바람의 씨앗을 구하러 다닌 적이 있다 바람의 씨앗을 심으려고 한참을 헤매다 평생이 지나갔다
제 몸에서 빠져나가는 바람은 잡지 못하고 마음속에는 천지를 헤맨 구멍 난 고무신만 남았다고 구도사 스님이 입적했다
「아직은」 전문

[약력]
나호열
1953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났다. 울림시 동인(1980)으로 『우리 함께 사는 사람들』 1, 2, 3집에 작품을 발표하였고, 『월간 문학』(1986), 『시와 시학』(1991)으로 등단했다. (사)한국예총 정책연구위원장 겸 월간 『예술세계』 편집주간, (사)한국문화에술위원회 지역문화위원으로 문화예술정책분야에서 활동했다. 첫 시집 『담쟁이덩굴은 무엇을 향하는가』(1989) 이후 『눈물이 시킨 일』(2011), 『촉도』(2015),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알고 있다』(2017), 『안녕, 베이비 박스』(2019), E-Book 『예뻐서 슬픈』(2019) 등을 상재했으며, 현재 도봉문화원 부설 도봉학 연구소장으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