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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함에 대하여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0. 11. 24. 23:44

은은함에 대하여

 

황정산(시인, 문학평론가)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영화제목처럼 나이 들었다는 것이 대접받지 못한 시대이다. 오래된 삶의 지혜보다는 발 빠른 움직임과 적응력이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경험보다는 번득이는 아이디어가 잔잔한 성찰보다는 광기에 가까운 열정이 더 각광을 받는다. “미쳐야 성공한다.”라는 말이 이런 경향을 잘 대변해 준다. 문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시가 젊어졌다.”라는 말이 칭찬이 된 시대이다.

하지만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거칠어진다. 더 빨리 움직여야 하고 더 자주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미친 열정을 위해 나의 욕망을 더 끌어 올려야 한다. 이런 사회에서 한 발 물러난 점잖은 태도는 패배주의나 비겁한 도피로 여겨진다. 나의 욕망을 위해 치열한 열정으로 다른 사람을 짓밟고 이겨야 하는 강인한 힘만이 숭배의 대상이 된다. 나호열 시인은 이런 사회 분위기를 거슬러 잔잔함이 주는 아름다움을 다시 일깨운다.

 

몸은 낡은 집이 되어 가는데 바늘귀만한 틈만 있으면 뿌리내리는 풀처럼 푸르게 돋아오르는 것이 있다 누르고 밟아도 새 한 마리 날아와 우짖지 않고 고요만이 머무는 빈 집에 귀는 더 커져가고 눈은 더 맑아지는 법이다 들리지 않아도 보이지 않아도 혼자일수록 커지는 용서의 힘

- 「」어떤 힘 전문

 

시인은 늙어가면서 자신이 더 밝고 맑아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것은 고요를 알기 때문이다. “누르고 밟, “우짖는 격렬한 파괴적인 힘을 드디어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들리지 않아도 보이지 않아도에서처럼 보고 듣는 외부의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젊음의 힘이 아니라 그런 것들을 다 껴안아 포용할 수 있는 용서의 힘을 드디어 가지게 된 것임을 시인은 잔잔히 그리고 나직하게 우리에게 얘기해 주고 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여기에서 말한 어떤 힘은 바로 은은함의 힘이다.

은은함을 아는 사람은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세찬 빗줄기 꽂히는 아스팔트를 쪼아대는

비둘기의 투쟁과

몇 알 좁쌀을 입에 물고

무소유의 집으로 돌아가는

콩새가 전해주는 무언의 감사와

꽃도 아니라고 코웃음치던 들판에

십자가처럼 피어나는 개망초의 용서가

아직 뜨거운 심장에 한 장의 편지로

내려앉을 때

눈물은 오늘을 사는 나의 양식

오롯이 가식의 옷을 벗는

영원으로 가는 첫걸음

지상에서 배운 첫 낱말

혼자 울 때

아무도 호명하지 않은 꽃으로 핀다

- 면벽부분

 

시인은 세상의 사물들을 보면서 무소유용서를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시인이 이미 그것을 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것은 시인이 눈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서부터이다. 눈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세상의 슬픔을 다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슬픔을 벗어나기 위해 미친 듯 노력한다. 슬픔은 결핍에서 오는 것이고 결핍은 욕망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욕망을 채워 슬픔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많이 가지려 하고 싸움을 이겨 쟁취하려하고 높은 곳에 올라 힘을 가지고자 한다. 하지만 이렇게 슬픔을 두려워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할수록 슬픔은 더 커져가는 것이다. 시인은 이제 그것을 알게 된 나이가 된 것이다. 혼자 울 때는 바로 이 슬픔을 누구에게도 전가시키지 않을 내적인 힘이 생겼음을 의미한다. 그때 바로 누군가 불러주어 꽃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불러주지 않아 꽃이 된다.

슬픔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또한 부끄러움도 벗어날 수 있다.

 

옷의 역사를 생각해 본다

동물에서 사람이 되었던 날은

부끄러움을 알게 된 그 날

감추어야 할 곳을 알게 된 그 날

옷은 그로부터 넌지시 위계를 가리키는

헛된 위장의 무늬로

입고 벗는 털갈이의 또 다른 이름으로

진화하였다

 

...(중략)...

 

옷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싶다

부끄러움을 감추지 않고

가장과 위선의 허물이 아니라

마음에 새겨지는 문신으로

나를 향해 먼 길을 오는 이의 기쁨으로

이름 짓고 싶다

- 허물부분

 

허물은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잘못한 일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탈피한 곤충의 껍데기로 옷의 비유어이기도 하다. 시인은 이 두 의미를 교묘하게 잘 결합해서 시인의 생각을 전하고 있다. 옷이라는 허물로 우리는 우리의 허물을 덮으며 살고 있다. 하지만 시인은 옷이 마음이 문신이 될 수 있게 옷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은은함의 미학을 알아야 한다. 부끄러운 허물을 가리기 위한 옷은 헛된 위장의 무늬를 가지고 있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옷이나 첨단의 자극적인 패션, 값비싼 브랜드의 의상을 선호하는 것이 바로 그 대표적인 경우일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통해 본인의 약점을 위장하고 자신의 힘을 과시한다. 그때 옷은 허물이 된다. 하지만 반대로 은은한 내면의 표현이 될 때 그 옷은 자신을 내보이는 문신이 되고 나에게 오는 사람을 위한 환대의 표시가 된다.

 

아득한 먼 옛날 씨앗으로 움트던 날을 기억한다

생전에 그늘을 바라보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달디 단 열매를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음을 알면서도

흙속에 마음을 묻은 사람처럼

나도 한 그루의 작은 나무를 심는다

흰 구름처럼 부드럽고 가벼운 날개를 가진 나무는

어느 생에 저 창공을 박차고 올라

마악 사랑을 배우는 사람들의 눈빛을 닮은

별이 될 것이므로

나는 한 그루 나무속에 내 이름을 숨기려 하니

나이테 속에

당신의 숨결로 빚은

빛나는 시를 새겨 넣어다오

그대여

- 연리목을 바라보다부분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미래를 생각하는 일이다. 나의 미래보다는 이 나무를 바라보게 될 다른 누군가의 시간을 생각하는 일이다. 그렇게 해서 나무를 두고 나와 다른 누군가는 서로 마음의 소통을 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모든 나무는 다 연리목인 셈이다. 시인은 이런 것을 한 그루 나무속에 내 이름을 숨기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시인은 이렇게 은은한 사랑을 꿈꾼다.

 

사랑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아무리 뜨거워도

물 한 그릇 뎁힐 수 없는

저 노을 한 점

...(중략)...

다시 사랑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묻는 그대여

비록 사랑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을지라도

사랑이 사라진 세상을 꿈꾸는 사람은 없다

사랑은 매일 그대에게 달려오고

사랑은 매일 그대에게서 멀어지는 것

온혈동물의 신비한 체온일 뿐이다

- 사랑의 온도부분

 

뜨거운 격정의 사랑이라도 이룰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역사를 놓고 볼 때 사랑의 힘으로 전쟁과 억압과 공포를 이겨내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랑이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시인이 생각하는 사랑은 매일 그대에게 달려왔다 매일 그대에게서 멀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서로의 거리를 인정하며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은은한 것이다. 이 은은함이 사라지면 사랑은 파괴적 힘이 된다. 많은 전쟁과 폭력이 사랑의 이름으로 행해진 것만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은은함은 희미함이 아니다. 존재하되 과시하지 않는 것, 없는 것 같으면서도 모든 것의 근원에 뚜렷이 자리하는 것, 찬란하게 빛나지 않으면서도 빛깔을 잃지 않는 것이다. 이 은은함을 안다는 것은 성숙한 삶의 경지를 안다는 것이고 이 은은함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늙음을 받아들이지만 낡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호열 시인의 시들은 바로 이 은은함의 미학을 보여준다.

 

다시올 2020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