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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와 시집에 대한 평론

날 것의 이미지로 무지개다리를 건너가는 ‘나호열’ 시인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1. 4. 22. 13:41

문예감성 2021 봄호

 

한국의 대표문인을 만나다 3

 

날 것의 이미지로 무지개다리를 건너가는 ‘나호열’ 시인

 

 

지난해 ‘안녕, 베이비 박스’ 시집을 출간하고 시의 철학적 사유가 이 시대의 독자들에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의미가 무엇인지 화두를 던져 준 나호열 시인을 만났다. 경복궁의 서쪽 서촌의 박미산 시인이 운영하는 ‘백석, 흰 당나귀’ 카페에서 늦은 점심으로 국수를 먹으면서 코로나로 지친 사람에 대한 허기를 달래는 인터뷰를 시작했다.

 

김남권: 안녕하세요. 선생님, 지난 11월 대전의 비단모래 시집 출판기념회에서 뵙고 두 달 남짓 지나서 다시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코로나가 일 년 넘게 극성을 부려서 외출 하기도 눈치가 보이고 친한 문인을 만나는 것도 꺼려지는 데 선뜻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시인이 하는 카페라서 그런지 조용하고 운치가 있어서 편안합니다.

 

나호열: 반갑습니다, 오늘 평창에서 올라 오셨나요?

 

김남권: 네, 선생님. 오는 길에 시간 여유가 있어서 잠깐 경복궁에도 들렀습니다. 오랜만에 들른 조선의 왕궁에서 저는 일제가 경복궁의 대부분의 전각을 허물고 그 목재들을 팔아 군수물자를 조달하는데 썼다는 생각이 나서 허전하고 쓸쓸했습니다.

 

나호열: 나도 가는 길에 경복궁에 들러봐야겠네요,

 

김남권: 선생님은 1986년 월간 문학으로 등단하셨는데 문단에 입문하시게 된 동기를 말씀해주세요.

 

나호열: 사실 그 무렵에는 등단을 해야 한다거나 시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뚜렷했던 것은 아니에요. 80년 무렵부터 [울림시]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우연히 지인의 소개로 월간 문학에 원고를 보내게 되었고, 운 좋게도 그 작품이 뽑히게 되면서 문단에 처음 이름을 올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김남권: 지난해 ‘안녕, 베이비 박스’라는 시집을 출간하셨는데 주변의 반응은 어떤가요?

 

나호열: 우리나라도 어느덧 OECD 국가 중에서 저출산 상위 랭킹을 다툴 정도로 심각한 인구졀벽 구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아마도 베이비 박스를 운영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지 않나 생각 될 정도로 심각하지요. 왜곡된 페미니즘과 청년들의 출산기피 현상,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세상을 마치 거대한 베이비박스로 만들고 있지 않나 하는 위기의식에서 제목을 ‘안녕, 베이비 박스’로 시집을 출간하게 되었는데 사실 나 혼자서만 심각하게 받아 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할 정도로 반응이 예상보다 부진해 내가 계속 시를 써야 하나, 고민도 했습니다.

 

김남권: 저는 시집이 좋아서 완독하고 에스앤에스에 올리기도 했는데요. 선생님 시의 묵직한 울림이 철학적 사유와 깨달음을 주기도 하거니와 너무 무겁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은 적당한 긴장과 풍자와 상징성이 살아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나호열: 다행입니다. (웃음)

 

김남권: 선생님의 시집을 살펴 보다가 우연히 ‘’안아주기‘라는 시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잠깐 낭독해 보겠습니다. “어디 쉬운 일인가/나무를, 책상을, 모르는 사람을/안아 준다는 것이/물컹하게 가슴과 가슴이 맞닿는 것이/어디 쉬운 일인가/그대, 어둠을 안아 보았는가?/무량한 허공을 안아 보았는가/슬픔도 안으면 따뜻하다/미움도 안으면 따뜻하다/가슴이 없다면/우주는 우주가 아니다”

 

정재찬 교수는 이 시를 보고 ‘누군가를 안아준다는 것이 쉬운 것 같지만 쉽지 않다. 모르는 사람과 가슴 맞댄다는 건 참 힘든 일이다. 선의조차 의심받기 쉬운 요즘 세상에서 더욱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어려운 순간을 넘어 일단 안아주게 되면 슬픔도 따뜻해지고 미움도 따뜻해지는 법이다. 어쩌면 내가 안 은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어둠, 허공, 슬픔, 미움일지 모른다. 그것을 다 안주는 것이다. 그런 가슴이 없다면 부모가 아니고 신도, 성인도 아니다. 가슴 없는 우주는 우주가 아니듯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도 이 시를 보면서 일 년 넘게 코로나로 악수도 제대로 못하고 포옹도 못하고 얼굴도 못 보는 시간들이 지속되는 요즘의 세태에 꼭 필요한 시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특히 마지막 행, ‘가슴이 없다면 우주는 우주가 아니다’라는 말은 ‘가슴이 없으면 엄마는 엄마가 아니다’라는 말처럼 들려 그 따뜻한 가슴의 위로가 절실한 건 누구보다 저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호열: 그렇지요. 안아 준다는 건 슬픔도 미움도 고독도 치유하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사람이 사람의 체온으로 따뜻함을 느끼는 것만큼 큰 위로가 없는 것 같아요.

 

김남권: 그리고 또 요즘의 시기와 어우러져 큰 울림으로 생각나는 시가 있습니다. ‘북’이라는 시인데요. 저는 이 시도 좋아서 몇 번을 읽어 보았습니다.

 

‘북은 소리친다/속을 가득 비우고서/가슴을 친다/한 마디 말 밖에 배우지 않았다/한 마디 말로도 가슴이/벅차다/그 한 마디 말을 배우려고/북채를 드는 사람이 있다/북은 오직 그 사람에게/말을 건다/한 마디로/평생을 노래한다“ 저는 이 시를 보면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가 생각났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눈이 먼 송화가 동생 동호를 만나 북을 치고 쇠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떠올라 어쩌면 북은 우리 내면의 소리를 끌어내 치유하는 힘을 지니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감동이 컸습니다.

 

나호열: 사실 이 시는 1999년 서산의 개심사에 갔을 때 노을 지는 시간, 마침 저녁 예불을 위해 법고루에 올라 북을 치는 젊은 스님을 보고 그 뒷모습이 너무도 고독해 보여 쓴 시입니다. 그 때 그 느낌을 보고 한 호흡에 뱉어냈는데 이렇게 한 호흡으로 쓴 시로 ‘매화’라는 시도 있습니다. 이 시는 마이산에 등산을 갔을 때 암 마이산 정상에 등정을 마치고 내려 오는 길에 만난 매화를 보고 단숨에 쓰게 되었지요. 사실 나는 이렇게 한 호흡에 쓰는 걸 좋아해요. 그리고 그렇게 초기의 이미지를 잡고 나면 가능하면 그 이미지와 감흥을 살리기 위해 다듬지 않는 것이 저의 오랜 습관이기도 합니다.

 

김남권: 선생님은 경희대 대학원에서 철학박사를 받으셨지요? 그래서 그런지 시 속에 철학적 사유가 깊게 배여 있습니다. 오래 씹을수록 고소하고 감칠맛이 나는 음식처럼 선생님의 시는 곱씹을수록 진국이 우러나오는 느낌입니다. 특히 요즘 시들은 철학적 사유나 깊이는 빠진 채 언어유희에만 집착하여 공감도 감동도 얻기 힘들고 자기만족에 가까운 시들이 판을 치는 실정에서 철학을 전공하신 분으로 철학이 시에 접목되는 가자 ㅇ큰 장점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나호열: 저는 20대 초반부터 ‘모든 예술은 죽음에 관한 초월이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게 되었는지도 모르지요. (웃음)

 

결국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빼놓고 삶을 이야기할 수 없지요. 사람의 바탕엔 늘 죽음이 깔려 있어야 하고 죽음의 이면에는 치열한 삶이 동행하고 있는 것이지요. 죽음의 심리적인 방어를 통해 삶의 쾌락은 죽음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엄연한 질서를 인정할 때 자신의 존재에 대한 깨달음과 방향이 보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 시는 니힐리즘과 아나키즘이 바탕이 되어 삶과 죽음, 생명과 자연이 공존하는 현실에 대한 순응이랄까, 관조랄까, 그런 생각들이 교차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결국 죽음은 깨닫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은 내일을 건너가는 절벽에서 무지개 다리를 건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누구나 하루하루를 꿈이라는 것을 안고 내일로 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나는 이런 삶과 죽음의 문제와 직면하여 90년대 한동안 절필을 했다가 철학을 바탕으로 쓴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시인으로 인정 받기에 이르렀지요. 그래서 내 시 전반에는 서정성과 철학, 말과 글에 대한 아름다운 애정이 묻어 있다고 해야 할까요?

 

김남권: 수십 년 동안 시를 쓴다고 끄적거리고 있는 제가 부끄럽습니다. 철학적 사유와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을 더 깊이 가져야 하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자리에서 파괴의 시학이라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파괴의 시학과 낯설게 하기의 의미가 어떻게 다를까요?

 

나호열: 예술은 기본적으로 천재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젊었을 때 천재성이 발휘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서서히 천재성이 발휘되기도 합니다. 그 천재성은 결국 노력이 담보 되어야 하지만 꾸준한 학습을 통해서 완성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파괴의 시학은 시인은 아방가르드가 되어야 하고,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는 시도를 꾸준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옛 것에 지나치게 연연하지 말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일에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직도 시인이 되려면 멀었습니다. 이것은 내가 나에게 던지는 독백입니다. 날 것의 이미지를 살리는 시인이 진짜 시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무엇을 살리고 있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남권: 선생님은 존경하는 시인이 있으신지요?

 

나호열: 아흔이 넘은 연세에도 꾸준히 날 것의 시를 쓰고 계신 이생진 선생님과 백 수로 타계하신 황금찬 선생님과 같은 인품과 시의 결을 닮고 싶습니다.

 

김남권: 마지막으로 좋은 시를 쓰려면 어떻게 써야 할까요?

 

나호열: 시를 능숙하게 쓴다고 잘 쓰는 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소신껏 뱉어 내는 것이 좋은 시가 아닐까요?

 

김남권: 장시간 솔직하게 좋은 말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의 시집에서 독자들이 꼽은 좋은 시가 있습니다. 이 시들을 감상하며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더 아름답고 빛나는 시로 독자들 가슴에 새로운 불을 지피는 신축년 한 해가 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나호열 자선시 10편

촉도

 

경비원 한 씨가 사직서를 내고 떠났다

십 년 동안 변함없는 맛을 보여 주던 낙짓집 사장이

장사를 접고 떠났다

이십 년 넘게 건강을 살펴 주던

창동 피부비뇨기과 원장이 폐업하고 떠났다

 

내 눈길이 눈물에 가 닿는 곳

내 손이 넝쿨손처럼 뻗다 만 그곳부터

시작되는 촉도

 

손때 묻은 지도책을 펼쳐놓고

낯선 지명을 소리 내어 불러 보는 이 적막한 날에

정신 놓은 할머니가 한 걸음씩 밀고 가는 저 빈 유모차처럼

절벽을 미는 하루가

아득하고 어질한 하늘을 향해 내걸었던

밥줄이며 밧줄인 거미줄을 닮았다

꼬리를 자른다는 것이 퇴로를 끊어 버린 촉도

거미에게 묻는다

 

 

있으나 마나

 

월화수목금금

휴일에도 생계를 이으려 험한 세상으로 나가는 아내에게

아무 말 못했다.

 

미안하다 내가 못나서

이 말은 마음 저 천리 밖에 있고

뭉툭한 돌멩이 하나 정수리에 닿는다

에구구 있으나 마나 한 인간아!

 

늦은 밤 고개 들어 도시의 손톱달을 본다

너도 있으나 마나

그러나 흐린 날이든 맑은 날이든 달은 떠오르고

끊임없이 이울고 벅차오른다

시궁창에도 빛살무늬를 남기고

풀벌레 울음에 넌지시 손을 내민다

내 그림자만 봐도 마음 든든하다고

늙어 가는 아내가 저만큼 달려오듯이

 

가끔씩

 

가끔씩 나는 옷섶에 손을 넣어 본다

심장이 뛰고 있는지

마치 우편함 속으로 손을 밀어 넣을 때

약간의 금속성 차가움 다음에 찾아오는 홍조처럼

팔딱거리는 먼 발자국 소리

 

봄이 언제 단번에 달려오던가

보여 줄 듯 말 듯 앵돌아 몇 번 뒷걸음 친 후에

그만큼 애꿎게 한 사내를 불 지르지 않던가

 

가끔씩 나는 심장속에 손을 넣어 본다

새싹이 돋았는지

무슨 꽃이라도 몇 송이 볼 요량으로 더듬어 보다가

불량한 짓거리 들킬 때처럼

화들짝 꼬집어보는 봄날의 꿈

이미 가고 없는지

다시 오기는 하는지

 

스물두 살

-전태일

 

너도 걸었고 나도 걸었다

함께 스물두 살을 지나가면서

너는 맨발이었고 나는 평발이었을 뿐

티눈이 박이는 세월을 막지 못하였다

어쩌랴 너는 스물두 살에 멈추어 섰고

나는 쉰하고도 여덟 해를 더 걸었으나

내가 얻은 것은 평발이 된 맨발이다

나는 아직도 스물두 살을 맴돌고 있고

너는 아직도 더 먼 거리를 걷고 있을 터

느닷없이 타오르던 한 송이 불꽃

하늘로 걸어 올라가 겨울밤을 비추는 별이 된 너와

그 별을 추운 눈으로 바라보는 중늙은이

걸어 걸어 스물두 살을 지나가면서

너는 맨발이었고 나는 평발이었을 뿐

같은 길을 걸었으나 한 번도 뜨겁게 마주치지는 못하였다

 

 

지렁이

 

천형은 아니었다

머리 함부로 내밀지 마라

지조 없이 꼬리 흔들지 마라

내가 내게 내린 약속을 지키려 했을 뿐이다

뿔 달린 머리도

쏜살같이 달려가는 시간의 채찍 같은 꼬리도

바늘구멍 같은 몸속으로 아프게 밀어 넣었을 뿐

 

지상을 오가는 더러운 발자국에

밟혀도 꿈틀거리지 않으려고 지하 생활자가 된 것은 아니다

주변인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외톨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햇볕을 좇아 하늘을 향해 뻗어 가는 향일성의 빈손 보다

악착같이 흙을 물고 늘어지는 뿌리의 사유 옆에서

거추장스러운 몇 겹의 옷을 부끄러워했을 뿐

제자리를 맴도는 세상에서

빠르거나 느리거나 오십 보 백 보

허물을 벗을 일도

탈을 뒤집어쓰다 황급히 벗다 얼굴을 잃어버리는 일도

내게는 없으나

온몸을 밀어 내며 나는 달려가고 있다

이 밝은 세상에서 어두운 세상으로

온몸을 꿈틀거리며 긴 일획을 남기며 가고 있다

 

 

염막을 지나며

 

수평선 너머 난바다가 가슴속으로 밀려들어 온 날부터

행복한 천형은 시작되었다

 

푸르고 울렁거리는 그 말

바다의 살을 발라내는 한 여름이 지나고

저녁노을

그 불길의 그림자를

허물어져 가는 창고 쪽으로 늘어뜨리자

그제야 바다는 남김없이 제 몸을 화염에 던져주었다

 

사리로 남은 흰 꽃

발이 없이도 천 리를 가고

생의 행간에 슬며시 발자국을 남기는 법

 

염막 같은 한 사내가 수없이 되뇐 빛나는 눈물 속에는

독과 약이 함께 부화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

 

바람과 놀다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들이 더 많이 살고 있는

고향으로 갑니다

어느 사람은 서쪽으로 흘러가는 강이냐 묻고

어느 사람은 죽어서 날아가는 먼 서쪽 하늘을 그리워합니다만

서천은 에둘러 굽이굽이 마음 적시고

꿈을 입힌 비단강이

어머니의 품속 같은 바다로 잦아드는 곳

느리게 닿던 역은 멀리 사라지고

역 허름한 여인숙 어린 종씨는

어디서 늙고 있는지

누구에게 닿아도 내력을 묻지 않는 바람이 되어

혼자 울다가 옵니다

 

골드스타

 

블룩한 배불때기 등 뒤로 감춘

티브이가 눈을 감았네

전기충격을 심장에 꽂아 넣어도

쿨룩거리는 신음만 흘러나오네

그의 이름은 골드스타

다름 말로 하면 고 올드 스타

올드는 늙음 아니면 낡음

늙거나 낡아야 별이 된다고

쓰레기도

재활용품도 아닌 별이 된다고

밤하늘엔 그리운 사람

그리도 보이지 않네

 

신탄리행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 사람 없다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는 사람 없다

가슴 서늘해지는 끝이라는 말

더 이상 갈 수 없는 마지막 역에서

얼마나 나는 부끄러워지는가

온기 가득했던 한 잔의 차를 다 마시기도 전에

작별의 편지 한 장 다 쓰기도 전에

이렇게 당도해버린 낯 선 곳에서

산 속으로 숨어드는 길섶에 무성한

찔레꽃, 하얀 찔레꽃

그 찔레꽃이 죽어 햇빛을 접은 나비로

출렁거리는 내 그림자를 밟는다

사람이 아득하여 숨을 필요도 없는 閑村에

벌거벗어도 깊어보이는 시냇물은 어디로 가는가

산정을 넘어가는 구름에서 내릴 때

차표는 필요하다

이 생에서 내릴 때 나는 아카시아 향을

시냇물 소리를, 애기똥풀의 작은 꽃잎을

내 영혼의 역을 지키는 그 사람에게 전해줄 수 있을까

수취인 불명의 편지처럼 붉은 화인을 안고

나는 다시 나에게 돌아오고 있다

 

 

강물에 대한 예의

 

아무도 저 문장을 바꾸거나 되돌릴 수는 없다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에서 끝나는 이야기인지

옮겨 적을 수도 없는 비의를 굳이 알아서 무엇 하리

한 어둠이 다른 어둠에 손을 얹듯이

어느 쪽을 열어도 깊이 묻혀버리는

이 미끌거리는 영혼을 위하여 다만 신발을 벗을 뿐

추억을 버릴 때도

그리움을 씻어낼 때도 여기 서 있었으나

한 번도 그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구나

팽팽하게 잡아당긴 물살이 잠시 풀릴 때

언뜻언뜻 비치는 눈물이 고요하다

 

강물에 돌을 던지지 말 것

그 속의 어느 영혼이 아파할지 모르므로

성급하게 건너가려고 발을 담그지 말 것

우리는 이미 흘러가기 위하여 태어난 것이 아니었던가

 

완성되는 순간 허물어져 버리는

완벽한 죽음이 강물로 현현되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