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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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_ 벽 / 추성은

2024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_ 벽 / 추성은 벽 / 추성은 죽은 새 그 옆에 떨어진 것이 깃털인 줄 알고 잡아본다 알고 보면 컵이지 깨진 컵 이런 일은 종종 있다 새를 파는 이들은 새의 발목을 묶어둔다 날지 않으면 새라고 할 수 없지만 사람들은 모르는 척 새를 산다고, 연인은 말한다 나는 그냥 대답하는 대신 옥수수를 알알로 떼어내서 길에 던져두었다 뼈를 던지는 것처럼 새가 옥수수를 쪼아 먹는다 몽골이나 오스만 위구르족 어디에서는 시체를 절벽에 던져둔다고 한다 바람으로 영원으로 깃털로 돌아가라고 애완 새는 컵 아니면 격자 창문과 백지 청진기 천장 차라리 그런 것들에 가깝다 카페에서는 모르는 나라의 음악이 나오고 있다 언뜻 한국어와 비슷한 것 같지만 아마 표기는 튀르크어와 가까운 음악이고 아마 컵 ..

[172] 건상유족(褰裳濡足)

[정민의 세설신어] [172] 건상유족(褰裳濡足)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8.21. 23:31업데이트 2012.08.28. 16:37 굴원의 『초사(楚辭)』 「사미인(思美人)」에 나오는 한 구절. “벽라 넝쿨 걷어내려 해도 발꿈치 들어 나무 오르기 귀찮고, 연꽃으로 중매를 삼고 싶지만 치마 걷어 발 적시고 싶지는 않네.(令薜荔以爲理兮,憚擧趾而緣木. 因芙蓉而爲媒兮,憚褰裳而濡足.” 지저분한 벽라 넝쿨을 말끔히 걷어내고 싶지만, 나무를 타고 오를 일이 엄두가 안 난다. 연꽃을 바쳐 사랑하는 여인의 환심을 사고 싶은데, 옷을 걷고 발을 적셔가며 물에 들어가기는 싫다. 『후한서(後漢書)』「최인전(崔駰傳)」에도 이런 말이 있다. “일이 생기면 치마를 걷어 발을 적시고, 관이 걸려있어도 돌아보지 ..

[대한민국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

막차와 첫 차 사이 4시간 쓱싹쓱싹…신도림역 우렁각시들 [대한민국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 중앙선데이 입력 2023.12.30 00:41 업데이트 2023.12.30 23:0 김홍준 기자 신수민 기자 구독 SPECIAL REPORT ‘당신이 잠든 사이’에 신도림역이 다시 태어났다. 지난 15일 막차가 들어온 직후 시작한 물청소 작업은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은 오전 3시10분 경에 끝났다. 유형순씨가 낮고 빠른 자세로 밀대질을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여기서 잠자는 차가 들어오면 출동해야죠. 어. 들어오나 보다.” 지난 15일 오전 1시14분, 신도림역 4번 승강장으로 ‘잠자러 오는 차’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신도림역의 어제 기준 막차이자 오늘의 첫차가 될 7523호였다. 대기하던 역무원들이 들어가 주로 ..

종로의 새 명소 익선동

“익선동은 서울의 자궁” 우리 소리 울려퍼진 풍류의 고향 중앙선데이 입력 2023.12.30 00:01 [근대 문화의 기록장 ‘종로 모던’] 종로의 새 명소 익선동 서울은 만원(滿員)이다. 소설가 이호철은 그렇게 말했다. 그때가 1969년, 인구 500만 명을 육박한 상황에서 그렇듯 비명을 질러댔다. 사람이 살 곳 아니라지만 사람이 살려고 서울로 모이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처럼 ‘서울불(不)서울’이다. 그러나 지금도 늘 익선동 주변을 도는 이른바 종3(종로3가) 세대가 우리 세대에 수두룩하다. 아직도 이곳에서 사람들을 만난다. 익선동 하면 늘 추웠던 기억이 흐른다. 사람을 떠나게 해도 돌아오게 하는, 무언가 알지 못하는 힘을 느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불야성을 이루는 포장마차길 따라 정처 없는 ..

문화평론 2024.01.02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1]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문태준 시인 입력 2024.01.01. 03:00업데이트 2024.01.02. 14:18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 되므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김종삼(1921-1984) 일러스트=박상훈 김종삼 시인이 이 시를 발표한 때는 등단한 지 서른 해 가까이 되었을 때였다. 거의 서른 해 동안 시를 썼..

연말 서점가 휩쓰는 쇼펜하우어 열풍

대한민국은 왜 200년 전 꼰대 독일 철학자에 빠졌나 [아무튼, 주말] 연말 서점가 휩쓰는 쇼펜하우어 열풍 이혜운 기자 입력 2023.12.30. 03:00 요한 셰퍼가 그린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초상화.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대학교 도서관 “현명한 사람은 적절한 거리를 두고 불을 쬐지만, 어리석은 자는 불에 손을 집어넣어 화상을 입고는 고독이라는 차가운 곳으로 도망쳐 불이 타고 있다고 탄식한다.”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사회를 ‘불’에 비유했다. 인간관계에서 꼭 필요한 것은 ‘정중함과 예의’라고도 했다. 그는 ‘고독’을 찬양하고 ‘허영심’을 경계했다. 괴팍하고 냉소적이던 200년 전 독일 철학자에게 2023년 대한민국이 푹 빠졌다. 현재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위는 강용수의 ..

철학 강의실 2024.01.02

거룩한 낭비

거룩한 낭비 중앙일보 입력 2024.01.02 02:35 고진하 시인·목사 적설 20㎝, 폭설이다. 털 장화를 꺼내 신고 우선 마당과 집 앞의 도로에 길이라도 내려고 넉가래를 들고 나선다. 함박눈 덮인 도로엔 동네 작은 개들이 몰려나와 겅중겅중 뛰어다닌다. 경로당으로 통하는 마을 길의 눈을 넉가래로 다 밀고 집안으로 들어오니, 돌담 밑 장독대에 쌓인 눈을 빗자루로 털어낸 그녀가 마당에서 눈덩이를 뭉쳐 굴리고 있다. “찰눈이라 잘 뭉쳐지네요.” 그래, 오늘은 하늘이 선사한 공일(空日). 담 너머로 눈 덮인 마을을 내려다보니 세상은 속계에서 선계로 탈바꿈했구나. 저 황홀한 선계에 들어 아무 일도 않고 눈사람처럼 우두커니가 된들 누가 뭐라 하랴. 나는 동심의 눈빛 반짝이는 그녀 곁에서 눈사람 만드는 걸 거들었..

철따라 길따라 쌓은 추억… 돌아봐도, 다시봐도, 또 보고 싶구나

철따라 길따라 쌓은 추억… 돌아봐도, 다시봐도, 또 보고 싶구나[박경일기자의 여행] 문화일보 입력 2023-12-28 09:10 업데이트 2023-12-28 09:11 오지의 전설로 불리는 ‘마장터’로 가는 길. 마을이 지워진 자리에 심어진 낙엽송만 하늘을 찌를 듯 자라고 있다. ■ 박경일기자의 여행 - 올해의 여행 BEST 5 한 해를 또 보내는 세밑입니다. 지난 1년 동안 CULTURE&LIFE는 여러 곳을 다녀왔습니다. 올해 다녀온 여행지 중에서 다섯 곳을 가려 뽑았습니다. 영웅담에 가려져 있던 장쾌한 전망의 명소도, 1700년 전 소망을 불상으로 깎아놓은 곳도, 한때 전설이었던 첩첩산중의 오지마을의 자취도 있습니다. 길게 이어진 열도(列島)에 놓인 다리를 딛고 섬을 건너다니기도 했고, 35년의 시..

살아남는다는 것은 투쟁입니다, 기적입니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투쟁입니다, 기적입니다 중앙일보 입력 2024.01.02 02:51 업데이트 2024.01.02 03:29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올 한 해를 잘 살아낼 수 있을까. 잘 살아내기 위해서는 일단 생존하는 데 성공해야 한다. 지난 연말에도 가자지구에는 폭탄이 떨어지고 사람들이 연이어 죽어 나갔다. 이 시각 살아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비극적 사태를 간신히 모면한 생존자들이다. 국내로 눈을 돌려도 마찬가지다. 출생, 노인 빈곤, 자살에 있어 최악의 선두를 다투는 나라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살고 있었던 게 아니라 살아남고 있었다. 근원 모를 전염병으로부터, 느닷없는 재해로부터, 예고 없는 불운으로부터, 돌발적인 사고로부터 살아남고 있었다. 다들 살아있는 게 기적이다. 만국..

김영민 칼럼 2024.01.02

2024년입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나무편지] 2024년입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1,212번째 《나무편지》 ★ 2024년입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나무와 더불어 풍성하고 건강한 나날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그 곁에 《나무편지》가 함께 할 수 있음을 더 없이 큰 영광과 감사로 마음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제게도 올에 해야 할 일들이 적지 않습니다. 지난 해에 마음먹었지만 채 마무리하지 못한 일도 있고, 또 새로 시작해야 할 일도 있습니다. 모두가 우리 곁의 큰 나무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뜻을 새기는 일입니다. 직장에 갑작스레 사표를 내고 나무를 찾아다닌 지 26년째입니다. 제대로 된 준비도 갖추지 못한 채 《나무편지》를 처음 띄운 건 2020년 5월 8일이었으니, 그것만도 25년 된 일입니다. ..

[211] 성탄절 불빛 속에서

[양해원의 말글 탐험] [211] 성탄절 불빛 속에서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23.12.29. 03:00 성탄절 새벽에 울린 소리는 찬송가가 아니라 화재 경보였다. 아파트 이웃들이 부리나케 피하는 와중에 젊은 아버지가 목숨 던져 딸을 살려냈다. 일곱 달 난 아기 다칠세라 포대기로 감싸 안은 채. 부모와 동생 먼저 피신시키고 정작 자신은 빠져나오지 못한 이도 있었다. 그런 아득한 상황이 닥치면 어찌 할까,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는데…. 입으로는 엔간해서 하지 않는 표현을 글로 쓰고 말았다. ‘농담을 던지다, 미소를 던지다, 눈길을 던지다’처럼. 말로 하자면 어색하기도 하려니와, 판에 박은 듯 ‘던지다’를 꼭 써야 하느냐는 궁금증이 든다. ‘질문하다, 농담하다, 미소 짓다, 눈짓하다’ 해도 괜찮을 법한데..

[45] 시간의 반짝임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45] 시간의 반짝임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입력 2022.12.23. 03:00 안준, Gravity 010, 2014 영하의 날씨가 이어지고 내린 눈이 녹지 않아 곳곳에 설경이 아름답다. 이런저런 불편함도 있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이니 그래도 뭐 나쁘지 않지 싶다. 그러고 보니 이맘때엔 유난히 따뜻하고 사랑스러우면서도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이 인기다. 해가 기우는 추운 겨울엔 우리에게 유난히 더 온기와 사랑과 기적이 필요한 것일 게다. 놀라운 일들은 현실의 보이지 않는 이면에서 잉태되어서 주어진 조건에 순응하지 않는 인간의 고뇌와 열망을 먹고 성장하여, 결국 어느 날의 세상을 반짝이게 만든다. 안준 작가의 ‘원 라이프(One Life)’ 연작 중 ‘그래비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