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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당선시

2024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_ 벽 / 추성은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1. 4. 14:41

2024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_ 벽 / 추성은

벽 / 추성은

죽은 새

그 옆에 떨어진 것이 깃털인 줄 알고 잡아본다

알고 보면 컵이지

 

깨진 컵

이런 일은 종종 있다

 

새를 파는 이들은 새의 발목을 묶어둔다

 

날지 않으면 새라고 할 수 없지만 사람들은 모르는 척 새를 산다고, 연인은 말한다

나는 그냥 대답하는 대신 옥수수를 알알로 떼어내서 길에 던져두었다

뼈를 던지는 것처럼

 

새가 옥수수를 쪼아 먹는다

 

몽골이나 오스만 위구르족 어디에서는 시체를 절벽에 던져둔다고 한다

바람으로 영원으로 깃털로

돌아가라고

 

애완 새는

컵 아니면 격자 창문과 백지 청진기 천장

차라리 그런 것들에 가깝다

 

카페에서는 모르는 나라의 음악이 나오고 있다 언뜻 한국어와 비슷한 것 같지만 아마 표기는 튀르크어와 가까운 음악이고

 

아마 컵 아니면 격자 창문과 백지 청진기 천장이라는 제목일 것이고

 

새장으로 돌아가라고……

아마 그런 의미겠지

 

연인은 나 죽으면 새 모이로 던져주라고 한다

나는 알이 다 벗겨진 옥수수를 손으로 쥔다

 

쥐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컵은 옥수수가 아니라는 것

 

노래도 아니고

격자 창문과 백지 청진기도 아니고

 

진화한 새라는 것

위구르족의 시체라는 사실도

 

새의 진화는 컵의 형태와 비슷할 것이다

그리고 끝에는 사람이 잡기 쉬운 모습이 되겠지

손잡이도 달리고 언제든 팔 수 있고 쥘 수도 있게

 

새는 토마토도 아니고 돌도 아니기 때문에 조용히 죽어갈 것이다*

 

카페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건 어디서 들어본 노래 같고 나는 창가에 기대서 바깥을 본다

 

곧 창문에 새가 부딪칠 것이다

깨질 것이다

 

 

감각·사유·언어를 오가며 빚어낸 ‘미래의 시인’

詩 부문 심사평

정끝별·시인 문태준·시인

 

시는 긴장이고 충돌이다. 도전이고 모험이다. 새로운 시는 안전이나 완전과는 멀리 있다. 뛰어난 시는 지금-여기에서 저기-너머를 꿈꾸게 한다. 신인에게 기대하는 시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본심에 오른 열두 분의 작품 중 세 분의 작품을 대상으로 논의가 집중되었다. ‘졸업’ 외 2편은 거침없이 활달하다. 젊은 세대의 구어적 말맛과 비약적 대화를 극대화하여 시적 긴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있다. 그러나 그 경쾌함이 겨냥하는 것이 불분명할 때가 잦아 맥이 풀리기도 한다.

‘무인 가게’ 외 5편은 절제된 안정감이 돋보였다. 농(濃)과 담(淡)을, 완(婉)과 곡(曲)을 살려 시를 의미화하고 전경화하는 재능은 시인으로서 큰 자산이다. 시대적 징후를 잘 포착한 「무인 가게」는 당선작으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단지 다른 시편들에서 보여준 설명적 부분을 덜어내고 특유의 응집력으로 시적 개성을 확보하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