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가시나무 호랑가시나무 막막하게 무작정 달려들던 저 밀물과 지독하게 내 가슴을 훑고 빠져가던 저 썰물이 무엇이 다른가 늘 가까이 머물렀으나 먼 수평선을 바라보기만 했던 어리석음이 오늘은 왜 이리 기쁜 것이냐 내 심장이 뛰고 있는 것은 철썩거리는 누구의 숨결이 와 닿는다는 것 그 누구도 망설이는 발..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0.12.26
북 북 북은 소리친다 속을 가득 비우고서 가슴을 친다 한 마디 말 밖에 배우지 않았다 한 마디 말로도 가슴이 벅차다 그 한 마디 말을 배우려고 북채를 드는 사람이 있다 북은 오직 그 사람에게 말을 건다 한 마디 말로 평생을 노래한다 시집 <<당신에게 말걸기>>, 2007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0.12.22
긴 편지 긴 편지 風磬을 걸었습니다 눈물이 깨어지는 소리를 듣고 싶었거든요 너무 높이 매달아도 너무 낮게 내려놓아도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에 우두커니 오래 있다가 이윽고 아주 오랜 해후처럼 부둥켜 않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이지요 와르르 눈물이 깨질 때 그 안에 숨어 있던 씨앗들..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0.12.21
절 벽 절 벽 / 나호열 절벽을 뛰어내리는 일과 절벽을 기어오르는 일이 어느 것이 더 힘든 일인지 모르지만 눈 질끈 감고 뛰어내리면 삶은 순간에 끝나고 기를 쓰고 절벽을 기어오르는 삶은 오래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담쟁이나 나팔꽃 같은 넝쿨들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그들이 올라가야 할 벽..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0.12.20
그 신호등은 나를 서게 한다 그 신호등은 나를 서게 한다 / 나호열 산으로 들어서는 그 길목에 신호등이 생겼다. 파란 불이 들어와도 건너가는 이 없고 붉은 불이 들어와도 멈춰서는 이 없는 신호등은 저 혼자 붉어졌다, 노래졌다 파래진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파란 신호등이 들어와도 서고 붉은 신호등이 와도 멈추어 선다. 어느 날..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0.12.19
어떤 말씀 어떤 말씀 뼈 없는 동물이 되라 하셨네 겨울 잠인지 동안거인지 봄이 될 때까지 기다리라 하셨네 닫힌 문을 통해 길을 열라 하셨네 봄이 오지 않기를 기도했네 차라리 삭풍에 매 맞는 것이 행복하다고 눈. 사람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0.12.16
두 나무의 대화 두 나무의 대화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까닭은 당신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당신 옆에 내가 서 있을 때 내가 아름다워지기 때문이야 당신이 내게 필요한 까닭은 내가 당신 곁에 서 있을 때 당신이 아름다워지기 때문이야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0.12.14
날것 날것/나호열 내가 포획하려는 것은 고요 그러니까 날것이다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그러니까 퍼덕거리며 날아야 하는 것으로 생선인 것이다 아! 싱싱함이여 머리를 치고 꼬리를 잘라내자 침묵이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보아라, 거추장스런 껍질은 허망한 겉옷일뿐 붉거나 창백하게 하얀 살을 발라..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0.12.13
야래향 夜來香 야래향 夜來香 내 마음 아는지 모르는지 야래향 한 그루 내게로 왔다 봄 지나도록 묵묵부답이다가 여름에서 가을 가는 길목 씨앗이 까맣게 타들어갈 때 웃는 듯 마는 듯하다 더듬더듬 말로 적어낼 수 없는 저 향기 환상의 날갯짓으로 밤을 적신다 어쩌란 말인가 시린 겨울 마음 밖으로 밀어내어도 죽..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0.12.11
지렁이 지렁이 천형은 아니었다 머리 함부로 내밀지 마라 지조없이 꼬리 흔들지 마라 내가 내게 내린 약속을 지키려 했을 뿐이다 뿔 달린 머리도 쏜살같이 달려가는 시간의 채찍같은 꼬리도 바늘구멍 같은 몸 속으로 아프게 밀어 넣었을 뿐 지상을 오가는 더러운 발자국에 밟혀도 꿈틀거리지 않으려고 지하생..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0.12.08
빈 의자 빈 의자 오래 기다리라 하셨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 있어도 찾아오신다 하셨습니다 산이 일러주는 거대한 침묵을 가슴에 안고 강물의 고단한 다리를 쉬게 하고 싶은 작은 나의 꿈은 한 철 피었다 지는 꽃이 되기엔 너무 아쉬었습니다 무엇이 되라 하시더냐 내게 되묻는 질문은 하염없이 굳어져 가고 오..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0.12.06
바람 맞은 날 바람 맞은 날 별똥별이라고 했다 그리우면 지상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나는 밤을 기다렸다 하루 이틀 마다 않고 하늘을 우러르는 일은 맑고 그윽한 일 오지 않는 전언 대신 겨울이 왔고 바람이 불었다 푸른 이끼가 돋은 약간의 우울에는 쌉싸름한 냉소가 섞여 주저하며 닫지 않은 문 안으로 그림..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0.12.01
공놀이 공놀이/나호열 아이들아, 사랑이란 말을 배웠지,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다고, 그래 공놀이와 같은 거야 한 쪽이 높이 던져 올리면 한 사람은 두 손으로 내려서 받고, 원심력과 구심력, 그 말은 어렵지 공은 하늘 너머로 가고 싶지만 그 욕심의 무게 때문에 추락하고 말지, 태양도 달도 보석같은 별들도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0.11.30
밤길 밤길 추운 밤이다 달은 하늘 한 켠에 오그라들어 있고 별들의 숨결은 하얗게 서리로 내려앉는다 가로수들은 하나 둘 길을 버리고 집을 찾아 떠났다 밤길을 걸으며 가슴 뜨거운 것은 지금 나는 집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집을 잃어버리고 달과 별을 잃어버리고 길 가에 가로수 대신 서 있는 사람들을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0.11.28
알몸의 반가사유 알몸의 반가사유 숨죽여 울기 위하여 옷을 벗는데 알몸이 되고 보니 더 서럽다 옷에 묻은 얼룩이 언제 소리 없이 속으로 배어 물들었나 무엇이 때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밀고만 있다 때가 언제인지도 모르면서 쭈그려 앉아 있다. 발 뒷굼치는 갈라져 있고 발바닥에는 티눈이 박혔다 어디서 부딪쳤는지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0.11.20